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교육 3/[시조]古時調

무등산가

好學 2009. 11. 10. 14:26

 

 

무등산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無等山 光州之鎭 州在 全羅爲巨邑城 此山 民賴以安 樂而歌之.
무등산 광주지진 주재 전라위거읍성 차산 민뢰이안 낙이가지.

 
무등산은 광주(光州)의 진산(鎭山)으로서, 이 산에 성을 쌓으니 백성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어 그 기쁨을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dia_bluve.gif 요점 정리

circle01_blue.gif 주제 : 축성으로 인한 백성들의 기쁨 노래

 

dia_bluve.gif 내용 연구

 백제의 가요로 <무등산곡(無等山曲)>이라고도 한다. 가사와 곡보는 전하지 않고, 제목과 유래만 《고려사》 <악지(樂志)>에 실려 있다.

 

dia_bluve.gif 이해와 감상

 가사와 악보가 전하지 않아 알 수가 있나? 단지 추론하면 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이 안정되고 평화로우며, 국가방위가 튼튼하면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dia_bluve.gif 심화 자료

 백제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가사는 전하지 않고, 지리산 知異山〉·〈선운산 禪雲山〉·〈방등산 方等山 등과 함께 고려사 악지에 내력만 실려 전한다.
무등산은 광주(光州)에 있는데 백제 때는 이 곳에 성(城)이 있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으므로 즐겁게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따라서 일종의 태평가라 하겠다.
참고문헌 高麗史, 文獻備考.

 


  

  무등산은 백제 이전까지는 무돌이나 무당산이라 일컬었고, 통일신라때는 무돌의이두음인 '武珍岳' 또는 '武岳'으로 표기하다가 고려 때부터 서석산(瑞石山)이라는 별칭과 함께 무등산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무등산의 산 이름이 기록에 나타난 것은『삼국사기』에 '무진악(武珍岳)' 이라 표기된 것이 처음이다. 『삼국사기 잡지 지리편(雜志 第五 地理三)』에는 무진주(武珍州), 무주(武州)라는 지명이 보이고 잡지 제1 제사편의 소사조(小祀 條)에 무진악, 무진주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무등산이라는 산 이름이 처음으로 눈에 띄는것은『고려사』인데 악지(樂志)의 삼국 속악 백제조(三國 俗樂 白濟條)를 보면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이다. 광주는 전라도에 있는 큰 고을이다. 이산에 성을 쌓았더니백성들은 그 덕으로 편안하게 살며 즐거이 노래를 불렀다(無等山 光州之鎭山. 州在全羅道巨邑. 城此山 民束負以安樂而歌之)'라는 기록이 있어 무등산 이란 산 이름을 알려준다.

    그 위『세종실록 지리지』나『신증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하여 그 후의 많은 자료들이 무진악, 무악, 서석산 등 무등산의 여러 가지 이름과 유래를 적었으며 입으로 불리기는 무돌뫼, 무당산, 무덤산, 무정산등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광주의 옛 이름을 무진주(武珍州) 또는 무주(武州)라 해서 이 고을의 진산인 무등산도 일찍이 무진악(武珍岳) 또는 무악(武岳)으로 부른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광주는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다가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는데 이때 백제를3주로 나누어 그 하나를 무진주(武珍州, 一云 奴只)라 하였으며 광주가 백제에 속한 시기는 4세기 근초 고왕(近肖古王, 346∼375)때부터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을 9주로 나누어 도독을 배치하면서도 계속 무진주와 완산주 (지금의 全州)는 그대로 불렀다. 그런데 757년(경덕왕 16년) 12월에 경덕왕이 고을이름을 중국식인 외자로 고치면서 무진주는 무주로 완산주는 완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무주가 광주(光州)로 바뀌게 된 것은 940년(고려 태조 23년) 3월에 여러 주(州), 부(府), 군(郡), 현(縣)의 명칭을 바꾸었을 때부터이다. 그 뒤에도 1362년(고려 공민왕 11년)부터 1773년까지 무진 주(武珍州)라 하였는데 '武'를 피하고 '茂'로 바꾼 것은 고려 혜종(943∼945)의 이름에 '武'자가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조선시대에도 1430년(세종12년)부너 1451년(문종1년)까지 다시 무진군(武珍郡)이라 불렀던 때가 있었다.

