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書槪論/[구약성서개론] 개관

[스크랩] 잠언 - 개론

好學 2011. 9. 14. 19:54

 

 

▣ 잠언 - 개론

 

 

잠언 서론

 

● 제목: 영어 단어 잠언(proverb)은 pro(... 대신)과 verba(말들)이라는 두 개의 라틴어 단어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잠언이란 “많은 말을 대신하여“라는 하나의 문장이다. 즉, 잠언은 지혜로운 원리들을 요약한 짧은 서술들이다. 잠언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비교“라는 뜻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솔로몬의 잠언들은 비교와 대조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동양 사람들처럼 유대인들은 잠언을 통하여 많은 것을 교훈하였다. 이 짧고 “흥미 있는“ 문장들은 암기하기에 쉽게 되어 있다.

 

● 저자: 본 서의 곳곳에서 솔로몬이 이 책에 있는 잠언의 대부분을 썼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1:1/10:1/25:1 등). 열왕기상 4장 32절에 보면 솔로몬이 3,000잠언을 말했다고 전하고 있는데, 물론 이것은 공식적인 기록이다. 히스기야의 사람들(히스기야가 성경을 필사하기 위하여 고용한 기록자들)이 잠언 25-29장에 나오는 자료를 베껴 넣었으며, 반면에 잠언 1-24장은 솔로몬왕이 직접 썼다. 30-31장의 내용은 다른 저자들이 쓴 것에서 자료를 발췌한 것이다. 31장 1절에 나오는 르무엘왕이 사실은 솔로몬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솔로몬은 말년에 우상 숭배와 어리석은 행위로 등을 돌리기는 하였으나, 그가 지혜로 인하여 널리 알려진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 주제: 핵심 단어는 지혜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혜“라 하면 “지식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실천면에 있어서의 정의이고, 성경에서 지혜라 말하는 것은 훨씬 많은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정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며 영적인 문제이다. “세상의 지혜“(고전 2:1-8/약 3:13-18)가 있고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 잠언에서 지혜는 남자를 불러 축복과 성공의 생활로 인도해 가는 사랑스런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는 반면에 어리석음은 미련한 자들을 유혹하고 지옥으로 인도하는 사악한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신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고전 1:24/고전 1:30 참조). 잠언 8장 22-31절에서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설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한다. 지혜는 영원하여(22-26절)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며(27-29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30-31절)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즉시 요한복음 1장 1-2절과 골로새서 1장 15-19절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께 양도하고 순종한다는 것은 참된 지혜이다.

 

● 우매자: 잠언은 지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언급한다. 즉, 미련한 자와 거만한 자, 어리석은 자이다(1:22). 미련한 자는 빡빡하고 활발하지 못하고 부주의하며, 자기 만족에 빠져있는 사람이다. 사무엘상 25장에 나오는 나발은 좋은 표본이다. “나발“이라는 이름은 “미련하다, 어리석다“는 뜻이다. 미련한 자는 교훈을 싫어하고(1:7/1:22), 자기 자신을 신뢰하며(12:15), 생각없이 말하고(29:11), 죄를 가볍게 여긴다(14:9). 어리석은 자란 모든 일을, 그리고 모든 사람을 믿는 사람으로서(14:15) 분별이 없다. 그는 이해력이 결여되어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이끌려 간다(7:7). 그는 앞을 볼 수 없으며(22:3), 그 결과로 계속 문제거리에 봉착한다. 거만한 자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너무 높기 때문에 오히려 조롱한다(14:6). 그러나 그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안다고 주장한다(21:24)! 미련한 자“라는 히브리 말을 직역하면 “얼굴을 찌프리다“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가 코웃음을 치며 경멸하여 입술을 삐죽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책망으로도 유익을 얻지 못하며(9:7-8/13:1) 그 결과 어느 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19:25).

 

● 지혜로운 사람: 잠언은 지혜로운 사람의 성품을 우리에게 요약해 준다. 그는 교훈에 귀를 기울이며(1:5), 그가 듣는 말에 순종하고(10:8), 그가 배운 것을 간직하며(10:14), 다른 사람들을 여호와께 인도하며(11:30), 죄를 피한다(14:16). 자기의 혀를 지키며(16:23), 자신의 일과에 부지런하다(10:5).

 

● 가치: 잠언은 일상생활에서 실천적인 지혜를 주는 안내서로서 우리에게 가치있는 책이다. 잠언은 혀, 돈, 우정, 가정, 사업관계 등에 관하여 말한다. 신자(특히 젊은 사람들)가 잠언을 하루에 한 장씩 읽으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 달에 잠언 전체를 읽게 된다. 신약의 곳곳에 잠언이 인용되어 있다(롬 3:15- 잠 1:16/히 12:5-6/계 3:19/잠 3:11-12/약 4:6/벧전 5:5- 잠 3:34/롬 12:20- 잠 25:21-22 / 벧후 2:22- 잠 26:11).

 

▣ 잠언 개요

 

● 서론/1장 1절-19절

 

1. 지혜의 부름/1장 20절-9장 18절

 

구원을 위한 지혜 /1장 20절-4장 27절

(1)정죄를 부르는 어리석음/5장

(2)빈곤을 부르는 어리석음/6장

(3)죽음을 부르는 어리석음/7장

부요함을 위한 지혜 /8장

생명을 위한 지혜 /9장

 

2. 지혜의 대조/ 10-15장

 

지혜와 어리석음에 대한 연속적인 대조

 

3. 지혜의 조언/16-31장

 

대조가 아닌 실천적인 문제에 대한 잠언

 

● 2-4장

지혜의 첫번째 부름(1:20-31)에 이어 세 장은 지혜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여기에는 “길“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2:8-9/2:13/2:15/2:18-20/3:6/3:17/4:11/4:14/4:17-18/4:25-26 참조). 각 장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2장-지혜는 우리의 길을 보호한다(2:8)

3장-지혜는 우리의 길을 지시한다(3:5-6)

4장-지혜는 우리의 길을 완전케 한다(4:18)

 

지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장비로 무장시키고(2:7) 우리의 길을 경계함으로 보호하며, 우리를 죄로 인도하는 부정직한 사람들과(12-15절) 음녀에게서(16-22절) 우리를 지킨다.

지혜는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에 청종하며(3:1-4) 그를 의뢰하고(5절) 인정하며(6절), 여호와를 경외하며(7절) 공경하며(9절) 그에게 순복할 때에 우리의 길을 지시한다.

 

지혜는 우리의 길을 완전케 한다. 우리가 그 길을 따라 걸을 때 그 길은 더욱더 빛나고 밝게 된다(4:18). 1-13절에서 하나님은 지혜가 우리를 위하여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시며, 20-27절에서는 지혜를 어떻게 다루어야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를 말씀하신다. 본 장을 주의깊게 읽어 보자."

 

 

 

▣ 지혜와 어리석음-잠언 1-9장

 

이 부분에서 우리는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얻으려 유혹하는 두 여인, 즉 지혜와 어리석음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잠언의 개요에는 지혜와 어리석음의 부름이 세 가지로 대별되어 있다. 지혜는 우리를 하나님과 생명을 향하여 부르지만 어리석음은 죄와 심판으로 이끈다. 여기서 여섯 가지 중요한 초청을 연구하며 대조해 보자.

