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書槪論/[구약성서개론] 개관

[스크랩] 에스겔 - 개론

好學 2011. 11. 8. 21:04

 

 

에스겔 - 개론

 

 

▣ 에스겔의 환상-에스겔 1-36장

 

주전 606년에 바벨론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첫 이송을 시작하였다. 다니엘은 여기에 끼어 있었고, 두번째 이송에는(597년) 에스겔이 끼어 있었는데, 그는 약 25세 쯤 되었다. 그는 그발강 근처의 델아빕으로 끌려 갔고(3:15), 거기에서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자기 집에서 살았다(8:1/24:16- 이하). 델아빕으로 온 지 5년 후에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때 그는 30세였다(주전 592년). 586년, 곧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6년 전의 일이었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본국에 있는 백성들에게 사역을 하는 동안 에스겔은 바벨론에 있는 포로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에스겔의 소명/ 1-3장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4-24장

주위의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25-32장

하나님이 유대 왕국을 회복시키심 /33-48장

 

1-24장은 모두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이전에, 25-32장은 포위 기간 동안, 33-48장은 포위된 후에 주어진 것이다. 비록 이 선지자는 머나먼 바벨론에 있었으나,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통하여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연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을 집중적으로 살필 것이다.

 

1. 영광에 관한 계시(1-3장)

 

에스겔(“하나님이 힘을 주신다“)은 포로생활을 하는 제사장이었으므로(1:1) 성전과 거룩한 제단을 떠난 이후로는 사역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하늘을 여시고 선지자가 되도록 그를 부르셨다! 그는 소명이 임하기 전에 5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제사장들은 30세에 사역을 시작하였다(민 4:3). 이 포로 생활 동안의 영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시편 137편을 보라.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70년 동안 바벨론에 거주할 것을 말했었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망시킬 것이며 포로된 자들을 자유롭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였다(렘 28-29장). 에스겔의 임무는 하나님이 바벨론이 아니라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자 하시며, 어느 날 이 백성과 성전은 영광스럽게 회복될 것임을 그들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라는 구절이 이 책에 49회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 아닐수 없다!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당하였을 때에 말씀을 들었고(계 1:9- 이하) 바울은 감옥에 있을 때에 말씀을 받았다. 에스겔은 그 날에 무엇을 보았는가?

 

불이 번쩍이는 폭풍(1:4)-이것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였다. 바벨론은 예루살렘의 북쪽에서 다가왔다. 불이 번쩍이는 폭풍 구름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의미하였다.

 

그를(천사, 1:5-14)-이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상징한다. 이들은 돌아보지 않고도 모든 방향을 볼 수 있으며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일 수도 있다. 네 얼굴은 그들의 특성을 인간의 지성, 사자의 힘과 담대한 황소의 충성과 봉사, 독수리의 활공 등으로 나타낸다. 어떤 이들은 이 네 얼굴에서 사복음서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기도 한다.

●마태복음/ 사자-왕

●누가복음/ 사람-인자

●마가복음/ 황소-종

●요한복음/ 독수리-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수레바퀴(1:15-21)-각 생물들은 바퀴들의 보조를 받고 있었으며 두 개의 바퀴가 한 조를 이루고 있었다. 각 조의 바퀴들은 자전거 바퀴의 외부 테두리와 그 중심 부분처럼 서로 동심원의 구조로 되어 있지 않고, 서로 직각을 이루고 있었으며 마치 어뢰 조정기의 꼭대기 같았다. 바퀴들은 끊임없이 돌고 있었으며 각기 네 방향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작을 변화시키지 않아도 천사들처럼 어떤 쪽으로도 움직일 수 있었다. 이들이 “눈으로 가득했음“(18절)은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을 모두 보고 계심을 비유하고 있다(잠 15:3). 바퀴와 천사들의 움직임은 서로 일치하였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계속 일하고 계심과 그의 능력과 영광, 모든 장소에 그가 계심, 인간을 향한 주님의 목적을 말하고 있다. 세상은 공포와 변화로 가득 차 있었지만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다.

 

궁창(1:22-27)-이것은 바퀴들과 천사들 위에 있는 아름다운 “단상“(placform)이었으며, 하나님의 보좌가 거기 있었다. 하나님은 여전히 보좌에 계시며 비록 우리가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뜻은 세상에서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천사와 바퀴들의 복합적인 움직임은 우주에서의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난해한 것인가를 나타낸다. 하나님만이 이해하실 수 있으시며 하나님만이 조절할 수가 있으시다. 그러나 거기에는 완전한 조화와 순종이 있었다!

