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書槪論/[구약성서개론] 개관

[스크랩] 다니엘 개론

好學 2011. 11. 8. 21:05

다니엘 개론

 

다니엘-서론과 개요

 

 

저자: 다니엘은 구약 역사에 있어서 위대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두드러진다. 그가 역사상의 실제 인물이었음은 성경 곳곳에서 입증된다(14:14/28:3/24:15/11:33).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의 정복이 시작되었던 당시에(주전 605) 그는 10대의 소년이었다. 몇 차례에 걸쳐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이송되었는데, 다니엘은 왕족이었으므로 그 첫번째 이송에 섞여있었다. “광맥의 정수들을 이송시켜서 그들을 왕궁에서 봉사하게 하는 것이 바벨론의 정책이었다. 다니엘은 고레스가 왕국을 빼앗은 주전 539년에도 여전히 활약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60년 이상 바벨론에 살며 사역을 하였다.

그는 네 명의 통치자에 걸쳐 살았고(느부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 세 왕국을 거쳤다(바벨론, 메대, 바사). 그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이라는 뜻이다. 그는 몇 개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의 성품과 지혜로 말미암아, 그리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으로써 크게 승진하였다. 느부갓네살은 그에게 지혜로운 사람들 중의 으뜸이라는 이름을 주어 그 땅의 통치자로 삼았는데(2:48), 오늘날로 말하면 수상의 자리와 비슷하였다. 느부갓네살의 손자 벨사살은 은퇴해 있는 다니엘을 불러 그 땅의 세번째 통치자로 삼았는데(5:29) 이것은 그가 벽에 쓴 글씨를 읽었기 때문이다. 다리오는 다니엘로 하여금 전국을 다스리게 하였다(6:1-3)! 다니엘이 사악하고 우상을 섬기는 왕국에서 최소한 75년 간 하나님의 충성된 증인이었음은 물론이다.

 

다니엘서: 본 서는 신약의 요한계시록에 해당한다. 사실 다니엘서가 없이는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수가 없고, 요한계시록이 없이는 다니엘서를 이해할 수없다. 예언적으로 볼 때, 다니엘서는 이방인의 시대를 다루고 있으며(21:24), 이 시대는 주전 606년에 포로 생활로부터 시작되어 그리스도께서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러 이 땅에 돌아오셔서 그의 왕국을 세우실 때 끝나게 된다. 이 책은 하늘에 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2:28)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의 왕국을 통치하신다“(4:25)는 사실을 입증한다. 다니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의 일들에 절대주권을 행사하심을 명백히 밝힌다. “역사(History)는 그분의 이야기(HIS story)이다.“ 하나님은 통치자들을 보좌에서 내려오게 하실 수있으시며 가장 강한 나라들을 패배시켜서 그들의 적들에게 넘겨 줄 수도 있으시다. 이 책은 다니엘의 개인적인 역사(1-6)와 선지자적인 사역(7-12)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11-23절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24-728절은 갈대아어로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어로 된 부분은 주로 유대인들을 다루고 있으므로 그들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역사의 순서: 다니엘서는 역대기 순으로 배열된 것이 아니다. 전반부에서 다니엘은 다른 사람들의 꿈들을 해석하고 후반부에서는 자기 백성의 장래에 관한 환상들을 본다. 이 책의 역사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포로됨(주전 605-604)

2/우상에 대한 꿈(주전 602)

3/느부갓네살의 우상

4/느부갓네살의 나무에 관한 꿈

7/네 동물의 환상(주전 556)

8/수양과 숫염소(주전 554)

5/벨사살의 축제-바벨론의 멸망(주전 538)

9/70주간의 환상(주전 539)

6-사자굴 사건

10-12-끝맺는 환상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 80줄에 들어선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 개요

 

주제: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의 왕국을 다스리신다“/425

 

1. 다니엘의 개인적인 역사/1-6

 

그의 거룩한 행실을 유지함/1

우상의 꿈을 해석함/2

금 신상(다니엘은 여기 참여하지 않았다)/3

나무 꿈을 해석함 /4

벽에 나타난 글씨를 해석함/5

그의 거룩한 헌신을 유지함-사자굴/6

 

2. 다니엘의 예언자적 사역 /7-12

 

네 동물에 관한 환상/7

수양과 숫염소에 대한 환상 /8

고백의 기도-70주간 /9

장래에 관한 마지막 환상/10-12

 

다니엘서에 나타난 왕국들: 다니엘서에는 여섯 가지 왕국이 제시되어 있다.

 

27

바벨론 황금으로 된 머리 독수리의 날개가 달린 사자 (주전606-539) (36-38) (4)

메대바사 은으로 된 팔과 가슴 세 개의 갈빗대를 문 곰 (주전539-330) (39) (5)

그리이스 동으로 된 넓적다리 네개의 머리를 가진 표범 (주전330-150) (39) (6)

로마 철로 된 다리 용처럼 생긴 짐승 (주전150-주후500) (40) (7)

적그리스도 철과 진흙으로 된 발가락 작은 나팔 (41-43) (8)

그리스도 날아와서 친 돌 옛적부터 계신 이의 통치 (44-45) (9-14)

로마제국은 또다른 세계제국으로 대치된 것이 결코 아님을 명심하라. 따라서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일어날 때까지 사실상 계속되는 것이다. 이 마지막 세계지배자는 유럽 연합국을 건설할 것이며(열 개의 발가락), 이 연합국은 옛 로마제국의 본을 따를 것이다. 2장에서 우리는 나라들에 대한 인간적인 관점(값진 금속들)을 보며, 7장에서는 하나님의 관점을 본다(위험한 짐승들)."

 

 

포로 생활과 타협 - 다니엘 1

 

다니엘서의 역사에서 우리는(1-6) 세 차례의 곤경을 보게 된다. 바벨론에 도착하였을 때 당한 네 히브리인의 시련(1), 불타는 풀무(용광로/3), 그리고 사자의 굴(6)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하여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승리를 얻었고, 1장에 설명된 첫 승리는 다른 승리들의 기초가 되었다. 유대 소년들이 아직 10대였을 동안에 하나님께 충성했으므로 하나님은 그 이후의 날 동안에 그들에게 신실하셨다.

 

1. 어려운 시련들(1-7)

 

10대의 네 히브리 소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아름다운 가정에서 탈취당하여 머나먼 바벨론으로 이송된 것을 상상해 보라. 이들 모두는 왕족에 속하는 왕자들이었으므로 이러한 방식의 취급에는 익숙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나라의 젊은이들이 부모들의 죄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회개하고 여호와께 순종하기를 거절하였었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경고한 대로 바벨론 군대들이 주전 606-586년에 쳐들어 왔으며 그 땅을 점령하였다. 가장 훌륭한 젊은이들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와서 왕의 궁정에서 훈련을 시키는 것은 그들의 관습이었다. 3절의 이 네 젊은이들은 정예의 표본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수려하며, 사회적으로는 경험이 풍부하고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받으며, 정신적으로는 예리하고 교육을 잘받았으며, 영적으로는 여호와께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며 누가복음 252절에서의 그리스도와 같이 10대의 완전한 모범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시련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왕은 강권적으로 이들로 하여금 바벨론의 방식에 따를 것을 명하였다. 그는 이 훌륭한 유대인들에게 노동을 시키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바벨론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였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은 시련에 직면한다. 사단은 우리가 이 세상을 따르게 되기를원한다(12:1-2).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양보하여 그들의 능력과 그들의 기쁨과 그들의 간증을 잃는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다음 변화들에 주목하자.

 

새로운 가정(1-2)-이제 이들의 주위에는 예루살렘의 종교적인 일들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은 없었다. 또한 더이상 그들의 경건한 부모들과 교사들의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집을 떠나면 경계를 풀고 세상을 따라 살아가는기회로 삼아 이를 즐긴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지식(3-4)-옛 유대인의 지혜는 버려야만 하였다. 이제부터는 세상의 지혜, 바벨론의 지혜로 대신해야 했으며,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의 지혜와 언어를 배워야만 하였다. 왕은 이러한 세뇌 활동이 그들을 보다 훌륭한 종으로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젊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인간의 지혜를 구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음식(5)-그 다음 3년 동안 왕의 식사법에 따라 먹어야 했는데, 물론 이것은 유대인의 율법에 있는 식사법을 위반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음식들이 그 땅의 우상들에게 바쳐진 것들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히브리의 젊은이들이 그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이방의 신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이름들(6-7)-세상은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네 소년 각각은 그들 이름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다니엘(“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은 벨드사살(“벨이 그의 생명을 보호한다“)로 바뀌어졌다. ““(Bel)은 바벨론의 신의 이름이었다. 하나냐(“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사드락(“월신의 명령“), 미사엘(“하나님 같은 사람이 누구인가“)은 메삭(“아구-이방신, Aku-와 같은 사람이 누구인가“)으로, 그리고 아사랴(“여호와는 나의 도움“)는 아벳느고(“느고-이방신, Nego-의 종“)로 바뀌었다. 바벨론 사람들은 이 새로운 이름들이 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잊으며, 점차적으로 그들이 어울려 살며 연구하고 있는 이방 백성들을 닮아가게 되기를 희망하였다.

