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사람)인생 이야기

[초대석]‘수영 말아톤’ 김진호군 어머니 유현경 씨

好學 2010. 5. 30. 21:51

 

[초대석]‘수영 말아톤’ 김진호군 어머니 유현경 씨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받은 메달 앞에 선 김진호 군 모자. 어머니 유현경 씨는 “진호가 혼자서 버스도 타고 방 청소도 하는 것이 금메달을 딴 것보다 더 기쁘다”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부산〓최재호 기자

《“금메달은 끝이 아니라 진호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연습의 시작일 뿐이에요.” 체코의 리베레츠에서 열린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 은 동메달을 동시에 따낸 김진호(金珍鎬·19·부산체고 2년) 군의 어머니 유현경(柳賢璟·45) 씨는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아 있는 여행자 같았다. 아들의 메달 획득이 자랑스럽고 흥분될 만도 한데 그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한 표정이었다. “진호보다 하루만 더 살 수 있다면 이렇게 악착같이 진호에게 매달리지 않을 거예요. 혼자서 살아가는 훈련을 시켜놓지 않고 어떻게 제가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 거기까지는 멀었거든요.”》

인터뷰 도중 진호가 “엄마, ‘겨울이야기’ MP3 다운로드 받아줘. 빨리빨리”라고 보챘다. 유 씨는 “지금 아저씨와 이야기하는데 너무 버릇없는 거 아니니. 그러면 엄마 혼자 나가 버린다”라며 호통을 쳤다.

진호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지만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그래도 빨리 해줘”라며 떼를 부렸다.

“메달 땄다고 조금 풀어줬더니 금세 버릇이 나빠졌어요. 이렇게 철이 없는데 제가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 있겠어요.”

그가 진호의 장애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세 살 때인 1989년 9월.

말이 유난히 늦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발달장애라는 판정이 나왔다.

“그땐 정말 죽으려고 했어요. 진호와 함께 죽으려고 아파트 베란다 앞에까지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낙천적인 성격의 남편 김기복(金基復·46·의사) 씨가 설득하고 위로해 그는 한 달 만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특수교육’이라는 희망에 매달려 진호가 8세가 되던 해까지 특수교육기관 2곳과 유치원 5곳을 옮겨 다녔다. 돈이나 거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의사여서 비교적 경제적 사정이 괜찮은데도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는 파산 직전 상태까지 갔다.

“열심히 특수교육을 시키니 좋아지겠거니 하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하지만 두 살이나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는데 42일 만에 학교에서 ‘도저히 못 가르치겠다’며 자퇴를 권유했을 때는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진호를 직접 교육시키기로 다짐하고 발달장애에 대한 책을 읽어 가며 강행군에 나섰다.

먼저 진호를 데리고 산과 들로 나갔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아프리카 주민에게는 발달장애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봤기 때문이었다.

“진호는 화가 나면 모래를 눈에 던져 넣기도 하고 놀이터 미끄럼틀 위에서 뛰어내리기도 했어요. 시한폭탄 같았죠. 정말 그때는 진호가 불의의 사고라도 당해 죽었으면 하는 모진 마음까지 들더군요.”

그는 진호가 학교에서 쫓겨난 뒤 7개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선생님의 입장에서 교육을 시켰다. 컵라면과 과자를 좋아하는 진호의 습관을 산에 올라가 사흘을 굶겨 가며 바꿨다.

진호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호전돼 그해 11월 경기 수원중앙기독초등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었다.

“진호가 세상과 접촉하는 수단을 찾던 중 어릴 때부터 유난히 물을 좋아했던 것에 착안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수영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때인 2003년 4월에는 동아일보 주최 동아수영대회에서 비장애인과 맞붙어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여기까지는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은메달 성적을 들고 수도권의 한 체육고에 진학시키려 했으나 “장애가 있다”며 입학을 거부해 김씨 부부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좌절했다.

슬픔에 빠져 있던 그는 다시 힘을 내 전국의 체육고를 직접 찾아다니며 설득을 한 끝에 부산체고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동아수영대회가 진호 인생의 전환점이 됐죠. 그때 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지금의 진호가 없었을 거예요. 이제 진호는 혼자서 버스도 타고 설거지와 방 청소도 해요. 엄마와 떨어져 2박 3일간 친구 집에서 지낸 적도 있어요. 금메달을 딴 것보다 그게 더 기뻐요.”

그의 꿈은 세상 어느 어머니보다 소박했다.

“내가 죽고 나면 누군가는 진호를 돌봐줘야 할 건데 최소한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도와주는 사람이 쉽게 지치고 포기하게 되겠죠. 도움을 주는 사람의 손길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제 목표예요.”

부산=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김진호군 수상경력

△2001년 장애인전국체전 자유형 50m와 100m 금메달

△2002년 아태장애인경기대회 자유형 50m와 100m 금메달

△2003년 4월 동아수영대회 남자 중등부 자유형 100m 은메달

△2003∼2005년 장애인전국체전 자유형 50m 100m 200m 금메달

△2005년 9월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 배영 200m 금메 달, 자유형 200m 은메달, 배영 100m 동메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