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회심 전과 후
☞1 1. 바울의 고향
행 21:39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바울이 3차 전도여행후 예루살렘에서 잡혔을 때 천부장에게 자신의 신분을 로마사람이라고 밝히기 전에 먼저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라고
말하였다. 다소는 그가 태어난 곳으로 상당히 자부심을 갖고 한 말인 듯하다. 다소성은 로마제국내의 길리기아 지역의 수도이며
희랍도시이며, 높은 수준의 교육과 문화의 도시였다. 당시 다소의 시민권을 획득하는데 최소한 500드라크마(성년노동자의 2년 수입상당)
이상의 돈이 필요했다1).
행 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바울은 예루살렘성에서 성장하였다. 아마도 청소년기부터일 가능성이 크다.
2. 로마시민권
행 22:27, 28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다 하니
3. 바울의 혈통
빌 3:5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부모가 유대교를 철저히 지켰다는 것과 바울 자신도 처음부터 율법에 흠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족속이란 아브라함의 아들 중에서도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고 이삭의 아들 중에서도 에서(에돔)와 야곱(이스라엘)의 아들이
있는데 야곱의 자손임을 말한다. 즉 그들이 존경하는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도 이스라엘의 자손임을 말한다.
베냐민의 지파는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이 나왔으며 다윗 왕가에서 유대지파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영향력 있는 지파임을 말한다.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 : 히브리라는 말은 '건너오다'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야에서 유브라데강을 건너 가나안에 왔다하여
그 자손을 히브리인이라 한다2).
창 37: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창 40: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두 말씀에서 보듯이 가나안땅을 요셉은 히브리 땅이라고 부르고 있다. 히브리인을 말할 때는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말할 뿐아니라
히브리인의 문화(언어, 전통)를 잃지 않은 순수한 유대인을 말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히브리어를
사용할 줄 아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말한다.
4. 바울이 사용한 언어
행 21:40-22:2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어라 하더라.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바울이 3차 전도여행 후 예루살렘에서 천부장에게 잡혀가면서 유대인에게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볼 수있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은 1 C 때의 팔레스타인 지방의 주 언어가 아람어,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중에서 무엇인지 확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이 예수님 당시의 서민들이 사용했던 주된 언어는 아람어였다라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하고 있어, 히브리방언이란
그 당시의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는 아람어라고 말한다3). 물론 바울은 유대인에게 말하기 바로 직전에 행 21:37절에서 천부장에게 헬라 말을
사용하였다.
행 21:37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또한 그가 바리새인으로 율법을 공부하였기에 히브리어에도 능통했을 것이다. 또한 히브리인중에서도 히브리인이라는 말 중에서도
그는 히브리어가 가능함을 짐작할 수있다. 그러므로 그는 아람어, 헬라어, 히브리어 3 가지 언어를 말할 수 있었음을 알 수있다.
5. 율법에 열심인 바울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그 당시의 종교적인 집단인 사두개파, 에센파, 바리새파중 바리새파는 유대민족을 지키려는 민족주의적인 성격이
강하여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대중으로부터 가장 지지도가 높았고 바리새인이 되는 것은 유대 민족 중에서
엘리트가 되는 것이었다.
행 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생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바리새파 랍비 가말리엘밑에서 율법을 공부했다는 뜻이다. 가말리엘은 위대한 스승 힐렐(Hillel)의
손자였다. 힐렐과 쌍벽을 이루었던 샴마이(Shammai)에 비해서 힐렐은 이방인들을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전도하였다4).
그예는 다음 말씀에서 알 수있다.
마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이것이 바울이 이방인들을 향해서 마음의 문을 여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한 여기서 구약을 철저히 배워서 신약을 적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으리라.
갈 1: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가말리엘 문하생가운데 동년배 중에서도 누구보다도 유대교에 앞선 진보를 보였다고 말하고 있다.