 

2. 대담한 시험(8-16)

 

바벨론 사람들은 다니엘의 가정, 학문, 음식, 이름을 바꿀 수는 있었으나 그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로 뜻을 정하였다 이들은 세상을 따를 것을 거절하였다. 물론 이들은 핑계를 댈 수도 있었으며, 오늘날의 어떤 그리스도인들과도 같이 군중을 따라갈수도있었다 이들은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어!“ 또는 왕에게 순종하는 것이 낫겠어!“ 또는 순종하는 체하면서 은밀히 우리의 믿음을 지키자고 말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으며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로마서 121-2절이 가르치고 있는 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여호와께 굴복시켜 하나님께서 남은 일을 하시도록 하였다.다니엘은 열흘 간 시험해 볼 것을 요청하였다. 이 기간은 앞으로 3년간 훈련을 받을 것을 생각하면 긴 기간이 아니었으므로 감독은 그들의 계획에 동의하였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16:7/6:33/22:1 참조). 그 종은 왕의 명령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나 젊은이들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되었으므로, 다니엘의 시험 제안에 따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해결책이었다. 물론,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높이셨다! 소년들은 채소(콩류)와 물로 열흘을 보냄으로써 바벨론의 피섞인 고기와 더럽혀진 음식을 피하였다. 시험을 마칠 때 즈음에는 네 소년이 왕의 식탁에서 먹은 다른 학생들보다 더 건강하고 잘 생겨 보였다!

 

세상의 유혹과 압력을 이기려면 믿음과 순종(“믿고 따라감“)이 필요하다. 고린도전서 1013절의 말씀이 아직 기록되지 않은 때였으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체험으로 그 진리를 알고 있었다. 다니엘이 바벨론의 신하에게 얼마나 정중하고 친절하였는지 주목하자. 그는 자기의 신앙을 펼쳐 보이지도 않았고그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따라야 할 좋은 본보기이다. 우리는 괴팍하게 굴지 않고도 신념을 소유할 수가 있다!

 

3. 하나님의 승리(17-21)

 

열흘 간의 시험은 단지 한 가지의 실례에 지나지 않는다. 바벨론의 대학에서의 3년 과정은 어떠하였을까? 대답은 17절에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더 잘 배울수 있도록 하셨으며 이러한 지식 위에 하나님의 영적인 지혜를 첨부시키셨다. 물론 20절의 박수와 술객“(마술사와 점성술사)은 왕을 위해 연구하며 일들을 결정하는 그 왕국의 사람들이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들 역시 꿈을 해석하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어리석은 종교와 바벨론의 행습을 믿지 않았으나 똑같은 것을 공부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며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과 꼭 같았다. 다니엘은 그 거룩하지 못한 곳에서 그를 증인으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였다. 다니엘은 그 후 75년간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 증인이 되었다!

 

왕은 스스로 네 히브리 청년들이 그의 가장 훌륭한 고문들보다 열 배는 머리가 좋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종류의 명성은 점성술사들로 하여금 시기하게 했으며, 후에 유대인들을 제거하려고 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니엘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인기인이 되었다면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또는 여호와를 실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았으므로 인간의 체면이나 위협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원하시는 일을 행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부엌이나 교실에서, 또는 왕좌에서조차도 매사에 그리스도를 첫자리에 둘 것을 마음의 진정한 목적으로 삼은 그리스도인들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다니엘은 계속해서... 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간증이 아닐 수 없다! 사단은 다니엘에게 당신이 이 근처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면 군중의 말을 따르는 편이 좋을 거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여호와께 순종하였으며, 그 누구보다 보좌 가까이에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는 네 왕을 모시며 사역하였고 아마도 유대인들이 유배를 끝내고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사실 오늘날 우리들은 다니엘의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으며 도움을 얻고 있다. 그가 젊을 때에 직면한 시험들에서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렸다면 다니엘은 말년의 승리들과 축복들을 누리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자“(10:11)라는 말을 들었는데 성경에서 이런 말을 들은 다른 분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았던 까닭으로 다니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누렸다(요일 2:15-17). 그의 정화된 삶(헌신)은 그에게 용기를 주었으며, 그의 믿음은 그를 충성된 자가 되게 하였다. “다니엘처럼 담대하여... 담대하게 홀로 서며... 담대하게 뜻을 굳히고... 담대하게 그것을 알리라!“"

 

 

큰 우상 - 다니엘 2

 

 

이 장을 주의깊게 연구하자. 이 부분은 세계 역사의 요약이다. 본 장과 7장을 이해하면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또는 성경 예언의 다른 부분들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다니엘의 역경(1-13)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러 처음에 왔을 때 그는 아직 왕이 아니었고, 바벨론에 있는 아버지 나보볼라살을 위해서 활약하고 있었다. 외관상으로 볼 때 15절에 나오는 다니엘의 훈련 기간과 21절에서 말하는 왕의 통치 2년에라는 설명에 모순이 있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고고학은 성경의 진실성을 증명한 셈이다. 왕은 그의 장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29) 그의 왕국이 과연 오랜 동안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 염려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미래를 보이는 꿈을 꾸게 하셨다. 하지만 물론 그 꿈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사실은 그 꿈을 잊어버렸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님이 계시다(14:26). “가짜술객들과 박사들은 난처해졌다. 왜냐하면 왕은 그 꿈의 해석을 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꿈을 말하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라도 꿈의 해석을 창안해 낼 수는 있지만 그들이 본 일도 없는 꿈을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이 세상의 지혜는 이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왕이 마음을 돌리기를기대하며 시간을 벌려고 하였다(8-9). 그러나 왕은 오히려 모든 박사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 속에는 다니엘과 세 친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단은 살인자이다(8:44). 다니엘이 죽는 것을 본다는 것이 즐거웠을 것은 물론이다.

 

2. 다니엘의 기도와 찬양(14-23)

 

우리는 다니엘의 용기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시위대 장관을 담대하게 직면했을 뿐만 아니라 왕을 만나러 곧장 나아갔다! “의인은 사자처럼 담대하다“(28:1). 하나님은 이 대화를 주관하셨고(21:1), 왕은 다니엘에게 시간을 주었으나 다른 박사들에게는 시간을 주지 않았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 열렬히 기도하는 데 그 시간들을 사용하였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1:5).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것이요“(7:7).

하나님께서는 밤 시간에 다니엘에게 그 꿈을 나타내셨고 그 해석을 계시하셨다! 잠언 332절과 시편 2514절을 읽고 어떻게 해서 다니엘에게 이러한 특권이 주어졌는지 알아보라. 다니엘은 이 새로운 지혜로 인하여 왕에게 달려가거나 자랑하지 않고 먼저 여호와를 찬양할 시간을 가졌다! 25-30절에서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다니엘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신자를 위하여 그가 일하시는 데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3. 다니엘의 예언(24-25)

 

다니엘은 시위대 대장에게 가서 다른 박사들을 죽이지 말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은 죽어야 마땅하였고 또한 이들이 제거된다면 다니엘의 지위는 높여질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적을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잃어버린 사람들이 한 신자의 출현과 중재로 말미암아 육체적인 해()에서 구원받게 되는지는 영원 세계만이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다니엘은 왕에게로 나아가서 왕 자신조차도 잊어버렸던 꿈의 내용을 말하였다. 왕은 자기 왕국의 장래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었기 때문에(29) 하나님은 장차 될 왕국의 환상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그는 사람 모양의 거대한 신상을 보았다. 그 머리는 금으로 되었고 가슴과 팔은 은이며 배와 허벅지는 구리 또는 청동으로(놋은 아니었다-아직 발견되기 전이었다). 다리는 철이요, 발은 철과 진흙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또한 돌이 발 위에 떨어져 전체의 신상을 가루로 부숴뜨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돌이 커져서 큰 산과 같이 온 땅을 채웠다.

