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

정직에 관한 사담(私談)

好學 2009. 7. 9. 01:30

 

 

정직에 관한 사담(私談)

 

뜻대로 살기에서 - 해리 팔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정직한 사람을 찾는다고 등불을 들고 아테네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디오게네스의 가장 훌륭한 가르침이 견유(세상에 대해 냉소적이란 뜻)파 철학으로 알려지게된 것을 보면 그가 찾아 헤맨 것도 결국은 헛수고였다고 생각된다.

 

정직성이란 거론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운 주제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화제에 올리는 따위의 무모한 짓을 하려 들지 않는다.

해적들, 범죄자들, 사기꾼들, 협잡꾼들만이 자신의 정직성을 가장 크게 떨벌린다.

연설자가 그것을 들먹이기만 해도 망신을 당하기가 십상인 주제가 되어 버린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니 나는 '내가 그대들보다 더 거룩하도다'라고 외치는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중요한 주제이다.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하면 사람은 자신의 진실한 느낌을 논리적인생각으로 대치해 놓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느낌이 어떤가요?"하고 물으면 그는 현재 있는 것을 그대로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사고(어떻게 느껴야 옳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거짓으로 입에 발린 '솔직한'느낌을 내보이는 것은 대개가 남을 속이거나 조종하거나

자신의 속셈을 감추기 위한 짓이다. 예컨대, "저를 믿어 주지 않으시니, 정말 가슴이 아프군요"하는 식으로 말이다. 타인을 부정직하게 대하면 그를 존중하는 마음이 줄어들게 마련이다.우리가 저버린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먼저 그를 속인 것이다.

우리의 자신에 대한 존중심과 자기의 잃어버린 자아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치가 적용된다.완강한 자존심의 밑바닥에는 부정직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정직성에 대해 쉽사리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어떤 부분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지도 않고 자동적으로자기는 정직하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뭔가를 저지르고 있을 때 현장에서 붙잡으면 거의 어김없이 하는 첫 마디가 "내가 안했어요!"이다.

 

척하기는 믿음 없이 하는 상상이다. 창조는 믿음을

갖고 하는 상상이다. 자신의 척하기를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그것을 실제로 창조해 낸다.

 

자기가 한 행동들을 정직하게 돌아보기보다는 그것을 방어하는 쪽이 더 쉬운 것 같다.

우리는 잘못을 시인하기보다는 공격하는데 더 민첩하다. 잘못을 스스로 시인하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직은 정말이지 용기의 문제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자신의 부정직을 거짓으로 정당화할 때, 용기도 함께그 연막 속에 묻혀 버린다. 자신의 부정직에 그럴 듯한 핑계-고생, 절망, 무지, 희생 등등-를 찾아 낼 때마다 우리는 자신이 피해 다니고 있는 그것이 과연 두려워할 만한 대상이라는 증거를 쌓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것뿐이다.

즉, 두려움이란 자신이 어떤 것을 정면으로 대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하나의 신념이다.

그리고 그 신념은 우리가 끌어 모아 놓은 모든 실패의 증거들보다 먼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똑바로 대면할 용기가 있는가?

이것이 삶의 가장 엄중한 시험이다. 실패하면 그것은 곧바로 무의식속으로 묻혀 버리고 만다.두려움으로부터 나오는 무지, 이것이 사람들이 부정직한 까닭이다. 두려움을 만들어 낸 신념은 혼란 속에 파묻혀 버리거나, 굴욕의 수치감 속에 숨어 버릴 수도 있다.

그 결과 걸핏하면 회피하고 잊어버리고 멍청해지게 되며, 게다가 정의로운 편에 속하고 싶은 충동은 우리의 무지를 더욱더 부채질한다.

 

부정직한 행위를 똑바로 쳐다보며, "두려워서 그랬다. 끝!" 해버리면 얼마나 속이 후련한가!

그것이 바로 감추어진 두려움을 발견해 내는 첫걸음이다. 얼마나 마음이 편한가!

더 이상 세상을, 환경을, 혹은 누군가를 바꿔 보려고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다!

혼자서 해낼 수 있다. 오직 용기를 모아서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스스로 지니고 있는 신념만 찾아내면 된다!

모든 부정직한 행위의 밑바닥에는 그런 신념이 적어도 하나는 반드시 있다.

