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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관하여 20선]<6>혼인의 문화사

好學 2010. 3. 7. 21:18

 

[결혼에 관하여 20선]<6>혼인의 문화사

 





◇ 혼인의 문화사/김원중 지음/휴머니스트



《“중국 고대 유가 경전으로 예의의 이론과 실제를 논술한 책인 ‘예기(禮記)’에 의하면 혼례란 두 성(姓)의 좋은 것을 결합한 것으로, 위로는 종묘를 받들고 아래로는 후세를 잇는 것이다. 결혼을 통한 남녀간의 결합은 자연에서 상호 작용하는 두 가지 힘의 축소판이다. 인간은 우주에서 하늘과 대지가 결합하듯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는 결혼이라는 의식을 치른다. 여기에는 개인적 차원을 뛰어넘는 사회·문화적 맥락이 내포되어 있다.”》



姓과 氏는 원래 다른 개념



동아시아의 혼인관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을까. 중문학자인 저자는 주역, 논어, 맹자, 예기, 사기, 세설신어, 태평어람 등 중국 고전의 기록을 통해 중국 고대의 성, 결혼, 가족의 모습을 추적했다. 중국 고대의 결혼 유형과 혼인의 성립과정, 남녀 간 갈등의 해결 양상과 제도적 장치, 부부와 시부모 자녀의 관계망 등을 분석했다.

‘사기’ 오제본기를 보면 황제는 유웅, 전욱은 고양, 제곡은 고신, 요는 도당, 순은 유우, 우는 하후라 불러 씨(氏)는 달리하고 있지만 성(姓)은 모두 사(사) 씨다. 고대에서 성과 씨는 다른 개념이었다. 성은 가족보다 큰 단위인 부족이고 씨는 성보다 작은 단위인 씨족을 의미했는데 훗날 하나로 합쳐져 같은 개념이 됐다.

저자는 제비알을 삼킨 어머니가 은나라 시조인 설을 낳았다는 신화 등 남녀간의 교합 없는 태어난 출생 신화에 주목한다. 그는 모계에서 부계사회로의 전환을 연구한 미국의 민속학자 L H 모건이 “그들은 씨족 시조인 어머니의 이름을 보존하고 시조는 그 어머니가 어떤 신령스러운 것과 관계를 맺어 탄생되었다”고 한 연구를 빌려 고대 동아시아의 성 역시 모계에서 나왔다고 본다. 고대의 주요 성씨 가운데 요(姚) 희(姬) 강(姜) 영(瀛) 씨 등의 부수가 여(女) 자라는 것도 성이 모계에서 비롯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저자는 “봉건제와 종법제도라는 남성 본위의 유교 이데올로기 하에서 여성은 수동적이고 핍박받는 존재의 성격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연애나 이혼과 재혼 등 여성들의 자유로운 선택의 폭도 넓었다”고 말했다.

제나라에 살던 처녀에게 추남이지만 부유한 동쪽 집안 아들과 가난하지만 외모가 뛰어난 서쪽 집안 아들이 동시에 청혼했다. 부모가 묻자 딸은 “낮에는 동쪽 집에 가서 먹고 싶고, 밤에는 서쪽 집에 가서 자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정절 관념이 희박했던 당시의 사회분위기가 반영된 고사라는 것. 당시 역사책인 좌전(左傳)을 보면 음란, 사통, 개가 등의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 풍토를 반영하고 있다.

고대의 결혼 예절은 복잡했지만, 이혼 수속은 간단했다. 이 당시에는 이혼을 절혼(絶婚)이라고 했는데, 법률적 결단을 거칠 필요 없이 남자가 한통의 휴서(休書)를 써서 아내에게 자기 집에서 떠나도록 하면 부부관계가 상실됐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반마(反馬) 의식이 있었다. 결혼 석 달 뒤에 신부가 타고 온 말에 신부를 태워 돌려보내 이혼을 통보하는 것이다. 혼인 성사를 나타내려면 신랑은 말만 처가에 돌려보냈다. ‘예기’에도 “3개월간 종묘에 제사지내고 부인의 예를 이룬다”는 글이 있다. 저자는 3개월 내에는 혼인을 취소할 수 있어 이 기간에는 여자는 예법 상 누군가의 부인이 아니므로 다른 배우자를 다시 선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분석했다. 즉, 여자의 정조를 크게 중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혼인의 원류가 음양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며 “고대 중국에서 결혼은 사회적 합의이자 집단 및 공동체 의식을 함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