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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현실 2

好學 2012. 4. 17. 22:31

한국교회의 현실 2

 

 

기독교인들에게 긴급히 전합니다. 긴급히 전달을 요구합니다.

 

이 글은 부분적이라도 안티와 교회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복사를 전면 금지합니다.

물론 다른 종교인이나 무신론자들에게도 복사를 금지합니다.(위반시 법적조치)

 

이 글은 기독교에 지혜를 요구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마지막 글 매우 중요)

현재 반기독교 정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깊숙히 퍼져있습니다.

 

Xㅡ마스 기간인 12월 달에 예수를 알리는 츄리와 케룔들 조차 기피하는 도심을 봐라!

 

반기독교 안티들의 극성은 12월 기독교 축제인 크리스마스 마져도 초토화 시켰다.

과거 12월 달이면 모든 도심에는 케롤이 온통 울리면서 예수의 탄생을 자연스럽게 알렸다.

 

그러나 안티들이 극성을 부리면서 몇 년 동안 12월 기독교 축제까지 잠식한 것이다.

아마 속으로는 종교편향이라고 주장했던 불.교들이 가장 기뻐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웃기는 것은 그런 불.교가 성탄추리를 만들면서 교활하게 생색을 낸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말한다면 정말로 역겨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도대체 정치와 종교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정치적으로 종교갈등을 이용하는가?

종교는 정치와 전혀 무관하며 직접 개입할 수 없는 것이 헌법에 있다.

 

우스운 것은 과거 민주화 열사와 희생자들은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나라를 종교적으로 갈라놓으면 과연 지금 누가 유일할까?

 

이런 것들을 적극 사용하기 위해서 기독교 대툥령 & 전 국민들로 갈라놓았던 것이다.

물론 가장 피해를 본 것은 기독교인들이 어이없게 반기독교 저항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성도는 수백 만이 줄었고, 심지어 기독교는 이미 심각한 정체와 침체로 나타났다.

기독교 안티들은 이런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시위 현장에 나가봐라. 기독교까지 폄하하는 노래가 연일 울려퍼지고 있다.

이게 현재 대한민국의 종교갈등 현실이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현상일까?

 

결론으로 말하면 종교갈등과 종교편향을 주장했던 불.교가 가장 큰 수혜를 받고 있다.

그들은 초기부터 전체 불.교가 들고 일어나 종교편향에 대한 반정부 운동을 시도했다.

 

다음은 쳔주교다. 이렇게 다른 종교들은 대부분 급성장하는 조심을 보이고 있다.

반면 기독교는 뚜렷하게 여론조사와 통계조사 모두에서 급격히 추락하는 징조를 보였다.

 

단순히 추락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청소년들이 가장 반기독교 성형!

이것은 기독교가 모두 목숨을 걸고서 대처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노년층 중심인 주일 11시 예배를 과감히 청장년층 중심으로 바꿀 의양이 있는가?

한국교회는 노년들 중심에서 미래의 용사인 젊은층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은 청소년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단순한 생각이지만 청소년과 청년들을 교회의 변방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노년층 중심에서 학생과 청년층 중심으로 과감히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의 형식도 율법적인 모습을 탈피하고 충만한 영적인 모습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교회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한국교회는 단순한 위기가 아닌 만만치 않는 엄청난 영적인 위기가 닥쳐왔던 것이다.

이미 이방종교들은 종교갈등을 틈타서 모두 결집하면서 급성장을 노리고 있다.

 

그 외에도 이방종교 뿐 아니라. 이단들과 싸이비들까지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기독교의 침체가 단순한 것이 아닌 뿌리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는 젊은 층에서 대부분 가장 반기독교가 가장 노골적으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한국사회의 세대갈등 현상과 매우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 메체와 언론들 안에서 교회 비판이 이제는 주요 단골이 될 정도라면 문제가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방종교 외에도 무신론자까지도 대부분 반기독교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 심각성은 종교 선호도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결국 삼대종교 중에서 기독교를 가장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국민들은 종교 중에서 기독교를 가장 멀리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원인은 대형교회 비리와 소수의 기득권 운영에 대한 반발심도 여기에 해당 된다.

 

현재 뷸교는 젊은층들 숫자가 대폭 증가하고 있다고 들었다.

쳔주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기독교만 유난히 급격히 정체되면서 줄어들고 있다.

 

이런 불신 현상은 교회에 대한 일방적인 문화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요즘 사회 속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자꾸 기독교 방송에 나온다.

 

이것은 선교에 가장 치명적인 것이다. 부끄러움도 없고 오직 자신의 위세만 생각하는가?

그들이 비록 막강한 자본을 가진 대형교회 목사들이지만 시대를 지금은 먼저 읽어야 한다.

 

교회의 세습에 대한 비판이 사회적으로 큰 부작용을 만들때에 오히려 눈감고 선택했다.

물론 아들이 교회의 후임을 맡는 것은 그 교회의 교인들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문제 없다.

 

그러나 많은 교회도 사회도 이런 모습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면 신중했어야 했다.

