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2부 7 - John Bunyan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노인 어른 말씀만 믿고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 말을 전해도 된다는 거죠?
총명함 :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 마시오.
내 말은 그 착한 여인과 네 아이들이 이미 순례의 길을 떠났다는 뜻이오.
우리는 당분간 같은 길을 가게 될 것 같으니까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리다.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순례의 길을 떠난 날부터
크리스티아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남편이 강을 건너간 후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자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상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먼저 떠오른 생각이 자기 남편을 잃어버렸다는 것,
곧 사랑하는 부부관계가 영원히 끊어져버렸다는 생각이었지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인간인 이상 사랑하는 친족을 잃었을 때
그 추억으로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겠소?
그래서 남편 생각에 참 많이도 울었지요.
그뿐이 아니었소.
그녀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무정한 태도가
결국 남편과 영원히 헤어지게 된 원인이 아니었던가,
그 때문에 남편이 자기를 버리고 혼자 떠난 게 아니었던가 하고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게다가 자기의 사랑하는 남편에게 평소에
불친절하고 부자연스럽고 불경스럽게 대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그 모든 것들이 죄의식으로 변해 양심에 무거운 짐이 되었지요.
더욱이 순례를 떠나기 전 남편이 보여주었던 그 끈질긴 호소,
쓰디쓴 눈물 그리고 스스로 한탄하던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요.
함께 가자고 그녀와 아이들에게
애원하고 사랑으로 호소하던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아먹던 생각이 들어
그녀는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지요.
등에 무거운 짐을 진 크리스찬이 자기 앞에서 보여준
몸짓과 언동이 불현듯 기억에서 되살아나
그녀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듯했소.
무엇보다도 "어떻게 해야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던
그의 부르짖음이 그녀의 귓전에서 구슬프게 울리고 있었소.
마침내 그녀는 자기 아이들에게 말했지요.
"얘들아, 우린 이제 다 틀렸다.
나는 네 아버지를 혼자 떠나보낸 죄를 지었단다.
네 아버지는 우리를 데려가려 했지만 내가 말을 듣지 않았단다.
결국 나는 너희들의 생명까지 훼방을 놓은 셈이 되었구나."
이 말을 들은 사내아이들은 일제히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자고 울부짖었다.
크리스티아나가 말했다.
"아, 우리가 네 아버지를 따라가기만 했어도
지금 당하고 있는 이 고통은 덜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비록 처음에는 어리석게도
너희 아버지가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어리석은 공상이거나 아니면 우울증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 원인은 다른 데 있었구나.
아버지는 죽음의 함정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도움이 될 빛을 하사받으셨던 거야."
그 말끝에 그들은 다시 한 번 울면서 소리쳤소.
"아, 저주스런 그날이여!"
이튿날 밤 크리스티아나는 꿈을 꾸었다는군요.
꿈속에서 넓은 양피지 한 장이 자기 눈앞에 펼쳐졌는데,
그 위에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 행실들이
그 시간과 함께 낱낱이 기록되어 있더라는 것이오.
그녀는 잠을 자면서 크게 울부짖었지요.
"주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옵소서."
어린아이들도 그 소리를 들었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녀는 아주 못생긴 두 사람이
자기 침대 곁에 서 있는 것을 본 듯했는데
그들이 이렇게 말하더라는 거였소.
"이 여자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자나 깨나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말이야.
이대로 내버려두어 계속 괴로워하게 하다가는
그녀의 남편을 잃어버렸듯이 그녀마저도 잃어버리겠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 여자가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까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도록 막아야겠어.
그냥 두었다가는 이 여자가 순례의 길에 오르는 것을
어떻게 해서도 막을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