28절은 이 꿈의 온전한 의미가 말세에 해당하는 것임을 말해 준다. 각 금속은 다른 왕국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바벨론은 금으로 된 머리였다(38). 다음으로는 메대 바사 왕국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은으로 된 가슴과 팔로 상징되었다. 다음으로는 헬라 세계가 올 것이며, 이는 청동으로 된 배와 허벅다리이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왕국은 로마제국으로서 철로 된 두 다리이며(로마왕국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되었다), 철과 흙으로 된 발은 말세에 임할 왕국을 나타낸다(부서지기 쉬운 혼합이다). 이것은 로마제국의 연속이며 열 개의 왕국으로 나뉘어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어떤 종말을 당할 것인가? 돌이신 그리스도(21:44)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세계의 나라들을 치실 것이며 자신의 세계, 곧 능력과 영광의 거대한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이 신상은 세계 역사의 청사진이다. 우리는 신상의 재료들의 중량이 감소하고 있으며(금에서 진흙으로), 따라서 신상의 머리가 무거워 쓰러지기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일류의 문화가 강력하게 잘 견딜 것으로 생각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진흙 발 위에 얹혀져 있는 것이다! 또한 그 가치에 있어 황금에서 은, 청동, 철 진흙으로 점점 하락하는 것을 살펴보지 인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나아지는것인가? 아니다! 인간의 문화는 사실상 점점 더 값이 싸지고 있다! 또한 아름다움과 영광도 감소되고 있다(금은 철과 흙이 섞인 것보다는 아름답다). 또한 우리가 역사의 종말에 접근해 감에 따라서 힘의 감소가 있을 것이다(금에서 진흙). 계승해 가는 왕국들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힘을 지녔으며 로마는 굉장한 군사력을 행사하였으나 문화는 점점 더 연약해질 것이었다. 그에 따라 인간과 민족들은 대단히 연약하여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배자를 요구하게 되므로, 적그리스도는 세계적인 명령권을 조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들 왕국의 각각은 서고 다른 형태의 정부를 가졌다. 바벨론은 절대적인 군주국가였으며 독재권을 행사하였다(5:13 참조). 메대 바사제국은 왕이 있었으나 제후들을 통하여 통치하였으며 법을 제정하였다(6:1-3/2:19 에 있는 메대 바사의 법을 기억해 보자). 그리이스는 왕과 군대를 통하여 운영되었고, 로마는 공화국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법률을 통한 군사적인 통치였다. 철과 진흙에 이르게 되면 오늘날의 정부 형태가 된다. 철은 법률과 정의를 나타내며 진흙은 인류를 나타낸다. 이들이 함께 어울려 민주주의를 이룬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힘이란 곧 법률이다. 민주주의 약점은 인간의 본성에 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의 제한을 거절할 때 오는 무법성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꿈의 전체적인 광경은 낙관적인 것은 아니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왕국이 어느 날 망하게 될 것을 보았으며 메대 바사로 대치될 것을 보았다. 이 일은 538년에 발생하였다(5:30-31). 메대 바사는 주전 330년 경에 헬라(그리이스)에 의해 정복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리이스는 로마로 가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로마제국은 외관상으로는 사라질 것이지만 그 법률과 철학, 기구들은 진흙의 발로 우리를 끌어내리며 오늘날까지 지속된다.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은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는 것이다. 주님이 이 땅에 돌아오실 때 나라들을 정복하실 것이며(19:1- 이하) 자신의 영광스러운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4. 다니엘의 승진(46-49)

 

왕은 그의 약속을 지켰으며(6) 다니엘에게 영예와 하사품을 주었으나 그는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는 데 마음을 쓰고 있었으므로 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충성함으로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되었다. 이는 자기의 확신과 타협하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문에 앉아 있었는데, 이것은 권위있는 지위였다. 롯도 문에 앉았었으나(19:1), 이것은 그가 타협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다니엘은 명예를 혼자서 간직하지 않고 그의 세 친구들도 역시 승진케 해달라고 간청하였다(49). 이 사람을 알면 알수록 그의 이타심과 겸손을 좋아하게 된다!

 

우리는 7장에서 위와 같은 왕국들을 다루게 된다. 거기서는 이 왕국들이 들짐승들로 비유되고 있는데,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를 그렇게 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금이나 은이나 동 등에 감동을 받지 않으신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땅의 왕국들은 금속과 같이 영속성이 있으며 강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사나운 동물들이었다! 다니엘은 장래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으므로 완전한 확신과 평화를 갖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믿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통치자나 국가에 상관없이 평화를 가질 것이다."

 

 

풀무(용광로) - 다니엘 3

 

 

이것은 참으로 극적인 이야기이다! 세상의 지배자에게 담대하게 도전하며 바벨론의 수 많은 사람들과 다르게 구는 세 명의 유대인들을 상상해 보라! 비록 이 사건이 먼 바벨론에서 2,000년 전에 발생한 일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 할 중요한 교훈을 지니고 있다.

 

1. 실제적인 교훈

 

본 장에 나오는 사건과 2장에 나오는 사건들 사이에는 약 20년의 간격이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느부갓네살의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246-4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시인하였으나 이 진리가 결코 그의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그는 다니엘과,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나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도, 여호와를 믿지도 않았다. 그 결과로 왕은 온 제국을 강압적으로 우상 숭배자들로 만들려고 하였다. 이것은 긴 안목으로 볼 때에 왕을 예배한다는 뜻이었다. 결국 그는 꿈에서 보았던 황금의 머리가 아니었던가(2:38)? 그렇다면 전체가 금(아마도 나무에 금을 입힌 것으로)인 신상을 만들어 왕을 더욱 영광스럽게 하면 어떻겠는가?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고 있지 않을 때에 인간의 마음은 이런 식으로 작용한다. 인간은 자신을 영화롭게 하며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예배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물론 세 사람의 유대인 관리들은 왕의 명령을 따를 수가 없었다. 로마서 13장은 지배자들과 법률에 순종하라고 신자들에게 말한다. 또한 사도행전 529절과 419절은 어떤 그리스도인도 정부에 순종하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부가 우리의 양심을 지배하려 하며 어떻게 예배하라고 말할 때에는 어떤 댓가를 치를지라도 인간들보다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음악이 연주되고 모든 사람이 신상 앞에 절하는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들의 입장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동요되기를 거절하였다. 다른 박사들은 이것으로 유대인을 고발하는 기회로 삼았고, 왕은 그의 명령이 준행되지 않는 것을 알고는 격분하였다. 세 사람들이 훌륭한 인물들임을 알자(다니엘의 친구들). 왕은 그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었다. 그러나 이들은 굳게 남아 있었다. 이들은 변절하기보다는 불에 탈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옷을 입은 채 묶여져서 풀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 이야기에서 세가지 약속이 두드러진다.박해에 대한 약속-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께 헌신한 삶을 살고 있다면 박해의 용광로를 기대해야만 한다.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베드로는 썼다(벧전 4:12 -이하).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며 사단은 용광로가 칠 배나 더 뜨겁게 불을 때는것을 본다! 물론 이 세 명의 유대인들은 핑계를 대고 군중을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보다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주님을 의뢰하고 서 있었으며,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임을 믿고 있었다. 그리스도인이여, 박해를 기대하라! 하나님은 박해를 약속하셨다(1:29/15:18-20).

 

보존의 약속-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불시험을 통과하는 동안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우리를 용광로에서 보호하지 않으실 수도 있으나 그는 우리와 동행하실 것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통과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왕이 용광로를 들여다 보았을 때 네 사람을 보았는데 그들 중의 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이사야 432절을 읽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찾아보자. 그리스도는 그들과 함께 하셨으며 그들의 결박을 풀어 놓으셨다.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키셔서 그들이 나왔을 때에는 불 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다(27). 그 비결은 그들의 믿음에 있었다(11:34).

 

승진의 약속-이 사람들은 사실상 불을 통과하게 됨으로써 보다 나아지게 되었다! 그 한 가지는 그리스도와 함께 행하며 그와 함께 고난받을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지 알기 위해서는 위험과 시련을 겪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불이 그들의 묶은 것을 풀어 준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 우리에게 죄와 세상으로부터의 즐거운 자유와 해방을 주는 것과 같다. 그들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영화스럽게하였다(고전 6:19-20). 왕은 그들을 승진시켰으며 명예를 주었다. 첫째로 고난이요 다음으로 영광이다(벧전 5:1/벧전 5:10-11).

 

2. 교리적인 교훈

 

성경에서 바벨론이라고 할 때는 하나의 도시나 제국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하나의 체제를 나타낸다. 바벨론은 이 세상에서 사단이 가지는 제도에 대해 하나님이 부르시는 이름이다. 바벨론은 창세기 1010절에서 시작되었는데 니므롯의 작품이었으며, 그 뜻은 여호와께 대한 큰 반역이다. 바벨론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반역을 뜻하며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인간이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창세기 11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항하여 반역하는 바벨을 본다. 또한 이들을 통하여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단결하는 인간의 시도를 본다. 느부갓네살이 그의 큰 신상으로 성취하기를 원하였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그의 왕국이 하나의 정부와 하나의 종교로 단합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책략은 인간중심적인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처소는 전혀 없었다! 또한 금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체 바벨론의 제도는 하나님의 진리를 반대하는 사단의 모조품이며 인간의 마음과 정신과 육체를 사로잡으려 하고 있다. 사실 바벨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문이란 뜻이다. 하늘로 가는 길을 가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요한계시록 17-18장을 보면 이 거짓 제도가 마침내 발전하여, 온 세계의 물질적이며 문화적, 종교적인 제도가 하나의 연방을 이루며 통일을 이루는 것을 본다. 하나님은 하나의 세계라는 체제를 발전하도록 허락하실 것이며 그 후에 한꺼번에 모두를 파괴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와 사단의 거짓말, 참된 기독교와 사단의 종교사이의 차이점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참된 신자들은 이러한 세상적인 제도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된다(18:4-5). 세 명의 히브리인들처럼 우리는 바벨론에 대항하는 우리의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증거해야 하겠다.

