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世界史/(지구촌)아프리카

Republic of South Africa.(남아프리카 공화국)

好學 2009. 3. 16. 01:58

 

 

남아프리카 공화국(南-共和國, 영어: Republic of South Africa, RSA)은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남쪽에 자리한 공화국이다.

북쪽은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와 북동쪽은 모잠비크, 스와질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1966년에 독립한 레소토가 이 나라 영토 안에 있으며, 행정 수도프리토리아이다.

 

아프리카 대륙 남단부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인의 이주 이후 백인이 유입되며 1815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 정책을 비판하는 영국 정부로부터 독립해 1961년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선언했다.
위치 아프리카 대륙 남단
경위도 동경 24° 00", 남위 29° 00"
면적(㎢) 1219912
해안선(㎞) 2798
시간대 UTC+2
수도 행정수도:프리토리아, 입법수도:케이프타운, 사법수도: 블룸폰테인
종족구성 아프리카 흑인 (79%), 백인 (9.6%), 유색인 (8.9%), 인도인/아시아인 (2.5%)
공용어 영어 및 아프리칸스어
종교 시온 기독교(11.1%), 오순절 및 은사주의(8.2%), 가톨릭교(7.1%), 감리교 (6.8%), 네덜란드 개혁교회 (6.7%), 성공회 (3.8%), 그외 그리스도교 (36%)
독립일 1910년 5월 31일
국가원수 음베키(Thabo Mbeki)대통령(99.6 취임, 04.6 재선, 임기 5년)
국제전화 +27
정체 공화제
통화 랜드(Rand)
인터넷도메인 .za
홈페이지 http://www.gov.za/
인구(명) 43,786,115 (2008)
평균수명(세) 42.37 (2008)
출산률(명) 2.11 (2008)
1인당 GDP($) 9,800 (2007)
실업률(%) 24.3 (2007)
수출 규모(억$) 762.7 (2007)
수입 규모(억$) 821.2 (2007)
인구밀도(명/㎢) 36 (2008)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기 / 아프리카 대륙 남단부를 차지하는 공화국.

 

이 부분의 본문은 남아프리카의 역사입니다.

백인들의 남아프리카 이주

현재 남아프리카 백인들은 보어인들의 후손이다. 보어인이란 네덜란드에서 이주한 이민들로써,이들은 흑인들을 착취하여 다이아몬드를 채굴했다. 물론 채굴활동을 통한 이익은 백인들만 가졌을 뿐, 흑인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았으며, 오히려 같은 일을 하고도 백인에 비해 4-10배나 차이나는 낮은 임금을 받았다.심지어는 전기, 수도, 교통, 공공의료등의 공공혜택도 흑인들은 받지 못했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도 흑인들의 50%가 수돗물, 전기, 공공의료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백인들은 교육을 악용한다. 우선 학교에서는 흑인들에게 백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노예노동만 가르칠 뿐, 학문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흑인들은 읽고 쓰는 법조차도 모르는 무식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백인교사들은 흑인의 종교와 문화는 미신이고, 야만적이라고 가르쳐서, 흑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와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자존감을 갖지 못하도록 했다. 지금도 일부 흑인들은 문맹이라는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이러한 인종차별은 아시아계에도 적용되어 인디아의 민족지도자 간디선생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변호사로 일할때 인디아 노동자들을 위한 인권운동을 실천한 바 있다. 당시 남아공의 인도사람들은 직업선택, 교통기관이용에서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의 고착화와 인종차별저항운동

1945년이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분리정책)라고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은 종교적 그리고 법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우선 백인 신도들이 대부분인 네덜란드개혁교회(DRC,Dutch Reformed Church)에서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어파트헤이트를 통한 인종차별을 정당화했는데, 이를테면 바벨탑 사건을 해석할때 바벨탑을 쌓은 인간들이 야훼의 징벌로 흩어졌으니, 인종분리정책으로 흑인, 아시아계등의 유색인종들을 차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게 했던 사례가 있다. 교회안에서도 정의(Justice)와 평등의 실천은 '민감한','미묘한'등의 단어들을 통해 회피할 정도로 백인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인종차별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제도적으로도 1961년 헌법개정, 20여개에 달하는 인종차별법안제정과 개정이 행해졌는데, 하나같이 흑인들을 열등한 인종으로 간주하여 차별을 정당화하는 악법들이었다. 이에 대해 흑인들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폭력항쟁으로 백인들의 부당한 지배와 차별에 저항했는데, 1961년 샤프빌 항쟁, 1976년 소웨토 항쟁, 1986년 인민항쟁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백인들은 흑인항쟁의 배후에 공산주의가 있다는 공산주의자 딱지 씌우기, 경찰과 정보기관의 탄압과 종족간 분쟁유도로 흑인들의 항쟁을 잔악하고 교활하게 탄압했다.

