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 앙드레 지드.1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기로 한 권의 책을 꾸며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이야기 하는 것은
내가 그러한 생활을 하기 위해 내 모든 힘과 정신을 거기다 다 기울인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내 추억을 적어 볼 따름이며,
꿰매거나 맞추기 위해 조작까지 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한 노력이란 내가 추억을 이야기함으로써 얻으려는
마지막 즐거움마저 잇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내가 아직 열 두 살도 채 되기 전이었다.
아버지가 의사로 계시던 르아브르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아무런 이유도 없게되자
어머니는 파리로 가면 더 학업을 잘 마치리라는 생각에서 그리로 옮겨갈 작정을 하셨다.
어머니는 상부르 공원 근처에 조그만 아파트를 세내어
그곳에서 미스 아슈뷔르똥과 같이 살게 했다.
혈혈 단신의 미스 플로라 아슈뷔르똥은 처음에는 어머니의 가정교사였다가
이어 말벗이 되더니 곧 친한 친구가 되어 버렸다.
나는 다같이 부드럽고 쓸쓸한 표정에
늘 상복만 입고 있던 기억이 나는 이 두 여인 곁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퍽 오랜 뒤라고 생각되는데 어느 날 아침
어머니가 아침에 쓰는 모자의 검은 리본 대신 연보라색 리본을 단 것을 보고 나는,
"엄마!"하고 외치고 말았다.
"그 빛깔은 정말 엄마에게 어울리지 않아."
다음날 어머니는 다시 검은 리본으로 고쳐 달았다.
나는 꽤 허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미스 아슈뷔르똥은 늘 내가 지치지 않도록 마음을 썼다.
그런데도 내가 게을러지지 않았던 것은 정말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때문이다.
초여름부터 두 여인은 나를 얼굴이 창백해질 뿐인 도시에서
떠나게 할 시기가 왔다고 들먹거렸다.
6월 중순 경 해마다 여름이면 뷔꼴랭 삼촌이 맞아 주는
르아브르 근처 퐁궤즈마르를 향해 우리는 출발했다.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은 정원,
노르망디 지방의 다른 정원들과 별다른 특징이 없는
정원 안에 있는 하얀 뷔꼴랭 댁의 3층 건물은 18세기 풍의 별장들과 같은 것이었다.
정원의 정면 동쪽을 향해 20여 개의 창이 열려 있고 뒤켠에도 그만큼 달려 있다.
양쪽 곁에는 창이 없다.
창에는 작은 창유리들이 끼워져 있었는데,
최근에 갈아 낀 몇 개의 유리는 너무도 투명해서
그 주변의 것들은 푸르고 어두워 보이게 했다.
어떤 창유리에는 집안식구들이 '거품'이라고 부르는 흠이 있어
그리로 내다보면 나무는 뒤틀려 보이고
그 앞을 지나가는 우편 배달부는 갑자기 힘껏 달리기도 한다.
긴 네모꼴의 정원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집 앞에는 그늘진 널찍한 잔디밭이 있고,
그 둘레로는 모래와 자갈 깔린 작은 길이 나 있었다.
이 편에서는 담이 낮아서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농가의 뜰이 보이는데,
너도밤나무를 심은 길이 이 고장 특유의 방식대로 이 농장의 뜰을 구분하고 있었다.
집 뒤쪽 서편으로, 정원은 더욱 활짝 트여 있었다.
남쪽 과수 울타리 앞, 꽃이 만발한 좁은 길은
포르투갈산 월계수의 두터운 장막과 몇 그루 나무로 바닷바람을 피하였다.
북쪽의 담을 따라 뻗어나간 또 하나의 오솔길은 나뭇가지 밑으로 사라진다.
내 사촌 누이들은 그것을 '어두운 길'이라 불렀고
저녁 노을이 지면 거기로 나가길 주저했다.
이 두 갈림길은 채소밭에 닿아 있고,
이 채소밭을 몇 층계 더 내려가면 밑에 정원과 붙어 있다.
그리고 채소밭 안쪽 조그만 비밀 문이 나 있는 담 건너편에 벌채림이 보이고
너도밤나무가 늘어선 길이 좌우 양쪽에서 그곳에 이르고 있다.
서쪽의 현관 층계에서는 이 숲 너머로 정원이 보이고
이 고원을 뒤덮은, 거둬들인 농작물을 바라볼 수 있다.
지평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조그마한 마을의 교회당이 있고
해질녘 바람이 잔잔할 때면 몇몇 집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가 보인다.
여름철 아름다운 석양녘이면 저녁 식사 후 우리는 아래 정원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그 작은 비밀문을 통해 어느 정도
주변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길가의 벤치까지 갔다.
거기 폐광된 이회암 채굴터 이엉 지붕까지 놓인 벤치에
삼촌, 어머니, 미스 아슈뷔르똥이 앉는 것이었다.
우리 맞은편에 있는 조그마한 계곡은 함빡 안개에 잠기고
그 너머 숲 위의 하늘은 금빛으로 물드는 것이었다.
땅거미가 진 뒤에도 우리는 늦도록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우리가 다시 집에 돌아오면
우리와 같이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는 아주머니가 응접실에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것으로 저녁 시간이 끝나는 것이지만
흔히 밤이 이슥해서 어른들이 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릴 때까지 각기 자기 방에서 책을 읽었다.
정원에서 보내는 외의 시간을 우리는 대부분
'책상'을 마련해 놓은 삼촌의 서재 '자습실'에서 보냈다.
사촌 동생인 로베르와 나는 나란히 앉아 공부했고
뒤에서는 줄리에뜨와 알리싸가 공부를 했다.
알리싸는 나보다 두 살 위였고 줄리에뜨는 한 살 아래였으며
로베르는 넷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내가 여기서 쓰려 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첫 추억이 아니라
다만 이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해다.
아마도 내 감수성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또한 자신의 슬픔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머니의 슬픔을 보는 것으로
지나치게 자극을 받은 나머지 새로운 감정을 일으켰던 탓인지
나는 상당히 조숙한 편이었다.
그해 퐁궤즈마르에 다시 왔을 때 줄리에뜨와 로베르는 아주 어려 보였지만
문득 우리 둘은 이제 어린애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다.
우리가 도착한 직후 미스 아슈뷔르똥과
어머니가 주고받은 대화가 내 기억을 확인해 주고 있다.
나는 어머니와 내 친구가 이야기하고 있던 방에 갑자기 들어갔었다.
외숙모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외숙모가 복을 지키지 않았다든가
혹은 지켰다 하더라도 벌써 그만 두고 말았다는 데 화를 내고있었다
(사실 소복을 하고 있는 뷔꼴랭 외숙모를 상상해 본다는 것은
화려한 옷차림의 어머니를 상상해 보는 것만큼이나 어색한 노릇이다)
내 기억으론 우리가 도착하던 날 뤼씰르 뷔꼴랭은 모슬린 옷을 입고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타협적인 미스 아슈뷔르똥은
어머니를 진정시키려 노력하면서 조심조심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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