이러한 교회의 대물림은 사회 속에서 교회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우게 된 중요한 원인이다.

 

지금은 사회가 정상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라면 교회도 눈을 뜨고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귀사탄의 비판이라고 일방적인 비판으로 치부하는 것은 더 강한 반발심만 형성된다.

 

교회가 변하면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다르게 볼 것이다.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한다.

대형교회도 소형교회에 신도들도 과감히 보내야 한다. 즉 모두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십 만, 수만 명의 교회들은 너무 비대하기 대문에 역동성으로 보아도 한계가 있다.

서로 얼굴을 맞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공동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적정 숫자는 천명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작은 교회들은 통폐합을 통해서 최소 100여명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교회는 너무 작아도 문제가 되지만 너무 커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교회의 공동체는 사람들이 서로 교제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적절한 숫자가 필요하다.

 

모두가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으로 교회는 개혁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소형교회들이 힘 없이 다 죽어가는 현실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현재의 한국교회는 자본주의 교회다.

모든 것이 경쟁과 자본으로 원리로 운영이 되는 조직적 시스템이다.

 

문제는 현재 자본주의 운영에 대한 저항이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월가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자본주의의 부작용에 강력하게 항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공교롭게도 한국의 대형교회라는 자본주의 교회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안티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 뿐 아니라 교회에 대한 자본주의 현상까지 묶어서 공공의 적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에 의한 교회의 부작용을 해소하는 것이 교회의 개혁과제가 된 것이다.

 

대형교회들은 재벌기업과 같아서 재정적으로 조직상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작은교회와 중형교회들은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경쟁력이 크게 약화 되었다.

 

한국교회는 중소교회가 건강하게 살아나야 전체적으로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수직적으로 몇 사람에 의해서 지배되는 시대를 거부하고 있다.

 

특권층과 소수에 집중된 권력들을 분산시키고 다양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일반 사회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들이다.

 

과거에는 가수나 연예인들도 특정 회사와 인기가 있는 자들이 독식을 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전방위적으로 능력있는 자들을 발굴하는 개방프로가 많아졌다.

 

이런 현상은 더 많은 배우와 가수와 예능인들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교회도 과거 소수가 리드하는 시대에서 이제는 다수가 리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좀 더 많은 유능한 설교자와 교회의 인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중소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해서 교회는 더 많은 유능한 설교자를 찾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성도들이 설교자를 더 많이 찾도록 해야 하며 그들을 세워야 한다.

 

교회의 운영 체재를 좀 더 다양화 하고 인재를 더 많이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 몇 사람에 의해서 교회가 운영되는 시대는 구시대적인 발상들이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공동목회와 성도들의 자발적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를 분업화 하고, 교회의 운영은 장로들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또한 헌금에 대한 일방적인 집행보다는 성도들이 목적이 우선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헌금을 사용할 다양한 목적을 부여하고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는 헌금을 걷는 자체가 목적이 되었고 그것을 교회가 독점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헌금 자체가 목적이 아닌 성도들의 신앙동기와 참여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방법은 자신의 헌금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목적성을 강하게 부여해야 한다.

지금은 일방적이고 명령 하달식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헌금은 먼저 목적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십일조, 주정헌금, 각종 감사헌금이라는 명목보다 영적사업이 먼저다.

 

그럼 성도들은 영적인 사업이란 목적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헌금을 하게 될 것이다.

헌금을 미리 걷고 이후에 목적을 만들어서 집행하는 순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감히 선교, 봉사, 구제, 교회운영 등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자신들이 관심이 많은 곳에 헌신하도록 하는 것이 참여 신앙이다.

 

이단과 이교사상을 이길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신학교 교육 무료화!

 

지금은 가장 영적으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단들은 대부분 사상적으로 저급한 신학에 의해서 양성이 된 것이다.

 

따지고 본다면 교회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이제 신학을 사유화 하지 말자.

과감히 모두에게 전면 공개하고 무료로 제공하며 인터넷으로 송출해야 한다.

 

이단들과 이교도들을 모두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막강한 무기는 복음이다.

이 복음의 농축된 액기스가 신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꼭꼭 묶어 놓고 기독교 부흥을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이다.

영혼구원을 위해서 생명까지 던져야 할 신학교는 이제 과감히 선택해야 한다.

 

신학교 재정이 어렵고 심지어 문교부 인가가 취소가 된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이다.

복음은 그런 비용보다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가장 귀한 무기다.

 

중세시대 면죄부를 비판했다면 이제 교회는 복음장사를 모두 비판해야 한다.

누구나 신학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목회자는 철저히 수급을 조절하면 된다.

 

중세시대 성직자들이 성경을 사유화 하고 그것으로 교회의 부와 권력을 얻었다.

개신교는 이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교회가 영혼과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감투도 벗어 던지고 과감히 교회를 공동체적 정신으로 분업화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위에서 하려고 한다면 성도들의 영적인 참여와 생명력은 더 감소할 것이다.

 

신학교 교육을 전면 개방화 시키는 것은 주님의 간절한 뜻이다.

교수들이 힘들어도 해야 할 절대적 사명이라는 것이다. 진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자.