 

무지개(1:28)-폭풍 가운데 무지개가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언약이 그의 백성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임을 에스겔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창세기 9장 11-17절에 보면 무지개가 자비의 표시로 지적되어 있다(계 4:3/계 10:1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이 전체의 환상은 자기의 백성을 심판하시는 가운데서도 자비의 언약을 지키시며 이 세상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보여 준다. 이 환상은 에스겔을 완전히 무너뜨렸다!(1:28)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발로 서도록 하시고 그를 파수군으로 세우시고, 말씀으로 먹이셨으며(렘 15:16/욥 23:12/마 4:4/계 10:9) 성령으로 충만케하셨다. “그들이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 구절은 이 책에서 70회 발견된다. 이 구절로 에스겔의 사역과 멧세지가 요약되어진다."

 

 

2. 영광이 떠나감(8-11장)

 

일 년 후에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또다른 환상으로써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의 죄에 관한 것을 보이셨다. 영광이 다시 나타났으며(8:2) 하나님은 이 선지자를 환상 중에 그 성으로 이끌어 가셨다. 거기서 그는 사람들의 죄에 관한 네 가지 광경을 보았다. 첫째는 성전의 북편 문에 세워진 우상인데, 아마도 바벨론의 부정한 신 아스다롯인 듯하다(8:5). 두번째는 성전 내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이방신을 예배하는 광경이었다(8:6-12). 세번째는 담무스 신을 위하여 우는 이스라엘 여인들을 보여 주는데, 이 신은 죽은 것 같으나 봄철이 되면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8:13). 네번째로는 태양을 숭배하는 24명의 제사장들을 보여 준다(8:15-16). 하나님이 그 성을 파괴하려 하시는 것이 이상한 일이겠는가?

 

여호와의 영광이 이처럼 사악한 장소에 머물 수 없음은 물론이다. 8장 4절에서 성전에 영광이 임하였으나, 9장 3절에서는 영광이 성전의 문지방에서 떠나갔다. 영광의 보좌는 이제 비어 있었다. 이것은 심판의 보좌가 될 것이다. 3장에서 충성된 남은 신자들에게 보호의 표를 찍는 하나님의 종을 본다. 이 표를 받지 않으면 이들은 다가올 심판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런 다음 10장 4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심판이 임하기 앞서 문지방 위를 배회하며, 10장 18절에서 영광은 천사와 더불어 문지방을 떠나 성전의 동편 문으로 이동해 갔다(19절).그리고 마지막으로 11장 22-23절에서 영광은 성전을 떠나 감람산꼭대기로 이동한다. “이가봇-영광이 떠났다“(삼상 4:21).

영광이 왜 이동해 갔는가?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다른 신과 나눌 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우상들과 백성들의 죄는 그를 몰아내었다. 이들의 죄는 백성들에게는 숨기워졌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이것을 보셨고 심판하셨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충성스럽게 그를 섬기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활에서 그의 영광과 축복을 옮겨가실 것이다."

 

 

3. 영광이 회복됨(43:1-12)

 

40-48장에서 이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장차 회복되어 왕국에서 영광을 누리는 것을 본다. 그는 이스라엘이 알고 있는 그 어느 성보다 크게 회복된 성과 성전을 묘사한다. 43장 1-6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돌아오는 것을 본다. 그 영광이 떠날 때와 똑같은 길로 정확히 돌아오는 것에 주목하자.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영광이며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스라엘 민족에게로 돌려 주실 것이다. 물론, 40-48장에서 주어진 말씀은 포로 생활 후에 그들의 땅으로 돌아왔던 유대인들에게 성취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것은 예수께서 다스리기 위하여 이 땅에 돌아오실 미래에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영광에 관심을 가지신다.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하며(고전 6:19-20)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서 그를 영화롭게 해야 한다(빌 1:20-21). 우리의 선행은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마 5:16). 그러나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게 하는 죄를 범할 수도 있다. 물론, 하나님의 영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사실 것이지만(엡 1:12-14), 우리는 성령을 근심되게 하며 살 수도 있으며 매일의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엡 4:30). 은밀한 죄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비밀로 남아 있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이들을 보시며, 오래지 않아 인간들도 역시 볼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으므로, 우리의 생활 가운데 “영광이 보존되기를“ 빈다."

