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북한 주민을 돕는 인도주의이고 궁극적으로

好學 2011. 7. 26. 22:22

북한 주민을 돕는 인도주의이고 궁극적으로

 

 

 

‘서울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서울을 더 잘 안다’는 말이 있다. 내가 바로 그랬던 사람이다. 북한에 있을 때 대남공작 부서인 통일전선부에서 남한 잡지 몇 권 읽고 친구들에게 광화문 인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면 친구들은 나를 따라 서울관광이라도 하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곤 했다. 남한에 대해서는 말을 한 사람이나 들은 사람이나 모두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은밀히 나누는 그 대화 분위기가 더 신뢰감을 부여했다.

하지만 나는 역시나 ‘평양촌놈’이었다. 서울에 와보니 전혀 다른 세상도 세상이지만 사람들의 상상력도 무척이나 자신만만했다. 심지어는 평양에 가보지 않고도 나보다 평양을 더 잘 아는 사람이 꽤 많다. 가령 내가 대북 지원과 관련한 문제점을 지적하려 하면 당신은 반대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못 박는다. 나 혼자라면 거짓일 수 있겠지만 탈북자 대부분의 주장도 무시한 채 오히려 진실의 북한이 아니라 가상의 북한을 설득하려 든다. 대북 지원 식량의 군(軍) 전용 문제는 대북지원단체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알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대북 지원 식량이 김정일 정권의 체제비용으로 전환되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북한 관련 자료 중 ‘대한민국’ 상표가 그대로 붙은 쌀 포대들이 진열된 시장사진들이 있다. 일각에선 배급받은 군인들이 시장에 빼돌린 증거라고 하는데 사실 그 사진들은 북한 정권 차원에서 대북 지원 식량을 현금화하는 증거물이다. 북한 정권은 김 부자(父子) 생일이면 중앙기관 산하 각 외화벌이 회사에서 부족한 외화를 거둬들인다. 그 외에도 수도 건설과 선군 지원 등 온갖 명분으로 수탈해 가는데 그 대금 결제 수단으로 대북 지원 쌀을 주는 것이다. 달러가 급한 회사들은 자금 회수를 위해 합법적으로 대북 지원 식량을 시장에 급하게 풀어버린다. 그래서 구제미가 북한항에 도착하면 쌀값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팔아버린 대북 지원 식량을 다시 군량미로 헌납하도록 주민들에게 강요하는 게 바로 오늘날 김정일 정권의 정체성이다.

일부 국제 지원단체가 분배 투명성을 전제로 대북 식량 지원을 하겠다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두 개의 계층으로 분류됐다. 당과 군에서 충성세력으로 남아 있는 배급계층과 일반 주민으로 구성된 시장계층이다. 얼마 전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시장계층이 2000만 명이라고 말했듯이 배급계층은 정권의 배급능력에 비례하여 극히 소수다. 이 때문에 김정일체제의 불안은 외부세계가 아니라 북한시장에 있다. 시장이 커질수록 주민들은 충성가치에서 물질가치로 변하며, 가격 선점을 위해 라디오를 듣는 등 정권에 불리한 외부정보도 유통되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에 소개됐듯 북한이 수해사진을 조작하면서까지 식량 구걸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그 쌀로 배급계층, 즉 충성계층을 늘리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시장가격을 인정한 2000년 7·1조치 이후 배급제를 거부했다. 기관에 구속된 삶의 대가로 고작 질이 안 좋은 배급쌀을 받느니 차라리 시장에서 며칠 고생하면 그 삶이 더 자유롭고 풍족할 수 있어서다. 이처럼 시장이 없을 때의 북한과 있을 때의 북한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우리의 대북지원 관점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대북 지원 식량은 주민의 식량이 아닌 북한 정권의 통치식량일 뿐이다. 북한 시장에 초점을 맞추는 주민들의 정신식량, 개혁개방식량 지원이라야 진정 북한 주민을 돕는 인도주의이고 궁극적으로 자유통일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장진성 탈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