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音樂/[Classics의 名歌]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독일어: Franz Peter Schubert)

好學 2009. 4. 5. 21:30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독일어: Franz Peter Schubert, 1797년 1월 31일 ~ 1828년 11월 19일)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다.

가난과 타고난 병약함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600여 편의 가곡, 8편의 교향곡(미완성 교향곡 포함), 소나타, 오페라 등을 작곡했으며, 가곡의 왕이라고 불린다.

생애

오스트리아 빈의 교외 리히텐탈에서 초등학교 교장과 요리사의 13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슈베르트가 6살 때부터 피아노 교습을 시작하였으며, 8살 때에는 큰형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게 하였다. 물론 아버지가 음악을 가르친 이유는 음악인으로 키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슈베르트는 교사가 되기 바라는 아버지와 진로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1808년 10월 1일 11살 때, 콘픽트 시립 학교에 들어가 성악으로 음악적인 재질을 인정받았고, 그 곳에서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들어가게 되어 제1바이올린을 맡게 되었다. 때로는 그 오케스트라의 지휘도 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또한 합창대에서는 제1소프라노를 부르고, 학교의 연주회와 교회에서 때때로 독창을 불러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탈리아인 궁정악장 살리에리의 지도를 받아 몇 곡의 작품을 작곡하였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변성기로 소년기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어서 그의 아버지의 뜻에 따라 1814년부터 아버지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조교사로 일했다. 이 해에 바 장조의 미사곡(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장례미사에 사용하는 음악)을 작곡하였는데, 이 곡의 독창을 부른 텔레제 글로브는 슈베르트의 첫번째 애인이었다. 하지만 둘 사이의 사랑은 텔레제 부모의 반대로 이뤄지지는 못했다.

1815년 18세 때에 그의 재능을 아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수백 곡의 가곡을 썼으며,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마왕》, 《휴식 없는 사랑》, 《들장미》 등의 명작도 이 해에 작곡되었다. 그가 지은 가곡 중 일부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책으로 편집되었다.

1818년에는 가곡 《죽음과 소녀》, 《송어》를 작곡하였으며 에스테르하지 공작 집안의 두 딸의 가정교사가 되어 한여름을 첼리즈에서 보냈다.

1823년에는 《유랑인의 환상곡》, 《로자문테》 등을 발표했고 그 해 여름, 친구의 집에서 읽은 뮐러의 시에 감동하여 《아름다운 물방앗간 집 처녀》를 작곡하였다.

1827년 30세가 되자 자신의 인생이 겨울을 맞았음을 아는 듯 《겨울 나그네》를 작곡하였고, 이듬해인 1828년 11월 19일 장티푸스로 빈에서 사망했다. 당시 그는 병때문에 매우 약해져서, 기억력마저도 나빠진 상태였다.

그의 정신적 스승은 베토벤으로, 1827년 3월 26일 베토벤이 죽자 그의 장례에 참여하였으며 또한 베토벤의 유해와 함께 빈의 중앙 묘지에 나란히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