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歷史,宗敎,哲學/(역사)韓國敎會史

[[한국교회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

好學 2010. 5. 21. 20:26

 

[[한국교회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

 


양화진 외국인 묘지, 한국기독교선교기념관(100주년 기념 교회)

 

외국인 묘지 배경

 

양화진 이야기

 

100주년 기념교회 봉헌석

 

최초 매장자 헤론 선교사

 

존 헤론 선교사 묘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존 헤론이 고종으로부터 받은 병풍

 

존 헤론이 고종으로부터 받은 병풍

 


선교 120주년 기념비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추모비

 


아펜젤러 선교사 아들 묘

 


아펜젤러 추모비

 


아펜젤러 소개

 


아펜젤러 추모비 뒷면

 

 

연세대 아펜젤라관, 사적 277호

 


스크랜튼 선교사(이화여대)

 


스크랜튼 소개

 


언더우드 선교사 일가의 묘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 일가 묘역

 


언더우드 선교사 묘

 


언더우드 소개

 

 
 

연세대 언더우드관, 사적 276호

 


헐버트 선교사 묘

 


헐버트 선교사 묘비

 


헐버트 선교사 소개비

 

대한제국 국권 회복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우다 강제추방까지 당했던 호머 헐 버트 박사(1863∼1949) 는 미국 버몬트주 태생으로 대한제국 초청으로 1886년 23세 나이로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내한해 교육분야 총책임자와 외교 자문관으 로 고종황제를 보좌했다. 헐버트 박사는 1907년에는 이준 열사 등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로 참석 할 수 있도록 면밀히 지원하는 등 항일운동을 벌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됐다. 그는 그 후 40여 년 만인 1949년 7월 29일 우리 정부 초청으로 8ㆍ15행사에 참 석하기 위해 내한했다 일주일 만인 같은 해 8월 5일 8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울 선교사

 


셔우드 홀 선교사

 

베텔 선교사

 

베텔 선교사

 

루비 켄트릭 선교사  묘지

 

"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 Korea should have them all ."

- Ruby Kendric -

"내게 줄 수 있는 천번의 생명이 있다면 나는 그 천 번의 삶을 한국을 위해 바치겠다"

-루비 켄트릭

 

클라크(곽안련)선교사

 

클라크 묘지

 

캠벡 선교사(배화학당, 종교교회, 자교교회 설립자)

 

캠벨 선교사 묘지

 

테일러 선교사 묘지

 

선교사 자녀들 묘역

 


선교사 묘지들

 


선교사 묘지들

 


선교사 묘지들

 

양화진 외국인 묘지 공원 (한국 기독교 선교기념관)


 

