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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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신의 가호, 국민의 사랑, 덴마크의 힘(Guds hjælp, Folkets kærlighed, Danmarks styrke) | |||||
국가: 사랑스러운 땅에서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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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코펜하겐 55°43′ N 12°34′ E | ||||
공용어 | 덴마크어 | ||||
정부 형태 | 입헌군주제 마르그레테 2세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 ||||
건국 • |
8세기경 | ||||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
43,094 km² (134위) 1.6% | ||||
인구 • 2008년 어림 • 인구 밀도 |
5,475,791명 (108위) 129.16명/km² (78위) | ||||
GDP (PPP) • 전체 • 일인당 |
2006년 어림값 $1,985억 (45위) $37,000 (6위) | ||||
HDI • 2004년 조사 |
0.943 (14위) | ||||
통화 | 크로네 (ISO 4217:DKK ) | ||||
시간대 • 여름 시간 |
CET (UTC+1) CEST (UTC+2) | ||||
ISO 3166-1 | 208 | ||||
ISO 3166-1 alpha-2 | DK | ||||
ISO 3166-1 alpha-3 | DNK | ||||
인터넷 도메인 | .dk | ||||
국제 전화 | +45 |
(덴마크어: Kongeriget Danmark 콩게리게트 단마르크)
문화어: 단마르크, 통용: 정말(丁抹))은 유럽에 있는 입헌 군주국이며, 수도는 코펜하겐이다.
고대 덴마크
고대부터 윌란 반도(유틀란트 반도)에는 데인 족이 살고 있었다. 카를 대제의 북진정책의 결과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졌다. 811년 프랑크 왕국과 아이더 강을 국경으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바이킹의 해상원정은 8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 구드프레드 왕은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의 공격을 잘 막아내었다. 10세기에 기독교가 전래되었다. 11세기 초 크누트 대왕(재위 1014∼1035) 때에 덴마크-노르웨이-잉글랜드(동군연합)의 왕위를 겸하는 대왕국을 창건하였다. 크누드가 죽자 곧 그 대왕국은 분열되고, 덴마크는 다시 스칸디나비아의 한 세력으로 전락하였으나, 크누드의 조카 스벤 2세에 의해 로마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신 덴마크 왕국이 건설되었다. 스벤 2세가 죽은 뒤, 1074~1134년까지 스벤 2세의 다섯 아들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고, 그 동안에 한때 앵글로색슨의 세력하에 있던 덴마크교회는 다시 함부르크의 세력하에 들어갔다가 1104년경 룬드를 대주교구로 한 독자의 국교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1134년 이후, 다시 교회와 국가의 분열 및 국내분쟁이 지속되다가, 1157년 발데마르 1세(재위 1157∼1182)가 일어나서 국내를 통일하고 발데마르 왕조를 일으켰다. 발데마르 1세는 군사력을 재편성하여 독일에 대항하고 발트해의 슬라브 세력과 싸웠는데, 그때 슬라브인의 침입에 대비하여 셸란섬에 구축한 성채가 오늘날의 코펜하겐의 기원이 되었다.
동군연합의 성립
발데마르 2세 때 정치적·경제적 발전이 촉진되었으나, 그가 죽자 다시 왕·교회·귀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서 왕권이 약화되고, 또 같은 시대에 발트해의 지배 및 슐레스비히의 영유권를 둘러싸고 스웨덴·노르웨이·한자동맹 세력과의 항쟁이 지속되어 왕국의 약체화를 가져왔다. 발데마르 4세가 죽은 뒤, 발데마르의 딸 마르그레테와 그녀의 남편, 즉 노르웨이왕이자 스웨덴 왕위계승자인 노르웨이의 호콘 6세의 아들인 덴마크의 올라프 2세(재위 1375∼87)가 왕위에 오르자 마르그레테가 섭정이 되어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해오다가 호콘 6세, 올라프 2세의 사후인 1387년 덴마크 및 노르웨이의 군주로 승인받았다. 마르그레테는 다시 1389년 스웨덴왕을 겸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동군연합 형태의 3왕국의 통합은 1397년의 이른바 칼마르 동맹에 의해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1448년 덴마크의 왕조는 올덴부르크가로 바뀌었으나 칼마르 동맹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동군연합의 해체와 절대군주제 확립
1520년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가 독립을 요구하던 스웨덴과 전쟁을 벌여 보게순 전투에서 스웨덴의 스투레 일파를 격파하고 스톡홀름에 입성하여 분리주의자들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스웨덴은 다시 봉기하여 독립을 이룩하여, 결국 1523년 칼마르동맹은 해체되었다. 덴마크의 종교개혁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3세에 의해 추진되어 루터교가 받아들여졌으며, 한편 그 무렵에 노르웨이는 자치운동이 완전히 봉쇄당한 채 사실상 덴마크의 속국이 되어 버렸다. 크리스티안 3세 때는 원로원 등 귀족세력의 강화를 바탕으로 해서 경제의 발전 및 학자의 배출 등 국가번영의 기운을 보였으나, 그 후 덴마크의 프레데릭 2세 때 발트해의 주도권을 놓고 덴마크·스웨덴·폴란드·뤼벡 사이에 ‘북방 7년전쟁’이 일어났고,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4세 때는 2차에 걸친 스웨덴과의 싸움으로 국토의 손실과 국력의 쇠퇴를 가져왔다. 1660년 덴마크의 프레데릭 3세는 귀족세력과 대립하는 도시부르주아 및 루터교 성직자와 결합하여 왕위의 세습제를 승인받고, 1665년에는 국왕의 절대주권을 승인받아 절대군주제를 확립하였다.