 

1. 지혜의 첫번째 부름-구원(1:20-31)

 

이 지혜는 공개적인 부름으로서 사람들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의 외침이다.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은밀한 것이 아니다. 성령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공개적으로 초청한다. 지혜가 세 부류의 사람들, 즉 미련한 자와 거만한 자, 어리석은 자 모두를 초청하고 있음에 유의하자(1:22). 지혜는 심판이 임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죄인들이 거기에서 피하기를 원한다. 또한 들으려 하는 자에게 놀라운 것, 즉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제공한다(23절).

이 부름에 대하여 죄인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대체로, 그들은 거절하는 것처럼 보인다! 24-25절에서는 그들의 반응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편 팔을 돌아보지도 않고, 또한 그것을 경시한다. 그 결과는 다만 파멸일 뿐이다! 그들이 지혜를 비웃었듯이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실 것이다. “그들이 부를지라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뿌린 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을 거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32절에서 보면 미련한 자의 “안일함“과 어리석은 자의 “형통함“이 그들에게 잘못된 확신을 갖게 하며, 결코 심판을 보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게 한다.

 

지혜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제공하지만 어리석음은 정죄를 제공한다(5장).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이 있는 곳마다 사단의 유혹이 함께 한다. 이 사악한 여인에 대한 묘사를 읽고 사단이 죄를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으로 꾸미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보라. 그러나 5장에서는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문에 가까이 가지 않도록 경고하신다(7-8절). 죄는 항상 값을 치른다. 우리의 명성을 잃을 수 있으며(9절) 우리의 모든 소유와(10절) 건강과(11절) 목숨(22-23절)을 잃을 수 있다. 죄의 매는 끈은 서서히 이끌어 매지만, 그러나 어느 날 탈출할 수 없게 매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은 확실하다."

 

 

2. 지혜의 두번째 부름-부요(8장)

 

지혜는 다시 거리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길을 따르라고 사람들을 부른다. 5절에서 지혜는 어리석은 자와 미련한 자를 부르고 있지만, 거만한 자는 제외되어 있다. 그는 1장 25-26절에서 보듯이 비웃고 조롱하는 자로서, 하나님은 그를 지나쳐버리셨다. 사람의 마음이 너무도 굳어 있어서 더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참된 부요를 가져다 주는 지혜는 은이나 금, 또는 보석류보다 더욱 승한 것이다(10-11절). 잠언 4장 1-10절을 보면 유사한 훈계가 나와 있다. 사실상, 하나님의 지혜를 알면 왕처럼 통치하게 된다(15-16절). 18-19절은 지혜와 거룩한 이 모든 세상적인 부요함보다 더욱 가치있는 것임을 재차 강조한다. 결국, 하나님을 알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있어서 하늘과 땅의 모든 부를 소유하는 것이다. 22-31절에서, 솔로몬은 구약적 상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로 소개한다(고전 1:24/고전 1:30 참조). 이 설명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요 우주의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그를 아는 것은 참다운 지혜를 갖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므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로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며(24-25절), 이것은 상징적인 말로 쓰인 것이다.

 

지혜는 우리를 부요함으로 인도하지만 어리석음은 빈곤으로 인도한다(6:20-35). 우리는 “음녀“가 화장을 하고 달콤한 말로 꾀어 젊은이들을 죄로 이끌어 가는 것을 다시 보게 된다. 26절은 죄가 빈곤으로 인도함을 명확하게 설명하며, 또한 31절에서도 같은 설명이 반복되어 있다. 진실로, 오늘날 많은 불경건한 사람들이 번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부요함은 만족스럽지도, 영속적이지도 못하다."

 

 

3. 지혜의 세번째 부름-생명(9장)

 

지혜의 첫번째 부름은 미련한 자와 거만한 자, 어리석은 자 모두를 부르며, 두번째 초청은 미련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세번째 부름은 단지 어리석은 자만을 향한 것이다(9:4). 미련함은 어리석음을 추종함으로 인하여 8장 36절에서 죽음을 경험한다(1:22 / 미련한 자는 지식을 미워한다). 유감스럽게도 그 역시 지혜의 은혜로운 부름을 거절하여 결국 음부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다(9:18)! 이 부름들과 그 결과를 요약해 보자!● 거만한 자: 지혜를 거절하여 파멸에 이른다(1:24-27).

어리석음에 귀를 기울여 멸망을 받아들인다(6:32).

● 미련한 자: 지혜를 거절하고 죽음에 이른다(8:36).

어리석음에게서 배우고 죽음을 얻는다(5:22-23).

● 어리석은 자: 지혜를 거절하고 음부의 깊은 곳에 인도된다(9:18).

어리석음을 경청하고 음부의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7:27).

 

그 교훈은 명백하다. 지혜를 거절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중간지점이란 없다. 예수께서는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며“ 어떠한 주인도 섬기지 않을수 있는 사람이란 없다. 우리는 지혜가 아니면 어리석음을, 그리스도가 아니면 죄를 따르게 된다.

1-6절은 지혜가 놀라운 잔치를 예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비유 가운데의 여러 가지 잔치를 상기시킨다(특히 눅 14:15-24). 구원은 장례식과 같지 않은 축제이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라!“ 지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소리 높여 부르고 있다(요일 5:11-13). “나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지리라“고 지혜는 약속한다(11절). 이것은 사실이다.

7장에서 어리석음은 사람들을 우매함의 연회로 초대한다. 이것은 미련한 젊은이가 유혹을 가지고 장난치며 결국은 어리석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 잔치에로 가는 것을 보여 준다. 마치 도살장으로 가는 소와 같지 않은가(22절)! 그가 유혹에 굴복할 때 그는 말 못하는 짐승과 같게 된다! 유혹은 항상 사랑스럽고 즐겁게 보이지만, 거기에는 “죄악의 낙이 잠시“ 있을 뿐이며(히 11:25) 그 결국에는 사망과 지옥이 있다.

이것들은 사람이 사는 동안 직면하는 것들이므로, 지혜를 듣고 구원과 부와 생명을 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음(유혹과 죄)을 듣고 정죄와 빈곤과 죽음을 경험할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실제적인 교훈이 있다.

 

우리는 결심해야만 한다.

“결심은 운명을 결정지운다.“ 누구나 지혜의 길 또는 어리석음의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이 결정은 연기하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다른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정을 내릴 것인가?

 

죄는 항상 아첨한다.

어리석음은 죄를 미화시킬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것은 결코 참된 본성을 드러내는 일이 없으며, 그 거처가 곧 음부의 입구임을 말해 주지 않는다. 어리석음을 간파하는 유일한 길은 지혜와 더불어 행하는 것이다(잠 2:10-22 를 주의깊게 읽으라). 지혜와 동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어리석음에 의해 속임을 당하지 않는다.타락은 심판을 초래한다.

지혜를 거부하는 미련하고, 어리석고, 거만한 자는 즉각적으로 비극적인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다 해서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판이 임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것으로 거둘 것이다.

 

사단은 육체에 호소한다.

