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주일예배]

성도의 믿음 관리 (막6:1-6) [원고]

好學 2009. 8. 9. 20:34

 

성도의 믿음 관리 (막6:1-6)



믿음의 유무는 구원 및 하나님의 역사와 관계된 중요한 것이다. 또 믿음의 대소는 주님의 칭찬과 책망의 대상이 된다. 믿음은 커야 아름답다. 좋은 믿음을 위해서 관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 구함으로 관리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관리해야 한다. 말씀 떠난 믿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음은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함으로 관리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굳게 붙잡으려고 해야 하며 좋은 양심 속에 믿음이 깃들기 때문이다.

(설교)

성경을 보면 믿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의 평가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믿음이 크다, 믿음이 작다, 믿음이 훌륭하다, 믿음이 있다, 믿음이 없다, 그래서 믿음이 있고 크면 칭찬을 받았지만 믿음이 없고 작으면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믿음의 유무 대소크기에 따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달랐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불가능이 없고 구하는 것 이상으로 받지만 믿음이 없으면 주신 것마저도 빼앗기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창고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 그것의 일부밖에는 받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믿음의 유무 대소크기에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풍성은 자기 믿음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희망적이라고 보는 것은 지능도 뛰어날 뿐 아니라 꿈들이 큽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영의 축복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조하지만 우리 믿음관리야 말로 그 무엇보다 잘 관리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믿음은 어떻게 관리해야 잘하는 것일까요?

1. 믿음은 하나님께 구함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살후3:2에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엡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면 더욱 풍성하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9장에 간질하는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9:24) 구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제자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17:5) 부르짖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한 것은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전 12장을 보면 성령의 은사 가운데 믿음의 은사가 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믿음의 특징은 클수록 아름답고 강할수록 좋습니다. 하나님께 구하여 놀라운 믿음의 은사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2. 믿음은 말씀을 통해서 관리합니다.

롬10:17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습니다. 말씀이 기초가 되지 않는 믿음은 자기 신념일 뿐입니다. 믿음과 신념은 아주 다릅니다. 믿음은 진리에 기초한 것이지만 신념은 인간의 지식과 사고 혹은 허망한 것에 기초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1992년 10월 28일 24시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시한부 종말론자들 그들의 실수는 그 근거를 진리에 기초하지 않음에 있었습니다. 즉 성경을 자의로 해석하고 또 귀신들린 사람들의 헛된 예언을 근거로 예수님이 오시니 논 팔고 밭팔아 다 헌금하고 모여 기도하다가 예수님의 재림 시 들려 올라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도 예수님이 오시지 않자 예수님이 오시긴 오셨는데 지금 공중에서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고 계신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습니다. 이런 신념은 아무리 강해도 그것은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유창한 메시지일지라도 진정한 영적 지도가 결여된 말씀이라면 모래 위의 집짓기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병 고치시고 떡을 먹이실 때는 구름떼와 같이 몰려왔지만 영적 진리를 전하자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요즘도 영적 설교에 대부분의 교인들은 아멘도 하지 않습니다. 인기가 없습니다. 아무리 용기를 주는 말씀 같아도 영적 지도가 되지 못하는 말씀이라면 언젠가는 그 믿음이 모래 위의 집과 같아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신다면 큰일입니다.

본문에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믿지 않고 배척 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이 권세와 능력의 말씀과 표적을 행할 때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했지만 곧 그들의 머리에는 예수님의 육신의 배경이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바울도 예수를 육체대로 알았으니 이제는 아무 육체도 육체대로 알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믿음이 오직 진리로만 기초 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 예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그들은 진리의 하나님보다 보이는 애굽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이사야 20장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벗은 발 벗은 몸으로 3년을 외치고 다니며 애굽도 이렇게 벌거벗겨 잡혀가니 애굽을 믿지 말라. 오직 하나님을 믿을 것이요 바벨론이 침략해 오면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는 역적이죠.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의 예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승리를 주실 것이다. 형통한 복을 주실 것이다. 큰 영광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다. 얼마나 힘을 주는 말씀입니까? 즉 회개 없는 복만 외쳤습니다. 이 말씀이 더 달콤했던 백성들은 애굽을 믿다가 바벨론에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성전은 파괴되고 대부분 죽거나 잡혀가고 나라조차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믿음을 관리해야 합니다.

3. 믿음은 우리 마음으로도 관리해야 합니다.

알아야 할 것은 믿음이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으려고 힘써야 하고 아름답고 큰 믿음 갖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믿음이 크다 작다 있다 없다 이렇게 칭찬하시거나 책망하셨는데 이것 역시 일종의 믿음 관리입니다. 믿음을 위해 힘써야 할 필요가 없다면 칭찬이나 책망하실 리가 없겠지요.

히10:22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이라 했는데 여기 “참 마음”은 ‘진실하고 충성된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 진실 되고 충성된 마음이란 생명을 건 믿음입니다. 또 진실 되게 믿기에 조금의 의심이라도 용납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또 충성 된 믿음이기에 전적으로 목숨 걸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믿음”은 ‘그 양이 충분한 믿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큰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크고 담대한 믿음을 목표로 믿음 관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히10:35에도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히4:16에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믿음을 목표 삼고 나가야 합니다. 요14:12에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주인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을 우리의 목표로 삼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성령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리고 알고 보면 우리에게 있는 믿음이 곧 예수님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예수님의 믿음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4. 믿음은 겸손과 회개로서 관리해야 합니다.

딤전1:19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아처럼 믿음은 양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 양심이 선하지 않으면 믿음은 깃들 수 없습니다. 가령 양심의 가책을 받아 정죄의식 가운데 있으면 마음에 믿음이 다 사라진 느낌이 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파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양심관리가 바로 믿음 관리인 셈인데 양심을 잘 관리하려면 양심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늘 새롭게 해야 합니다. 죄 무서운 줄 모르고 행하는 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양심이 지나치게 예민해 죄 짓지 않았어도 혹은 회개했어도 지속적인 율법의 정죄상태에 있지 않도록 해야 한비다. 그러기 위해서는 담대히 아버지 사랑과 보혈 공로에 늘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보혈공로 의지하여 양심의 평화를 유지한 상태에서 날마다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되어 갈 때 큰 믿음이 우리에게 깃들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신앙을 정의하기를 벧전3:21에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와 화목을 위해서는 우리 심령이 더욱 새로워지고 보혈로서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진실로 겸손과 회개함으로 믿음 관리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믿음대로 되는 세계에서 살고 있기에 내 인생을 아무에게 탓할 수 없습니다. 내 믿음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잘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도로서 관리하십시다. 말씀으로 관리하십시다. 온전한 마음으로 관리하십시다. 그리고 선한 양심으로 관리하십시다. 그래서 예수님께 칭찬 받고 믿음대로 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