여기 세계의 미래에 대해 심오한 의미를 시사하는, 주목할 만한 통찰이 있다; 사람들이 투명하게 숨어 버린 신념들을 다루어 내면 그들은 저절로 더 정직해진다.

 

의도적인 '척하기'는 하나의 행동기술이며, 이것을 두려움에서 나오는 습관적인 척하기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습관적인 척하기는 자신의 의도를 위장하려는 특별한 형태의 부정직이다.

습관적인 척하기를 관찰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습관적인 척하기는 자신의 주의를 빨아먹고 창조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습관적인 척하기는 의욕을 꺾어 놓고 직관적 능력을 밀어낸다. 습관적인 척하기는 세상을 조화롭게 사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습관적인 척하기는 안으로 스트레스를 일으키며, 그것은 항상 터져 나올 구멍만 찾는다.

그 결과가 때로는 질병이고 때로는 폭력이다.

 

결국, 습관적인 척하기는 타인을 정직하게 대하는 능력과 자신을 정직하게 살피는 능력을 죽인다.

자신의 척하는 태도를 지적받거나 책망 받으면 사람들은 방어적이고 비판적인 반응을 나타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자신의 진솔한 느낌과 교감하지 못하게 된다.

척하는 사람들은 과시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무감각한 거짓 자아상을 지어낸다.

척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의 척하는 태도를 정직하게 일깨워주면, 그들을 헐뜯고 입방아를 찧으며 뒤에서 공격한다. 그리하여 이것이 결국 습관적인 행동방식이 되어 버린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척한다고 생각하여 폭로를 공격의 장기로 삼는다.

 

척하는 사람들은 지레 겁먹고 나쁜 행동에 빠져든 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숨겨 놓은 의도에 따라 행동한다.

그들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속고, 기만당하고, 강도당하고, 거짓말에 놀아나고, 횡령당해 마땅한 인간상을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들씌운다.

반사회적 인사들, 범죄 심리를 가진 사람들, 범죄자들 등을 정의하는 일람표를 만든다면 그들의 대부분은 척하는 사람의 부류에 속할 것이다.(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다소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일리있는 현명한 처세법이다.)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의 일탈자가 된다.

그들은 신뢰에 결코 부응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을 신뢰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신을 벌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배신당했노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다.

그것이 그들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성실해지려고 하지는 않고 죄의 대사면에 기댄다; "누구나 죄를 짓는다"면서. 그들의 사생활은 엉망인 대인관계와 실패한 계획들로 뒤범벅 되어있다.

결국 척하기는 감추려고 했던 두려움을 오히려 더욱 키워 놓는다.

 

척하기는 믿음 없이 하는 상상이다.

창조는 믿음을 갖고 하는 상상이다. 자신의 척하기를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그것을 실제로 창조해 낸다.

 

"내가 함께 하지 않은 잘못을 당신은 저지른 적도 없고 저지를 수도 없다"

*****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생각이겠지만, 내가 세상에서 부딪히는 부정직은 나 자신의 척하기의 반영이다.

다른 사람들은 부정직하고 나만 정직한 척 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것은 세상의 부정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함정이다.

세상의 집단적 부정직을 바로잡기 위해 온정을 품고 다가가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 다 부정직하다.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처벌이나 폭로, 위협은 형편없는 처방이다. 그보다 좋은 방법은, 우리 각자가 사생활에서나 대인관계 속에서 용기 있는 정직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설사 우리 자신을 척하는 사람들의 비난과 심판 앞에 내맡기는 일이 될지라도 말이다.

 

정직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정직해지는 것은 자신을 새롭게 회복시켜 주는 행위이다.

용기를 끌어 모아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탓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온전히 느낄 때, 우리는 자기 삶의 청사진을 회복할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을 직시하고 그것을 만들어 낸 투명한 신념들을 찾아 낼 것이다.

자신에게 더 정직해진다는 것은 세상의 집단의식 속에 더 많은 정직성을 불어넣음을 뜻하며, 이것이 그 위에 밝은 지구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

 

정직하게 살면 결과적으로 느끼고 나누게 된다.

온정과 공감!

다른 사람들의 의식에 기꺼이 어우러지는 것은 환희로운 일이다.

관심과 창조적인 에너지는 상승효과를 가져다준다. 유대망과 새로운 기회들이 절로 나타난다.

아무리 많은 돈과 권력과 명성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안정감과 보람을 누릴 수 있는 인간관계가 꽃핀다.

진정한 신뢰감이 솟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