 

3. 예언적인 교훈

 

우리는 여기서 말세에 있을 사건들의 놀라운 광경을 본다. 무엇보다도 먼저, 다니엘은 이러한 일들이 생겼을 때에 거기 있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하라. 의심할 나위없이 왕을 위하여 사무적인 일로 떠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왕은 그의 사악한 우상을 조각하는 데에 그가 궐석인 이점을 이용했을 것이다. 이 일은 교회의 휴거를 예증한다. 교회가 세상에서 떠나게 되면 사단은 인간들의 마음과 몸을 노예로 삼는 그의 악마 같은 계획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과 요한계시록 13장은 둘 다 그리스도인들이 휴거되어 하늘로 데려감을 받은 후에 사단 전성기를 누리게 될 것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 한 가지 예로 그는 세계적인 통치자 적그리스도를 일으켜(느부갓네살과 같은) 나라들을 정복하여 전체주의적인 정부를 세울 것이다. 교회는 거기 없을 것이지만 여호와께 인을 받고 사단의 속임수로부터 보호를 받은 144,000명의 유대인들이 있을 것이다(7:1-8/14:1-5). 적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우상을 세우고 세계로 하여금 그것을 예배하도록 강제할 것이다(13). 그러나, 충성된 유대인들은 절하지 않을 것이다. 바벨론의 히브리인들처럼 144,000명은 하나님을 섬길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느부갓네살왕의 신상이 수자 6과 결부되어 있음에 유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60규빗의 높이. 6규빗의 넓이, 악대에는 여섯 악기들이 있었다/ 3:1/3:5). 그리고 적그리스도는 666이란 숫자와 결부되어 있다(13:18). 예수께서 마태복음 2415-22절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우상이다.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 3장에서 교회가 휴거된 후 환란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있음을 본다. 느부갓네살은 적그리스도를 나타내며, 그의 우상은 적그리스도가 조각할 자신의 우상을 나타낸다. 세 명의 히브리 사람들은 믿는 유대인 144,000명을 나타내는데, 이들은 환란 기간 동안에 보호를 받을 것이다. 이 유대인들은 다니엘 3장을 읽어서 이해하고 있을 것이며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더불어 환란의 용광로에 들어가실 것이며 그의 영광을 위하여 다시 인도해 내실 것이다.

 

우리는 매일 현대 세계가 통일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수십 가지의 기관들과 조약들이 나라들을 함께 묶는다. 우리는 국제연합이라는 세계 정부와 세계 은행, 세계 재판소, 세계 교회 협의회들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는 곧 유럽 합중국의 발전을 보게 될 것이며, 이 조직의 지도자는 마지막의 세계 독재자,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무대는 설정되었다! “주님의 재림은 가깝다!“ 예수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불에 단 용광로를 통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원토록 뜨거운 불못에 사는 것보다는 뜨거운 용광로를 통과하는 것이 훨씬 좋다."

 

 

나무의 꿈“ - 다니엘 4

 

본 장은 왕 자신이 기록한 사실상의 바벨론 공식 문서로서, 그가 나눈 대화의 내용과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본 장은 경험을 한 후 7년 만에 기록한 것임을 명심하자. 따라서 1-3절과 37절은 하나님께서 왕에게, 그리고 왕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느부갓네살이 공식적으로 간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끝부분에서 이 구절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왕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1. 꿈을 꿈(4:4-28)

 

하나님께서 왕에게 이러한 꿈을 보내셨을 때는 평화로운 번영의 시기였다. 왜냐하면 이 꿈은 그의 죄가 마침내는 그를 사로잡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이기 때문이다. 그는 안정을 누리고 있었으나 예수께서 부자 농부에 대한 비유에서 묘사하신 것과 비슷한 거짓 안전이었다(12:15-21). 이 사악한 세계가 평화와 안전에 머물러 있을 때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때이다(살전 5:3). 참된 안정과 안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꿈은 이러하였다. 그는 온 땅을 그늘지게 하며 새들이 깃들고 동물들이 그 아래서 피난처를 찾는 거대한 나무를 보았다. 그는 이 나무를 자르라!“는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 그 나무는 잘리워졌는데, 젖은 풀 위에 그루터기가 남아 있었으며 일곱 해 동안 철로 띠를 띠고 있었다. 왕이 이 꿈으로 인하여 마음이 대단히 어지러웠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특별히 그는 왕국의 초기에 그의 통치의 미래에 대한 또다른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왕은 그의 박사들을 호출하였으나 그들은 해몽할 수 없었다! 26절에 나타나 있는 장담하는 말을 기억하자.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그러나, 이번 꿈은 그들에게 말해 주었어도 해석할 수가 없었다! 세상적인 지혜는 그 위대함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의 일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전 2:14-15). 왕은 이 문제를 풀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곧 하나님의 사람인 다니엘이었다. 그래서 왕은 그를 보좌로 불렀으며 그를 번민하게 만든 꿈으로 그를 끌어들였다. 느부갓네살은 권세와 부와 영광을 지녔지만 장래를 열 수는 없었다. 가장 가난한 그리스도인이라도 그보다는 부자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말씀 안에서 장래를 위한 계획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꿈이 계시됨(4:19-27)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그 꿈의 의미를 계시해 주심으로써 다시한 번 그를 어두운 중에 비취는 그의 빛으로 사용하셨다. 그러나, 선지자는 계시를 받고도 얼마동안 말문을 열지 않았다! 아마도 이 왕의 역사에 있어서 그때는 가장 오래 기다린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강의 멧세지가 숙연한 내용임을 다니엘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 꿈을 가볍게 취급하거나 부주의한 태도로 그 해석을 전하지도 않았다. 참 선지자는 언제나 그 멧세지와 같은 심정을 가지는 것이며 다니엘은 이 꿈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달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인 지혜와 지식이 반드시 기쁨과 대화로 인도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은 슬픔과 침묵으로 인도해 가는 경우가 많다. 다니엘 101-3절을 보고 70년의 유배 생활에 대한 진리에 대하여 다니엘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자.

 

그 해몽은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 나무는 느부갓네살과 그의 위대한 왕국이다(20-22). 하나님은 종종 왕국을 나무의 모습으로 비유하신다. 에스겔 31장은 그 한 예이며 마태복음 1331-32절도 그러하다. 나무는 이 땅의 왕국을 나타내는 데는 좋은 상징이다. 왜냐하면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양분과 안정성을 땅에 의존하고 살기 때문이다. 보호를 받기 위하여 바벨론을 바라보는 다른 나라들은 그 나무에, 그리고 나무 아래 거하는 짐승과 새들로 비유되어 있다. 물론 바벨론은 위대하고 강한 왕국을 이룩하였지만 이 일은 느부갓네살이 자랑할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보좌와 왕국을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군주가 가혹한 방법으로 배워야 했던 교훈이 바로 이것이었다.

순찰자와 거룩한 자는 물론 하나님의 천사이며 바벨론 왕국에서 일하도록 지명된 천사들이다. 다니엘 910절과 104-20절은 이 세상 나라들의 일에 매우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천사들은 선포하였다. 나무를 베어라-느부갓네살왕을 보좌에서 내려라! 그는 이제 어떤 경험을 겪게 되는 것일까! 인간답게 사는 것을 멈추고 7년간 짐승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나무는 베어졌으며 철로 동여 매어져서 성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심판은 영속적인 것이 아니었다. 느부갓네살은 7년 후에 다시 인간적으로 되고 이성을 되찾을 것이며, 큰 영광 가운데 그의 보좌로 올리워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왕의 생애를 이런 식으로 다루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에게 겸손을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신상의 꿈에서 그가 황금의 머리로 상징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3장에서 왕은 자신을 숭배하고 찬양하도록 유인하기 위해 전체가 황금으로 된 우상을 만들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교만한 군주에게 실제로는 마음이 짐승같음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었다. 7장에서 다니엘은 모든 제국들이 들짐승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주는 환상을 보게 된다! 다니엘은 왕에게 회개하고 그의 방법들을 변경시키라고 경고한다. 다니엘은 간청하였다. “죄악을 깨뜨리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시고 주님을 섬길 날들을 주실지도 모릅니다.“ 결국 하나님은 두 가지 다른 경로, 2장의 꿈과 3장의 용광로 이야기를 통하여 왕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귀머거리의 귀를 들이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3. 꿈이 실현됨(4:28-36)

 

그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이 경고에 대하여 생각하고 죄에서 돌이키도록 꼬박 일 년이란 시간을 주셨으나 왕은 마음에 간직하지 않았다. 사실상 그의 성공으로 인하여 더욱더 교만하여졌다(8:11/29:1 참조). 그런데 심판의 날이 임하였으며, 왕의 참된 짐승같은 본성이 드러나 모든 사람이 보게 되는 날이 왔다. 사람들은 그를 궁전에서 몰아내었으며 들짐승과 같이 7년 동안 살며 소처럼 풀을 먹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왕을 겸손케 하기를 원하실 때는 신속하고 철저히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시다.