이 장들에서 볼 때, 사악한 여인(“음녀“)이 젊은이들의 정욕에 호소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녀는 그들에게 쾌락을 구하는 데에 몸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고통받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잠언 5장 1-14절은 성적인 죄가 육과 영에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성적 풍조와 부도덕이 범람하는 오늘날(영화, TV, 노래. 광고 등) 젊은이들이 마음과 정신을 순전하게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나님은 계속 부르고 계신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듣지 않아도 하나님은 계속 부르신다. 계속 거절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귀머거리가 된다. 깨어 있으라! “오늘날 너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히 3:7- 이하 참조)."

 

 

 

▣ 하나님의 말씀과 삶-잠언 2-4장

 

예수 그리스도를 알 때 우리는 참된 지혜를 알며(고전 1:24/고전 1:30 참조), 그의 말씀을 통하여 일상생활을 위한 지혜를 받게 될 것이다. 이 세 장들 가운데 솔로몬은 젊은이에게(“내 아들“이 다섯 번 언급됨), 하나님의 지혜를 붙잡으라고 강권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는 삶에 축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길“-2:8/2:13/2:15/2:18-20/3:6/3:17/4:11/4:14/4:18/4:26).

 

1. 지혜는 우리의 길을 보호한다(2장)

 

여기서의 핵심 사상은 하나님께서 자기 소유의 사람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이다(7-8, 11-12, 16절). 인생을 살아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직면해야 할 위험들이 많아진다. 세상, 육신, 마귀는 우리를 쳐부수려고 나다니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능력에서 우리를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필요로 한다. 죄인들은 젊은이들을 유혹하려 하며(잠 1:10-19), 때로는 유혹이 너무도 매혹적이어서 저항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성경을 알아 거기 순종하려는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권세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1-9절)-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말씀을 받아 마음에 간직하고, 말씀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며, 우리의 삶에 그것을 적용시켜야 한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성경을 탐구해야 한다. 솔로몬은 단순히 “하루에 한 장씩 읽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것을 뜻한다. 솔로몬은 우리가 그의 말씀 안에서 살 것과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 것을 주장한다. 4절에서 그는 성경 연구를 귀중한 금을 캐내는 것에 비유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수고가 따르는 것이다. 말씀의 진리는 “채굴되어서“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용광로에 집어 넣어져야 한다. 이 진리는 영적인 동전으로 주조되어야 하며, 그래서 미래에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보물창고에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마 13:52). 더 나아가서 이 지혜가 우리의 삶에 방패가 됨으로써(7절),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보호하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성경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고의적으로 돌아설 때 그는 자기 자신. 또는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롯이나 요나, 다윗을 기억하라!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10-22절)-솔로몬은 이 세상의 악인과 “이방 여인“으로 인한 큰 위험을 알고 있다. 악인은 그의 “큰 소리“(패역한 입술, 12절)로 알아볼 수 있으며, 그는 젊은이들에게 무슨 “큰 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지만 사실은 어두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어두움의 권세자, 사단에게 조절을 당하고 있다. 악인은 곧은 길을 걸어가는 대신 구부러진 길로 행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련하게 그의 뒤를 추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악인은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데에 “지름길“이 있으며, 여호와께 불순종함으로써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게 한다. “이방 여인“에 대해 말하자면, 이 여자는 아첨을 이용하여 육신의 정욕에 호소한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버리고 결혼서약을 깨뜨린다(17절). 그녀는 어리석은 젊은이들을 죽음과 지옥으로 이끌어 간다. 오늘날 신자(특히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의 길을 보호하기 위하여 말씀으로부터의 하나님의 지혜가 참으로 필요하다!"

 

 

2. 지혜는 우리의 길을 인도한다(3장)

 

잠언 3장 5-6절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귀중한 약속들이다. “믿고, 순종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데 열성이시다(엡 5:8-10/요 7:17 참조).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말씀에 귀를 귀울이라(1-4절)-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된다(골 1:9-10 참조). 말씀을 기억하고 숙고해야 하는 것은 정신이 아니라 마음이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성경을 기록하시도록 간구해야 한다(고후 3:1-3 참조). 우리는 학교에서, 교회 봉사 활동에서, 책을 읽는 등의 일을 통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을 받아야 한다. 성경을 더 잘 알수록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라(5-10절)-만일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주님께 순종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지혜가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5절은 그리스도인이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사실을 생각하거나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두뇌를 사용하는 것을 기대하시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귀절은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지혜를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시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약 1:5). 순종하려는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첫걸음이다(요 7:17 참조). 충성스럽게 바치는 것도 순종의 일부임에 유의하자.말씀에 순복하라(11-12절)-때로는 하나님께서 그의 완전하신 뜻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하여 징계를 하셔야 하는 때도 있다(히 12:5-11). 우리가 순복한다면 하나님은 징계가 축복이 되도록 하실 것이다.

 

말씀을 보물로 여기라(13-26절)-마태복음 6장 33절은 이 부분에 대한 완전한 요약이다 그리스도를 첫 자리에 두라! 솔로몬은 말씀을 길의 안내자로 삼는 신자에게 찾아오는 축복들을 21-26절에 열거하고 있다. 우리 몸의 각부분이 어떻게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살펴보자(롬 12:1-2 참조)."

 

 

3. 지혜는 우리의 길을 완전케 한다(4장)

 

14-19절에서 사악한 자의 길과 의로운 자의 길을 대조하고 있다. 사악한 자의 길은 어두우며, 더욱 어두워지는 반면에 의인의 길은 밝고, 갈수록 더욱 밝아진다. 구원은 우리의 마음에 “동이 트는 것“으로 시작된다(눅 1:77-79 에서는 “돋는 해“). 우리가 주님과 함께 행할 때 빛은 더욱 밝아진다. 그리하여 결국은 영원한 빛, 곧 밤이 없는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신자의 길을 완전케 하시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각 생애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 계획을 완성하시기를 원하신다(엡 2:10/빌 1:6/빌 2:12-13 참조).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완전케 하실 때 우리가 따라야 할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지혜를 구하라(1-13절)-솔로몬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에 나의 아버지께서 나를 바른 길로 가르치려 하신 것을 회고해 보니, 이제, 나 스스로 연로한 아버지로서 그분이 하신 일이 옳았음을 안다“. 단지 지혜를 얻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여 빠져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훈계를 굳게 잡으라 그리고 협약을 맺으라!“ 12절은 지혜로운 사람의 길이 “곤란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약속하고 있는데, 이는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경에 순종하는 신자는 함정과 장애를 피할 것이니 하나님의 뜻을 떠나 멀리 돌아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함정과 장애에 부딪힌다.

