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과 신명기(5): 모세의 두 번째 설교(4)(19-26장) 15 |
7. 각종 사회법(25:1-19)
7-1. 태형에 대한 규례(1-3)
재판상의 부정과 재판관이 돈에 매수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공의를 무너뜨리고, 사회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재판관이 공의(公義)에 따라 재판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출 23:6-8). 유대에서는 태형(笞形)의 집행 시에 수석 재판관이 입회하여 (신 28:58, 59, 29:9)을 큰 소리로 봉독하였으며, 마지막에는 "그러나 주께서 자비가 충만하셔서 저들의 죄를 사하셨느니라"는 말로 끝냈다고 한다(Mishna). '여수히'(미스파르')라는 말는 '세다', '기록하다'는 말에서 온 말로서 '일정하게', 또는 '적당한 수로'라는 의미로서, 이 말은 범죄자가 저지른 죄에 알맞는 형벌을 가하라는 의미이다. '40'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심판'과 '연단' 또는 '시험'을 의미한다(창 7:12; 출 24:18;민 13:25; 마 4:2; 행 1:3).
그러므로 40대의 매를 때리는 것은, 곧 죄에 대한 심판과 동시에 선한 길로 인도하려는 연단의 방편을 의미한다(Keil). 그런데 후대에 이르러 유대인들은 태형을 집행할 때 39대까지만 때렸다. 그 이유는 혹시라도 계수(計數)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40대의 매를 초과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Keil & Delitzsch, Pulpit).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던 중 다섯 번이나 이러한 매를 맞았다(고후 11:24).
본 규정은 이방국가와 같이 인간을 무자비하게 때려서 불구로 만들거나, 죽게 만드는 일을 금지시킨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40대 이상의 형벌이 가해질 정도로 중한 범죄이면, 재판관은 차라리 그를 처형시켜야 했다. 칼빈(Calvin)은 여기서 '천히 여김을 받게 하다'는 말을 '너무 심한 매질을 하여 흉측한 불구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이 해석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본 절은 범죄에 대해 징벌하는 경우라도 인격을 송두리째 짓밟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 범죄자도 기본 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 적 용 >
1.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지만 죄인에 대해서는 정당한 권리를 보호해 줄 것을 요구하신다. 따라서 죄를 지은 사람을 법에 따라 공정히 처벌하되, 인권을 모독하는 일이 없게해야 한다.
2. 하나님께서는 죄를 처벌하는 중에도 그 영혼을 귀중히 여기신다.
7-2. 일군에게 먹을 것을 주라(4)
여기서 '곡식을 떤다'는 것은 곡식의 타작을 가리킨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대개 두 가지의 타작법(打作法)이 사용되었는데, 하나는 편편한 널판지에 구멍을 많이 뚫고 그곳에 날카롭고 단단한 돌을 박은 타작기를 당나귀나 소로 하여금 타작할 곡식 위로 끌고 다니게 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평평한 바위나 고르게 다진 타작 마당에 곡식 단을 펴놓고 막대기나 도리깨로 두들겨 타작하는 방법이다(삿 6:11). 소를 이용하여 탈곡할 경우, 소가 곡식 낟알을 주워 먹는 사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은 짐승이라도 그 수고한 대가를 받는 것이 마땅함을 가르쳐 준다. 이는 보상의 일반 원칙을 언급한 일종의 격언인데, 예수께서 "전도자가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마10:10)고 한 것이나, 사도 바울이 "교회 사역자들이 교회로부터 응분의 대가를 제공받는 것이 마땅하다"(고전 9:9-14; 딤전 5:18)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회교권 국가에서는 오늘날에도 이 같은 가르침에 입각, 탈곡 작업에 동원되는 가축의 입을 망으로 씌우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두고 있다(Robinson)(칼빈).