하지만 그 일이 영원토록 지속된 것은 아니었다. 7년 후에 느부갓네살은 개심하였다. 첫단계(왕이 기록하고 있는 대로)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였다(34), 이 일이 생기기 오래 전에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 참으로 유감된 일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 고백은 여호와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애가 변화된 사람의 소리로 들린다! 왕은 그가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하나님은 모든 것이라는 교훈을 배웠다. 34-35절을 읽고 느부갓네살이 이러한 낮아짐의 경험을 통하여 실천적인 교훈을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알아보자. 오늘날 세계의 교만한 통치자들이 자신들을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모든 것임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다. 17절은 이 교훈을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들을 다스리신다.“

 

이제 1-3절로 돌아가자. 이 강력한 독재자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며 평강을 전하고 있다! 느부갓네살은 평화로운 활동들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잔혹한 전쟁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절을 읽어 보면 베드로나 바울이 쓴 무슨 서신류 같은 느낌이 든다. 2-3절에서 그가 어떻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리며 여호와의 위대하심의 덕택으로 돌리는지 살펴보자.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이 땅 독재자의 말 같지가 않다. 그는 7년 전만 해도 이것이 내가 세운 위대한 바벨론이다!“라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한 마디의 찬양이나 감사의 말도 없이 자기의 능력과 자기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변화되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하신 일에 대하여 개인적인 증거를 삼기 위하여 공식적인 서류를 작성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37절은 위대한 절정이다. “나는...나 느부갓네살이 아니라...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칭송하고 존경하노니... “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시느니라“(37). 우리는 본 장에서 말세에 나라들에게 일어날 일들을 미리 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위대함과 영광을 자랑하게 될 즈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7년 간의 무서운 심판을 내리실 것이며 그들을 낮추실 것이다. 이 환란시대의 종말에 그리스도는 이 땅에 돌아오셔서 그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나라들은 영광스러운 왕국으로 들어갈 것이며 그 밖의 나라들은 내던짐을 당할 것이다. 느부갓네살처럼 이들은 교만과 불신앙에서 개심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벨사살의 운명 - 다니엘 5

 

 

4장과 5장 사이에 20여 년이 흐르고 느부갓네살왕은 무대에서 퇴장하였다. 그를 계승한 아들은 몇 년간만 통치를 하다가 그의 처남에게 암살을 당하였고, 이 사람도 역시 4년 간을 통치하였으며 전쟁에서 죽었다. 이 두 통치자들은 매우 짧은 기간만 보좌를 차지하였었는데 이들 중에서 두번째 인물은 나보니두스였다. 그는 사실상 느부갓네살의 사위였으며 전대 왕들 중의 한 사람의 과부와 결혼하였다. 나보니두스는 그 당시 바벨론 제국의 왕이었으며, 그의 아들 벨사살은 바벨론 도성의 군주였다. 다니엘이 왜 세번째 통치자였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7, 29). 5장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동안에 나보니두스왕은 4개월간 메대 바사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왕이 겪은 일을 살펴보자.

 

1. 잔치를 즐김(1-4)

 

이 축제는 위대한 바벨론의 신들 중의 하나를 예배하는 것이었으며 주전 539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고고학자들은 1,000명의 손님들을 대접하기에 충분한 넓은 방이 있는 바벨론의 궁터를 발굴하였다. 이들은 또한 그 벽이 흰 분필과 같은 재료로 덮여 있었던 것도 발견하였는데 이것은 벽에 글씨를 쓴 사건을 설명해 준다. 이 구절들에 나오는 주된 것은 포도주를 마시는 일이다. 술은 이 세상의 바벨론 체제와 언제나 관련이 되어 있다(51:7/14:8/17:1-5/18:3/18:13). 왕은 그의 신들에게 축배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4/ 9:20) 유대인들의 신을 모욕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왕은 신성한 성전의 기물들을 가져다가 우상을 섬기며 신을 모욕하는 잔치에 사용하게 하였다(1:2). 52절에 나오는 아버지라는 단어는 할아버지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11절과 13절에서도 나온다.

성 안에서 벨사살의 잔치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메대 바사의 강력한 군대가 이미 그 성의 문 밖에 와 있었음을 명심하자! 왕은 그 요새가 함락되지 않으리라는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문 밖의 침략자들을 비웃었다. 오늘날 우리 세계의 모습이다! 심판이 막 임하려고 하는데 인간들은 결혼을 하며 거짓 신들을 예배하고 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라고 데살로니가전서 53절은 말한다. 바벨론은 약 10m높이에 26m넓이의 성벽을 가진 강력한 요새였다. 유브라데강이 그 성을 대각선으로 흐르고 있었으며 큰 놋으로 만든 문은 그 성의 출입을 조절하였다. 누가 이같은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들은 함락되었다!

 

2. 두려움을 나타냄(5-9)

 

손님들은 신비한 손이 나타난 것을 즉각적으로 보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왕은 그들의 반대편 벽면, 그들의 머리 위에 씌어진 글씨를 보았다. 왕이 떨며 무릎을 부딪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손님들에게 참으로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술은 이제 그에게 용기를 줄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멧세지를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7절에는 왕이 소리를 질렀다고 되어 있다. 그는 손과 글씨의 뜻을 알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실상, 그는 이것을 설명하는 사람에게는 그 나라의 세번째 지위를 약속하기까지 하였다(참으로 어리석다! 몇 시간만 지나면 벨사살은 살지도, 다스리지도 못할 것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왕의 전문가들은 벽의 글씨를 해석할 수 없었으며 이 일은 왕으로 하여금 더욱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그가 자기의 할아버지 느부갓네살의 고문이었던 다니엘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그러나 벨사살은 조심성이 없는 젊은이였으며(이때 35세쯤 되었다) 영적인 문제보다는 권력과 쾌락에 더욱 관심이 있었다. 이 성이 망한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3. 장래를 깨달음(10-29)

 

왕의 어머니가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 현명한 여인은 벨사살의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왕국에서의 자기의 권력을 견고히 하기 위하여 결혼했던 느부갓네살의 과부인 듯하다. 어찌 되었든지 그녀는 연회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악할 일에 대하여 듣고 왕에게 조언하려고 왔다. “왕이시여,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말했는데 왕은 그 밤이 새기 전에 죽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인사를 하고 다니엘에 대하여 말하였으며 그가 어떻게 왕의 할아버지에게 조언하였었는가를 말하였다. 다니엘은 이제 노인이 되어 있었으며 공적인 정무에서 은퇴해있었다. 정부 관리자들의 명예 회원으로서 그는 아마도 그 잔치의 손님으로 초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더럽히거나 자기의 간증을 손상시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분리된 위치로 말미암아 다니엘은 하나님께 영광을 얻었다(고후 6:14-18).

왕은 다니엘에게 감동을 주려고 하였지만(13-16) 다니엘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선물에 비교할 때 왕의 선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벨사살은 이러한 선물을 줄 수 있을 만큼 오래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글씨를 해석하기 전에 다니엘은 왕에게 설교를 하였으며 그의 할아버지를 실례로 제시하였다. 그는 왕의 교만과 죄에 대하여 경고하며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맹렬하게 심판하셨음을 상기시켰다. “당신은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사악한 삶을 살려고 고집하였으므로, 하나님은 당신에게 심판의 멧세지를 보내셨습니다. 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라고 다니엘은 설명하였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는 회개하도록 일 년이란 시간을 주었으나(4:28-33),벨사살이 회개할 기간은 없었다. 그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이제 그 해석을 들어보자. 그 글은 갈대아어로 되어 있었다! 메네 메네, 데겔, 베레스,(25절에 나오는 우바르신은 베레스의 복수형이며 그리고라는 뜻의 갈대아어이다). 바벨론에서 미나와 데겔은 서로 다른 무게의 단위들이다. 베레스는 단순히 나눈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벨론의 술사들이 벽에 이 단어들이 나타났을 때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그 해석을 알게 하셨다. “수를 세었다... 무게를 알았다... 나뉘어졌다!“ 벨사살의 날수가 계산이 되었으며, 때가 찼다. 하나님의 척도로 무게를 달았더니 그는 중량이 모자란 것이 드러났다. 이제 그의 왕국은 메대 바사에 의해 정복당하고 분열될 것이었다. 그 시각에 다리오는 성문에 와 있었던 것을 명심하자!

벨사살은 떨고 두려워하기는 하였으나 하나님의 멧세지를 믿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가 회개했거나 관심을 가졌다는 증거를 볼 수 없다. 그는 왕국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기나 한듯 자기의 약속을 지켜 다니엘을 세번째 통치자로 삼았다. 왕의 교만, 육욕, 무관심, 자기 만족이 그를 몰락으로 이끌어 갔다.

 

4. 운명에 직면함(30-31)

 

만일 벨사살이 선지자 이사야를 연구하였더라면 바벨론이 어떻게 점령을 당하게 될 것인지 알았을 것이며 누구에 의해 점령당할 것인지도 알았을 것이다. 바사의 정복자 고레스는 메대를 패배시키고 바벨론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었다(41:25/45:1-4). 그는 운하를 파서 유브라데강의 유로를 변경시킨 뒤에 성문 아래로 자기의 군대를 몰래 들여 보낼 것이었다! 바벨론 사람들은 군인들이 땅을 파는 것을 보았지만 성벽을 타고 넘을 언덕을 쌓고 있는 줄로 알았다. 사실은 물줄기를 바꾸어 놓고 있었다. 그 성은 왜 모르는 사이에 점령을 당하였던가?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날은 굉장한 종교축제일이었으며 백성들은 방어를 생각하기보다는 쾌락에 빠져 있었다! 적은 연회장으로 곧장 와서 왕을 살해하였다. 우리의 세계에 대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이와 같이 쾌락에 열중한 나라에 있어, 모르는 사이에 어떤 적들이 우리를 점령하게 되기란 쉬울 것이며, 역사는 이러한 일을 반복할 것이다.

