好學의 時事/[교회소식]본이 되는 교회

<14> 용인 새에덴교회

好學 2011. 10. 29. 10:05

 

<14> 용인 새에덴교회

 

 

경기 용인시 새에덴교회는 사회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책임을 지는 교회를 표방하고 있다. 무지개처럼 일곱 빛깔이 있으면서도 하나로 모여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 교회의 꿈이다.

소강석 목사

故박종삼 목사

 

《“망각은 포로상태를 이어지게 한다.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야드바셈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 ‘기억의 산’이라 불리는 그곳에는 600여만 그루의 나무가 있다. 나치에 학살당한 같은 수의 유대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심은 것이다. 21일 찾은 경기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새에덴교회(예장 합동교단)는 야드바셈처럼 ‘고난의 기억’을 교회를 밝히는 빛으로 여기고 있다. 신앙적 의미의 고난을 넘어 국내 개신교회에서는 드물게 우리 역사의 고난도 소중하게 기억하며 간직하고 있다.》


교회는 2005년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고난의 역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회 담임목사와 청소년 100여 명이 참여해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과 서울 송파구 삼전도비, 전남 진도 울돌목 등 역사의 영욕이 서려 있는 곳을 답사했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는 중국을 방문해 지린 성 광개토대왕비와 상하이임시정부 옛 청사, 난징 대학살 기념관 등을 방문했다.

체계적인 역사와 신앙 교육을 실시하는 ‘쉐마 비젼 스쿨’도 운영하고 있다. ‘쉐마’는 히브리어로 ‘들으라’는 뜻. 4∼7세를 대상으로 한 키즈 스쿨과 초등학생, 중고교생 대상으로 나뉜다. 유기농 농장과 역사적 명소 등 다양한 분야의 현장을 찾고 직접 체험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은 매달 80명을 모집하지만 순식간에 모집정원이 찰 정도로 인기가 높다.

“남한산성 수어장대(守禦將臺)에 갔을 때 여기까지 온 인조대왕이 불쌍하고 얼마나 불안했을까 생각이 들었다. …삼전도비에 누군가 빨간색으로 낙서해 다시 복구하느라 천막을 쳐놓았다. 창피한 역사는 없애야 한다고 그랬다는데 맞는 말 같지만 아닌 것 같다. 어린이들이 다시는 그런 나라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현장 학습 뒤 남긴 한 초등학생의 글이다.

교회가 굳이 고난의 역사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소강석 담임목사(49)는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역사를 잊거나 숨길 때 그 나라와 사회는 곧 정체성의 위기를 맞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맨손과 맨몸, 맨땅에서 일어선 ‘3M 목회자’를 자처한다. 이 교회는 1988년 서울 가락동 지하 공간에서 4명이 모여 창립예배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현재 출석 기준 1만5000여 명의 교회로 성장했다.

강좌 만들어 역사의식 심어…청소년은 7년째 역사 탐방

“사회봉사는 초창기 교회가 어려울 때부터 적극적으로 나섰고, 당연하기 때문에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성장했다는 증거’를 대라는 한국 사회의 요구에 교회가 귀 기울이고 답해야 할 때입니다. 신앙적인 면이나 신자 수가 아니라 (신앙에 관계없이) 교회가 사회의 밑거름 역할을 해야 합니다.”(소 목사)

실제 새에덴교회는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었다. 8층 규모의 교회 공간 곳곳에서 플루트와 바이올린, 영어 회화, 탁구 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본당조차 지역 주민을 위한 입시설명회 장소로 개방되기도 한다.

큰딸이 키즈스쿨에 다니는 김선희 씨(33)는 “키즈스쿨이나 문화센터의 이용료가 저렴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교회가 지역 주민들에게도 열려 벽을 허물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는 2005년부터 매년 봄과 가을에 난타, 웃찾사, 뮤지컬 맘마미아, 윤도현 밴드 등이 출연하는 레인보 페스티벌에 지역 주민을 초청하고 있다. 교회를 찾은 날에도 청소년과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바자가 열렸다.

6·25참전 미군 용사들의 한국 방문을 도와온 소 목사는 2007년 한일 양국의 화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마틴 루서 킹 국제평화상(개인 부문)을 받았다.

“요즘 교회가 욕을 먹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교회가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탓에 바깥 사회와 소통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입었던 서민의 옷 대신 귀족 옷을 입고 그대로 행동했던 거죠. 이제는 교회의 신앙적 성숙이 사회적 성숙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소강석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故박종삼 목사▼

가난하고 외롭던 신학생 시절, 박종삼 목사님은 나를 아들처럼 아껴줬다. 집에서 고깃국을 끓이는 날이면 나를 불러 친아들 몫까지 내 밥그릇에 올려주며 주의 종은 잘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미국으로 떠나면서 저서 앞쪽에 철부지 신학생에게 ‘소강석 목사님 혜존, 부디, 큰 종이 되소서. 작은 종 박종삼 목사 드림’이라고 자필로 써 주기도 했다.

목사님은 신학대인 광신대 총장을 지내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목회를 했다. 이후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분 묘지로 달려가 이런 시를 읊조렸다. ‘당신은 지금 이국 땅/필라의 한 묘지에/쓸쓸하게 누워 계셔도/당신의 혼과 정신은/제 속에 살아 움직이고/엄청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이제 나도 목사님처럼 민족과 역사를 섬기고, 영혼을 사랑하는 목사가 되겠다는 꿈의 꽃씨를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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