6. 교회를 핍박하는 바울
빌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행 26:10-12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그들을)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 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우리가 강제로 주님을 모독해야하는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갈릴레오 길릴레이처럼, 아니면 베드로처럼, 아니면 순교자처럼
해야하나? 순교자처럼 하는 것이 사실은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것일 것이다.
가편투표는 바울이 스데반을 죽일 때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죽일 때라고 복수형태로 말하고 있다.
죽이기 위한 투표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같다. 그래서 그는 산헤드린5)의 일원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사람도 있다.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이 외국(다메섹: 나바티안 왕국내의 독립도시)까지 미칠 수 있는 역사적인 배경은 외경 마카베오상 15 장의
내용에서 찾아볼 수있다.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시몬이 로마에 금방패를 보내어 우호동맹을 갱신한 후, 로마는 여러 나라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었다. 유대인들과 전쟁을 하지 말 것과 더불어 유대나라 안에서의 악질분자들이 당신들의 나라로 피신하거든 "대제사장
시몬에게 넘겨 그가 유대인의 법대로 그들을 벌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범인 인도조약의 상대자로 대제사장을
지명한 것이었다.
7. 바울의 회심
7.1. 다메섹 도상에서
▶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윌리암 람세이는 이때의 바울의 나이는 33세로 A. D.33 년으로 계산하고 있다6).
행 9:3-6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이외에도 행 22:6-16:예루살렘의 폭도 앞에서, 행 26:9-23: 헤롯 아그립바 2세
앞에서 간증하는 바울의 말에서도 참조 가능하다.)
▶ 그는 그 순간부터 맹인이 되어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 도시의 '직가'(그림1_1.JPG)라고 하는 곳에 머물면서 아나니아를 만나기
전까지 사흘동안 아무 것도 보지도 못하고 음식을 전폐하였다.
7.2. 아나니아를 만남.
행 9:17-19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새
7.3. 다메섹과 아라비아에서의 바울과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
행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바울은 즉시 다메섹의 유대인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한 것같다.
행 9:23-25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고후 11:32-33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 새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그림1_2.JPG)▶
위 행 9:23-25절의 말씀은 바울이 계속해서 다메섹에서 머물다가 예루살렘으로 간 것처럼 보이나 이것은 누가가 기록한 것이고 바울자신은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것을 첨부하고 있다.
갈 1:16-19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 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 때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그는 다메섹에 머물다가 아라비아로 갔고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다. 그후 3년만에(결국 회심후 3년만에) 예루살렘을 15일간 방문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이때 윌리암 람세이의 계산으로는 바울은 35살). 이것은 사도바울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다.
행 9:26-27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7.4. 다소에서의 바울
행 9:28-30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갈 1:21-24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행 11:19-22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그림1_3.JPG)
행 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다소에 가서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함께 와서 동역함) 바울은 그의 고향 다소에 근거를 두고 개인적으로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다. (윌리암 람세이의 계산으로는 8년간 다소에서 머물었으며 바나바가 찾은 때는 바울의 나이가 43살이었다.)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를 적은 때로 부터 14년을 빼보면 바울이 환상을 본 때는 그가 홀로 복음을 전하는 이때이거나 안디옥에서의 초기사역 때이다.
☞2 8. 바울의 동역자들
8.1 아나니아
행 9:10-13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바울의 입장에서는 아나니아가 어떻게 보였을까?
바울이 회심한 후 본 최초의 그리스도인.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보낸 그리스도인. 바울이 택함을 받은 이유를 전한 그리스도인. 바울의 눈을 뜨게 하였으며 세례를 주었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한 그리스도인.
이상의 입장으로도 아나니아는 바울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환상 중에서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자 그는 그 목소리가 그가 늘 섬기는 하나님의 목소리임을 쉽게 알고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 듯이) 그는 즉시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대답했다(하나님의 말씀이 희박하던 시절의 어린 사무엘은 몰랐지만). 그는 평상시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는 사람임을 짐작할 수있다.