 

유혹과 죄를 피하라(14-19절)-여기서 솔로몬은 죄와 악에서 분리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사람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하므로 세상으로부터 고립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죄의 영향을 받거나 그들의 길로 이끌려 가서는 안된다. 여기에 적합한 옛 격언이 있다. 즉, 배가 물 위에 떠있는 상태는 좋은 것이나, 배 안에 물이 새어 들어오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들어와서는 안된다. 이 세상에는 성경의 경고를 소홀히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기다리는 사악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삶을 경계하여 지키라(20-27절)-23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즉, 이 구절은 인간의 마음이 그들의 삶을 조정하는 주된 기능임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그릇된 마음은 항상 그릇된 삶을 산출한다. 죄가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전 생애를 오염시킨다. 또한 솔로몬은 우리의 입술을 지킬 것을 경고한다(24절). 마음이 혀를 조정하는 것은 물론이다(눅 6:45). “고집스러운“ 입은 교만하며, 경멸적이고 오만불손한 입이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사랑으로(엡 4:15/엡 4:31) 말하며, 소금으로 맛을 내듯해야 한다(골 4:6 참조).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눈을 지켜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위해 하신 그의 목적에 고정시켜 두어야 한다. 하와는 눈이 배회하도록 버려 두었다가 범죄하게 되었다(창 3:6 참조). 요한은 “안목의 정욕“에 대하여 경고한다(요일 2:15-17 참조). 삼손은 자기 앞에 놓인 길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사자에게서 난 오염된 꿀을 쳐다보다가 온갖 종류의 죄 가운데 빠지게 되었다(삿 14:8- 이하).

이제 마지막으로 솔로몬은 우리의 길을 숙고하고 우리의 삶을 검토하여 우리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보라고 강권한다. 어떤 위인은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주님은 우리의 삶(생명)을 심사숙고하고 계신다(5:21). 따라서, 우리도 우리의 삶을 검토해야만 한다."

 

 

 

▣ 혀로 말미암는 죄-잠언 12, 18장

 

잠언에는 혀에 대한 관련 구절들이 많다. 12장과 18장에는 혀에 대한 구절들이 여러 번 나오기 때문에 본 장을 읽으라고 제시했는데, 당신은 아마도 실천의 책인 본서(잠언)의 다른 관련 구절들도 찾아 검토해 보고 싶을 것이다. 우리는 “말하는“ 놀라운 은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마땅히 경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할 것을 남용한다.

혀의 죄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해보기 앞서 “경건한 혀“의 축복들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물론 이것은 거룩한 마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혀는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선을 위하여 사용하였을 때 혀는 가치있는 은과 같다(10:20). 이것은 아름답고 열매맺는 생명나무이며(15:4/12:14/18:20), 새롭게 하는 샘이요(18:4/10:11), 건강을 위한 양약이다(12:18 / 약 3장 참조).

혀는 바른 목적, 즉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고(15:1/15:26), 잘못을 행한 자에게 지혜롭게 책망하며(25:12/28:23), 잃어버린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며(11:9/14:3-5/14:25/12:6),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가르치고(15:7/16:21/16:23/20:15)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25:25)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단과 육신이 혀를 붙들고 있으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혀로 말미암아 삶과 가정과 교회에게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는 데에 사용되어야 할 혀가 명예를 손상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데에 사용되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슬프지 않을 수 없다. 혀는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약 3:5 참조), 의의 도구로서 하나님께 양도되어야 할 지체이다(롬 6:12-13 참조). 혀가 범하는 죄들에 대하여 조금만 생각한다면 우리의 언변의 은사를 좀더 주의깊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1. 거짓말(12:17-22)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혀를 미워하신다(6:16-17). 때때로 거짓말하는 혀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같이(행 5장 참조), 그리고 사악한 유다와 같이 마음의 죄를 가리우고 있다(10:18). 12장 18절에서 거짓말은 칼로 찌름과 같으나, 진리는 치료하는 약과 같다고 솔로몬은 말한다. 진리는 영원하지만 거짓말은 어느 날드러날 것이며, 거짓말장이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19절/ 시 52:4-5 참조).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은 마음의 부실로 인함이라고 20절은 설명한다. 결국 입술은 참된 말을 할 수 있으나 마음의 의도가 악하면 그의 진술은 거짓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르는 채로 비진리를 말한다면 그의 진술 역시 거짓말이 될 것이지만 그를 거짓말장이로 정죄할 수는 없다. 성경은 마음의 의도를 시험하고 드러낸다(히 4:12 참조). 따라서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말씀과 성령이 혀를 지배하도록 허락하는 일이다. 진리는 영혼들을 구원한다(14:25). 그러나 거짓말은 속박과 수치로 이끌어갈 뿐이다. 잠언 1장 4절은 거짓말장이는 거짓말장이에게 귀를 기울이기를 좋아한다고 시사한다. 험담에 귀를 기울이기를 즐기는 사람은 자신이 험담에 오르내리게 될 차례가 온다. 마음은 입술뿐만 아니라 귀도 지배한다. 그러나 모든 거짓말은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19:5/19:9 /두번 반복됨). 그들은 “자신이 한 말을 먹을 것이며“ 그것은 자갈과 같이 될 것이다(20:17). 하나님은 이들을 영원히 심판하실 것이다. 지옥은 “거짓말을 좋아하며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계 22:15 참조)."

 

 

2. 나쁜 소문을 퍼뜨림(18:8)

 

모세는 레위기 19장 16절에서 이 죄를 경고한다.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 이란 숨겨져야 마땅한 일을 사실이거나 거짓이거나 간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다(11:13). 10장 12절은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고 말한다(17:9/ 벧전 4:8/약 5:20 참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그들을 개인적으로(은밀히) 도우려 하며 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인도하려 할 것이다(마 18:15-18 참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문 퍼뜨리는 자들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었는가! 말은 무기처럼 치명적일 수가 있다. 25장 18절에서 솔로몬은 속이는 말을 세 가지 다른 무기, 즉 가까운 데에 있는 것을 부숴뜨릴 수있는 방망이와, 자르는 검과, 멀리서도 쏠 수 있는 화살로 비유하고 있다.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과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20:13). 그는 불을 타오르게 하는 자이며(26:20) 우정을 파괴하는 자이다(17:9)."

 

 

3. 말을 너무 많이 함(12:13 / 18:6, 7)

 

이 구절들의 배후에는 어리석은 자가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며 문제에 빠져들어갈 말을 한다는 개념이 담겨 있다. 그의 입은 함정이 되고 자기가 그 함정에 빠지게 된다! 6장 1-5절에서 이 죄가 사람들을 어떻게 문제로 이끌어 가는지 알아보라. 10장 19절은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조절을 받는 혀는 생명을 안전하게 보존하나(13:3), 느슨한 혀는 가난과(14:23 / 많은 사람들이 일하기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어리석음의 도구이다(15:2).말을 적게 하는 사람은 지식이 있는 사람이다(17:27-28). 불행하게도 때로는 하나님의 집 안에서조차 말이 많은데, 전도서 5장 1-7절에는 이에 대한 좋은 충고가 기록되어 있다."