서울 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145- 8/ 명칭은 서울 외국인 묘지공원으로 되어있다. 1893년 10월 24일에 개설이 허가 되었으며 면적은 13,224 제곱미터이다. 무덤은 514 여기가 있으며, 최초의 피장 선교사는 존 헤론이다. 이곳에는 초대 선교사와 조국 근대화에 헌신한 구미 각국의 저명인사 500여명이 묻혀있는 양화진 외국인 공원 묘역에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성금으로 선교기념관을 건립하여 그들의 선교정신과 숭고한 희생 봉사의 업적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후세에 전승키 위하여 1985년 1월 14일 재단법인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 제 5차 총회에서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한국 기독교선교회관을 건축키로 결의하였다. 이 사업이 1985년 6월 28일 선교기념관 기공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며 86년 8월 20일 건조물 및 토목공사가 완료되고 9월 10일 조경 공사가 완공되었다. 이곳에는 선교 기념실, 자료실, 대강당, 외국인 연합교회 예배처소, 종, 소회의실 교육실, 목회자실, 부속실, 친교실,식당, 기관실, 다목적실, 야외 행사공간, 주차장, 관리인 숙소, 휴게실이 구비되어 있다. 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복음을 전해야 할 때 한국은 미개한 상태에 놓여있었다.그리하여 선교사들은 복음과 또한 문명화와 근대화 사역을 함께 수행해야 했다. 그리하여 선교사들은 의료와 교육을 병행해야 했는데 알렌은 제중원을 설치하였다. 이곳에서 언더우드,헤론, 감리교 의료 선교사 겸 목사 스크랜톤이 일하였다. 처음에는 알렌이 와서 일하였으나 밀려오는 환자를 혼자서 치료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언더우드가 약국의 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1885년 5월에 내한한 스크랜톤과 함께 같은 해 6월 헤론이 가담하였다. 부족한 약품들, 의료 재료들로서는 감당하기 역부족이었다. 날씨가 더워지고 전염병은 창궐하였다. 한국인들은 위생관념이 희박하여서 물을 끓여먹지 않아서 온 가족과 동네가 몰사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헤론은 내한한지 5년만에 이질에 걸렸다. 그는 그곳에서 그렇게 순직했다. 이러한 제중원은 후에 미국의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의 실업가 <세브란스>가 1만 5천 달러를 희사하여 지금의 서울역 앞 대지를 구입하여 세브란스 병원이라는 이름을 갖게되고 세브란스병원이 생겨났다. 헤론은 이렇게 한국의 복음화를 위하여 의료 선교에 뛰어 들었고 그는 그렇게 이질에 걸려 질병으로 숨져갔다. 그는 5년간이라는 짧은 선교의 현장에서 사역을 감당하다가 이방 땅에서 그렇게 뼈를 묻었다. 그는 조국보다도 자신의 가족 보다도 더욱 한국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의 묘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 JOHN W. HERON, MD/who came to Korea IN  1885/MISSIONARY PHYSICIAN/ TO/ CORT ANT LEGATIONS/DERBYSHIRE ENG,1856/ DIED/  SEOUL JULY,1890/The son of God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그는 1885년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와서 1890년  7월 여름에 순교했다. 그리고 그 비문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라고 자신의 신앙을 묘비에  적어놓았다.  헤론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겠다는  선교에 대한 일념으로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주었지만 자신은  그렇게 죽어갔다.  한국의 복음은 이런 사명자들의 결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같은 곳에 잠들어 있는 많은  선교사들의 묘비에는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자신들의 묘비에 적으면서  순교의 길에 들어갔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A. R. 아펜젤러-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J.D. 언더우드

"주님 ! 길고 긴 여행을 끝내고 이제 나는 안식을 얻었습니다." -G.A. 테일러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H.B. 헐버트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A.K. 젠슨-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 -R. 켄드릭-

 

이곳에는 선교사들을 따라 왔다가 부모와 함께 순직한 가족들이 함께 있으며, 채 꽃피우지 못하고 부모도 함께 한국에 묻힌 아이들도 많다 이곳에 한국 복음의 선교를 위하여 숨진 사람들의 묘는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다. 봉의 높이도 높지 않다.  마치 예수님께 책망받던 바리새인들의 비유와 같이 평토장한 무덤같아보여 쓸쓸하다. 화려하지 않게 잠들어 있는 이들의 영혼은 아름답기만하다. 그러나, 이들의 휴식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이 땅에서의 안식이다. 그러나 이들의 안식이 평온하지 만은 않은 듯 싶다. 전쟁과 그 포화의 흔적들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비석을 대신한 돌 십자가들이 모진 세월속에서 십자가 조차 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파손되어 있다. 주님의 사랑을 우리는 이렇게 받았으며 또한 우리보다 더욱 한국을, 한국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오늘 우리에게 복음이 주어졌다. 이 사랑의 선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 도표들은 우리가 누구이기에 외국의 많은 선교사들이 우리를 위하여 죽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주며 복음의 빚진 자임을 느끼게 해 준다.


신분별, 국적별 순교자

구분

어른

어린이

선교사

75

36

111

선교사,

군인 아닌 사람

46

10

56

미군부대와

관련된 사람

26

38

64

소속 불명

44

31

75

한국인

15

11

23

 

국명

인원수

국명

인원수

미국

265

캐나다

7

백러시아

54

스페인

4

영국

30

벨기에

4

프랑스

25

덴마크

3

한국

20

일본

1

호주

12

총계

425명

숫자에는 표지없는 무덤 80여기와 어린이는 포함되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