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世界文學感想]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생애 요약)

好學 2009. 4. 24. 23:39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괴테(독일어: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 ~ 1832년 3월 22일)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이며, 한때에는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수상)이었다.

 

 

생애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출생으로,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자로서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이고,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아버지는 법률가이며 제실고문관(帝室顧問官)으로서 엄격한 성격이었으며, 시장(市長)의 딸인 어머니는 명랑하고 상냥하여 아들의 좋은 이해자였다. 7년전쟁(1756∼1763) 때에는 프랑스에 점령되어 평화롭고 부유했던 괴테의 집도 프랑스 민정장관(民政長官)의 숙사(宿舍)가 되고,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계획 역시 중단되었으나, 괴테는 자유롭게 프랑스의 문화에 접할 기회를 얻었으며, 15세 때 그레트헨과의 첫사랑을 경험하였다.

 

1765년에 라이프치히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하면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보내다가,

1768년 각혈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생활을 하였다. 그 무렵에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鍊金術)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머니의 친구인 크레텐베르크의 감화로 경건파(敬虔派)의 신앙에 접근하였다. 그녀는 후일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의 모델이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머무르면서 J.G. 헤르더를 알게 되어 종래의 로코코 취미의 문학관은 철저히 분쇄당하고,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 감정의 순수성에 시의 본질을 구하려는 노력이 《들장미》의 가작(佳作)을 낳게 하였다.

 

이 무렵 근처 마을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과 목가적(牧歌的)인 사랑을 하였고 약혼까지 하였으나, 결국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하였다. 그 후 회한(悔恨)과 마음의 부담 속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 겪은 내적 체험이 훗날 그의 시의 주제가 되었다.

 

1771년 변호사가 되어 고향에서 변호사업을 개업하였고,

1772년에는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 때 샬로테 부프와의 비련(悲戀)을 겪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1774)을 썼는데, 이 작품으로 일약 문단에서 이름을 떨쳤고, 독일적 개성해방(個性解放)의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질풍노도)’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1775년에 바이마르 공국의 젊은 대공(大公)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을 받고 바이마르로 가서 여러 공직에 앉게 되고 재상이 되어 10년 남짓 국정(國政)에 참여하였다. 이 동안 그는 정치적으로 치적(治積)을 쌓는 한편, 지질학·광물학을 비롯하여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1784년, 동물에만 있고 인간에게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던 간악골(間顎骨)을 발견하여(죽기 1년 전에 학회에서 인정되었음) 비교해부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무렵 괴테는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 12년에 걸친 연애를 하여, 부인으로부터 인간적 및 예술적 완성에 큰 영향을 받았으나,

1786년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남으로써 부인과의 애정관계는 끝을 맺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수업하는 화가로서의 생활을 보내면서 l,000매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렸으며, 희곡 《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 Iphigenie auf Tauris》(1787), 《에그몬트 Egmont》(1787) 등을 써서 슈타인 부인에게 바쳤다. 이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괴테의 생애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고전주의로의 지향(志向)을 결정한 시기로서 중요하다.

 

1788년에 바이마르에 돌아온 괴테는 조화업(造花業)을 하는 가난한 집안의 딸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동거하면서(정식 결혼은 l806년), 비로소 가정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이 무렵에 그는 시인과 궁정인의 갈등을 그린 희곡 《타소 Torquato Tasso》(1789)와, 관능의 기쁨을 노래한 《로마 애가(哀歌)》(1790)를 발표하였다. 과학논문 《식물변태론(植物變態論)》도 이 시기의 산물이다. 1791년에는 궁정극장의 감독이 되었으며, 그 때부터 고전주의 연극활동이 시작되었다.

 

1789년 이후의 프랑스 혁명의 격동은 바이마르 공국도 휩쓸게 되어, 1792년에 괴테는 아우구스트 대공을 따라 프랑스로 종군하였다.

1794년부터 그는 J.C.F. Von 실러가 기획한 잡지 《호렌(Horen)》에 협력하여 굳은 우정을 맺었다. 이념의 사람 실러와 실재(實在:자연)의 사람 괴테와의 이 우정은 l805년에 실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10년 남짓한 시기에 괴테는 실러의 깊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Faust)》의 재착수, 《빌헬름 마이스터의 도제(徒弟) 시절(Wilhelm Meisters Lehrjahre)》(1796)의 완성,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Hermann und Dorothea)》(1797)의 발표 등, ‘현재에서의 완성을 지향하는’ 독일 고전주의는 여기서 확립되었다.

