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관하여 20선]<16>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섹슈얼리티’는 오늘날 속속들이 밝혀지고 널리 개방되었으며,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연결될 수 있게 되었다. 섹슈얼리티는 더 이상 미리 정해진 자연적 조건으로 단지 수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혹은 계발해 나가는 것이 되었다. 섹슈얼리티는 신체와 자기정체성, 그리고 사회 규범이 일차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으로서, 자아의 성형가능한(malleable) 일면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결혼의 현대적 의미는 ‘합류적 사랑’
1989년 미국의 학자 릴리언 루빈은 18∼48세 수천 명의 성적 편력을 연구했다. 30여 년의 간격이 있을 뿐인데도 세대 간 경험에는 놀라운 차이가 있었다. 40대 여성은 대부분 결혼 전 순결을 지켜야 하며 성적 모험의 한계에 분명한 선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10대 중에는 결혼을 위해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소녀가 한 명도 없었다. 이처럼 섹슈얼리티(sexuality·성적인 혹은 성을 갖는 것의 성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도 큰 변화를 겪었다.
저자인 앤서니 기든스는 이런 현상을 ‘조형적 섹슈얼리티(plastic sexuality)’가 등장했다고 정리했다. 성이 더 이상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게 아니라 인간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문제로 변해가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이제 동성애와 이성애, 양성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첫 경험을 언제 하느냐 등의 문제는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개인적 선택의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근대과학의 발전으로 출산과 사랑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본격화했다. 피임 방법이나 시험관 아기의 성공 등은 ‘남녀의 사랑=출산’이라는 등식을 부정했다. 과거 결혼은 자녀를 낳아 가족의 경제적 생산을 증진하기 위해 이뤄졌지만 19세기 이후에는 남녀 간의 진정한 사랑이 더 중요한 조건이 됐다.
이제 결혼은 친족관계의 확장이나 자식을 낳기 위한 관계가 아니라 부부 둘 사이의 관계로 치환된다. 저자는 이처럼 사회적 관계가 그 자체를 목적으로, 다른 외부적 요소의 영향 없이 이뤄질 때 이를 ‘순수한 관계’라고 부른다. 순수한 관계는 개인 간의 친밀성이 존재할 때만 유지된다. 만약 어느 한쪽이라도 관계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이 관계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여기서부터 이 책의 원제인 ‘친밀함의 구조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제 사랑이나 결혼은 여성이 남성에게 순종하거나 남성이 여성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친밀함이 부부관계 유지의 필수 요소다. 이런 친밀함은 두 사람이 서로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성립한다. 저자는 이를 ‘합류적 사랑(confluent love)’이라고 정의한다.
합류적 사랑은 두 개의 지류가 합쳐져 하나의 강물이 되듯 두 사람의 정체성이 과거에는 각기 달랐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협상해 가는 사랑을 말한다. 낭만적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은 영원해야 한다는 신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여성에게 결혼을 유지할 의무를 덧씌운다. 합류적 사랑은 좀 더 평등하고 양성적이라는 점에서 낭만적 사랑과 다르다.
섹슈얼리티와 관계에 대한 인식 변화는 현대사회의 민주주의 확산과 관련돼 있다. 저자가 제시한 ‘순수한 관계’는 현대사회에서 이성애나 동성애 커플 사이에만 적용되지 않고 부모 자식 관계나 우정 등 인간관계 전반에 퍼져 있다. 이런 관계는 일면 깨지기 쉽고 혼란스러운 관계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를 존중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가능케 한다. 저자는 순수한 관계를 유지하고 파괴적이지 않은 감정을 키우는 윤리적 틀로 합류적 사랑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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