 

메대의 다리오란 누구인가? 이사야는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할 것이며 유대인을 석방할 것이라고 말했었다(44:28-45:13/1:21/10:1). 다리오는 다니엘 61, 6, 9, 25, 28절과 91, 111절에 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답은 531절에서의 나라를 얻었다는 말에서 발견된다. 얻었다받았다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다. 고레스의 군대장관인 다리오는 바사의 왕인 고레스로부터 왕국을 받아 그를 대신하여 바벨론을 통치하였다. 628절에서 우리는 바벨론이 이중의 왕권으로 통치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고레스는 제국의 왕이었으며, 다리오는 바벨론 및 이에 연관된 지역을 통치하였다. 고레스는 위대한 정복자로서 바벨론에 입성하였으며, 유대인들을 비롯하여 그 백성들을 지혜롭게 다루어 나갔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해도 좋다는 칙령을 발표한 사람도 고레스였다(1:1-4/44:28). 결국, 제국들의 흥망 성쇠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시는 그의 계획의 일부였던 것이다(8:28)!

 

539년에 바벨론이 멸망한 것은 요한계시록 17-18장에 나오는 바벨론(마귀의 세상 제도)이 장차 망하게 될 것에 대한 모습을 예증하는 것이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벽에 나타난 글씨를 이제는 볼 수 있으나, 눈먼 세상의 통치자들은 그들의 교만과 쾌락 속에서 계속 지낼 것이다. 주님이 오고 계시며 문에 와 계심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5:9)."

 

사자굴 - 다니엘 6

 

 

최근에는 “...의 하루라는 연속 간행물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런 책들은 어떤 유명한 사람의 생활에 있어서 전형적인 한 날을 소개하는 글들이다. 본 장에서 우리는 메대 바사제국의 총리인 다니엘의 생활 중 하루를 살펴 볼 것이다! 본 장에서 다니엘은 10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는 이제 80대에 들어선 사람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에 연령이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또한 유혹이나 시험에서 보호가 되는 것도 아님을 증명한다. 다니엘은 젊어서부터 믿음과 기도의 사람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여호와께 성실할 수가 있었다. 우리 함께 다니엘과 하루를 보내기로 하자.

 

1. 헌신의 새벽

 

국무총리의 하루는 여호와께 기도함으로 시작되었다. 610절에서 우리는 그의 집 꼭대기에 특별한 기도실을 두어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다는 말을 들었다. 시편 5517절은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라고 말한다. 다니엘은 여호와와 더불어 하루를 시작하였는데, 그가 행한 이 일은 좋은 일이다! 원수들이 일어섰고, 다니엘에게는 그의 일생에 있어 직면해야 할 가장 큰 시험 중의 하나가 임박하고 있었다.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경고는 유익한 것이다. 다니엘의 삶에 있어서 기도는 부수적인 것이 아니고 가장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는 기도하기 위하여 특별한 장소와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그가 종일토록 주님과 이야기하였다고 확신할수 있다. 하나님이 그를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고 부르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9:23/10:11/10:19). 신약에서는 이 말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적용되었다. 다니엘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들중의 하나로 만든 것은 그의 믿음있는 행실과 지속적인 기도 생활이었다(14:21-23). 여호와와 더불어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아브라함과 다윗이 이러한 습관을 가졌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셨다(19:27/5:3/1:35).

 

2. 현혹의 아침(6:1-9)

 

하나님은 다니엘의 충성으로 인하여 그를 높이셨고, 사실상 그는 그 나라의 두번째 통치자였다. 그 땅의 지도자는 총 124명이었는데, 다리오왕과 세 명의 통령(다니엘이 제1통령이었다) 그리고 120명의 제후들이었다. 다리오는 다니엘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서 그를 공식적인 제 2인자가 되도록 계획을 세웠다! 바벨론에서의 다니엘의 승진은 신자가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타협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6:33).

 

물론 122명의 다른 지도자들은 다니엘의 성공에 대하여 그렇게 기뻐하지 못하였다. 그 한 가지를 들자면 그는 외국인으로서 더구나 유대인이었다! 사단은 이미 유대인들을 미워하고 있었으며 그들을 박해하고 제거하는 데 극단적이었다. 사악한 사람들은 언제나 의로운 사람들을 싫어한다. 물론 경건한 다니엘은 정직하였으며 나라의 일을 보살피는 데 주의깊었다. 다른 지도자들은 왕의 소유를 훔치고 계산을 틀리게 하여 도둑질을 은폐시키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다리오론 정부를 재조직하여 손상됨이 없게 해야 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사악한 자들은 거짓말을 한다. 이들은 다리오왕에게 모든 통령들이 이 계획에 찬성하였다고 말하였으나, 다니엘은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다리오가 자기의 가장 훌륭한 통령과 먼저 논의하지도 않고 칙령에 서명을 했던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던가! 역사는 다리오가 아첨에 쉽게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다. 그래서 사악한 지도자들은 다니엘을 그들의 권력 아래 둘 수 있다고 본 듯하다. 그는 어떻게 행할 것인가?"

 

3. 결정의 오후(6:10-13)

 

다니엘은 새로운 칙령에 대하여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들 중의 한 명으로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하였다. 물론 그의 거룩한 성품과 신령한 행실은 그를 대신하여 이미 결정을 하였다. 그는 여호와를 섬길 것이며 언제나 해 온 대로 여호와께 기도하기로 하였다. 핑계를 대거나 타협할 수도 있었다. 그 한 가지로는 모든 사람이 다 하는데!“라는 변명도 있다. 그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여호와를 신실하게 섬겼던 노인이었다. 그의 생애의 종말에 처하여 하나의 작은 타협이 그렇게 대단한 손상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이 일은 그의 전체 간증을 파괴할 것이다). 죽는 것보다는 살아 있는 것이 여호와께 더욱 유용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다니엘은 타협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한 번의 기도 시간을 빠뜨리기보다는 사자들에게 먹히려고 할 것이었다!

그의 적들은 다니엘이 언제나 창문이 열려 있는 기도실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들은 다니엘이 손을 드는 것을 보았다. 이제 그를 붙잡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마음에 평화가 있었다. 기도하며 감사를 드리고 간구하였다. 이 기도의 방식은 그가 10대였을 때부터 해 온 것이었다. 우리가 젊었을 때 영적인 습관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4. 실망의 석양(6:14-17)

 

왕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권력과 부를 가지고도 메대바사의 법을 변경시킬 수는 없었다. 또한 하나님은 다리오가 다니엘을 구하게 하고 싶지 않으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특권이었다. 다니엘도 왕에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았다(146:1-6). 그는 오래 전에 이미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사자의 굴에 들어가지 않도록 구하려 하심이 아니라, 사자굴 밖으로 구원하려 하셨다.

 

5. 구원의 밤(6:18-23)

 

궁전에 있는 다리오와 사자의 굴에 있는 다니엘은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다리오는 평화를 소유하지 못하였으나 다니엘은 자기 자신과 하나님, 그리고 사자들과 완전한 화평을 누리고 있었다. 다니엘은 전적으로 안전한 장소에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기 계셨기 때문이다. 다리오는 적들에 의해 그의 침상에서 살해당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리오는 다니엘을 심판에서 구원하려고 전날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였으나 그에게는 힘이 없었다. 한편 다니엘은 우주의 하나님께 단순히 말하는 것만으로 그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얻었다. 모든 면으로 볼 때 다니엘은 왕답게 다스리고 있었으며 다리오는 노예였다!

다니엘을 구원할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다(6:23/11:33). 그렇게 오랜 동안 우상을 섬기는 이방 나라에 살면서도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만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님과의 일상적인 교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믿음을 가졌으며 충성스러웠다(18:17-24).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여호와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 성공적인 기도 생활의 기본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며, 그가 자기의 말씀을 지키실 것을 믿어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타협하라는 많은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 가장 안전한 길은 군중과 더불어 가는 길이라고 여길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위험한 길이다! 진실로 안전한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길이다. 다니엘은 왕을 예배하며 왕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잘못임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 밖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죽기를 원하였다. 사단은 울부짖는 사자처럼 다가오며(벧전 5:8-9) 또한 사람들은 우리를 속이려고 한다(딤후 4:17).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라면 우리를 구해내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위험 가운데서 그의 자녀들을 구원해내시는 것은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의무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바쳤다. 그들이 받는 상은 참으로 굉장한 것이다(2:10)!

 

 

6. 파멸의 아침(6:24-28)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혼들은 어린 아이들을 포함하여 전체의 가족을 굶주린 사자에게 던진다는 착상에 저항감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 나라의 법이었으며 이 사악한 사람들이 다니엘에게 적용하려 했던 바로 그 법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무죄한 자녀들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으나, 죄에 대한 무서운 형벌은 이와 같다.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닌 자녀들은 어쨌든 주님과 함께 있게 되었으므로 이것은 이방나라에서 불신앙 가운데 성장하여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백성을 옹호하신다.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11:8). 만일 박해를 통과하고 있을때 하나님이 정말 돌보고 계신 것인지 의심이 생기면 시편 371-15절을 읽으라. 그리고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라.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다니엘에게 이러한 경험을 통과하게 하셨는지 알수 있다(25-27). 이 일은 하나님의 이름에 큰 영광을 돌리게 하였다!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베드로전서 310-17절을 쓰게 했을 때 그는 아마도 다니엘을 생각했었을 것이다(이 구절들을 읽으라). 그리스도인이 유혹을 정복할 때 주님을 영화롭게 한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기를 원했던 바울을 본받게 되기를 빈다(1:20)."