        백제시대에 무진 혹은 노지라 이름을 쓰게 된 것은 원래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란 옛 지명에서 연유한 것인데 未冬은 습지를 뜻하는 우리 옛 말인 물들, 물둑(水堤), 무들,무돌을 차자표기한 것이다. 즉 未冬이라고 적고 무돌이라 발음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미동부리(未冬夫里)의 부리는 '벌' 즉 벌판이라는 우리 옛말이다. 이것을 백제시대에 와서 무돌의 '무'는 한자음의 '武'로 표기하고 무돌의 '돌'은 뜻으로 볼 때 '珍'이 되므로 무돌을 무진(武珍)이라 하고 광주를 무진주(武珍州)라 했으며 무등산을 무진악(武珍岳)이라 한 것이다.

        '무돌'은 또 '무지개를 뿜는 돌'이란 뜻을 지닌 순우리말의 조어(造語)로 보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지금보다도 낱말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썼다. 죽고 사는 것을 '죽사리'라고 했는데, 그것은 동사 '죽살다'에서 온 것이다. 갈대밭으로 이루어진 산를 '갈뫼'라고 했다. 따라서 조어 '무돌'의 무등산은 무지개처럼 곱고 아름다운 돌산이란 뜻도 된다. 무등산을 서석산(瑞石山)이라고 불렀던 연유도 '무돌'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진다. 예사람들은 돌을무척 신성시했고 신앙의 대상물로 섬겼던 것으로 미루어 서석산이란 글자 그대로 상서로운 돌산이란 뜻이라 하겠다.

 




        무등산은 대체로 육산(肉山 또는 土山)으로 되어 있으나 그 특색은 오히려 웅장한 암석미에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서석대, 입석대, 규봉 등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하여서쪽에 서석대가, 남쪽에는 입석대가 위치하고 있는데, 특히 서석대는 마치 수정 병풍을 둘러친 것처럼 아름다운 직절상(直截狀)의 석조(石條)로 이루어진 총석(叢石)의 집단이며 이곳을 '서석의 수정병풍' 이라고도 한다.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 것은 고려 때의 일로 추측된다. 무진주를 광주로 고쳐 부른것은 940년(태조 23년)인데, 『고려사 지리지』는 '무등산'이라 적고 혹은 '무진악이라 하고 혹은 서석산이라한다(一云 武珍岳, 一云 瑞石山)'고 그 명칭의 유래를 기록하고 있어 서석산이란 이 름이 이때부터 무등산의 별칭 또는 애칭으로 함께 불려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있다.

        『동구여지승람』은 『고려사』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 '이 산 서쪽 양지 바른 언덕에 돌기둥 수십개가 즐비하게 서 있는데 높이가 가히 백척이나 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서석이라했다 (山西陽崖 數十櫛立 高可百尺山名瑞石 以此)'라며 서석의 유래를 밝히고 있다.

        송강 정철은 성산별곡에서 '천변(天邊)에 뜨는 구름 서석을 집을 삼아'라 하였고 제봉 고경명도 『遊瑞石錄』을 남겨 무등산을 예찬하고 있어 서석산은 조선시대의 문인들 사이에서도즐겨 쓰였던 이름임을 알 수 있으며, 현재까지도 무등산의 별칭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등산에는 현재 우리가 서석이라 부르는 서석대 말고도 입석대, 규봉, 그리고 정상 3봉을비롯한 의상봉, 새인봉, 중봉 등 직립형 돌무더기가 곳곳에 흩어져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이러한 돌무더기를 우리 조상들은 '선돌' 또는 '신돌'이라 불렀던 것이니 뜻을 취하면 '立'이 되고 음을 취하면 '瑞'가 되었던 것이다.

        부정(不淨)을 피하고 성지를 예찬하던 고대의 풍숩은 이처럼 신체(神體)에 비길수 있는 천연의 석경(石景)을 상서롭고 신성한 뜻으로 받아들여 '瑞'로 대하였던 것이니, 무등산의 돌 경관은 어느것이나 서석이요 입석이지 따로 구분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가. 따라서 이러한 서석의 절경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이름하였던 것은 과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광주의 옛 어른들은 흔히 무등산을 '무당산' 또는 '무덤산'이라고 불렀다. 그중에서도 무당산이라 부르는게 반드시 어떠한 연듀가 있었을 것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무당곡'이라 부르던 골짜기가 증심사 뒤쪽에 있었고 깃발을 나부끼는 무당의 움막이 듬성듬성 서있었다. 곳곳에서 무당들의 내림굿이 펼쳐지기도 했었다.

