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15과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4

好學 2011. 1. 29. 22:17

 

제15과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4

 

 

4. 유월절과 출애굽(11-12장)-열 번째 재앙-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 땅에 사는 평생토록 기념해야 할 사건이다. 유대인의 역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본문에 나오는 B. C. 1445년에 일어났던 유월절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유월절에서 출발한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에 당시에 세계 최대 국가의 왕이었던 바로를 쳐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다. 이 날은 애굽인에게는 죽음과 슬픔의 날이었으며, 이스라엘에게는 구원과 승리의 날이었다. 이 축복과 저주는 유월절에 잡아 문에 바른 어린양의 피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 피를 문에 바른 자는 구원을 받았지만, 피를 바르지 않은 자의 집은 죽음의 사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되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역사가 되었다.

 

 1) 유월절은 사람이 정한 절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날이다(12:12-13).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계획에 의존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철두철미 자신이 구원의 역사를 주도하셨다. 그 계획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할 일은 단지 그 말을 믿고 그 지시를 따르는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의 구원 역사에도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로 구원을 주시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죄를 짓고 사단의 노예로 신음하는 인간들을 위해서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를 위해 희생시켜 주심으로 인류의 죄 값을 지불하셨다. 이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구원을 믿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2) 제1-9재앙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제10재앙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이었다. 피를 발랐는가 안 발랐는가에 의해서 똑같은 날이 한쪽에는 심판의 날이 되고, 다른 쪽은 구원의 날이 되었던 것이다. 복음도 이와 같아서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할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요 3:18)

                                  <참고: 유 월 절 >
  유월절의 명칭은 히브리어 `페사흐'에서 비롯되었다. 이 말은 영어로는 `passover'(넘어가다)로 번역되는데, 이 말은 (출 12;13)에 나오는 '넘어가리니"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이 말은 `넘어가다', `뛰어넘다', `목숨을 살려주다' 등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개역 성경에서 이 절기를 `유월절'(넘는 절기)이라고 번역하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매년 첫 달의 14일에 유월절 행사를 갖고 그 다음 1주일간은 무교절로 지켰다. 성경에서 유월절과 무교절은 서로 다른 행사였지만 계속 이어지는 행사였기 때문에 한 절기로 취급되기도 한다.


 

 4-1. 무교병(12:15-20)-누룩 없는 떡-


  유월절에는 누룩이 없는 빵을 7일간 먹어야 했다(12:15-20).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급히 떠나야 했기 때문에 `누룩을 넣어서 제대로 만든 빵'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떠날 채비를 차린 상태에서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야" 했다(12:11, 39). 예수님은 형식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교훈을 누룩이라고 불렀다. 었다. 예수님께서 이들의 교훈을 누룩으로 표현하신 것은 아마도 그들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형식적인 종교인으로 변질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마 16:6)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마 16:11).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누룩이 없는 떡을 순전함과 진실함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7-8).  성경에서 누룩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악한 마음, 합리주의(마16:6-12), 세속적인 것(막8:15), 악행(고전 5:6), 거짓 교리(갈5:9) 등. 오늘날의 누룩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허영, 그리고 거짓이나 부정직함과 같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때에 순전하고 진실된 믿음을 가져야 하며, 성도로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거짓과 외식을 버리고 진실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

  

 4-2. 쓴 나물(12: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유월절에 쓴 나물을 먹으라고 지시하셨다(12:8). 쓴 나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던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 쓴 나물을 먹을 때마다 과거에 자신들이 지은 죄와 애굽의 억압 밑에서 겪은 괴로움과 슬픔을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성도들도 때때로 이 쓴 나물을 먹어야 할 때가 있다. 우리들은 종종 형통하게 될 때에 옛날을 잊어버리고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성도들이 쓴 나물을 먹으면서 이전에 자신이 구원을 받기 전의 고난을 기억하고, 그러한 환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고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4-3. 유월절 어린 양(12:2-6)
  유월절 행사는 가족 단위로 준비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니산월 10일에 가족대로 어린양을 한 마리씩 준비했는데, 가족이 너무 적어서 이 양을 다 먹을 수 없는 경우에는 두 가족이 함께 먹을 수도 있었다. 그 어린양은 반드시 1년 된 수컷이어야 했으며, 흠이 있거나 다른 양은 음식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니산월 14일 저녁에 그 양을 잡아먹었다(12:2-6). 이 `흠 없는 1년 된 어린 양'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죄를 지은 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속죄할 자격이 없다. 오직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될 자격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며, 자신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하셨다.

 

 4-4. 꺾이지 않은 뼈(12:43-47)
  유월절의 어린양은 뼈를 꺾지 않고 통째로 구워서 쟁반에 얹어 상위에 올려놓아야 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복음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돌아가셨을 때의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그가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요 19:32-36). 당시의 로마 군인들은 십자가에 처형된 죄수들을 빨리 죽여서 그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기 위하여 죄수들의 다리를 꺾었다. 로마 군인들은 이러한 전례를 따라서 아직 죽지 않은 채로 매달려 있는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혔던 좌우편의 강도들의 다리를 모두 꺾었다. 그러나 로마 군병이 다리를 꺾으려고 예수님께 갔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다리를 꺾지 않았다. 요한은 이것이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4-5. 어린양의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바름(12:21-2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우슬초에 적셔서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바르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피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죽음의 사자들의 손에서 구원할 표시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애굽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상한 미신적인 행동을 한다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날 밤 이 피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생명을 죽음의 사자의 손으로부터 구원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많은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않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성도들은 사망의 권세가 해치지 못하게 된다.

 

 4-6. 유월절 어린양과 예수 그리스도
 * 사도 바울: 유월절 어린양=예수 그리스도("우리의 유월절 양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 사도 베드로: 흠 없는 유월절 양과 같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게됨("너희가 구속된 것은...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벧전 1:19))
 * 세례 요한: 예수님=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 사도 요한: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

  유월절 어린양은 한 가족만을 구원할 수 있었지만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온 인류를 구원하셨다. 유월절 어린양은 매년 희생을 당해야 하지만 그리스도는 단번에 모든 인류의 구속을 이루셨다.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마음에 바르자. 그러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 유월절이 되고, 사단과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되는 영적 출애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4-7. 초태생 규례(13:1-16)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새로운 규례를 주셨다. 이스라엘은 짐승이나 사람이 첫 번째 나은 것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려야 했다. 그들은 이미 애굽에서 죽었어야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짐승이나 사람이 낳은 초태생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 전체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바로에게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귀가 첫 번째 수컷을 낳으면 어린 양으로 대신해서 드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모두 다 그 목을 꺾어야 했으며, 사람이 낳은 장자는 속전으로 대속했다(13:13). 그리고 이 규례는 유월절과 함께 그 자손들에게도 대대로 교육해야만 하는 규례였다(13:14-16). 그러나 후에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 지파의 장자 대신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개정되었다.

레위 지파가 아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장자를 드리는 대신 레위인들이 회막에서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속전과 십일조를 드려 생활을 감당함으로 그 의무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규례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된 우리들이 주님의 것이라는 진리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우리에게 멍에를 벗기고 자유를 주셨다. 그 자유는 우리가 더 이상 죄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성령 안에서 자원하여 사랑의 법을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성도들은 자기 대신 드려져서 성전의 일을 감당하는 사역자들을 이해하고 일을 잘 감당할수록 도와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일이 사실은 우리 가족의 장자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