 

 

다니엘의 환상 - 다니엘 7-8

 

 

지금까지 다니엘은 다른 사람들의 꿈을 해석하였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그에게 비범한 환상을 주신다. 바벨론이 아직 메대 바사에게 멸망되기 전인 것으로 보아 두 장은 5장이 기록되기 전에 일어난 일임이 틀림없다. 벨사살의 아버지 나보니두스는 바벨론(제국)의 진짜 왕이었으며 벨사살은 바벨론 성의 섭정이었다. 나보니두스는 주전 556년에 왕이 되었으므로 7장은 556년에, 8장은 554년에 일어난 일로 날짜를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역사가들은 7장을 나보니두스가 아라비아로 떠나면서 벨사살에게 공식적인 임무를 맡긴 550년에 일어난 일로 정하는 것에 더욱 동조적이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8장의 일은 548년이 될 것이다. 다니엘은 이 환상들을 통하여 이방 나라들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과정을 보며, 말세에 유대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우리가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다.

 

1. 네 짐승의 환상(7)

 

성경에서 평온치 못한 바다는 이방나라들을 상징한다(17:5/17:12). 여기 나오는 바다는 대해 또는 지중해이며 이 환상에서 언급되는 모든 나라들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이 바다와 접경하고 있다. 다니엘은 네 짐승을 보았으며 천사는 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설명해 주었다. 각 짐승은 왕국을 나타내고 있었다(17).

 

날개달린 사자(4)-이것은 신상의 꿈에서 금으로 된 머리에 해당되는 바벨론을 상징한다(2:36-38). 날개달린 사자는 바벨론에서는 잘 알려진 신상이다. 우리는 바벨론의 전시품이 있는 박물관에서 이러한 모양들을 볼수 있다. 인간처럼 서 있도록 만들어진 이 짐승은 분명히 427-37절에 나오는 느부갓네살의 낮아지는 경험을 상기시킨다! 바벨론은 그 당시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몇 년 안에(5장에 설명되어 있듯이) 멸망할 것이었다. 따라서 다음의 동물로 넘어가게 된다.

 

갈빗대를 몰고 있는 곰(5)-여기서 우리는 메대 바사 제국을 대하게 되는데 이 나라는 그 민첩함과 노력함으로 알려진 나라가 아니라 곰과 같이 난폭한 군사력으로 유명하였다. 세 갈빗대는 이미 패망한 세 제국을 묘사하는 것이다(애굽, 바벨론, 리비아). “몸 한 편을 들고 서 있는곰은 제국의 한 편이(바사)다른 한 편보다(메대) 더욱 강하여 영광을 얻게 됨을 시사한다. 메대 바사는 주전 539년에 바벨론을 정복하였으나 그들의 제국은 불과 200년간 지속되었다.

 

날개와 네 개의 머리가 달린 표범(6)-이 동물은 분명히 그리이스(헬라)를 나타내는데, 알렉산더 대제는 민첩하게 세계를 정복하였고 주전 331년에 바사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323년에 그가 죽자, 그의 광대한 제국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졌다(네 머리). 알렉산더의 네 장군들은 왕국의 각 부분을 차지하고 군주로서 통치하였다.

 

무서운 짐승(7-8, 17-28)-이 짐승은 다니엘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왜냐하면 앞선 계시들에서는 이처럼 생긴 짐승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짐승은 느부갓네살의 꿈에서 철에 해당하는 로마제국인 것이 분명한 것같다. 그러나 이 광경은 역사를 넘어서 말세를 나타내는 것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짐승에게는 열 뿔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2장에 나오는 신상의 열 개의 발가락과 비슷하다. , 말세에 부활할 로마제국을 가리킨다. 8절과 20절은 둘 다 작은 뿔“(치리자)이 나타나서 열 개의 뿔과 열 개의 발가락으로 표현된 열 왕국 중 세 왕국을 멸망시킬 것을 말해 준다. 이 작은 뿔은 세계의 통치자, 곧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그의 입은 큰 일을 말할 것이며 성도들을(환란 기간 동안의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들) 3년반 동안(25/ 한 때 두때 반 때) 박해할 것이다. 이것은 환란 기간의 후반, 즉 다니엘이 9장에서 말하게 될 “70번째 주간이다. 11-12절에 의하면 앞선 세 왕국(바벨론, 메대 바사, 로마)삼키워질 것이며이 마지막의 세계 대제국에 포함될 것이지만, 적그리스도 자신은 마침내 심판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31-2절을 보면 요한이 짐승(적그리스도)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다니엘 7장에서 발견하는 바와 똑같은 짐승들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순서가 거꾸로인 것에 주목하자. 다니엘은 앞을 내다보고 있으며 요한은 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3-14, 26-28)-하늘에 있는 한 사람을 본 일은 다니엘을 뒤흔들어 놓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곧 영광스러운 인자(人子)를 보았다! 물론, 하나님은 그 짐승이 세상을 조절하도록 허락하실 수는 없으셨다! 그는 짐승을 심판하도록 아들을 보내어 그의 왕국을 파괴하실 것이며, 다음으로는 자신의 영광스러운 왕국을 세워 하나님의 성도들과 더불어 왕국을 다스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환상은 2장에 나오는 환상을 완성시키며 또한 보완하는 것이다. 2장에서는 나라들에 대한 인간적인 견해(귀금속)를 나타내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관점(잔인한 짐승들)을 보여 준다(49:12)."

 

 

 

2. 수양과 수염소의 환상(8)

 

이 환상은 사실상 76절을 확충하는 것이며 그리이스가 어떻게 메대 바사를 정복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8장에서부터는 히브리어로 되돌아 간다(이 책의 끝까지/ 2:4-7 장은 갈대아어로 기록되었다). 8장은 7장의 사건이 있은 지 2년 후의 일이다. 8장은 바벨론이 망한 후에 일어날 왕국들을 묘사하고 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에 있었으나 하나님은 환상 중에 그를 바사의 수도 수산궁으로 데리고 가셨다(1:1). 왜 수산궁인가? 왜냐하면 바사는 그 다음의 제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양(3-4)은 정복하고 있는 메대 바사를 가리킨다(20). 바사의 상징은 수양이었다! 이 때 쯤에 이 수양은 밀어부치는일을 끝냈으며, 서편에서는 수염소가 나타나(5) 재빨리 수양이 서 있는 위치로 뛰어 오르고 있었다. 수양은 두 뿔을 가졌으며 하나는 다른 것보다 더 컸다. 이것은 메대 바사를 상징하며 바사가 더 강하였음을 나타낸다. 수염소는 뿔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이는 알렉산더 대제이다. 이제 수염소는 수양을 공격하여 뿔을 부러뜨렸고 매우 커졌다(7-8). 이것은 그리이스가 메대 바사를 무찌르고 승리할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때 큰 뿔이 부러지며(알렉산더의 죽음) 네 뿔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네 장군들이 왕국을 분할하여 통치하였다).

 

그런데, 여기 다시 작은 뿔이 생긴다! 78절에서도 작은 뿔을 보았었다. 이제 우리는 또다른 작은 뿔을 본다. 78절에 나오는 작은 뿔은 이 땅에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나타날 마지막 세계제국의 마지막 세계 통치자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89절에 나오는 작은 뿔은 네 뿔들 중에서 나오며 알렉산더 왕국의 네 분할지 가운데 하나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 작은 뿔이 말세의 적그리스도와 상관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아니다. “작은 뿔은 남쪽과 동쪽(애굽과 바사)의 나라들을 정복한 다음에 팔레스틴(“기쁨의 땅“)을 침략한다. 그는 유대인들은 정치적으로만 공격할 뿐아니라 종교적으로도 공격한다. 왜냐하면 그는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것을 중단시킴으로써(11-12) 하늘의 믿음을 말살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10). 13절에서 그는 성전에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2,300일 동안 성전을 더럽힐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구였는가? 역사는 그가 알렉산더의 네 분할 구역 중 하나인 수리아 출신의 사악한 지도자였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라고 밝힌다. 그는 팔레스틴을 침략하여 성전에 제우스의 신상을 세웠다! 그는 제단에서 돼지를 잡고 그 피를 뜰에 뿌리는 일까지 하였다! 정통 유대인들이 이 일을 어떻게 여겼을 것인지 상상해 보라! 역사는 성전이 유대인 애국자, 유다 마카비(Judas Mace-abeus)가 나타나서 주전 1651225일 성전을 재헌납하고 정결케 하였던 날까지 황폐한 채로 버려져 있었던 사실을 말해 준다. 성전이 모독된 날로부터 헌신한 날까지의 전체 날 수가 2,300일이었다!이 환상의 의미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17-26절에서, 해석하는 천사는 이 환상이 말세에까지 이른다고 분명히 밝혔다. , 유대 역사의 종말까지인 것이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그 한 예증이며 죄악의 인간인 적그리스도를(7:8 / “작은 뿔“) 예측케 하는 것이다. 23절은 이 사람을 흉악한 외모를 지닌 왕이라고 부른다. 이 사람은 7년 동안 유대인들을 보호하겠다고 동의할 것이다(9:27). 그러나, 이 시기의 중간에 이르러 그는 약속을 깨고 팔레스틴을 침략할 것이며 자신을 세계의 독재자로 내세울 것이다(24-25/ 살후 2:1-12/13:1- ). 그는 성전에서 일상적인 희생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할 것이며, 자기의 형상을 세울 것이고(24:15- “멸망의 가증한 것“), 세계로 하여금 그를 경배하며 순종하도록 강압할 것이다. 25절은 그가 술책을 쓰고 자기의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말해 준다. 그는 왕 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 대항하여 일어서기조차 할 것이지만, 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될 것이다. 그는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깨뜨려질 것이며(2:34) 아마겟돈 전쟁에서 멸망할 것이다(19). 다니엘이 압도당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놀라운 예언들을 생각할 때 우리도 역시 그렇게 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70주간 - 다니엘 9-12

 

 

이 마지막 장들에는 성경에서 가장 상세한 예언들 중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 중의 대부분은 이미 성취되었다. 우리는 9장에 촛점을 모으려 하는데, “다니엘의 70주간을 이해하는 것은 성경 예언의 기본시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유대인들에게 관계된 각기 다른 두 시대를 다룬다.