 

 

 

▣ 이스라엘의 장래-에스겔 37-40장

 

이 마지막 장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장래를 내다보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새일을 행하시고 그의 영광이 그 땅에 돌아올 때를 바라보고 있다.

 

1. 새로운 민족(37장)

 

소생됨(1-14절)-이 당시에 이스라엘과 유다는 모두 정치적으로 패망하였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흩어지게 했으며, 유다는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간 터였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둘 다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예언하였으나 에스겔의 환상은 그보다 훨씬 후대로 내려가고 있다. 그는 죽은 민족이 다시 살아나는 때를 본다! 그 환상에서 그는 골짜기(직역하면 “전쟁터“)에 있는 많은 뼈들을 보는데, 이 뼈들은 대단히 메말라 있었다. 이것은 군인들의 배로서, 건조된 채 묻히지 못한 모습이며 극단적인 패전을 상징한다. 유대 백성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뼈들이 모아지고 사람들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바람“) 생명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이것은 육체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이나 또는 유대인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그들이 흩어져 있던 이방 나라들이라는 “무덤“으로부터 인도해냄을 받게 될 날, 곧 미래에 있을 민족의 소생의 날을 상징한다. 정치적으로 이 일은 1948년 5월 14일에 일어났다. 이스라엘이 현대 국가로서, 일개국으로 인정되어 나라들의 가족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 때이다. 물론 이 민족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는 때, 이 민족은 하룻만에 태어나게 될 것이며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재결합됨(15-28절)-이 민족이 북쪽과 남쪽의 지파들로 나뉘어진 것은 패망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 하나님은 그들의 참 다윗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모든 민족 지파들을 재통일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우실 것이며(26절) 그의 백성에게 다시 한 번 영광을 가져다 주실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장래가 있을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학자들은 구약의 모든 예언들은 영적으로 교회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 동의할 수없다. 이 예언들을 영적으로 해석하거나 오늘날 교회에 적용하기에는 너무도 구체적으로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장래가 있다고 가르치셨다(눅 22:29). 바울도 그렇게 가르쳤고(롬11:1- 장), 요한도 그러하였다(계 22:1-6) 38-39

 

2. 새로운 승리(38-39장)

 

이 장들에서는 유명한 “곡과 마곡의 전쟁“에 대하여 다룬다. 이 전쟁을 요한계시록 19장 11-21절에 설명되어 있는 아마겟돈 전쟁과 혼동하지 말자. 아마겟돈은 교회가 휴거된 후 7년 환란 기간의 끝에 일어난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20장 7-9절에 언급된 곡과 마곡의 전쟁과도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그 전쟁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끝나고 사단이 다시 풀려날 때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에스겔 38-39장에 나오는 전쟁은 “말세“에(38:8) 유대인들이 그들 자신의 땅에서 안전하게 살고 있을 때 일어난다(33:8/33:11/33:12/33:14). 이런 일은 언제 있을 것인가? 이 일은 환란 기간의 전 3년 반에 있을 일인 듯하다. 이 때는 이스라엘이 로마제국의 머리와 맺은 언약으로 말미암아 이집트와 러시아를 막을수 있게 될 것이다(단 9:26-27).

 

교회가 휴거된 다음에 세상에서 큰 사건들이 급진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옛로마제국이 유럽에서 회복될 것이며 한 강력한 통치자가 이끌어 갈 것인데 그는 결국 적그리스도임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는 7년 동안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데에 동의할 것인데(단 9:27 /이 기간은 환란 기간과 정확히 같은 기간이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70번째 주간에 이루어질 것이다(단 9:25-27). 환란기간의 3년 반 동안은 비교적 평화스러우며, 로마의 비호 아래 이스라엘은 그들의 땅에서 안식을 즐길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 땅의 커다란 부를 탐할 것이며(38:12-13) 환란 기간의 중간 즈음에는 경고도 없이 이스라엘을 침공할 것이다. 에스겔 38장 1절이 러시아와 관계있음은 분명하다(메섹=모스크바/ 두발=토볼스크). 또한 “곡“은 왕의 이름이고 “마곡“은 그 땅의 이름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러시아의 군대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죽은 자들을 장사지내는 데 7개월이 걸리게 될 그 패전은 굉장한 일일 것이다(39:12). 사람들은 버려진 전쟁의 도구들을 7년 동안 불태울 것이다(39:9-10). 로마의 통치자는 이스라엘에게 약속을 지키려고 서둘러댈 것이며, 러시아가 이제는 더이상 세계적인 세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세계를 명령하는 자로서 유대 성전에 자신을 올리울 것이며 유대인과의 언약을 깨뜨리게 될 것이다(단 9:27). 이 일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또한 대 환란이 세상에 시작된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3. 새로운 성전(40-46장)

