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책욕심’ 버리다
내 보물 1호는 지난 6년 간 해외 조사를 하며 축적한 자료들. 그런데 이 보물들 덕(?)에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일본 유학시절, 넘쳐나는 책과 자료들 때문에 조그마한 하숙방으로는 감당이 안됐다. 큰 맘 먹고 좀 더 큰 집으로 이사 준비를 했다. 이사 당일 책 꾸러미들을 옮기기 시작하는데, 집주인 할아버지가 기절할 듯 뛰어나와 돌연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것이다.
전체 책 중 30박스밖에는 안 옮긴 시점이었는데, 이렇게 책이 많은 줄 몰랐다며 집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진도 있고 또 습한 기후 탓에 주거 건물을 최대한 가벼운 소재로 짓는다. 급기야 나는 바리바리 책 보따리와 같이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었다. 책 박스 위에 걸터앉아 하릴없이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다가, 거의 편집증처럼 자료수집에 열을 올렸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되돌아보게 됐다.
사실 학문이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지혜의 축적, 즉 데이터(Data)의 축적이 아니라 경험적 진리(Knowledge)의 축적이 아닌가. 자료를 잔뜩 수집하고, 겨울잠에 들기 전에 한껏 포식을 한 동물처럼 포만감을 느낀 적도 있다.
노자는 이미 학문 자체를 자연스런 도(道)를 거스르는 ‘작위적인 이성(理性)’으로 간주하여 절학무우(絶學無憂, 학문과 단절하면 우환이 없다)라고 그 폐단을 경계한 바 있다.
사실 책이란 것도, 내가 그 책을 만날 만한 수준이 되면 자연스레 인연이 닿게 된다. 이제는 내 경험적 성숙과 그에 따른 관심이 저절로 나를 인도할 때까지 열심히 기다린다.
(강소연 미술사학자·홍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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