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한국文化)

옛 조상들이 입었던 옷

好學 2012. 10. 19. 08:36

 

 

 옛 조상들이 입었던 옷

 

중국 사람들은 '식의주(食衣住)'인데 반해, 조선사람들은 '의식주(衣食住)'라고 한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밥이나 집보다, 옷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나 하는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옷(이하 복식)은 한반도라는 지역 환경 아래에 수천 년을 이어 내려오면서 각 시대 상황에 맞게 변천 적응하여 왔다. 한복의 특색은 아한대성 기후로 삼한사온이 계속되는 자연 조건과 북방 유목민 계통의 문화요소가 어우러져 있다.
한복의 기본형은 소매가 직선형이며 앞에 트임이 있고 옷 전체가 평면구성으로 이루어진 것이 그 특징이다. 한복의 기본구조로 관모(冠帽)저고리, 치마, 바지, 포(袍),대(帶),이(履)등을 손꼽을 수 있다.
상고시대 복식의 기본구조는 시대와 함께 변천을 겪으며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는 승유억불의 사대명분론을 좇은 시대였다. 모든 계층에 따른 복식이 정비되어 다양하게 꽃피었다. 그러면 신분과 성별에 따른 조선시대 갖가지 전통 복식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남자 복식
1. 왕(王)의복식
: 왕의복식은 권위와 위엄을 갖춘 것으로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면복
강사포와 원유관
황룡포와 익선관

 

♤ 면복 : 면류관과 곤복으로 되어있다. 왕이 종묘 사직 등에 제사지낼 때는 제복으로 왕과 왕세자의 혼례인 가례 시에는 법복으로 그 외에 정조(正朝),동지,조회,수책등에입던옷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왕과 왕족의 제복인 장복제도가 정비되었다.
♤ 곤복 : 곤복에서는 옷에 수놓거나 그리는 장문(章文)이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조선시대 왕은 아홉가지장문을 사용한 구장복을 입었고 왕세자는 차등을 두어 칠장복을입었고, 고종은 십이장복을 착용하였다
♤ 조복 : 왕이 신하들의 조견을 받을 때 착용한다. 원류관과 강사포.
♤ 상복(常服) : 시무복으로 익선관과 곤룡포로 이루어졌다.
♤ 곤룡포 : 왕은 오조원룡보 왕세자는 사조원룡이며 왕세손은 삼조방룡보이다.
겨울엔 대홍색의단으로,여름에는 사로만들었다.

2. 백관의복식
: 제복,조복,공복,상복(常服)등으로 구분되며 편복과 유사시 몸을 가볍고 날렵하게 하기 위한 융복(戎服) 이 있었으며 또한 무관에게는 전복(戰服) 구군복의 제도가 있었다.

 


백관의 제복
금관조복
관복(문관) : 단령과 사모

 

♤제복(祭服)
: 문무관의 제복은 왕이 종묘와 사직에 제사지낼 때 입는 옷이다. 제복은 청초의며 조복에 없는 방심곡령이 있다.
♤조복(朝服) :조복은 대사, 경축일, 원단, 동지 및 조칙을 반포할 때 입었다. 금관조복은 화려하게 금칠한 양관과 적초의, 홀(忽), 목화(木靴) 로 이루어진다.
【홀】: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 조복에 가춰 쥐던 물건 길이는 한자쯤 너비는 두 치쯤이며 얄팍하고 길쭉함 일품부터 사품까지는 상아 오품 이하는 나무로 만들었다.
♤공복 : 공복은 재외 문무관이 공사와 사은 관계로 배알할 때 입었다.
♤상복(常服) : 문무관이 평소 직무 할 때 입는옷 사모(紗帽)에 단령(團領)이다.
【단령】: 소매가 넓고 깃이 둥근 단령은 길이가 뒤꿈치에 닿을 정도로 긴 것으로 관급에 따라 포(袍)의 색깔이 달랐다. 사모관대에 단령은 서민층 신랑의 혼례복으로도 착용되었다.상복단령의 가슴에는 흉배가 부착되었다.

