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그리스도의교회 초기 인물 자료 - 편집자와 출판가로써(As Editor and Publ) 7

好學 2011. 7. 16. 17:18

 

 

편집자와 출판가로써(As Editor and Publisher)

 

1820년에 열린 캠벨과 워커와의 토론이 책으로 출판돼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되자, 캠벨은 출판의 위력에 눈이 뜨였다. 그 결과 앞에서 언급한 월간지 {크리스천 뱁티스트}(The Christian Baptist)지가 1823년에 시작되었고, 편집자는 캠벨이었다.

잡지발행을 추진시키고 가능하다면 이익을 내기 위해서 알렉산더 캠벨은 농장으로 이어지는 다리 가까운 버팔로 개울(Buffalo Creek) 방죽 위에 작은 인쇄소를 짓고, 자기 소유의 인쇄기들을 설치하였으며, 인쇄공을 채용하였다. 이 새로운 사업은 환원운동을 알리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결코 이익이 나지는 않았다. 캠벨은 일년에 1,000불 정도의 손실액을 보상해야 했다.

{크리스천 뱁티스트}지의 발행은 환원운동에 대한 공개토론의 장을 마련해 주었고, 알렉산더는 인습타파를 위한 기사들을 실을 수 있었다.

인구가 적고 우편업무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볼 때, 월간지의 발행부수가 상당했다. 발행된 잡지는 거의 미국 전역과 캐나다, 심지어는 영국에까지 보내어졌다. 비판자가 되는 것에서 조직된 기독교의 주창자로의 근본적인 변화가 캠벨로 하여금 일곱 권을 찍어낸 후 즉 칠 년만에 {크리스천 뱁티스트}지를 폐간토록 하였다.

이제 제자들(Disciples)로 불리어지는 개혁가들이 침례교인들로부터 어쩔 수 없이 분리해야되는 상황을 인식하면서 또 크리스천 뱁티스트(Christian Baptist)란 이름으로 그들의 운동이 불려질 것을 우려하면서, 1830년 1월 4일, 알렉산더 캠벨은 새로운 잡지, {밀레니얼 하빈저}(
The Millennial Harbinger)를 시작하였다. 이 월간지는 캠벨이 1866년 죽고 난 다음에도 1870년 12월까지 계속 발행되었다. 이 잡지는 폐간되기 전 몇 년 동안만을 제외하고는 40여년 줄곧 환원운동에 가장 영향력 있는 월간지였음을 증명하였다.

잡지의 쪽수를 늘리고 다른 인쇄작업을 겸할 수 있도록, 베다니 마을에 새로운 인쇄소를 짓고, 인쇄기들을 더 주문하여 시설하였다. {밀레니얼 하빈저}는 48쪽에서 60쪽 정도로 만들어졌는데, 일년 치를 모으면 두터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었다. "엑스트라즈"(Extras)라는 이름의 특별부록은 정기 구독자들에게 무상으로 공급되었는데, 최근의 관심을 단독 주제로 다룬 것이었다.

캠벨의 편집지시아래 잡지는 다른 신문잡지가 할 수 없는 환원운동이 신약성경 기독교의 토대 위에서 교회를 연합하는 것임을 대변하였다. 거의 이익을 보지 못했고, 종종 캠벨이 손실액을 보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잡지는 환원운동의 안정과 형성에 기여하였다. 책장에 {밀레니언 하빈저} 전집을 갖고 살았던 제자들 목회자들이 수 세대에 걸쳐 있었다.

알렉산더 캠벨에게 신약성경을 읽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말씀에서 나오는 의미였다. 캠벨은 킹 제임스 신약성경에 수정 보완될 곳들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개역판을 출판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같은 새 번역성경을 만드는 토대로써 캠벨은 이미 50년 전에 출판된 번역본들을 사용하였는데, 세 명의 스코틀랜드인 학자들에 의해서 번역된 것들이었다. 조지 캠벨(George Campbell)이 복음서들을, 제임스 맥나이트(James MacKnight)가 서신들을, 그리고 필립 닷드릿지(Philip Doddridge)가 사도행전과 계시록을 번역하였다. 알렉산더 캠벨은 그들의 번역본들을 다른 번역본들과 그리고 헬라어 본문과 비교하였다. 한 구절씩 모든 가능한 의미들을 찾아본 다음에 캠벨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택하였다.

