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A Confession (8)
by Leo Tolstoy
All these doubts, which I am now able to express more or less systematically, I could not then have expressed. I then only felt that however logically inevitable were my conclusions concerning the vanity of life, confirmed as they were by the greatest thinkers, there was something not right about them. Whether it was in the reasoning itself or in the statement of the question I did not know -- I only felt that the conclusion was rationally convincing, but that that was insufficient. All these conclusions could not so convince me as to make me do what followed from my reasoning, that is to say, kill myself. And I should have told an untruth had I, without killing myself, said that reason had brought me to the point I had reached. Reason worked, but something else was also working which I can only call a consciousness of life. A force was working which compelled me to turn my attention to this and not to that; and it was this force which extricated me from my desperate situation and turned my mind in quite another direction. This force compelled me to turn my attention to the fact that I and a few hundred similar people are not the whole of mankind, and that I did not yet know the life of mankind.
이 모든 의혹들은, 나는 이제 다소 체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때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당시 단지 인생의 허무함에 관련된 나의 결론들이, 비록 위대한 사상가들에 의해 확인되었으며, 아무리 논리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에 관해서는 옳지 않은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꼈다. 그것이 추론 자체에 있었는지 아니면 의문에 관한 발언이었는지 나는 몰랐다-나는 단지 그 결론이 이성적으로 믿을 수 있으나 불충분하다고 느꼈다. 나의 추론에 따른 것을 내가 행하도록 하기에는, 즉, 자살하기에는, 이 모든 결론들은 나를 별로 납득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자살하지 않고서, 이성이 나를 내가 도달했던 지점에 나를 데려다 주었다고 말한다면, 나는 거짓을 말했을 수도 있었다. 이성은 작용했다, 그러나 내가 오직 인생을 의식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이 작용하고 있었다. 나의 주의를 다른 곳이 아니라 이곳으로 돌리도록 강요하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절망적 상황에서 구출하였으며 나의 마음을 매우 다른 방향으로 돌린 것은 바로 이 힘이었다. 이 힘은 나의 주의를 나와 수백 명의 비슷한 사람들이 전체 인류가 아니며, 나는 아직 인류의 인생을 모른다는 사실에 돌리도록 나를 강요하였다.
Looking at the narrow circle of my equals, I saw only people who had not understood the question, or who had understood it and drowned it in life's intoxication, or had understood it and ended their lives, or had understood it and yet from weakness were living out their desperate life. And I saw no others. It seemed to me that that narrow circle of rich, learned, and leisured people to which I belonged formed the whole of humanity, and that those milliards of others who have lived and are living were cattle of some sort-not real people.
나와 좁은 범위에 속한 나의 동류들을 쳐다 보면서, 나는 오직 그 질문을 깨닫지 못했거나, 그것을 깨달았으나 인생에 도취되어 빠져버렸거나, 그것을 깨달았으나 그들의 목숨을 끝내버렸거나, 그것을 깨달았으나 아직도 나약함으로 그들의 절망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다른 아무도 보지 못했다. 나에게는 내가 속한 그러한 좁은 범위의 부유하고, 학식 있으며, 여유 있는 사람들이 전체 인류를 형성하며, 살아왔으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 수백만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가축-진짜 사람이 아닌-처럼 보였다.
Strange, incredibly incomprehensible as it now seems to me that I could, while reasoning about life, overlook the whole life of mankind that surrounded me on all sides; that I could to such a degree blunder so absurdly as to think that my life, and Solomon's and Schopenhauer's, is the real, normal life, and that the life of the milliards is a circumstance undeserving of attention-strange as this now is to me, I see that so it was. In the delusion of my pride of intellect it seemed to me so indubitable that I and Solomon and Schopenhauer had stated the question so truly and exactly that nothing else was possible-so indubitable did it seem that all those milliards consisted of men who had not yet arrived at an apprehension of all the profundity of the question-that I sought for the meaning of my life without it once occurring to me to ask: "But what meaning is and has been given to their lives by all the milliards of common folk who live and have lived in the world?"
인생에 대하여 추론하면서, 모든 측면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인류의 전체 인생을 간과할 수 있었다는 것; 내가 그런 정도로 너무 어처구니 없이 실수하여서 나의 인생, 그리고 솔로몬의 인생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인생을 사실적이며 정상적인 인생이며, 수십억 인구들의 인생은 주의를 가질 필요가 없는 부차적인 문제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이제 이상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해할 수 없게 느껴졌다-이것이 지금 나에게는 이상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러했음을 안다. 나의 지성의 자만심이란 착각 속에서 나 그리고 솔로몬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그 문제를 너무 진실되며 정확하게 언급하여서 내게는 다른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음이 너무나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수십억의 사람들이 그 질문의 모든 심오함의 이해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이 너무나 분명해 보였다-나는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 한번도 내가 물어야 할 것을 떠올리지도 않으면서: ‘그러나 세상에 살고 있으며 살아온 모든 수십억의 보통 사람들에 의해서 그들의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의미가 주어졌는가?’