3. 사대부의복식 : 사대부의 복식중 바지,저고리 위에 겉옷인 포(袍)는 의례적 요소가 강하다.
대표적인 포류는 심의,철릭,직령,도포,창의,두루마기등이다.

 

 

심의
홍철릭과 주립
도포와 흑립
대창의와 정자관

 

 

【두루마기】: 두루마기는 골고루 터진곳 없이 두루 막혔다는뜻으로 무와 옷고름이 덧붙여져 오늘날과 같은 두루마기로 뿌리내렸다.
여름에는 모시홑단두루마기 봄과 가을에는 목면, 비단 두루마기 겨울에는 솜을 두어 만든 솜 두루마기와 누비두루마기를 입었다.

여자복식

 


1. 궁중여자복식
♤적의(翟衣)
: 비빈의 법복으로 적문(꿩문양)을 직수한 포를 말한다. 꿩문양은 친애와 해로를 뜻한다. 대홍단으로 지었고 앞면의 좌우가 배자처럼 서로 곧바로 내려가 여며지지 않는다.
♤원삼(圓衫)
: 통일신라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여자의 예복으로 대의 대수 이며 소맷단에는 여러 색의 천을 이어 달았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왕비, 왕세자비, 왕세손비 등의 소례복으로 대군비, 관직자, 부인등의 대례복으로 화관과 같이 입었다 황후는 황원삼을 왕비는 홍원삼을 비빈은 초록원삼을 입어 품계의 차등을 나타냈는데, 초록원삼은 서미능에게도 신부 예복으로 착용이 허락되었다.
♤활옷
: 공주와 옹주의 대례복으로 착용되었던 활옷은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일반서민층 여자의 혼례복으로도 많이 사용하였다 활옷의 길은 홍색이고 앞 어깨의 양편, 앞길의 밑단, 뒷길, 소매에 장수와 길복을 뜻하는 여러 가지 문양을 채색사로 자수했다
♤당의
: 당의는 좁은 소매이고 길이가 무릎까지 온다. 비빈이 입던 직금 당의에서부터 금박을 찍은 당의나 민가의 예복으로 입는 민자, 당의 등이 있다 황후의 당의는 자색이고 왕비는 홍색이며 그 아래로는 초록색이나 백색, 흑색이다

 

.
적의와 대수머리
황원삼과 어여머리
활옷과 칠보화관
당의

 

2. 일반여자복식

  서민 여자는 저고리와 적삼, 치마, 단 속곳, 바지, 속속곳 다리속곳에 버선과 짚신을 기본으로 하였다.
저고리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짧은 저고리가 일반화였고 조선시대 말엽에는 젖가슴조차 못 가릴 정도였다.
일반여복
기녀복

 

3. 기녀복식
  기녀는 능라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을 수 있었고 가죽신을 신으며 노리개를 패용 할 수 있었다.
삼회장저고리나 겹치마는 못 입도로 막았으나 반회장저고리는 허용하였으며 치마는 흩 치마로 오른편으로 여미어 양반부녀와 구별하였다. 저고리는 길이가 짧고 치마는 폭이 넓고 길어 풍성함과 에로틱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우리 전통장신구 - 머리

 

 


1.댕기 :

도투락댕기, 금박머리띠(일반댕기)

도투란댕기란? (앞에서부터 3개) : 궁중이나 양반 가문에서 신부가 원삼이나 활옷의 혼례복을 입고

족두리나 화관을 쓸 때 쪽진 머리의 뒤쪽에 붙여 길게 늘어뜨린 뒷댕기를 말한다. 족두리를 쓸 때에는

댕기의 뾰족한 부분에 끈을 달아 매어 단다.

금박머리띠(일반댕기)란? (끝에 1개) : 미혼자의 땋은 머리 끝에 드리우는 장식용 끈

 


새앙머리 :

두갈래로 땋은 머리를 한데 모아 위아래로 가지런히 놓고

덩어리지게 잡아 맨 후 댕기를 드린다.

