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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 [11] '호질(虎叱)'의 행간

好學 2010. 6. 29. 20:36

 

[세설신어] [11] '호질(虎叱)'의 행간

 

 

 

'호질'은 '열하일기'에 실려 있다.

북경으로 향하는 길목인 옥전현(玉田縣)을 지날 때, 심유붕(沈有朋)이란 이의 점포 벽에 걸려 있던 것을 베꼈다는 글이다.

작품 서두에서 범은 영특하고 거룩하고 문무를 갖추었으며, 자애와 효성, 지혜와 어짊을 지닌 용맹하고 웅장한 천하무적의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바로 뒤이어 그 범조차 꼼짝 못하고 쩔쩔매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비위와 죽우(竹牛), 자백(玆白)과 맹용 같은 짐승들이 그것이다. 범이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 넋이 창귀가 되어 범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 그들의 이름은 굴각(屈閣), 이올(彛兀), 육혼 등이다. 무슨 말인가?

범의 앞에 붙은 수식어는 청나라 황제의 존호(尊號) 앞에 붙는 표현을 조금 바꿔 조합했다. 범은 청나라 황제의 은유다. 그 대단한 범조차 두려워 떨게 만드는 비위와 죽우, 맹용 같은 짐승들은 티베트, 몽골, 신장 등의 북방 이민족이다. 범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창귀는 한족(漢族)의 지식인들이다. 작품은 범이 밤중에 사람 고기를 먹으러 산을 내려왔다가 위선적 지식인인 북곽선생을 만나 그 가증스러운 요설에 일장 훈계로 일갈하고, 더럽다며 먹지도 않고 떠나버린다는 내용이다. 연암은 작품 뒤에 따로 한편의 글을 더 남겨, 당시 청나라의 고민을 겹쳐 읽었다.

'열하일기' '반선시말(班禪始末)'에서는 티베트 불교 지도자인 판첸(班禪) 라마에게 몸을 낮춰 경배하는 청 황제의 속내를 꿰뚫어 보았다. 황제가 열하까지 온 것은 "뇌를 누르고 앉아 몽고의 멱통을 틀어쥐려는 것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또 "티베트(西番)는 특히나 사납고 추악해서 괴수처럼 기괴하니 두렵다. 회자(回子)는 옛날의 위구르인데 더더욱 사납다"고도 했다. 당시 청나라가 이들 북방 민족을 자신들의 통제력 안에 두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있었는지 연암은 '열하일기' 곳곳에서 명쾌하게 풀어 보였다.

당시 청나라의 이러한 고민은 지난 올림픽 때 티베트 사태나,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에서 최근 발생한 유혈사태에서 보듯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몽골, 티베트, 신장은 여전히 중국의 화약고다. 단 한 번의 여행으로 당시 국제정세의 행간을 탁월하게 읽어낸 연암의 혜안이 새삼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