 

물론 이런 성전은 전에 결코 지어진 일이 없으며, 따라서 미래의 어떤 때를 나타내는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1000년을 통치하시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할 천년왕국 시대의 대성전일 것이라고 본다. 에스겔은 백성들이 자신의 죄와 반역을 부끄러워하도록 하기 위해 이 계획을 밝히라는 말을 듣는다(43:10-11). 우리가 본 연구에서 꼭 상세하게 다룰 필요는 없겠으나 크기가 모두 확대되어 있는 것에 주목해 보자. 전체의 “성벽“은 거의 사방 200리(약 80km)에 달한다. 예루살렘성 내에 어떻게 이러한 크기의 땅이 적합할 수 있을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아마도 땅에 무슨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며, 또는 이 영역은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 성전이 세워질 때 그 위대함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모형을 완성하셨다(희생제물, 제사장 등). 그런데도 왜 1,000년 동안 이러한 모형들을 다시 시작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오늘날 교회에서 성만찬을 행하는 것과 같은 뜻으로 왕국의 유대인들이 이러한 의식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에스겔은 장차 성전에서 있을 예배에 관한 진리를 전달함에 있어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본다. 유월절은 피로 말미암는 구속에 대하여 말하며(45:21-24), 장막절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돌보심과 왕국에서의 그들의 기쁨을 말한다(45:25). 우리는 구원받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율법시대에 속한 고대의 의식들로 바꾸기를 원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 성전에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 거기에 성전이 있을 필요는 없다(계 21:1-5/계 21:22). 요한이 계시록21-22장에서 묘사하는 새 예루살렘은 에스겔이 본 것들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거룩한 성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비칠 성전일 것이다."

 

 

4. 새로운 땅(47-48장)

 

새롭게 됨(47장)-땅은 하나님의 제단에서 발원한 강의 치료하는 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들은 제단과 더불어 시작되어야만 한다. 여기 언급되는 모든 진술들을 반드시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에스겔은 그 땅의 치유,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선택하신 땅 위에 부으시는 축복을 묘사하고 있다. 그 땅의 새로운 경계가 정해져서(13-21절), 서쪽은 지중해, 북쪽은 두로에서 다메섹까지, 동쪽으로는 요단강과 사해, 그리고 남쪽으로는 사해 아래로부터 애굽강까지 될 것이다. 이것은 요단 건너편에는 아무 지파도 없으며 모든 유업이 그 안쪽에 있게 될 것을 뜻한다.

우리는 이 생명을 주는 강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된다. 그 근원은 제단 곧 그리스도의 죽음이다(요 7:37-33). 강은 더 깊어져서 선지자는 그 강에서 수영을 할 수 있었다. 오, 우리가 얕은 물을 떠나 하나님의 일들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기를 빈다! 강은 치유와 생명을 가져왔으며, 이처럼 성령도 오늘날 치유하시며 생명을 주신다.

 

다시 분할됨(48장)-우리는 그 땅의 새로운 경계를 보았었다. 이 장은 지파들이 왕국시대 동안에 그들의 유업을 어떻게 할당할 것인지를 설명한다. 모든 지파는 강의 서편에 있게 될 것이며 땅은 더이상 나뉘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파들은 동에서 서로 나라를 횡단하는 땅의 “띠“를 가지게 될 것이며 일곱 지파는 그 땅의 윗부분에 거할 것이며(단,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 다음으로는 성전이 세워질 거대한 “성역“이 위치한다(8-20절). 그 땅의 아랫부분에는 다섯 지파가 있게 된다(베냐민,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갓). 그 지파들은 모두 그곳에 주님과 함께 거할 것이다(35절)! 그 성의 이름은 “여호와-삼마“ 곧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고 불리우게 될 것이다!"

 

 

 

출처 : The King dom
글쓴이 : KINGDO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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