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만물상]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

好學 2010. 9. 25. 22:27

 

[만물상]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에게 물었다. “훌륭한 정부는 충분한 식량과 무기를 갖춰야 하며 백성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제자가 또 물었다. “부득이하게 하나를 뺀다면 무엇부터 빼야 합니까.” “무기를 빼라.” 고집 센 제자는 다시 물었다. “나머지 둘 중 하나를 또 빼야 한다면?” “식량을 빼라. 백성이 믿지 않는 정부는 버티지 못한다.” 중국사학자인 H G 크릴 시카고대 교수는 신뢰를 정치의 우선 요건으로 꼽은 공자를 ‘민주주의의 길을 준비한 광야의 외침’이라고 평가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 전 주재한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을 지낸 조지프 S 나이가 쓴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를 토론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은 대통령 제의에 따라 조기숙 홍보수석이 발제하고 보좌관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나눴다는 것이다.

▶조지프 나이가 이 도발적 제목의 책을 쓴 것은 1995년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빌딩 폭파사건이 계기가 됐다. 169명이 죽은 차량폭탄 테러의 충격으로 연방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이 교수는 1964년만 해도 미국민의 70% 이상이 연방정부가 대체로 옳다고 믿었으나 1995년엔 15%만 그런 믿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신뢰가 추락한 이유로는 경제정책 실패와 현대사회의 불신 풍조, 정치적 입장 차이와 권력자 부패, 선정적 언론을 꼽았다.

▶청와대도 지지 기반을 확대하기는커녕 국민 불신이 거세지는 현실을 답답하게 여겼던 것 같다. 증세론(增稅論)이나 부동산대책까지 내놓는 정책마다 논란만 부추기는 형편이니 그럴 만도 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의 신뢰 추락이 한두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이고 장기적 추세로 진행된 보편적 현상으로 진단한다”고 했다. 정부 불신을 나이의 책을 빌려 합리화하는 것처럼 들린다.

▶노나라 애공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복종하겠습니까.” 공자는 답했다. “올바른 사람을 부정직한 사람 위에 기용하면 백성들이 복종하지만 부정직한 사람을 정직한 사람 위에 쓰면 복종하지 않는다.” 흠결이 드러난 장관 후보들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간 대통령이 새겨 들어야 하지 않을까. “군자는 먼저 하려는 일을 한 후에 말을 한다.” 역시 공자 말씀이다. 말만 요란하게 앞세우는 것도 미덥지 못한 정부를 자초한다. 청와대가 나이 교수에게서 정부 불신의 원인을 찾고 위안받으려 한다면, 길을 잘못 찾은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