I long lived in this state of lunacy, which, in fact if not in words, is particularly characteristic of us very liberal and learned people. But thanks either to the strange physical affection I have for the real labouring people, which compelled me to understand them and to see that they are not so stupid as we suppose, or thanks to the sincerity of my conviction that I could know nothing beyond the fact that the best I could do was to hang myself, at any rate I instinctively felt that if I wished to live and understand the meaning of life, I must seek this meaning not among those who have lost it and wish to kill themselves, but among those milliards of the past and the present who make life and who support the burden of their own lives and of ours also. And I considered the enormous masses of those simple, unlearned, and poor people who have lived and are living and I saw something quite different. I saw that, with rare exceptions, all those milliards who have lived and are living do not fit into my divisions, and that I could not class them as not understanding the question, for they themselves state it and reply to it with extraordinary clearness. Nor could I consider them epicureans, for their life consists more of privations and sufferings than of enjoyments. Still less could I consider them as irrationally dragging on a meaningless existence, for every act of their life, as well as death itself, is explained by them. To kill themselves they consider the greatest evil. It appeared that all mankind had a knowledge, unacknowledged and despised by me, of the meaning of life. It appeared that reasonable knowledge does not give the meaning of life, but excludes life: while the meaning attributed to life by milliards of people, by all humanity, rests on some despised pseudo-knowledge.
나는 오랫동안 이러한 정신이상 속에 살았으며, 그것은, 사실상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우리같이 매우 자유주의적이며 학식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두드러졌다. 그러나 이상한 현실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가진 나의 이상한 물리적인 애착 때문으로서 그들은 나로 하여금 그들을 이해하게 만들며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둔하지 않으며, 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을 목매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나의 확신의 진지함 때문에, 어쨌든 나는, 내가 인생의 의미를 살아서 깨닫고 싶다면, 나는 그것을 잃어 버리고 자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그러나 인생을 영위해 가며 자신들 스스로 및 우리들의 짐 또한 지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수십억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나는 살아 왔으며 살고 있는, 단순하며, 배우지 못하고, 그리고 가난한 그 엄청나게 많은 일반 대중 사람들을 숙고하였다 그리고 나는 상당히 다른 무엇을 보았다. 나는, 드문 예외들은 있지만, 나의 분류에 적합하지 않는 살아 왔으며 살아 있는 그 모든 수십억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분류할 수 없었으니, 왜냐하면 그들 자신은 보통이 아닌 명료함으로 그것을 말하며 그것에 대답하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또한 나는 그들을 쾌락주의자로 간주할 수도 없었으니, 그들의 인생은 즐거움보다는 더 많은 궁핍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들이 의미 없는 존재를 터무니 없이 질질 끄는 것이라고 전혀 간주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 인생의 각각의 행위, 죽음 자체 마저도, 그들에 의해 설명되기 때문이다. 자살하는 것을 그들은 가장 큰 악으로 여긴다. 모든 인류는, 나에 의해 인정되지 않았고 경멸 되었지만,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성적인 지식은 인생의 의미를 주지 않으며 인생을 제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수십억 사람들, 전체 인류에 의하여 인생에 부여된 의미는 경멸 되고 있는 약간의 유사 지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Rational knowledge presented by the learned and wise, denies the meaning of life, but the enormous masses of men, the whole of mankind receive that meaning in irrational knowledge. And that irrational knowledge is faith, that very thing which I could not but reject. It is God, one in Three; the creation in six days; the devils and angels, and all the rest that I cannot accept as long as I retain my reason.
학자들과 현자들에 의하여 제시된 이성적 지식은, 인생의 의미를 부정한다, 그러나 엄청나게 많은 일반 대중, 전체 인류는 비이성적인 지식으로 그런 의미를 받는다. 그리고 그런 비이성적인 지식은 신앙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은 내가 거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다, 삼위 일체중의 하나인; 육일 만의 창조; 악마와 천사들,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들로서 내가 이성을 지니고 있는 한 받아 들일 수가 없다.
My position was terrible. I knew I could find nothing along the path of reasonable knowledge except a denial of life; and there -- in faith -- was nothing but a denial of reason, which was yet more impossible for me than a denial of life. From rational knowledge it appeared that life is an evil, people know this and it is in their power to end life; yet they lived and still live, and I myself live, though I have long known that life is senseless and an evil. By faith it appears that in order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life I must renounce my reason, the very thing for which alone a meaning is required.
나의 입장은 두려웠다. 나는 내가 인생의 부인함 이외에는 이성적인 길을 따라가면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곳에-신앙에는-오직 이성의 부정 만이 있었으며, 부정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인생을 부정한다는 것보다 훨씬 더 불가능하였다. 이성적인 지식으로부터 인생은 악이며, 사람들은 이것을 알며 그리고 인생을 끝내는 것이 그들의 권한 안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살았으며 아직도 살고 있다, 그리고 비록 나는 오랫동안 인생은 무의미하며 악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나 자신도 살고 있다. 신앙에 따라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나의 이성, 오직 이것을 위해 의미가 부여되는 바로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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