 

 

4. 너무 빨리 말함(18:13, 17)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야고보서 1장 19절은 명령한다. 우리는 때때로 듣는 것은 느리고(우리는 인내로 전체를 끝까지 듣는 일은 없다) 말하기는 빨리 한다. 그리고는 이로 말미암아 문제에 빠지게 된다. 참으로 말해야 할 것이 있기까지 “입술을 제어하는 것“이 현명하다(10:19). 경건한 사람은 대답할 말을 연구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의 입을 열어 어리석음을 쏟을 것이다(15:28). 보디발은 요셉의 편에서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큰 죄를 범하였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하도록 허락을 받지 못했다. 사건이 정직하게 심리되기 전에 적들로 말미암아 판결이 내려졌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문제마다 면밀하게 조사 연구하고(25:2) 공정한 판단을 하기를 원하신다. 잠언 18장 17절은 우리가 듣는 “첫번째 주장“에 동요하지 않고 문제의 양 편을 다 살피기를 원하신다.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 포함되어 있는 곳에서조차 한 가지 이야기에는 양면성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만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한 문제에 대해서 같은 방식으로 보거나 듣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다윗도 죄없는 므비보셋에 대하여 성급한 결론을 내렸었는데, 문제의 또다른 면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삼하 16:1-4/삼하 19:24-30 참조).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시 39:1 참조)."

 

 

5. 아첨(26:28)

 

아첨이 거짓말의 일종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것을 따로 분리하여 살펴보는 이유는 이것이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26장 28절은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킨다“고 경고하며 29장 5절은 아첨을 죄없는 자의 발 앞에 펼쳐져 있는 위험한 그물에 비유하고 있다. 아첨하는 입에 대하여는 시편 5편 9절에도 언급되어있다. 아첨이란 이기적인 동기를 지닌 사람이 진실성없이 하는 찬양 또는 칭찬을 말한다. “아첨“(Flatter)과 “동요, 소동“(Flutter)은 동류의 단어이다. 아첨하는 사람은 자기의 희생자를 동요시키며 자기에 대해 강한 인상을 주려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사단은 하와를 유혹할 때에 이 아첨의 방법을 사용하였다(“너희가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다“). 사악한 여자들은 젊은이를 유혹할 때에 아첨을 한다(5:3/7:5/7:21). “부자들에게 친구가 많은 주된 이유“는 그에게 아첨하여 무엇인가 얻어내려는 데에 있다(14:20/19:4-6). 우리는 아첨하는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20:19). 유감스럽게도, 때때로 의인이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악인에게 아첨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25:26). 이러한 일은 마치 독을 넣은 샘과 같이 그 가정과 교회, 나라를 오염시킨다. 정직한 책망은 아첨보다도 그 사람에게 더 유익이 된다(28:23).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유다처럼)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라고 27장 6절은 말한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정직한 찬양이 머물 곳이 있다(살전 5:12-13 참조). 정직한 찬양은 용광로와 같다(잠 27:21). 용광로는 최고의 순수한 금 또는 찌꺼기를 만들어 낸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육신적이어서 칭찬을 받지 못한다. 칭찬을 받으면 그들은 흥분하게 된다. 그러나 더욱 나쁜 경우는 그들이 다른 칭찬을 받게 되도록 서 있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다윗을 칭찬했을 때, 그 칭찬은 다윗을 겸손하게 만들었으나 사울에게서는 시기심과 교만을 드러내었다(삼상 13:5-9 참조)."

 

 

6. 다툼(12:16/12:18)

 

의로운 분노가 있기는 하나(엡 4:26), 너무도 많은 경우 불의한 분노가 되어 우리를 화나게 하거나 논쟁을 일으키게 만든다(29:22). 성난 사람은 불에 연료를 더하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26:21). 그리고 성난 말들은 연료가 된다. 논쟁을 멈추는 최선의 방법은 부드러운 말이다(15:1-2). 이것은 “뼈를 꺾는“ 가장 좋은 길이다(25:15). 사람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군대나 또는 제국을 지배하는 것과도 같다(16:32/14:17/14:29/17:14 참조)."

 

 

 

▣ 술취함-잠언 23장

 

여기서는 경건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술취함에 대하여 경계하는 15-35절에 강조점을 두려 한다. 또한 성경에서 금주를 찬미하고 있는 다른 구절들을 살펴볼 것이다. 미국이라는 일개국에만 해도 알코올 중독자들이 천만이 넘으며 “술군“도 수백만이 넘는다. 예일 알코올 연구 소장인 앤드류 C. 아이비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시계가 한 바퀴 도는 한 시간 동안에 50명의 비율로 알코올 중독자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술군의 70% 이상이 십대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양조업자들과 증류주 제조업자들이 무려 연간 2억 5천만달러의 막대한 광고비를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데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

 

1. 술취함에 대한 경고

 

사려깊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술을 마실 때 어떤 나쁜 결과가 그의 생애에 발생하는지 말해 준다.

 

빈곤(23:20-21/21:17)-광고는 언제나 “특출한 사람“을 내세워 마치 술을 마시면 명성과 행운을 얻게 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술취함과 빈곤은 언제나 함께 다닌다. 미국인은 알코올에 연간 130억 달라를 소비한다. 이것은 술군의 가족들을 위하여 옷과 음식과 교육에 사용되어야 했을 돈이다. 술을 마심으로써 연평균 25일을 흘려보내게 되는데, 회사는 이 자리를 메꾸기 위해 사람들을 쓰는 데 수백만 달러를 사용하며, 이러한 일들은 상품의 가격을 올리게 되어 결국은 술을 마시지 않는 고객들이 부담하게 된다.

 

재난(23:29-32)-알코올은 대단한 사기꾼이다(20:1). 그는 기쁨을 약속하지만 슬픔을 주며,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죽음을 산출한다. 술이 가정을 더 행복하게 하거나 사람을 더욱 건강하게 하는 일은 없다. 결과는 비애, 슬픔, 불만(“논쟁, 말다툼“), 주정(술취한 자의 말을 들어 보았는가?), 상처, 눈와 충혈 등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의 55%는 음주 운전과 연관된다. 1960년에서 1965년 사이에 술로 인한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이 108,929명이었는데, 이와 같은 기간 동안에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인이 생명을 잃는 것은 1071명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코올 문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전쟁에 관한 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술이 사람을 성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조본부를 방문해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심장질환과 암에 이어 세번째의 건강 장해 요인이 술이다. “지성인들“은 “술은 질병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술이란 유일하게 선전하고 장려하는 “질병“이다!

 

부도덕(23:26-28/23:33)-많은 여인들이 술로 인하여 정조를 잃고 좋은 성품을 잃게 된다. 그것은 많은 젊은 남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술취함, 춤, 그리고 제 7계명에 불순종하는 일은 함께 다닌다. 알코올은 자극제가 아니라 뇌에 영향을 주어 조절 능력을 잃게 하는 마취제이다. 이것은 식품이 아니며 독약이다! 젊은 남자나 여자가 자신을 조절할 힘을 잃으면 그의 타락한 본성은 온갖 종류의 악한 행위를 하도록 이끌려 간다.

 

불안정성(23:34-35)-비틀거리며 흔들거리는 모습은 술취한 자를 잘 표현하는 것이다!(사업가들이 텔레비젼에 무슨 일을 꾸미는지는 모르지만 술취한 사람에게 익살스러운 요소는 아무것도 없다). 술은 그 사람에게서 안정성을 빼앗아 간다. 바르게 걸을 수도 없고 바르게 생각할 수 없다. 왕이 술을 먹지 말라고 경고를 받는 이유가 이것이다(잠 31:4-5). 그러나 워싱톤시의 알코올 소비량은 나라 전체 평균의 두 배이다! 외무부에서 외교 사절단을 접대하는 데 백만 달러의 예산이 소요된다.

