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韓國信仰人]

순교자 전치규 목사 (침례교)

好學 2011. 9. 18. 21:49

 

순교자 전치규 목사 (침례교)

 

전치규 목사(1878-1944)


전치규는 1878년 1월 5일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농부 전달용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문서당에서 오랫동안 한문을 읽고 조금 자라서는 훈장이 되어 후학 양성에 힘썼다.

23세에 예수를 믿고 펜윅 선교사밑에서 6년 성경공부하고 1916년 38세에 목사가 되고 8년후

1924년에 동아기독교회 3대감독이 되어 10년동안에 124명의 전도인을 시베리아 만주 일대에 파송하는 전도의 개가를 불렀다.

 

일제는 신사참배를 반대한 교단 5역 김영관 백남조 이종덕 전치규 노재천을 수감해 3개월 옥고를 치루게 했다.

1942년 6월 복음찬미가에 수록된 찬미가의 내용(대황님 예수씨 보혈)을 꼬투리 잡아 5대감목을 가두고 이듬해 9월 11일에는 전체 동아기독교회 임원32명을 검거해 수감하고 천년왕국 신앙과 만왕의 왕 예수신앙이 천황체제에 위배 된다며 예수신앙을 버리지 않는 한 석방될 수 없음을 분명히했다.

일경은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복음찬미 7장에 기록된 "대왕님 예수씨 보혈"이란글을 가지고 꼬투리 삼아

"예수가 대왕이면 천황은 대왕위인가?"고

묻는 일경에게 전치규목사는

 "우리 주 예수는 천지를 창조하신 구세주이시다.

그 위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있을 뿐이다.

 천황이 예수 위냐고 묻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경스런 언행이다"라고

그를 취조하는 고등검찰을 호되게 책망을 했다.

 

전치규는 전기의자에 앉아 전기고문등 매일 심한 고문으로 함흥형무소에 수감되 옥고를 치르며 건강이 악화되었고

그는 1944년 2월 14일 그날도 한 차례의 심한 고문을 받고 자리에 누워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 땅에 있는 동안 아버지 영광에 살게 하시더니 이제 부르시옵니까?"

남겨진교단과 육신적 식구들을 부탁드리니 보살펴 주옵서서"

하고 기도하는 중 숨졌으니 그의 나이 6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