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歷史,宗敎,哲學/(역사)韓國敎會史

개신교 수용과 성장 [보존자료]

好學 2009. 9. 6. 22:15

개신교 수용과 성장

한국에서 개신교는 1832년 입국한 독일 선교사 귀츨라프(K.F.A. Güzlaff)와 1866년 이땅에서 첫 순교자가 된 영국 선교사 토마스(R.J. Thomas)의 선교 시도에서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선교는 1884년 이후 입국한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초기 선교사들은 주로 교육과 의료사업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벌였는데 특히 성경과 찬송가의 발행은 한국민들이 주체적으로 복음을 수용하고 기독교의 본질을 파악케 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선교사들에 의해 간행된 교리서와 전도서는 개신교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한국 개신교의 수용과 성장은 한국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요구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미 선교사들이 입국하기전에 성서가 들어오고 교회가 설립되는 등 자생적인 신앙의 바탕이 형성되고 있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만주지역에서 진취적인 서북청년들을 중심으로 한글성경이 간행되었고, 일본에서는 개화파 지식인에 의해 성서가 번역되어 국내에 들여와 외국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에 이미 한국민들에게 읽혀지고 있었다. 


초기선교사(아펜젤러,알렌,언더우드)


서상륜과 소래교회


성서번역위원회

예수교서회

개신교 선교의 시도
1870년대 말에서 1880년대 초 한국인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되기 이전에 한국에 대한 서구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 시도가 있었다. 귀츨라프(K.F.A. Güzlaff) 선교사와 토마스(R.J. Thomas) 목사가 대표적이다. 독일 출신의 귀츨라프는 해외선교 목적으로 1832년 7월 17일 황해도 장산곶 부근에 도착하여 한문성경과 물건을 주며 접근했으나, 정부당국과의 접촉은 실패했다. 7월 23일경에는 충청도 홍주만 고대도(古代島) 앞에 정박하여 국왕에게 바치는 통상청원문서와 선물을 보냈으나 거절당하였다. 한편 런던선교회 소속 선교사 토마스는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년)으로 순교함으로써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는 순교 순간까지도 한문성서를 전하며 복음전도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다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양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 이후 미국 각 교단의 선교사 파견이 이뤄졌다


전도여행기
1832년 네덜란드 선교사 귀츨라프가 한국 선교를 위하여 영국 상선을 타고 군산만에 와서 한역성서 전파를 시도하였고 감자종자와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 때 귀츨라프는 국왕에게 정식으로 통상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 전도여행기는 개신교 선교사 도래의 효시가 되는 증거물로서의 의미가 크다


한국서해안항해기 
1816년 영국 군함 두 척이 한국의 서해안을 탐사하고 마량진(馬梁鎭) 첨사(僉使) 조대복(趙大福)에게 성경 한 권을 기증하였는데, 이것이 성경의 한국 전래 효시이다. 이 성경을 전해준 리라(Lyra)호 함장 바실 홀(Basil Hall)은 영국으로 돌아가 한국 여행기를 발표하였는데, 내용의 기발성과 우아한 문장으로 환영을 받았다. 이 여행기는 조선을 서양에 소개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신약전서
영국 런던 선교회 소속 중국 선교사로 활동했던 토마스(R.J.Thomas) 목사가 1866년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에 동승하여 한국에 도착, 평양 대동강 위에서 순교하기 직전 전한 성서이다.



출저:기독교 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