 

영원한 지옥(고전 6:9-10)-술취한 사람들은 지옥으로 간다! 물론 술취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11절). 그러나, 일단 알코올이 사람을 주관하면 그리스도께로 개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2. 완전한 금주에 대한 언급

 

성경에서 포도주란 단어는 간단한 포도즙에서부터 여러 가지 종류의 술을 총망라하고 있음을 명심하자. “새 술“이란 아직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말한다(마 9:14-17 참조). 유대인들은 때때로 포도주를 향료나 다른 열매즙에 혼합하기도 한다(사 5:22/사 24:9). 술과 술취하는 일은 분리되어 언급된다(신 14:26/잠 10:1 참조). 성경에서 여러 가지 본보기를 통해 완전한 금주를 제시하고 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신 29:6). 유월절에는 포도주가 사용되지 않았다(출 12:8-10). 왜냐하면 발효된 포도주는 누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룩은 금지되고 있었다. 포도주는 나중에 첨가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은 아니었다.제사장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며 금주하도록 되어 있었다(레 10:8-10). 신약의 제사장인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주님을 섬기면서 생활의 기준을 낮게 설정할 수 있는가?

 

나실인은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민 6:1-3). 세례(침례)요한이 이러한 사람이었다(눅 1:15). 예수께서는 그를 가리켜 여자에게서 태어난 가장 위대한 설교자라고 하셨다.

 

다니엘은 “군중을 따를 것을“ 거절하였다(단 1:5/단 1:8/단 1:16/단 10:3). 하나님은 그를 높이시고 승격시키셨다. 이러한 사실과, 다니엘 5장에 나오는 술취한 벨사살 왕, 마가복음 6장 21절 이하에 나오는 헤롯을 비교해 보라.

 

바울은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지 말라고 초대교인들에게 경고한다(롬 14:13-21/고전 8:13 참조). 교회에 속해 있는 이른바 “사회적으로“ 어쩔 수 없이 마신다는 사람들은 우범지대의 술주정뱅이와 다를바 없이 나쁜 산업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마시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도덕적이며 교회에 다니는 술마시는 사람“은 빈민굴에 사는 더러운 게으름뱅이보다 선전을 잘하고 있는 셈이다! 바울은 술취하는 것과 성령으로 충만한 것을 대조시킨다(엡 5:18). 갈라디아서 5장 21절에서 그는 육신의 무서운 일들을 열거함에 있어 술취하는 것을 포함시킨다. 디모데전서 5장 23절은 오늘날에는 약으로 사용하는 일이 없지만 포도즙을 약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 알코올을 사용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치과의사나 외과의사가 의료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몰핀이나 마취제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치에 맞는 말이다!

 

베드로는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신의 정욕을 끊어버리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의를 준다“(벧전 2:11). 술취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이기 때문에(갈 5:21) 완전한 금주가 그 해결책이 된다. 사람이 술주정뱅이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은 처음 술을 마시는 때부터이다!

 

구약 선지자들은 술취하는 일에 대하여 위협을 가하였다. 하박국 2장 15절은 이웃에게 술을 주는 사람을 저주하고 있다(사 5:11-22 참조). 아모스는 잔이 너무 작아서 사발로 술을 마신 게으른 유대인들을 정죄하였다(암 6:3-6).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지 않으셨던가?“ 그렇게 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강한 술이 아니라 “새 술“ 또는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이었다. 헬라어의 “오이노스“는 발효될 포도주를 말하거나 포도즙을 둘 다 의미한다.우리는 주님이 하박국 2장 15절의 말씀에 불순종하셨다고는 믿지 않는다! 주님은 사역의 종말에 임하여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마시지 아니하리라“(마 26:23)고 말씀하셨다. 그는 십자가에서 잔을 거절하셨다(막 15:23).

그리스도를 술마시는 자의 본보기로 삼으려는 사람들은 대개 마태복음 11장 18-19절을 지적하면서도 마태복음 26장 29절은 잊어버린다. 이들 중에는 그외의 다른 면에서 그리스도를 본보기로 따르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만찬에서 발효될 포도주를 사용하셨는가? 아니다! 성경의 그 어느 곳에서도 주님의 만찬과 연결되어 포도주라는 말을 사용한 곳은 없다. “잔“이라거나 “포도열매“라고 되어 있다(마 26:27-29). 더구나 발효된 포도주에는 죄의 상징인 누룩이 들어 있다. 고린도전서 5장 6-8절과 11절은 포도주일 가능성을 배제한다. 성찬을 행하며 술에 취했던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 자신의 “애찬“에서 그렇게 된 것이지 주의 만찬 때문이 아니었다(고전 11:21).

 

일본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신다.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그 다음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 이는 당연한 과정이 아닐 수없다! 첫번째 술을 거절하라. 그런 후에는 삶의 남은 기간 동안 계속해서 거절하라!"

 

 

 

▣ 분노-잠언 25장

 

이 부분의 주제는 분노인데, 의로운 분노가 있음에 유의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23절은 분노의 표정은 잡담을 침묵시킬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셨다“(막 3:5).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6절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충고한다. 물론 우리는 죄에 대해 분을 발하는 것이며, 사람에게 분을 내는 것은 아니다. 잠언 27장 4절은 분노는 잔인하며 난폭하다고 경고한다. 분노는 육체를 상하게 할 수 있으며 살인으로조차 인도한다(마 5:22). 성난 부모는 자녀의 몸과 정서에 영속적으로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죄악된 분노는 육신에 속하며(갈 5:19-21)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가 없다(약 1:19-20). 사단은 우리의 성난 말과 태도를 통하여 우리의 삶에 끼어든다(엡 4:26-27). 그래서 하나님은 “분노를 벗어버리라“(엡 4:31/골 3:8)고 주의시키신다. 화난 사람은 위험한 친구이며(잠 22:24/잠 29:22) 성난 여인은 가난한 여인이 된다(잠 21:9/잠 21:19/잠 25:24).

본 장에서 우리는 삶에 있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분노를 처리하는 데에 필요한 사항들을 배우게 된다.

 

1. 인내(25:8)

 

우리를 흔들어 놓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 그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거나 기도할 겨를도 없이 성을 내며 그 문제에 몰입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현명한 처사는 그 일을 끝까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이 허다한 죄를 가리운다고는 하지만(잠 10:12/잠 12:16) 우리가 어떤 죄에 빠져들기 위한 핑계를 찾으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조심성을 가지고 무엇이 개입되어 있는지 알라는 뜻이다. “화를 더디 내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사이다(잠 15:18). 분을 내기에 성급한 사람은 어리석은 자로 취급을 받는다(잠 14:17).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지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라고 시편 37편 8절은 충고한다. 그러므로, 화가 날 때는 어떤 문제에 몰입하기에 앞서 멈추어서 기도하고 생각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여유를 가지며 하나님의 영이 내적인 평화를 주시도록 허락하라.