 

1797년에는 실러의 《시신연감(詩神年鑑)》에 공동작의 단시(短詩) 《쿠세니엔(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414편을 발표하여 문단을 풍자하였다. 또한 문단의 물의(物議)를 외면한 채 이야기체로 쓴 시(詩)를 경작(競作)하여, 1797년은 ‘발라드의 해’라고 일컬어진다. 1805년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괴테는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만년의 괴테의 문학활동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이었다. 괴테는 그 무렵에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치에서 프랑스·이탈리아·영국, 나아가서 신대륙인 미국의 문학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 국민문학의 교류를 꾀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세계문학적 시야를 넓혔던 것이다.

 

만년의 문학작품으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Wilhelm Meisters Wanderjahre)》(1829)와 《파우스트》의 완성이 최고봉을 이룬다. 전자(前者)는 당시의 시대와 사회를 묘사한 걸작이라 할 수 있으며, 후자(後者)는 한 인간의 생애가 전인류의 역사에 뒤지지 않는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엄한 드라마이다.

 

《파우스트》는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83세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된 생애의 대작이며, 세계문학 최대걸작의 하나이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가였던 괴테는 만년에도 세 차례의 연애를 체험하였다.

 

그 하나는 미나 헤르츨리프와의 사랑으로서, 이 소녀를 모델로 하여 소설 《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1809)을 썼다. 또 하나는 아내 불피우스가 죽은 뒤에 알게 된 빌레머 부인과의 사랑으로, 그녀를 사모하여 읊은 《서동시집(西東詩集)(Westöstlicher Divan)》(19)이 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괴테는 마리엔바더로 피서여행을 갔다가 74세의 노령으로 19세의 처녀 우를리케 폰 레베초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사랑은 거절되었으나, 그 연모의 정이 시집 《마리엔바더의 비가》(1823)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밖에 만년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기행 (Italienische Reise)》(1829)과 자서전인 《시와 진실(Dichtung und Wahrheit)》(1833) 등이 있다.

 

또한 그의 광학(光學) 연구의 결정인 《색채론(Zur Farbenlehre)》이 1810년에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뉴턴의 이론에 대한 잘못된 비판이 들어 있어 순학문적인 견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나, 탁월한 관찰과 견해가 많이 보이고 있다. 괴테는 문학작품이나 자연연구에 있어서, 신(神)과 세계를 하나로 보는 범신론적(汎神論的) 세계관을 전개하였으며, 그의 종교관은 범신론적 경향이 뚜렷하지만, 복음서의 윤리에는 깊은 존경을 표시하였다. 그의 유해는 바이마르 대공가(大公家)의 묘지에 대공 및 실러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빌헬름 마이스터의 도제시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이탈리아 기행》

《파우스트》

시 〈프로메테우스〉

 

 

 

괴테의 파우스트(요약)

괴테신문학에 눈을 뜬 시기부터 82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단속적()이기는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쓴 비극 작품이다. 2부로 되어 있으며, 전편() 1만 2111행의 대작이다.

파우스트 전설영국극작가 C.말로의

희곡 《포스터스 박사 Dr. Faustus》(1588∼1592)에 의해 처음으로 문학작품으로서 승화되었다. 말로는 파우스트를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의 비극으로서 동정적으로 묘사하였다.