번역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전도자들의 거룩한 글들, 평이한 형식의 신약성경}(
The Sacred Writings of the Apostles and the Evangelists of Jesus Christ, Commonly Styled New Testament(Bethany, Brooke Co., Va.: A. Campbell, 1826)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알렉산더 역시 초기 작업에서 "여러 가지 교정"을 하였고, 매 부분마다 머리말과 많은 비평각주와 부록을 첨부하였다. 캠벨이 새 번역 성경을 만든 주된 이유들은 근대 본문비평학자들이 더 나은 성경본문을 만들어냈고, 고대언어에 대한 지식이 17세기 때보다 지금이 더 철저하였고, "살아 있는 언어는 지속적으로 변천하기" 때문이었다.

캠벨은 모든 헬라어 단어가 가능하다면 가장 좋은 영어로 번역되어야 하며, 어떤 단어도 단순히 음역(音譯)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결정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전 개역성경들에서 헬라어 단어를 단순히 음역하여 "baptize"(침례하다)로 한 것을 "immerse"(침수하다)로 고쳤고, 따라서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을 "침례 요한"(John the Immerser)으로 고쳤다.

캠벨의 새 번역성경은 종종 "살아있는 말씀"(The Living Oracles)이란 호평을 들으면서 추종자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따라서 여러 쇄를 거듭하여 출판되었다. 그러나 캠벨의 신약성경이 약식세례를 베푸는 교단들로부터 반대에 부딪치게 될 것은 예상된 것이었다. 놀랍게도 침례교인들조차도 화를 냈고, 여러 장소에서 화난 군중들이 캠벨의 새 번역을 불태웠다(역자 주: 새 번역은 캠벨이 침례교단에서 분리되기 4년 전에 출판되었다).

침례교회와 분리된 후 1830년대까지, 환원운동은 성장하였고, 자체 찬송가의 필요성이 커졌다. 1835년 캠벨은 {제자들 찬송가}(
The Disciples Hymn Book)란 제목으로 찬송가를 편집 출판하여 시장에 공급하였다. 찬송가는 아마 발톤 W. 스톤(Barton W. Stone)과 다른 지도자들과도 협동으로 마련된 것 같다. 그러나 스톤은 단지 간접적으로 내용에 관해서만 문의를 받았고, 제목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결국 스톤의 항의에 부딪쳐 제목이 {그리스도인 찬송가}(The Christian Hymn Book)로 바꿨다.
해가 거듭되면서 찬송가는 실질적인 이익을 냈다. 캠벨은 이익금을 찬송가를 구입해준 미국교회들을 돕는데 사용하였다. 캠벨은 말년에 저작권을 미국 크리스천 선교사협회(American Christian Missionary Society)에 넘겼다. 그때부터 19세기 말엽 절판될 때까지 찬송가에서 나오는 이익금은 협회의 선교사업에 쓰였다.

캠벨은 시시 때때로 다른 책들도 인쇄하였다. 그 가운데는 {크리스천 시스템, 그리스도인들의 연합과 초대 기독교에로의 환원에 관해서, 현대개혁에서 간청된 것으로써}<The Christian System, in Reference to the Union of Christians and a Restoration of Primitive Christianity, as Plead in the Current Reformation(Bethany Va.: Printed by A. Campbell, 1839)>와 {크리스천 뱁티즘, 그 전례와 결과}<
Christian Baptism Its Antecedents and Consequents(Bethany Va.: Printed by A. Campbell, 1851)>가 있다. {크리스천 시스템}은 이전에 발행된 것의 수정판이었고, {크리스천 시스템}과 {크리스천 뱁티즘} 모두는 이전에 출판된 기사들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