 

2. 비밀유지(25:9-10)

 

우리는 가장 먼저 어떤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려“ 모든 사람을 우리의 편으로 만들기를 원한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의 말을 한다. “당사자에게 직접 말하되 다른 사람들이 개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마태복음 18장 15-17절에서 명령하신 그대로이며 이러한 방침이 가정과 교회에서 실천된다면 싸움과 분열은 줄어들 것이다.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면서도 사건의 당사자에게 말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물론 형제에게 견해 차를 말하는 데 있어서는 용기와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아마도 두 사람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는 두 세 사람의 영적인 형제들로 하여금 돕도록 한다. 이 때에도 실패하면 교회가 개입될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이 교회의 말도 듣기를 거절하면 그는 징계를 받아야 한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라고 로마서 12장 18절은 말한다. 불행하게도 성경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3. 지혜(25:11-14)

 

말은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인 것만은 아니다. 말은 살아있고 능력있는 실제로서 우리를 도울 수도, 해칠 수도 있다. 잠언 25장 18절에서 솔로몬은 거짓말을 세 가지 무기들과 비교한다(싸움 방망이, 검, 화살). 그러나 11-14절에서는 말이 사랑의 열매(금사과, 또는 레몬이나 오렌지), 아름다운 장신구, 눈덮인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얼음 냉수가 될 수 있음을 본다.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우리는 바른 말을 사용해야 하며 바른 방식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은쟁반에 사랑스런 열매를 담듯이 “적절하게 말을 해야“ 한다(욥 6:25 참조). 잠언 19장 11절에서는 신중함(사려분별)은 사람이 분내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어리석은 자만이 그의 마음을 모두 말한다(잠 23:11). 지혜로운 사람은 무슨 말을 어떻게 언제 해야 할지(잠 15:23) 심사 숙고한다. 물론 이러한 영적인 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은 틀림없는 일이다(약 1:5).

 

4. 부드러움(25:15)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는다!“ 참으로 모순된 말이다. 이 말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는 잠언 15장 1절과 유사하다. 어떤 사람이 비열하게 대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첫번째 반응은 그대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불에 기름을 더하는 격일 뿐이다(26:20-21/약 3:5 참조). 우리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며, 우리를 비난하는 자들을 비난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벧전 2:20-23). 우리가 만약 범죄한 형제를 회복시키려 한다면, 우리들에게는 온유한 정신이 필요하게 된다(갈 6:1). 이것은 바울이 그의 회심자들을 대하는 방법이었으며(살전 2:7), 또한 신자들에대한 그의 명령이기도 하다(딤후 2:24).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폭풍이 아니라 “조용한 작은 목소리“도 사용하신다는 것을 배워야만 했다(왕상 19:11-13 참조). 우리는 온유함이 곧 연약함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온유함이란 조절을 받는 능력이다. 외과의사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온유함에 있으며, 성령께서만 이 귀중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실 수 있으시다(갈 5:22).

 

5. 친절(25:21-22)

 

온유함이 친절함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로마서 12장 19-21절에서 바로 이 구절이 인용되어 있으며 신약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고 있음을 알아보자. 분노의 불에 석탄을 붓는 대신(잠 26:20-21) 우리는 사랑과 친절을 보여줌으로 불을 끄는 데 도움을 줄 수가 있다! 마태복음 5장 9-12절을 읽고 그리스도께서 이에 대해 하신 명령을 알아보자. 어떤 사람이 징계를 받아야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관할하실 것이다.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친절한 행위들을 바른 동기로 성취하는 일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에게 우리에 대한 책임을 지우거나, “돈을 받고 면제해 주거나“ 한다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진지하게 사랑하며 그들을 돕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시고 우리에게 상을 주실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선한 행위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져서는 안된다. 잠언 21장 14절은 이러한 일들에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암시한다. 솔로몬은 여기서 뇌물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친절은 기름과 같아서 요동하는 바다도 잔잔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6. 절제(25:28)

 

절제는 문제의 핵심에 자리한다. 절제를 실행하는 그리스도인은 분노로 말미암아 파멸에 이르거나 다른 사람들을 파멸케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구절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는 16장 32절과 비교되어야 한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 그리고 자기 생활의 왕국을 다스린다는 것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당시 알려져 있던 전 세계를 정복할 수는 있었으나 자신을 정복할 수는 없었다. 물론 인간이 이러한 절제를 소유하게 되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통하는 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기“ 때문이다(롬 5:17). 절제(기질의)는 성령의 열매들 가운데 하나이다(갈 5:22). 육은 사람에게 절제를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육은 하나님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사람이 그가 필요로 하는 인내심을 얻게 되는 것은 절제를 통해서이며, 이에 대해서는 본 연구를 시작할때 요약해서 살펴보았다. 만일 사람이 어떤 문제의 초기에서부터 절제를 행사한다면 잇달아 발생할 온갖 종류의 문제들에서 그를 구원할 것이다. 잠언 17장 14절은 분쟁의 시작을 댐에서 물이 새는 것으로 비유한다. 만일 주의하지 않으면 그 틈이 커져서 홍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처음에 적게 샐 때에 막는 것이 사납게 날뛰는 홍수를 막는 일보다 훨씬 쉽다. 잠언 30장 33절은 다른 상황을 제시한다. 젖을 저으면 버터가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난다. 이 말이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분노로 강압하고 문제를 자극한다면 더많은 문제들을 산출할 뿐이라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절제는 신자로 하여금 이러한 일들을 인내로, 그리고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의로운 문제들에 대하여 의분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좋은 성품을 세우는 일에 도움을 준다. 물론, 우리는 불의나 죄에 대해서는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혈기를 부리며 발끈 성을 낸다면 파괴적이 되는 것이다. 거룩한 분노는 보일러의 증기와 같아서 올바른 문제들로 향하게 하며 많은 유익한 일을 성취하게 한다. 자제력을 잃은 불의한 분노는 숲의 불과 같아서 조절할 수 없게 되며, 많은 유익한 일들을 파괴한다. 시편 19편 14절을 적용시키라!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 경건한 여인-잠언 31장

 

우리는 오직 영원한 세상에서만 경건한 여인들이 시대를 내려오며 소유하는 축복을 볼수 있을 것이다. 잠언 1-9장에서는 사악한 여인에 대하여, 그리고 성가시게 잔소리하는 여인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고 있다(21:9/25:24). 그러나 본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가족에게는 기쁨을 주는 경건하고 헌신적인 아내에 대하여 영광스러운 치사를 하며 끝을 맺고 있다. “위대한 남자 뒤에는 위대한 여자가 있다.“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그들의 경건한 어머니와 경건한 아내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결정을 내린 다음에 그리스도인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결정은 인생의 동반자를 선택하는 일이다. “어진 여인은 그 남편의 면류관이라“고 잠언 12장 4절은 말한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잠 18:22).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는다“(19:14).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지 못한 짝과 같이 멍에를 맬 수 없다(고후 6:14-18). 이들은 “주님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고전 7:39).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여자는 해산할 때에 자기의 생명이 위험한 것이 사실이다(딤후 2:12-15 참조).

본 장은 우리를 위하여 “어진 여인“을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자질들을 살펴보라.

