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113년 전 女權선언문

好學 2011. 8. 24. 22:22

 

113년 전 女權선언문

 

 

 

프랑스 극작가 올랭프 드 구즈는 1791년 사상 첫 '여성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제1조는 '여성은 자유롭게 태어나 남성과 같은 권리를 가진다'로 시작했다. 제10조엔 '여성은 그 의사 표명이 공공질서를 흔들지 않는 한 단두대에도 연단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고 썼다. 그녀는 1793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에 대항하는 정치 평론을 냈다가 사형 선고를 받은 이튿날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죄목은 '사형제에 반대한 죄'였다.

 

미국 여성들에게 투표권 쟁취운동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수전 앤서니는 한 해 100차례씩 강연을 다닐 만큼 열정적이었다. 주간지 '혁명'을 발간했지만 술과 모르핀약 광고를 거절하다 파산했다. 이 주간지는 '윈슬로 시럽'이라는 모르핀약으로 떼돈을 번 사람에게 넘어갔다. 영국의 메리 울스톤크래프트가 1792년에 쓴 책 '여성의 권리옹호'도 기념비적이다. 당시 입만 열면 인권을 부르짖던 남성 계몽주의자들조차 그녀를 '사색하는 뱀'이라고 비웃었다.

 

▶오늘 이화여대에서 열리는 국제학술회의에서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근대적 권리를 주장한 '여학교 설시(設施)통문(通文)'을 재조명한다. 1898년 9월 1일 독립신문과 황성신문에 실려 관립 여학교 설립을 호소했던 글이다. "우리도 혁구종신(革舊從新·헌것을 버리고 새것을 따름)하여 타국과 같이 여학교를 설시(設施·설립)하고 각각 여아들을 보내어…남녀가 일반사람이 되게 할 차…."

 

▶당시 신문들은 이 글이 "놀랍다" "희한하다"며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글쓴이는 '이 소사와 김 소사'로 돼 있다. 소사(召史)란 중인계급 부인을 점잖게 부르는 말이다. 이들은 며칠 뒤 여성교육운동단체 '찬양회'를 조직했고 서울 북촌 일대 양반 부인과 기생까지 가세해 회원이 400여명에 이르렀다. 윤치호·장지연 같은 독립협회 인사들의 조언을 받아 고종에게 상소문도 올렸다.

 

▶고종은 도와주려 했지만 학부(學部·교육부)가 "재정이 없다"고 버텨 지지부진했다. 고종의 말만 믿고 학생까지 뽑아놓은 찬양회는 1899년 순성여학교를 열었다가 돈이 부족해 곧 문을 닫았다.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여권운동은 '교육'에서 시작하고 있다. 드 구즈나 울스톤크래프트에 단순 비교하면 우리가 100년 넘게 뒤졌지만, 당시 조선왕조 말기 상황을 본다면 정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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