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사지마비 이기고 존스홉킨스大 수석전문의 된 이승복 씨
사지마비를 극복한 재미교포 의사 이승복 씨. 인간 승리의 감동을 담고 있는 그의 인생 스토리는 좌절한 사람들에게 재기의 용기를 주기에 충분하다. 신원건 기자 |
《사지마비 장애를 딛고 미국 명문의대병원 수석전문의가 된 자랑스러운 한국인, 자전적 수필집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와 함께 한국을 찾은 슈퍼맨…. 미국 존스홉킨스대 병원 재활의학과 의사 이승복(40) 씨는 말을 꺼낼 때마다 ‘꿈’을 얘기했다. “제 꿈은…, 앞으로의 꿈은….”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끊임없이 꿈꿀 수 있나.’ “저는 제 또래 친구가 별로 없어요.”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그가 말을 이었다. “어린 동생들과 주로 어울립니다. 한결 밝고 꿈이 많거든요. 제가 배우고 흡수할 수 있는 게 많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죠.”(웃음)》
지금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고국인 한국에 정착해 ‘조국에서 쓰이는’ 꿈이다. 여덟 살 때 가족을 따라 이민 갔던 그가 한국어를 잊지 않으려 악착같이 공부했던 이유이며, 미국시민권을 끝내 따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꿈은 빨리 이뤄질지 모른다. 내년 3월 그는 다시 한국을 찾을 생각이다.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의 새 연구실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이를 수락했기 때문.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에서 이 씨의 은사이자 황 교수와 함께 연구한 인연이 있는 잭 맥도널드 교수가 다리 역할을 한 셈이 됐다.
“맥도널드 교수님이 한국에 가면 황 교수님에게 꼭 안부 인사를 대신 드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렇게 만난 황 교수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분이 저를 보고 ‘닥터 리는 휴먼 닥터(의사)고 나는 애니멀 닥터(수의사)니까 함께 잘해 보자’며 껄껄 웃으시더군요. 참 매력적이고 대단하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한 그는 윤리적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황 박사의 연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환자들과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실보다는 득이 큰 연구입니다. 부작용에 대한 염려는 비전문가적인 시각이며 부풀려진 측면이 많아요….”
고등학교 때 사고는 한순간이었다. 여덟 살 때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간 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기계체조에 전념하던 1983년 7월. 전미 올림픽상비군에 포함될 정도로 올림픽 체조 유망주로 주목받던 이 씨는 공중회전을 하다 턱을 땅에 박고 추락했다. 이때 입은 척추 손상으로 그는 사지마비 선고를 받았다. 이 씨에게 당시 기억은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다. 하지만 그는 침잠(沈潛) 대신 비상(飛上)을 선택했다.
“병실로 회진을 온 의사들은 제 몸 이곳저곳을 쿡쿡 찔러보고 ‘이 사람은 다시 걸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 앞에서 하곤 했죠.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로 자기네들끼리 의견 교환을 하는 거예요. 마치 내가 실험실의 동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그들과는 다른 의사가 꼭 되겠다고….”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컬럼비아대 의대와 다트머스대 의대, 하버드대 의대를 거쳐 최고 병원으로 꼽히는 존스홉킨스대 병원의 재활의학 수석전문의가 됐다. 긴 터널만 같았던 치열한 의대 공부와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마침내 꿈을 이룬 것. ‘그들과는 다른 의사가 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의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길을 가다 우연히 맞은 총알로 사지마비 장애로 갖게 된 젊은 흑인 남자 환자였는데 재활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죠. ‘죽여 달라’는 말만 되풀이하던 그 친구가 저와의 세 번째 만남에서 ‘저도 재활 훈련하면 닥터 리처럼 빠르게 휠체어를 운전할 수 있느냐’고 눈물을 글썽이며 묻더군요. ‘이제는 이 사람이 살겠구나’ 싶었습니다.”
학교 친구들이 ‘승복’ 발음을 하기 힘들다며 ‘SB’로 불러 슈퍼보이(SB)로 통했던 그가 장애로 좌절하는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는 ‘슈퍼맨’으로 성장한 것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드리는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성경(로마서) 구절을 간접 인용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통은 삶의 한 부분이며 누구에게나 고통은 찾아온다는 것,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인내심이 길러지고 인내심이 길러지면 인성이 갖춰집니다. 그리고 믿음이죠. 지금의 고통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이승복 씨는▼
△1965년 출생
△1973년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
△1983년 체조 연습 중 사고로 척추 손상
△1984∼1988년 뉴욕대 로맨스 언어 전공
△1988∼1990년 컬럼비아대 공공보건학 석사
△1993∼2001년 다트머스대 의대 최우수 졸업
△2002∼2005년 하버드대 병원 최우수 인턴 선정, 현 존스홉킨스대 병원 재활의학 전문의
'好學의 人生 > (사람)인생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대석]팔순 맞은 작가 박경리 씨가 말하는 ‘희망’ (0) | 2010.05.30 |
---|---|
[초대석]국립중앙박물관 용산시대 연 이건무 관장 (0) | 2010.05.30 |
[초대석]‘수영 말아톤’ 김진호군 어머니 유현경 씨 (0) | 2010.05.30 |
[초대석]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 (0) | 2010.05.29 |
[초대석]‘산악 그랜드슬램’도전 북극점 가는 박영석씨 (0) | 2010.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