< 적 용 >
*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일하며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그 일로부터 얻어지는 수익 중에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것이 마땅함을 가르쳐 주셨다. 이러한 원리는 심지어 짐승에 있어서도 적용되는 것이며, 교역자에게도 적용되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을 통하여 양식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7-3. 계대 결혼법(5-10)
계대결혼은 결혼한 형제가 후사(後嗣)없이 죽은 경우 다른 형제가 형제된 의무로서 죽은 형제의 과부된 아내와 결혼하는 제도를 가리킨다. 이 계대 결혼의 풍습은 모세보다 훨씬 이전의 이스라엘 사회와 고대 근동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풍습이었으나(창 38:8-11), 모세 시대에 율법으로 성문화(成文化)되었다. 계대 결혼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죽은 형제를 대신하여 대(代)를 이어줄 후사를 낳아 줌으로써, 그 형제의 이름과 기업을 가문(家門)과 지파 내에서 보존해 주기 위함이었다.
2) 이스라엘 여인이 이방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3) 홀로 남아 의지할 데 없는 과부를 제도적으로 보살펴 주기 위함이었다.
후사를 '잇게 하다'에 해당하는 '쿰'은 '지탱하다', '성립하다'(잠 15:22), '일어나다'(17:8)등과 같은 다양한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쓰러진 가문(家門)을 다시 '일으키다'는 의미로 쓰였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이와 같은 역할은 계대 결혼에 의하여 태어난 첫아들이 수행하였다. 즉 첫아들은 죽은 형제의 아들로 간주되어 족보에 대신 이름이 올려졌으며 또한 그 기업을 상속하였다 한다(talmud). '성읍 장로'(8절)라고 부르는 이들은 이스라엘 각 성읍에서 개정(開廷)되는 법정의 재판관을 가리킨다(21:1-9). 한편 이스라엘의 재판 제도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각 마을에서 열리는 일반 법정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 성소에서 열리는 고등 법정이다. 그런데 각 마을에서 열리게 되는 일반 법정의 장소가 바로 마을 성문이며(17:5), 그 재판을 주관하던 자들이 마을 장로들이었으므로 '성문 장로'라 불렀던 것이다(신 16:18).
만일 계대결혼을 해야 할 사람이 그것을 회피할 경우, 결혼을 거절당한 미망인은 그 사실을 법정에 정식으로 고발할 수 있었다. 계대 결혼을 거절당한 여자의 고발이 접수되면, 재판관들은 곧 법정을 개정한 후 피고를 소환하여 고발 내용의 사실 여부를 심문하였다. 이때에 피고가 결혼을 거절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재판관들은 다시 한번 그 남자에게 계대 결혼이 갖는 목적과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 주고 거기에 따를 것을 종용하였다 한다(Keil).
본문의 규정들은 형제의 가문과 기업을 보존시켜 주기를 거절하는 자에 대하여 '사회적 제재를 가하기 위한 규정이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형사 처벌이 뒤따르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 계대 결혼은 '도덕적 사랑의 의무 규정'이라고 보아야 한다(Keil). 자신의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자는 자신이 신고 있던 신을 벗어 상대방에게 건네주었다(Keil & delitzsch). 따라서 계대 결혼을 거절한 남자의 신을 벗기는 것은 이제 그가 더 이상 형제의 기업을 이을 자격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상징적 행위(룻 4:7,8)였다(F.J. Dake, Hupfeld).
그리고 여기에는 여자가 상대방 남자를 조소하고 경멸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Pulpit Commentary). 왜냐하면 성경 상에서 맨발의 상태는 치욕과 조소 및 비천한 상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삼하 15:30; 사 20:2,3). 이 경우 그 여인은 그의 '면전에서' 침을 뱉았다(Keil, Talmud). 이는 계대 결혼을 거절함으로써, 형제 된 의무를 기피한 자에게 모욕과 수치를 가하는 일종의 공개적 징벌이었음에는 분명하다(레 15:8;민12:14;욥 30:10; 사 50:6). 그리고 나면 그 집은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는 오명이 붙게 되었다. 이 말은 그 집이 '별 볼일 없는 집안', 도는 '하찮은 가문'이란 뜻이다. 이처럼 계대 결혼을 거부할 경우, 일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집안 전체에까지 불명예가 돌아가는 것은 크나 큰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 적 용 >
* 하나님께서는 형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 먼저 그 집안 사람들이 도와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신다. 만일 그 가족들이 형제들의 어려움을 보고도 최선을 다해 도와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심히 못 마땅해 하실 것이며, 온갖 불명예로서 그에 보답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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