이와 같은 르네상스적 이상()으로 불타는 파우스트는 인형극 등을 통해 독일 민중과 친근해졌으며, 이것을 소재로 문학작품을 본격적으로 써 보려고 한 사람이 레싱이었다. 그의 파우스트 극은 단편()이긴 하지만, 인간이 지식을 구하려는 것은 곧 신의 뜻으로서 지식에 의해서 진리에 도달한 인간은 덕목()에 안주()하여 저절로 비행()을 버리게 된다는 계몽주의의 이상을 고양()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은 괴테는 사람은 어떠한 미망()의 길을 걷더라도 인간으로서의 노력을 계속한다면 종국에 가서는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인간의 노력과 향상의 원동력이야말로 마음 속에 있는 신에게 귀의하려는 마음과 육체에 깃든 마음과의 상극()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괴테는 《파우스트》를 쓰기 이전부터 이 소재는 그의 마음 속에 살아 있었고, 성장해 갔던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그가 완성한 《파우스트》는 이 소재를 괴테의 전체 인격으로 침투시켰을 뿐만 아니라, 독일정신의 완전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승화시켰다. 《파우스트》는 독일적인 동시에 인간정신 전체가 지향()하는 불후()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파우스트》 집필은 1774년에 착수되어 1775년에 초고인 《우르 파우스트》를 집필하였고, 1790년에 제1부 《단편() 파우스트》를 간행하였다.

1798년 실러의 권유를 받아들여 다시 집필을 시작, 1808년에 제1부를 간행하였다. 그후 20년 가까이 중단되었다가 제2부가 완성된 것은 괴테가 죽기 1년 전인 1831년 7월이었으며, 제2부는 그가 죽은 후에 간행되었다.

 

〈천상()의 서곡()〉에서, 노력하는 사람을 구제하려는 신에 대하여, 부정적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는 신의 총아() 파우스트의 마음에 나태함을 일으키도록 그를 유혹할 수 있다고 내기를 건다. 인간의 온갖 지식에 절망하고 있는 노학자() 파우스트는 주문()으로 불러낸 지령()의 일갈()을 받고, 지식의 허무함을 깨달아 자살하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생생한 인식을 갈망한다. '생()을 심오한 곳에서 지배하는 것'을 알고 싶어한다. 이 때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내가 노예로서 너에게 봉사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체험하게 해주는 대신, 만일 네가 어느 한 순간에 대해서 멈추어라, 너는 너무도 아름답다라고 말하고 휴식을 원하게 되면, 너는 너의 영혼을 영원히 악마에게 내어 주어야 한다"라고 하여 둘 사이에 약속이 이루어진다.

이리하여 파우스트의 인생 편력이 시작된다. 20대 청년의 메피스토펠레스를 데리고 여행에 나선 파우스트는 어린 소녀 그레트헨을 사랑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녀는 불행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어린 아기를 죽이어 처형당하게 된다. 그녀는 고뇌와 굴욕 속에서 반미치광이가 되었고, 파우스트는 감옥에서 그녀를 구출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나 허사로 돌아가고 오직 파우스트를 부르는 그녀의 소리만을 뒤에 남겨두고 그 곳을 떠나야 한다.

 

파우스트는 1부의 그레트헨 비극에 절망하고 고뇌하는 마음을 알프스의 자연으로 치유하고, 독일 황제의 궁정에서 그리스 전설의 미녀 헬레네를 불러냈는데, 파우스트 자신이 그녀에게 매혹되어 인조 인간의 안내로 전설 속의 그리스를 헤매다가 마침내 헬레네와 결혼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이포리온이라는 아들이 태어났으나 이 아이는 하늘을 나르려다가 바위에 떨어져 죽게 되고, 이 슬픔 때문에 헬레네도 저승으로 돌아간다.

독일로 돌아온 파우스트는 반란군을 진압한 공로로
불모지()를 소유령()으로 하사받는다. 그는 이 땅을 개발하여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를 혹사하게 되며, 이 때문에 기도생활을 하고 있는 노인 부부를 과실치사()하게 된다. 100세가 된 파우스트에게 '근심'의 정령이 접근해 와서 그에게 입김을 쐬어 그는 맹인이 된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심안()은 더욱 밝아지고, 견실한 노력을 거듭함으로써 인류의 행복이 초래된다고 하며, 마법을 물리칠 결심을 한다. 그리고 미래에 낙원이 실현될 때야말로, "잠시 멈추어라"라고 순간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숨을 거둔다.

내기에서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는 메피스토펠레스를 방치한 채, 천사들이 파우스트의 영혼을 천상()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레트헨이라는 천사가 이들을 맞이하는 가운데 "모든 무상()한 것은 한낱 비유에 불과하다,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 여기서 이루어지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여기서 이루어지다, 영원한 여성이 우리를 이끌어간다"라는 신비스런 합창으로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