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책여행]살아가는 방법들

[결혼에 관하여 20선]<20>결혼을 향하여

好學 2010. 6. 12. 18:03

 

[결혼에 관하여 20선]<20>결혼을 향하여

 

 

 




《“지노가 내게 거북 모양의 장식이 붙은 금빛 반지를 하나 주었다. 나는 날마다 그걸 어떻게 낄 것인지 고민한다. 거북 머리를 내 쪽으로 오게 끼면 거북은 바다를 헤엄쳐 내게로 온다. 반대로 끼면 거북은 세상을 만나러 바다를 헤엄쳐 건넌다. 소재는 금보다 가볍고, 금처럼 노랗다기보다는 흰빛이 많이 돈다. 지노 말로는 아프리카에서 만든 것이란다. 파르마에서 샀다는 것이다. 오늘은 거북과 함께 세상을 만나러 헤엄쳐 나갈 거나.”》

에이즈 걸린 신부… “그래도 당신뿐”

 


프랑스 시골마을의 장날, 타마타(부적)를 파는 장님 사내에게 중년 남자가 다가온다. 딸에게 줄 타마타를 골라 달라는 그. “어디가 안 좋은데요?”라는 장님의 질문에 “성한 데가 없어요”라고 답한다. ‘성한 데가 없는’ 딸 니농도 아버지를 따라 나왔다. 새 샌들을 고른 그녀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몇 년 동안 신어온 것 같아요. 저, 결혼식 때 신으려고 한 건지도 몰라요. 오지 않을 결혼식날.”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결혼을 향하는’ 니농과 지노라는 두 남녀의 이야기이자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떠난 니농의 부모 장과 제나의 이야기다. 소설은 장님 사내의 시점에서 네 사람의 각각 다른 이야기를 끌어간다.

동유럽 출신인 장과 제나는 결혼하지 못했다. 파리의 망명자 모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10여 년 전 생이별했다. 고국 체코로 잠시 돌아갔던 제나가 정치적 상황 때문에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10여 년이 지나고 제나와 장은 딸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식을 가슴에 품은 채 체코와 프랑스에서 각각 길을 떠나 니농의 결혼식이 열리는 이탈리아로 향한다.

결혼을 향해 나아가는 니농과 지노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다. 이탈리아 베로나의 한 전시회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니농은 지노를 만나기 전 보냈던 낯선 남자와의 하룻밤 때문에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새로운 사랑과 삶의 희망에 아름답게 빛나던 니농은 절망에 빠진다. 니농은 지노와 이별을 결심하고 지노에게 받은 거북 반지를 돌려준다.

지노는 니농을 강가로 데려가 배에 태우고 노를 저어 강 중간의 섬으로 간다. 무조건 앞으로 나아간다고 해서 섬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후퇴하면서, 또 뱃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하면서 천천히 돌아가야 비로소 섬에 도착할 수 있다. 불안해하는 니농을 달래 마침내 섬에 도착한 지노는 왜 굳이 섬에 가야 했냐고 묻는 니농에게 “당신에게 우리가, 당신과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라고 답한다.

두 남녀는 결혼이라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향해 나아간다. 사랑하면서 살고자 하는 둘의 의지는 아무도 꺾지 못한다. 니농이 ‘뿌따나’(논다니, 몸 파는 여자)가 아니냐고 수군대는 세상의 편견도, 결혼한다면 아들을 먼저 죽이겠다고 말할 정도였던 지노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도 이들을 막을 수 없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결혼식날, 해변가에서 열린 떠들썩한 결혼식에는 술과 음식, 음악과 춤이 있다. 마을사람들과 친척들이 모여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한다. 두 남녀는 언젠가는 니농이 지치고 병들어 세상을 떠날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지노와 함께 열정적으로 춤추고 떠들던 니농은 딸의 건강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말한다. “니농은 살아 있어요. 보세요, 이렇게요. 오늘 오전에 니농은 결혼했어요. 보세요, 이렇게요. 니농에게 피로하다느니 지친다느니 그딴 말씀은 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