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漢字文學/[고사성어]故事成語

[살롱] 昌興義塾

好學 2011. 7. 23. 22:44

[살롱] 昌興義塾

 

 

 

호남에서 명문가로 꼽히는 집안이 전남 창평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던 ‘창평고씨(昌平高氏)’들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과 그 두 아들인 고종후, 고인후가 모두 순절(殉節)하면서부터이다. 구한말에도 역시 그 후손인 고광순(高光洵 : 1848~1907)이 일본군과 싸우다가 구례 연곡사에서 동지들과 함께 순절하였다.

또 다른 후손이었던 고정주(高鼎柱 : 1863~1933)는 의병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길로 갔다. 학교를 세워 인재들을 양성하는 길이었다. 그 학교가 바로 ‘창흥의숙(昌興義塾)’이다. 현재는 창평초등학교로 되어 있다. 고정주는 규장각(奎章閣)의 직각(直閣 : 요즘 국립중앙도서관장에 해당) 벼슬을 하다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향에 돌아와 1906년에 학교를 세운 것이다.

창흥의숙은 수업료를 일절 받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에 오는 학생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할 정도였다. 학교를 세운 고정주가 만석꾼의 재산가였으므로 모든 비용을 본인이 부담하였던 것이다. 학생이 결석하는 날이면 고정주가 하인을 학생 집으로 보내서 데려왔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창흥의숙에서 배출된 학생들이 예사롭지 않다. 동아일보를 세운 인촌 김성수, 한민당 당수였던 고하 송진우,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호남은행을 설립한 무송 현준호가 모두 창흥의숙에서 공부하였다. 근대 호남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창흥의숙 출신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고재필(보사부장관), 고정석(산업은행장), 고윤석(서울대 부총장), 고광표(대창주식회사 회장)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전 대통령 후보 이회창의 외숙들로서 해방 후에 모두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김홍용, 문용, 성용 3형제도 또한 이 학교 출신이다. 이회창의 외가가 창평이기 때문이다. 이회창의 어머니인 김사순도 경기여고를 나와 친정 동네인 이 학교에서 몇 년 동안 교사를 하였다. 창평 출신의 70대 노인들은 김사순 선생에게 배운 기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이회창도 외가 동네인 이 학교에서 2~3년간 학교를 다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학적부가 6·25 때 불타 버려서 그 기록을 확인할 수는 없다. 엊그제 4월 1일이 이 학교의 개교 100주년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