 


2.비녀

한자로는 잠(). 쪽을 고정시키는 것이 주목적이면서 장식의 구실도 겸하였고,

재료와 형태에 따라 명칭·용도 등이 달랐다. 조선 후기 영조 때에 사치를 금하기 위하여 모든 부녀의 

머리모양에 쪽머리가 일반화되면서 비녀의 모양이 다채로워졌다. 

 


3.떨잠

큰머리나 어여머리의 앞중심이나 양옆을 장식하던 것으로 이것이 움직이는대로

떨리게 되어 있어 머리에 율동감을 주고 한층 화려함을 더해준다.

 


4.뒤꽂이

쪽진 머리 뒤에 ?C꽂는 비녀 이외의 장식품으로 장식적인 것 외에 실용적인 면을 겸한것으로는

아래와 같이 귀이개뒤꽂이(左), 빗치개뒤꽂이(右) 등이 있다.

 

빗치개 뒤꽂이 : 가리마를 갈라 머리를 정돈하는것 뿐만 아니라 밀기름을 바르는데도 사용했고

빗살 틈에 낀 때를 빼는데도 사용했다.

 


 

 


5.첩지

왕비를 비롯하여 내명부·외명부가 가리마를 꾸미던 것으로 계급의 표시이기도 함.

(화관이나 족두리 착용시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도 했다네요. ^^)

도금된 용·봉첩지는 왕비가 달았고 도금·은으로 된 개구리첩지는 내·외명부에서 착용했다.

 

 


6.화관

조선후기 왕실에서 활옷과 당의에서 착용하였고, 민간은 혼례식날 착용토록 허락하였다.

왕실용은 각종구슬과 함께 은파란 새 장식 또는 파란비녀가 양쪽에 꽂혀있고 앞드림이 없다.

민간용은 가구슬을 사용하고 오색견사를 많이 사용하여 아름답게 장식했다.

 

 


7.족두리

원삼이나 활옷에 갖춰쓰던 관의 하나로 영조때 가체금지령이 내린 후 성행하게 되었다.

궁중양식이었으나 조선말기에 민가에도 널리 퍼져 혼례식에 사용했다.

 

 


8.풍차

추위를 막기 위해 착용했던 방한모로 조선초에는 양반계급이 주로 썼으나 점차 평민과 여성들도 쓰게되었다.

남바위와 비슷한 형태로 뺨과 턱을 가리는 볼끼가 있고 사용하지 않을때는 뒤로 접어서 끈을 매었다.

(위 그림은 남바위같아요. 볼끼부분이 탈부착되어 보이는데... 풍차사진이 없어서~

풍차를 착용하면 저런 모습인데 볼끼가 본체랑 아예 이어져있어요.)

 

 


9.남바위

겉감의 가장자리에 털가죽을 둘러 붙이 방한용 모자로 원래 노인이 갓 밑에 귀를 가리던 것이었으나

후기에는 남녀노소 서민층까지 모두 사용했다. 풍차처럼 뺨과 턱을 가리는 볼끼가 있는데

탈부착이 가능했고 이 것은 주로 여성용이었다.

 

 

 

10.조바위

부녀자만의 방한모로 위는 트이고 옆은 귀를 덮고 뒤는 트여서 쪽진머리나 땋은 머리가 보인다.

다른 방한모와는 달리 털가죽을 달지 않는다.(풍차, 남바위, 아얌은 털을 단다.)

 

 


11.아얌

귀를 내놓고 이마만 덮는 것으로 아얌 착용시 뒷면에는 아얌드림이라는 댕기같은 것이 있다.

(사진 왼쪽은 유물로 드림이 소실됨) 아얌 또한 부녀자의 방한모

 

 



↑12.전모

 

조선시대 여성들이 나들이 나갈때 쓰던 쓰개의 하나.

주로 멋내기를 좋아하는 기녀들이 바깥나들이를 하거나 말을 탈 때 썼고, 사대부 집안의 부녀들이 사용한 예는 찾아볼 수 없지만 의녀와 기행나인들이 써서 궁중에서도 사용했던것으로 보인다

 

출처http://blog.daum.net/oukoh/5539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