남아공 기독교계에서도 백인들의 흑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에 저항했다.1949년 백인 성직자들이 주도한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SACC,South Africa Council of Churches)회의에서는 '다인종사회에서의 그리스도인(기독교인)'이라는 주제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교육, 직업, 선거의 기회와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남아공 교회의 인종차별저항은 1980년대 가장 활발해졌는데, 흑인성직자인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남아공 성공회 케이프타운 전 교구장), 베이어 나우데,신학자 프랭크 치카네(현재 음베키 대통령의 비서실장)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카이로스문서》(Kairos Document)[1] , 《다마스커스 가는 길》(Road to Damascus)[2]라는 신앙고백으로 인종차별저항조직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정계나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기독교인들도 인종차별반대투쟁에 참여했으며, 진보신학자들은 대한민국민중신학처럼 민중역사의 주체로 해석한 남아프리카 흑인신학을 통해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식을 보였다.

인종차별 폐지와 과거사의 청산

흑인들과 교회의 저항을 받은 백인지배자들은 1990년 인종차별 정책을 폐지하고,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흑인지도자들을 석방해야 했는데, 이는 아파라트헤이트를 통한 인종차별정책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흑인들과의 협상을 통해 경제적 기득권도 계속 유지하고, 백인들의 차별과 폭력에 대한 흑인들의 보복을 피하려는 계산에 의한 것이다.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사 최초로 흑백연합정부(흑인들의 아프리카민족회의와 백인들의 국민당 연합)가 수립되었으며, ANC(Africa National Congress,아프리카 민족회의)가 독자적으로 세운 귀국망명자위원회와 'ANC회원들이 자행한 ANC죄수 및 구금자에 대한 만행 및 인권침해조사위원회'에서 영향을 받은 진실과 화해위원회(TRC)설립이 있었다.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문제점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백인들이 농지의 87%를 가질정도로 심각한 빈부의 격차, 아파라트헤이트로 인해 사회의 윤리적 가치관이 손상됨에 따른 낮은 도덕성[3]등의 문제들을 갖고 있다.

또한 과거 인종차별시대의 악습이 남아 있어서 포도주 농장주들이 흑인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고,포도주를 대신 주는 바람에 노동자들이 알코올중독자가 되거나, 산모들의 미숙아 출산등의 문제점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상황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음베키 대통령이 사임한 이후, 새로운 대통령으로 모틀란테가 임명되었다. [4]

지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 대양(대서양과 인도양)에 걸친 2500km가 넘는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기후대는 전체적으로 반건조 기후이지만, 지역별로 변화가 커서, 나미비아 부근의 칼라하리 사막으로부터 모잠비크와의 국경 부근의 아열대 기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오렌지 자유주와 나탈 경계에는 드란켄즈버그 산맥(최고봉 타바나 은틀레니아는 표고 3,482m)이 있다. 케이프주의 내륙 대지의 남쪽은 해안선과 병행해서 달리는 표고 2,000∼2,700m의 산맥이 있다. 해안지방과 하천유역은 농업에 적합하다. 남아프리카 최대의 오렌지강이 국토의 중앙을 횡단하여 대서양으로 흘러들고 있으며 그밖에 림포포강, 발강 등이 있다.

기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어 4계절이 한국과 반대이며, 습한 지역보다는 건조한 지역이 많다. 과도한 목장으로 인한 사막화가 진행중이다. 남서부는 겨울에 비가 많은 지중해성 기후, 북동부는 아열대성 기후이다. 트란스발의 고저에는 겨울에 서리가 내리며 여름에는 적당한 양의 비가 내린다. 강우량은 서에서 동으로 갈수록 많아지며 여름 6개월 동안에 집중된다.

주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4천 480만 주민은 다양한 배경, 문화, 언어, 신앙을 가지고 있다. 2001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통계청(Statistics South Africa)의 인구 조사에서는 다섯 가지 인종 구분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게 하였는데, 마지막 구분인 ‘특기하지 않음 또는 기타’는 답한 수가 무시할 만큼 적어 생략되고 나머지 구분에 대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아프리카인 (Black African) 79.0%
  • 백인 (White) 9.6%
  • 유색인 (Coloured) 8.9%
  • 인도인 또는 아시아인 (Indian or Asian) 2.5%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구 대부분이 자신이 아프리카 흑인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문화상으로나 언어상으로나 균일한 집단이 아니다. 주요 민족은 줄루족, 코사족, 바소토족(남 소토), 바페디족(북 소토), 벤다족, 츠와나족, 총가족, 스와지족, 은데벨레족 등이다. 줄루족, 코사족, 바페디족, 벤다족 등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만 있다.

다른 집단들은 거주지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이웃에 걸쳐 있다. 바소토족은 레소토의 주요 민족이다. 츠와나족은 보츠와나의 다수 민족, 스와지족은 스와질란드의 다수 민족이다. 은데벨레족은 짐바브웨마테벨렐랜드에도 거주하는데, 거기서의 민족 명칭은 ‘마테벨레’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샤카의 탄압을 피해 그곳에 정착한 줄루족의 후예로 줄루어를 사용한다. 총가족은 모잠비크 남부에도 거주하는데, 거기서는 샹간족으로 알려져 있다.