 

1. 포로 생활의 70(9:1-19)

 

예언(1-2)-다니엘은 구약 예언에 대해 열심이 있었으며 특히 자기 백성의 운영에 관계된 예언들을 연구하였다. 그는 이제 90세가 가까왔다. 그는 예레미야 251-14절을 읽고 있었으며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바벨론에서 70년을 보내게 될 것을 보게 해 주셨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으실 때에는 꿈과 환상을 주지 않으신다. 오늘날 그의 영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가르치신다. “새로운 계시가 꿈과 환상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데에 조심하라. 그러나 이것은 포로 생활 70년이 끝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바벨론은 팔레스틴을 침략하였으며 주전 606년에 포위 공격을 개시하였다. 다니엘이 이 예언을 이해한 때는 주전 539-538년경이므로 예레미야가 약속한 70년은 이제 2년이 남겨져 있었다! 다니엘이 그 날의 성경 연구에서 얼마나 흥분된 시간을 보냈을 것인가!

 

기도(3-19)-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는 언제나 함께 한다(6:14). 다니엘은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기의 통찰력을 자랑하지 않았다. 사실상 그는 한 편의 설교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는 기도중에 무릎을 꿇었다! 이것은 겸손한 성경 연구자의 참된 자세이다. “예언의 진리가 기도의 용사들 대신에 인간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볼 때에 슬픔을 금할 수 없다. 백성이 삼베옷을 입고 있는 총리를 보교서 얼마나 이상히 여겼을까? 다니엘의 기도는 성경에 나오는 중보 기도의 가장 위대한 본보기 중의 하나이다. 그는 자신의 죄와 자기 백성의 죄들을 고백한다. 그는 성경 역사를 성찰하여 이 민족이 사악하였던 것과 이들을 심판하시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의로우셨던 것을 고백한다. 그는 모세가 준 경고를(13/ 26장 참조) 알고 있었으며, 그와 그의 백성은 하나님이 보내신 것보다 훨씬 더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니엘은 이러한 죄를 범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하는 이 민족과 자신을 동일시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의 죄와 백성의 죄들을 고백한 후죄를 고백한 후 그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다(16-19). 그가 거룩한 성을 향하여 자주 기도하였던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사실상 이 일은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고 그를 번영케 하신 이유이기도 하였다(122:6-9). 그렇다면 왜 황폐한 도시의 번영을 위하여 기도하는가? 이는 하나님이 포로 생활을 끝나게 하실 뿐아니라 유대인들을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여 성전을 재건할 수 있게 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29:10-14/30:10-24). 이사야 4428절에서 하나님은 고레스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성을 재건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이 위대한 약속들을 붙들고 있었으며 믿음의 기도로 바꾸어 가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를 위한 참으로 놀라운 본보기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어떻게 응답하실 것인지를 보게 될 것이다."

 

2. 예언의 70주간(9:20-27)

 

예루살렘에서는 저녁에 희생제사를 드리는 일은 없었으나 다니엘은 저녁 시간에 기도하며 자신을 제물로 드리고 있었다(141:1-2). 이 때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그에게 응답해 주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과 거룩한 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20). 성은 회복될 것인가? 성전은 재건될 것인가? 이 백성이 죄에서 구원되며 이 땅에 의가 거할 것인가? 가브리엘은 다니엘을 위하여 모든 것에 해답을 하였는데 “70주간에 대한 유명한 예언에서 그 답을 발견한다.

태초로부터 일곱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에게 강하게 인상지워져 있었다. 이들은 일곱번째 날을 별도로 지정하여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함으로 안식일을 지켰다(23:12). 이들은 또한 안식년을 지켰는데(25:1-7) 일곱번째 해에는 땅을 경작하지 않고 묵혀 쉬게 하였다. 이들이 이 법을 깨뜨림으로 인하여 포로로 잡혀 가게 되었으며, 이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매 안식년마다 한 해씩으로 계산하여 포로 생활을 하여야 했다(대하 36:21/26:33-34). 이들은 또한 희년을 별도로 정하여 50년마다 안식년들의 안식년을 지켰다(25:8-17). 그러나, 이제 다니엘은 새로운 안식일을 소개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을 위한 490년의 예언의 해인 70주간(7년 단위의 기간, 24절에 나오는 주간들이란 단어는 실제로는 “7의 복수“(Sevens)인데 707490년이 된다). 490년이란 기간은 예루살렘과 유다와 관계가 있다(24/ “네 백성...네 거룩한 성...“). 하나님은 이 기간에 성취할 특별한 목적들을 가지고 계시다. 결국 성전의 지성소에 기름을 붓게 될 것인데, 이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돌아오셔서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성전에서 영광 중에 통치하실 것을 뜻한다.

이제 그 490년에 대한 요약을 살펴보자. 25절은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 가게 하며 성을 재건할 것을 허락하는 칙령이 490년의 실마리가 된다고 말한다(흥미롭게도 이 기간의 마지막 7년의 관건이 되는 사건은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은 보호하겠다고 언약을 세우는 일이다). 역사는 예루살렘과 관계된 네개의 다른 칙령들이 있다고 말한다. 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의 칙령들은 모두 성전의 재건에 관한 칙령들이었다(1, 6, 7/ 그리고, 아닥사스다의 칙령은 느헤미야로 하여금 성을 재건하도록 돌아가게 하는 칙령이다-2). 주전 445년의 일로서 다니엘 925절에서 말하는 칙령은 다니엘이 하나님께로부터 이 멧세지를 받은 지 거의 10년이나 있다가 발생하였다. 가브리엘은 이 칙령이 주어진 날과 왕되신 메시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날까지의 사이는 “7주간과 62“(69 X 7=483)가 된다고 말했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의 해365일로 계산하지 앉고 360일로 계산하는 것을 명심하자. 학자들이 계산한 바에 의하면 주전 445년에 칙령이 발표된 해와, 예수께서 종려나무 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까지의 사이에는 정확히 483년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483년을 70주간(7X7=49)62주간(62 X 7=434)의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 칙령이 발표된 때로부터 예루살렘이 재건되기까지 49년이 걸렸으며(가브리엘 천사가 말한 대로) “곤란한 동안에 이 일이 이루어졌다. 느헤미야를 읽고 그 성을 회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를 알아보라. 그 후 434년이 지나자 세상 죄를 위하여 끊어진 바되신“(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 왕이신 그리스도가 오셨다. 24절에 주어진 목적을 달성한 것은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죽으심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는 어떠한 일들이 따랐는가? 이스라엘이 그를 영접하고 그의 멧세지를 받아들였는가? 아니다! 그들은 주님께 거짓말을 하였으며 그의 사자들을 박해하고 스데반에게 돌을 던져 죽게 했으며 그의 하나님되심을 깨우치려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겼는가? 로마가 와서 성을 파괴하였으며 성을 날려 버렸다. 이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끊어버렸으며“, 주님은 나라를 이루지 못하도록 이들을 끊어버리셨다! 1948514일까지 이스라엘은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었다.

로마는 장차 오실 왕의 백성이라고 불리워진다. 이 왕은 누구인가? “왕되신 메시야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장차 임할 왕이란 적그리스도이다! 그는 회복된 로마제국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파괴는 적그리스도가 이끄는 미래의 침략과 파괴에 대한 예증이었다. 이 마지막 7년은 다니엘이 말한 490년을 종결짓는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이 언약이 조인된 날 사이에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위대한 막간인 교회 시대가 개입되는 데에 유의하라. 490년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때에만 활동한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때 이스라엘은 제쳐졌으며, “예언의 시계는 똑딱거리기를 멈추었다. 그러나, 교회가 하늘로 휴거되고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조약에 서명을 할 때 다니엘의 70주간의 마지막 7년은 채워지게 될 것이다. 7년은 환란시대 또는 야곱의 환란날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6-19장에 설명되어 있다.

3년 반이 지난 후 러시아와 그 동맹군들이 팔레스틴을 침략할 것이며(38-39),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그 땅을 침략할 것이고 그의 언약을 깨뜨릴 것이며 자신을 독재자로 확정지을 것이다. 그는 유대인의 성전에서 행해지는 모든 예배를 중단할 것이며(살후 2), 그와 그 형상을 예배하도록 세계를 강압할 것이다. 이것이 곧 멸망할 가증한 것이다(24:15/5:43/13:1- 장 참조). 이 기간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며 아마겟돈에서 저항군을 대적하여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19:11-21).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출처 : The King dom
글쓴이 : KINGDO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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