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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왕의 남자' 1000만 돌파

好學 2010. 9. 25. 22:26

 

[만물상] '왕의 남자' 1000만 돌파

 

 

 

국내 팬들에게도 진한 잔상을 남긴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반기(反旗)를 든 저예산 영화다.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제작자를 구하지 못해 2년여를 끌다 다큐멘터리용 수퍼 16㎜ 필름으로 단 28일 만에 이 영화를 찍었다. 순 제작비 350만달러(약 35억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니컬러스 케이지)을 거머쥔 이 영화의 흥행 수익은 5000만달러(약 500억원)에 달했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97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으나 그해 국내 수입이 보류됐다. 공연윤리위원회가 동성 간의 사랑을 그렸다는 이유로 추천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륜이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로 개편된 후 ‘동성애를 다룬 영화’라는 규정을 ‘동성 간의 성희(性?)를 지나치게 묘사한 영화’로 완화하면서 도입부를 삭제해 98년 ‘해피투게더’라는 제명으로 상영할 수 있었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가 이번 주말 1000만 관객 고지를 돌파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에 이은 세 번째로, 최다관객 기록도 넘볼 만하다. ‘왕의 남자’ 1000만은 앞의 두 대작과 달리 제작비 41억원을 들인 ‘저예산’ 영화인 데다 내로라하는 스타를 쓰지 않았고 쏠림 현상도 적었다는 점에서 대박의 의미가 남다르다. 창덕궁 촬영을 신청했지만 천민 광대가 궁궐에서 연희(演?)한 역사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퇴짜당했다. 주연배우가 갑작스레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7개월을 허비해야 했다.

▶그런데 충무로 시스템에 반기를 든 전략이 오히려 주효했다. 제작비 백수십억원에 스타마케팅, 막강한 배급력으로 승부를 건 블록버스터를 누르고 알짜배기 흥행을 한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심의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소재를 잡아내 흥미롭게 영상으로 풀어낸 제작진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왕의 남자’ 흥행을 동성애 코드로만 푸는 것은 곤란하다. 배우 이준기가 여성처럼 예쁘게 배역을 잘 살린 공이 크지만 그 여파가 성형 신드롬에 성(性) 정체성마저 흔드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 영화의 힘은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이야기의 재미에 있다. 특히 요즘 같은 답답한 세태에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풍자가 일품이다. ‘징한’ 세상 한판 놀아보자는 메시지가 중장년층에도 먹힌 것이다. 인구 5000만도 안 되는 나라에 1000만 관객, 그런 저력만 있으면 뭐가 그리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