근대 덴마크
1788년 농노제가 폐지되고, 1797년 자유무역의 원칙에 입각한 관세법이 성립되어 덴마크의 경제가 활력을 얻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 함대의 공격을 받고 나폴레옹 편에 서게 된 덴마크는 영국·러시아·스웨덴 등 동맹국과 싸운 끝에, 1814년의 킬 조약에 의해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할양하고 4세기에 걸친 노르웨이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하여 덴마크의 영토는 현재의 덴마크와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그린란드으로 국한되었다. 국내적으로는 프레데릭의 절대왕정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1842년에는 입헌적 대의정치를 주장하는 국민자유당이 결성되었다. 그리하여 1849년 덴마크의 프레데릭 7세는 자유주의자들의 요구에 따라 전제정치를 포기하고, 자유헌법을 성립시켜서 입헌군주제를 수립하였다. 또한 1864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패배하여 홀스텐(홀슈타인)과 슬레스비(슐레스비히)를 상실했으며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1920년, 북슐레스비히를 수복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중립을 지켰으나 독일 바로 근처였기 때문에 민간인 상선들이 독일 잠수함에 격침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어 1944년까지 고초를 겪었다. 덴마크에 사는 사람들 중 유대인들이 독일군에게 끌려갔으나 동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비율이 미미하였다. 또한, 전쟁 중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독일군들이 빼앗았다. 1945년 5월에 덴마크 전체가 연합군에 의하여 해방되었다. 1944년에는 덴마크의 영토였던 아이슬란드가 독립하게 되었다.
한국 전쟁과 덴마크
한국 전쟁 당시 덴마크는 의료 지원을 했는데 병원선 유틀란트 호를 보내 유엔군과 민간인 구호활동을 크게 폈다. 전쟁 후 병원(국립의료원/메디칼센터)을 지어 한국의 의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지리
덴마크는 윌란 반도와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빙하 침식에 의해 산이 별로 없으며, 평야가 많다. 예전에는 황무지가 많았으나 개간되었다.
수도는 코펜하겐
이 부분의 본문은 덴마크의 정치입니다.
덴마크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기반한 의원 내각제로 정부가 구성되는 입헌 군주국이다. 현재의 국가 원수는 여왕 마르그레테 2세이며 정부의 수반은 총리가 맡고 있다. 2007년 총선 결과 자유당의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이 총리직을 3번째 연임했다.[1]
주민은 게르만계의 덴마크인이 대부분이며 다른 민족은 적게 존재한다.
언어
덴마크어가 공용어이다. 덴마크인과 노르웨이인은 서로 자국어로 이야기해도 무리 없이 서로 통한다.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도 외국인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덴마크의 문자 해독률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종교
루터교가 국교로 인정받으며 그 외에 감리교, 모라비안, 구세군 등의 다른 개신교 종파들과 동방정교회가 존재한다. 로마 가톨릭의 경우는 0.55% 존재한다. 이슬람교, 유대교 등의 다른 종교는 아주 적게 존재하며, 특히 이슬람은 아랍 세계나 이란에서 온 이민들이 믿는다.
이 나라는 문맹률이 매우 낮은 나라이며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이 나라의 자치령인 페로 제도와 그린란드 역시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이 나라에서는 징병제를 실시한다.
경제
이 나라의 자치령인 페로 제도와 그린란드는 2005년부터 지리는 물론이고 경제·외교적으로도 자치를 얻었다. 덴마크 본토 또한 세계적인 경제 수준을 자랑한다.
문화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이 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같은 군주 밑에서 연합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형제의식이 강하다.
대한 관계
한국 전쟁 때 대한민국에 병원선 유틀란트 호로 의료 지원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병원선의 의료 기자재를 한국에 기증하고 한국에 국립의료원을 설립하여 한국의 의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2007년 현재 덴마크에는 약 9000명의 한국 입양인이 있으며 교민은 250여 명이 있다. 한국 대사관, KOTRA, 한인교회, 한국센터, 한글학교가 있고 정한친선협회, 유틀란트 모임, 코리안 클럽, 한인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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