        '무당사'은 '무당'에서 불려진 것이며 또한 무등산의 신령스로운 기운과 영험함을 믿는 민중의 믿음을 따라 이산을 '무당산'이라 불렀음직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전에 있었던 원시종교속에서 싹텄던 '당산'의 신앙이 곧 무등산을 '큰당산'으로 삼게 했고, 그것을 '무당산'이라 부렀을 것이다. 이렇게 당산을 신성시했던 시절에 무등산을 무당산으로 불렀던 이유는 곧 이 산을 신산(神山)으로 보았던 옛사람들의 토속신앙에서 연유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무등산은 동서남북 어디에서 보나 형상이 비슷하고 뒷면, 즉 등성이에 변화가 없다. 홑산으로 이루어진 그 모습이 마치 무덤처럼 둥글넓적하게 생겼다고 하여 속칭 '무덤산'이라 했을 법하고 또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늘 덤덤하고 무덤덤한 심성을 상징하는 산이라해서 붙여진 속칭일수도 있다. 그러나 육당(六堂)은 부정을 몹시 싫어하는 우리나라 풍속으로봐서 이렇게 큼직한 신역(神域)에 '무덤산'이라는 흉측한 명칭을 썼을 것 같지 않다면서 '무당'이와전된 것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으며, 노산도 때부터 이 고을 사람들이 무등산에 무덤만 써도 부정탄다고 여기며 신성시했던 점을 들어 '무등산'의 와전으로 보고 있다.

 


 

        무정산은 조선왕조를 창건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왕명에 불복한 무정한 산이라 지칭한데서 연유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여러 명산대천에 왕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무등산 산신만은 그 소원을 거절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 그는 나라를 세운 뒤에도 국내 명산의 산신들에게 제사를 올려 왕업이 수백대에 이르도록 이어지기를 빌엇고, 또 자기 손에 죽은 고려말 명신(名臣)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자주 산신에게 빌었다고 한다. 특히 나라에 가뭄이 계속되자 왕명으로 남쪽의 명산 무등산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했으나 무등산신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비가 내리지 않앗으므로 왕명에 불복한 무등산 산신을 멀리 지리산으로 귀양보내고 이산을 무정한 산이라 하여 무정산(無情山)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국여지승람』에 '無等山神祠 新羅爲小祀 高麗致國祭本朝春秋令 本色致祭'라적어 고려 때까지는 나라의 제사를 모시다가 조선조에 와서는 산신의 격을 낮추어 고을제(色祭)로 지내게 한 사실을 두고 이러한 전설이 전해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무정산' 역시 무등산에서 와전된 말일 것이라 생각된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瑞石山)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부른 이름으로 '무돌', '무진'이라 했던 것이 무등산으로 바뀐 것이다.

        무등산의 어원에 대해서 몇가지 설이 있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등산의 '무등'은 앞서 적은 바와 같이 '무돌'의 이두음인데, 이 '무돌'에는 옛 농경사회의 보편적 지명인 '물둑(水堤)'이라는 뜻과 순수 우리 옛말의 조어인 '무지개를 뿜는 돌'이라는 뜻에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고,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뜻도 있겠으나 이미 '무당산' 대목에서 말한 대로 '당산'과 비슷한 음을 따서 한자로 나타냈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노산은 이 산이 불교적 영장(靈場)이 된 뒤에 불교적인 가치를 설명한 이름일 것이라고주장하기도 했다. 불교사전(동국역경원 간)에 으하면 '無有等等'은 부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있어서 견줄이가 없다는 뜻이라 하니 결국 무등산은 불교의 이 말을 빌려다 이름으로 삼아 불교적 가치를 더욱 높인 것이라고 하겠다. 과연 이 주자에 걸맞게 부등산은 불교와 인연이 적지 않다. 곳곳에 수많은 사찰과 고승들의 전설이 서려 있고, 산의 경관이 좋은 곳마다 불교적 명칭들이 남아 있다. 지왕봉을 비로봉, 인왕봉을반야봉이라 부르기도 하며, 삼존석(彌勒, 觀音, 如來)이나 의상봉, 윤필봉, 규봉의 법화, 설법, 능엄 등 여거 대(臺)의 이름에서도 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출처 : http://honey.kwangju.ac.kr/~love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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