백인은 대부분 네덜란드인, 독일인, 프랑스위그노, 영국인 등 식민 이주자들의 후손이다. 언어상으로는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집단과 영어를 사용하는 집단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민해 온 소수 집단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백인 인구는 낮은 출산율과 국외 이민으로 줄어들고 있다.

유색인(Coloured)이란 명칭은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노예, 당시 희망봉 주변에 살던 원주민인 코이산족, 원주민인 아프리카 흑인, 네덜란드인/아프리카너인영국인을 비롯한 백인, 자바인, 말레이인, 인도인, 마다가스카르인, 그 외 포르투갈인버마인을 비롯한 여러 유럽·아시아인 등 다양한 집단이 혼혈된 후손을 이르는데,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 아프리칸스어를 쓴다. 코이산족이라 불리는 이들은 피부색이 옅고 키가 작다는 데서 함께 취급된 두 가지 집단을 이른다. 이들은 유럽인들이 ‘호텐토트’라 부른 농경인 코이코이족과 수렵 채집인 부시먼이다. 또 더 최근에 들어온 유색인 집단도 있는데, 옛 로디지아(현 짐바브웨)와 나미비아에서 들어온 유색인과 인도버마에서 인도와 버마의 독립 이후 희망봉을 찾아온 영국인-인도인, 영국인-버마인 혼혈인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시아인은 대부분 인도계이다. 많은 수가 19세기에 당시 나탈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던 동부 해안의 사탕수수 농장에 일하러 온 계약 노동자이다. 약 10만 명이 되는 화교도 존재한다.

언어

영어를 비롯하여 아프리칸스어, 나머지 9개의 토착어 등 총 11개 공식어가 있다. 그러나 정부의 발행 문서나 인터넷의 문서엔 대부분 영어가 독점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법적으로 11개를 공식어로 지정했다는 것은 영어에 대해 독립권을 부여한 것이다. 넬슨 만델라에 의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용어가 현재와 같이 된 것이다. 그의 소원은 1961년에 탈퇴한 영국 연방에 다시 가입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칸스라고 불리는 백인은 다양한 국적의 백인인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사용자의 후손으로 비록 그 중 다수가 인종 차별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동의했다고 할지라도,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보다는 훨씬 본국과의 유대도 없을 뿐더러, 4백 년가량이나 아프리카에서 살아 왔기에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보다는 아프리카적인 요소가 있다.

또한 아파르트헤이트(분리, apartheid, 어미 허이트-heid는, 독일어 어미 하이트-heit, 불어의 망-ment에 해당하는 명사형 접미사다.)라는 것도 영국인이 만든 법을 행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지해서도 안될 것이다. 현재 국법에 따르면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지하는 자는 사형 처리된다.

종교

전 국민의 8할 가량이 장로교 등의 개신교 신자로, 이는 네덜란드에서 로마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이민온 보어인이 장로교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보어인은 자신들의 신앙을 아파라트헤이트에 이용하여, 백인은 구원받을 사람으로 선택받았으나, 흑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남아프리카의 종교를 생각하면서, 이 시대의 아프리카성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식민주의자들이 선교사를 앞세워서 침략의 도구로 퍼뜨린 종교가 자신의 구원의 형상이 되었다. 마치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태어난 흑인들이 네그리뛰드를 주창했을 때, 불어는 그들에게 무엇인지 고민했을 때와 같은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외 1890년성공회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형성된 남아프리카 성공회는 아파라트헤이트시절 인종차별에 맞서 사회운동을 하였다. 그 실례로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성공회대주교이다.

 

이 부분의 본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행정 구역입니다.

입법 수도는 케이프타운, 사법 수도는 블룸폰테인, 행정 수도가 프리토리아이다.

대한 관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한국 전쟁 때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대한민국(남한)을 지원하였으며, 이후에도 친서방과 반공을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았으므로, 대한민국(남한)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였다. 그러나 이 나라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따른 국제적 여론으로 정식 외교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인종차별정책이 폐지된 후 1992년 12월 1일 뒤늦게 수교하게 되었다. 수교 후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어,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1995년 방한하여 큰 환영을 받았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나라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북한과는 1998년 수교하였다.

주석

  1. 카이로스는 하느님의 구원사적인 시간을 일컫는 헬라어 신학용어이다. 신학적으로 야훼께서 모세를 통해 출애굽 역사를 이루신 시간이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 시간, 앞으로 하느님 나라 도래를 통해 종말론적인 구원을 이루실 시간이 카이로스이다. 그외 헬라어로 시간을 일컫는 용어로 크로노스가 있는데, 이는 달력으로 알 수 있는 시간을 일컫는다.
  2. 신학적으로 다마스커스바울로(사울)가 예수를 만나, 그리스도 교인이 된 장소를 일컫는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시리아의 지명이 아닌, 삶의 방향을 그리스도께 맞추는 회심을 일컫는다.
  3. 2000년대 흑백장로교회가 통합된 남아공 연합장로교회 총회장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낮은 도덕성 문제에 대해 2시간 30분이나 설교한 적도 있다.
  4. "남아공 새 대통령에 모틀란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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