일어나 : 환상을 볼 때 그는 앉아 있었음을 알 수있다. 아마 기도했으리라. 바울도 기도 중에 환상을 본 것처럼(11,12절). 그는 기도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는 바울에게 결박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울의 말에 의하면
행 22: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그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다메섹에 사는 모든 유대인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신앙 색깔이 아직 뚜렷하게 유대인들에게 나타나지 않은 때이지만 바울을 만나게 될 때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의 색깔은 더욱 분명해져서 다메섹의 모든 유대인으로 부터 오는 존경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순종하였다.
행 22: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러 다메섹에 왔던 바울을 "형제 사울아" 하고 담대히 불렀다. 바울이 그때를 회상하면서 '형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때 바울에게도 이 단어는 매우 인상깊었기 때문에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다메섹의 많은 그리스도인중에서 아나니아를 택하신 이유를 엿볼 수있다. 바울에게도 이런 그리스도인이 그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으리라.
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아나니아를 통해서 하셨을까?
만약 아나니아가 하나님께 들은 말씀이 없었다면 바울이 믿은 사실을 다른 그리스도인이 인정하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바나바가 바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나니아와 같은 증인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3 8.2 바나바
행 4:36, 37 구브로(Cyprus)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위로의 아들)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그의 이름은 요셉이었으나 사도들이 바나바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주목받는 형제였다. 우리에게도 요셉이라는 이름보다 그의 별명이 더 알려져 있다. 많은 형제들의 헌물이 있었겠지만 바나바의 행위는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많은 사람의 본이 된 것같다. 아마도 이행위도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행 9:26, 27 사울이 예루살렘에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바나바가 바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한 내용을 보면 단순히 바울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바울에게 일어난 일을 잘 알고 소개한 것을 알 수있다. 사람을 세우는 것은 이렇게 그 사람을 앎으로써 가능한 것임을 알 수있다. 참으로 바울에게는 위로를 안겨준 순간이다.
행 11:19-22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비록 행 11장의 이방인 고넬료 사건이 있었지만, 아직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이방인이 예수를 믿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결정한 일(예를 들면 행 15장의 사도회의)이 없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할례파적인 생각을 가졌거나 모호한 생각을 가진 예루살렘교회에서 기준이 없는 이때에 최초의 이방인 교회로 바나바를 보냈다는 것은 그가 융통성이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임을 알 수있다. 무엇보다도 다음 말씀처럼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였다.
행 11:23-25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어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바울은 다소에서 8 년내지 10 년간의 세월을 보냈다. 그렇다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바나바는 다메섹도상에서 주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신 일(아그립바 왕앞에서 한 간증처럼, 행 26:16,17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을 기억하고 바울을 세운 것같다. 어떤 형제가 말한 것처럼 공동사역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 했지만 바나바는 이것을 택하였다.
9. 참고문헌
1. Hengel, The prechristian Paul, p 6 (최갑종, 바울연구1,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95, p 15)
2. 정훈성, 박기원 편집, 성경낱말사전, 성도출판사,1991, p 1088
3. J. A. Fitzmyer, "The language of Palestine in the First Century A.D.", A Wandering Aramean. Collected assays(SBLMS 25; Missoula, MT: Scholars,1979), p 29-56
4. 존드레인, 바울, 두란노 서원, 1989, p 16
5. 산헤드린: 의회를 뜻하며 유대교의 종교적 통치기구이며, B.C. 63 년에 5개의 산헤드린으로 나뉘었고 그 중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이 주도했다. 산헤드린 일원은 나이와 재산에 근거하여 선정하였고 대제사장이 의장이었다. 재판권을 가지고 있었고 율법에 대해서는 최종적인 결단을 내렸고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로마총독의 동의하에 처형하였다. (신성종 번역, Baker's 신학 사전, 도서출판 엠마오에서)
6. 윌리암 람세이, 사도바울, 생명의 말씀사, 1988, p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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