 

1. 그녀의 영성(31:1-9)

 

왕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르므엘왕이 사실은 솔로몬 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증거는 없다. 어머니가 가진 가장 중요한 직분(또는 이 일에 있어 아버지의 직분)은 자녀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키는 일이다(딤후 1:5/딤후 3:15 참조). 어머니는 담대하게 르무엘왕에게 인생의 위험들에 대하여 주의를 준다. 즉, 사악한 동료, 독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에 실패하는 일 등에 대한 것이다. 죄에 대하여 경고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어머니를 가진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남자 또는 여자의 음행과 술로 말미암아 파괴되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충실하지 않은 남자 또는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날아다니는 사람)들이나 술을 마시는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은 불행한 가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은 개인의 성품을 바꾸어 놓지 못한다. 장래의 동반자가 어떠한지를 결혼하기 앞서 발견하도록 하라.

 

2. 그녀의 충성심(31:10-12)

 

여기서 핵심이 되는 두 단어는 마음과 신뢰, 곧 사랑과 믿음이다. 결혼은 마음의 문제이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참된 사랑이 있어야 한다. 남자가 그의 아래에게 보여 주어야 하는 사랑은 그리스도가 교회에 보여 주신 것과 똑같은 사랑으로(엡 5:18- 이하), 희생적이고, 인내하고, 고난을 감수하며, 부드럽고, 지속적인 사랑이다. 아내를 사랑하며 사랑을 보여 주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남편은 돌보는 일을 해야 하며 직업이나 가정의 잡일이 그들을 아내들이나 자녀들에게서 빼앗아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행복한 가정이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기도하고 진실로 사랑한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다. 남편들과 아내들이 주님을 신뢰하고 서로를 신뢰할 때 행복과 축복이 있을 것이다. 결혼서약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할 약속이다. 이 서약들을 깨는 것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다.

 

3. 그녀의 일(31:13-22)

 

이 귀한 여인은 일군이다! 바느질이거나 요리이거나 자녀들을 돌보고 가정의 잡무에서 남편을 보조하며 충실하게 자기의 몫을 담당한다. 그녀가 즐겁게 일하는 것을 눈여겨 보자(13절). 이것은 강제(Compulsion)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심정“(동정, Compassion)을 가짐으로 된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므로 그를 기쁘게 할 것을 추구한다. 결혼의 축복된 원리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7장 32-34절을 보라.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한 삶이다! 여기 나오는 이상적인 여인은 아침 시간을 잠자리에서 보내지 않으며 자기의 임무를 담당하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15절). 필요에 따라서는 저녁 늦게까지 깨어서 지낸다(18절). 디모데전서 5장 14절에서 바울이 젊은 여인들에게 주는 교훈을 살펴보자. 때때로 긴급한 일이 생기거나 여인이 집 밖에서 일해야 할 상황이 있기도 하겠지만 비록 그렇다 해도 그녀의 우선적인 임무는 가족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잠언은 게으름에 대해서 남자거나 여자거나 간에 동조하는 말은 한 군데도 없다(6:6-11/10:4/10:26/13:4/15:19/18:9/19:15/19:24/20:4/20:13/21:25/22:13/24:30-34/26:13-16 참조). 오늘날과 같이 “노동력을 절약하려는 방책“이 추구되는 시대에 있어서도 열심히 일하는 것과 부지런한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4. 그녀의 품위(31:23-26)

 

그녀의 남편은 성문에서 알려지며 그녀는 가정에서의 충실함으로 인하여 알려지게 된다. 하나님의 계산에 있어서는 남자와 여자가 같은 지위에 있다. 각자의 위치를 떠나면 혼란과 문제가 생긴다. 물론 남자의 머리됨은 명령권이라기보다는 사랑에 있어서의 본보기와 지도력을 뜻한다. 경건한 여인은 성공하기 위해 아름다운 옷에 의존하지 않으며, 속 사람의 “능력과 존귀“로 옷입는다고 25절은 암시하고 있다. 베드로는 사치로써 외모를 단장하는 것과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는 일에 대하여 말한다(벧전 3:1-3). 바울은 여자들에게 품위있는 외모로 단장하라고 명령한다(딤전 2:9). 또한 영적인 아름다움에 의존하며, 세상의 인공적인 아름다움으로 꾸미지 말라고 권한다. 26절은 경건한 여인이 옷입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에 대해서도 조심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친절의 법“이 혀를 다스릴 때 이는 참으로 축복된 일이다.

 

5. 그녀의 경건함(31:27-31)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추구하는 것이 그녀의 삶의 비결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루 종일 그녀는 남편과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그녀의 참된 아름다움은 내적인 것이다. 비록 연륜이 그녀의 몸에 나타난다 해도 주 안에서의 아름다움은 더해질 뿐이다. 그녀의 찬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나는 언제나 주님을 기쁘게하는 일만을 행한다.“

하나님은 이 여인을 어떻게 칭찬할 것인가? 그녀의 수고한 것과 생명을 축복하심으로 칭찬하신다. 그녀의 생명의 결실은 그녀를 높일 것이다. 그녀는 물론 “영원한 생명“을 추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에 심지 않고 영에 심었기 때문이다(갈 6:7-8).

 

그녀의 남편과 자녀 역시 일어나 그녀를 칭찬할 것이다. 오늘날 남편과 자녀는 아내나 어머니가 가정에서 하는 일에 계속적으로 감사를 표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오늘날 많은 가정에서 가장 큰 약점들 중의 하나는 가족들이 서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점이다. 남편들은 공개적으로 가정의 축복을 인하여 주님과 아내를 칭찬함으로써 올바른 본을 세울 필요가 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적인 아내가 “고맙다“는 간단한 말 한 마디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가정에서 감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참으로 죄이다. 이러한 종류의 감사는 “어머니 날“이나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예약된 것이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일 년 내내 진지하게 나타내야 할 것이다. 감사는 놀라운 그리스도인의 덕이다. 모든 가정에서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자질들은 가정의 남자에게서도 볼 수 있어야 하겠다. 경건한 여인이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남편으로 인하여 인내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보는가! 성경은 남편과 아내에 대하여 “이중적인 기준“을 세운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남편이 영적이며, 충성되고, 부지런하게 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계획 안에서 한 가정에 남편과 아내가 둘 다 필요하게 하셨다. 질서를 세우셨으며 각자는 일정한 직분을 수행해야 함을 명령하셨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대신할 수가 없다. 어떤 긴급 사태 하에서는(동반자가 사망한 경우)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도록 은혜를 주신 일은 있으시다. 그러나 이러한 배정은 최선의 방책이지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남편과 아내는 계속적으로 경계하지 않으면 사단이 끼어들어와 가정을 파괴할 것이다. 이들은 서로 영적이고, 물질적인, 육체적인 책임들을 지고 있으며, 이러한 필요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단이 일을 하게 된다(고전 7:1-6/딤전 5:8/엡 5:21-33/벧전 3:7 참조). 특히 자녀들이 성장하여 가정을 떠날 때는 경계를 계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때 그 가정의 참된 힘이 시험되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더이상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함께 있기로 하자“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올바른 동반자를 선택하며,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가정을 세우기를 빈다.

출처 : The King dom
글쓴이 : KINGDO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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