 

물론 신학교육 무료송출은 신학교와 교수와 교단들의 이권들과 깊이 연관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런 이권들을 우리가 따질 때가 아니며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늦었다. 어쩌면 복음을 값 없이 주는 것이 교회분열을 막아내지 않을까?

하나님의 신학를 과감히 물질에서 벗어나게 한다면 교권주의도 약해질 것이다.

 

우리는 안티들이 개독이라는 거짓 선동에 개혁으로 맞서야 한다.

사실 개독소리를 듣고도 개혁하지 않는다면 진짜로 개독이 될 수 있을까 두렵다.

 

기독교 매체 파격적으로 운영해야 복음전파도 불 붙는다.

 

기독교 방송, 인터넷 방송, 기독교 포털 방송들 전격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현재 너무 비효율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본인만의 생각일까?

 

기독교 방송도 대형교회 목사와 노인세대 중심 그리고 시대에 뒤 떨어졌다고 본다.

물론 대형교회 스폰서를 받고 출연료를 받아서 운영을 하기 때문에 이해는 된다.

 

그러나 기독교 방송은 결코 돈으로 운영이 되는 것이 아닌 영혼을 위한 사명이 먼저다.

사명을 위해서 영적인 투자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먼저 기독교 방송의 설교와 프로그램를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기독교 방송의 설교에 참가하는 자들을 공개적으로 전격 공모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 많은 신학생과 목회자들의 지지율과 투표방식으로 선택하라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 프로그램도 지금보다 몇 배로 사실상 대폭 늘려야 한다.

기성세대는 대부분 이제 서서이 저물어 가는 석양의 태양과 같은 세대라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이렇게 줄어든다면 미래 노인들이 다 떠나면 교회도 텅텅 비어갈 것이다.

기독교는 이렇게 위기 중에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 반기독교 정서로 청소년들이 이방종교와 세상으로 속속히 뛰쳐나가고 있다.

이런 위급한 상황은 청소년 범죄와 젊은 세대들의 범죄율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물론 가장 심각한 것은 교회의 청소년 층이 크게 위축을 받고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감안한다면 교회의 영적투자도 청소년에 대폭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현재 많은 교회들의 예산을 청소년 예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방송 프로그램도 젊은 층들에 호감을 받을 수 있는 프로가 절실히 요구된다.

 

젊은 신세대 목회자들을 기독교 매체에 투입시키는 것이 지금은 절실히 필요하다.

기독교 프로그램과 운영자와 참가할 대상들을 공개적으로 선정해야 한다.

 

물론 인터넷과 각종 쇼셜 네트워크를 동원해야 하며 참가자를 공개선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프로에 관심이 있는 자들이 직접 헌금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과 목회자를 지원하고 투표하는 새로운 참여 방식이다.

이렇게 획기적인 성도들의 참여 방송이 된다면 기독교 방송은 훨신 나아질 것이다.

 

지금과 같이 스폰서 대형교회와 몇 목사들이 잠식하는 독점방송은 구시대적 방식이다.

과감히 성도들을 참여시켜야 하며 쌍방이 소통하는 방송으로 변화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유행하는 나꼼수와 같이 교회를 개혁하는 나꼼수도 나와야 한다.

또한 요즘 유행하는 투명한 공개선정 방식인 슈퍼스타와 위대한 탄생도 참고하자.

 

이런 것들이 왜 젊은 층들에게 인기를 크게 얻고 있는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즉 성도들과 젊은층들이 참여하는 교회와 방송과 인터넷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와 같은 독선적인 운영을 탈피한다면 청소년들의 눈과 귀를 교회로 돌릴 수 있다.

순수한 복음과 교회를 위한 소통문화를 만들어 간다면 청소년 침체도 멈출 수 있다.

 

과감히 방송은 프로그램을 공개적 공모와 참가자를 투표로 찾고 후원을 얻어야 한다.

많은 성도들이 원하는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면 후원은 하지 말라고 해도 늘어날 것이다.

 

인터넷 방송도 마찬가지이며 또한 포탈들도 참여와 자발적 후원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독점적 운영은 이제 한계가 왔다. 과감히 성도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독 방송도 질적으로 우수한 방송이 되도록 성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

동시에 방송도 여러 개로 확장해야 한다. 좀 더 많은 방송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중요한 방송매체를 기독교의 고집과 독선적 운영으로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은 발전하고 있는데 율법주의처럼 교회가 옛 것을 붙들고 있으면 되는가?

 

과감히 진리가 아닌 문제는 과감히 탈피하고 발전하고 영적인 유익을 위해서 선택하자.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전통은 과거 기독교의 아름다운 전통이었다.

 

기독교 회사와 업소와 식당들에게 알립니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과거와 같은 모습에서 속히 탈피해야 합니다.

먼저 기독교인 식당이나 업소는 당장 구약 성구가 들어간 액자들을 내리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식당을 운영하는 것은 종교와 무관한 영리적인 사업입니다.

그러나 안티성향은 일부가 아닌 전 국민들의 저항으로 나타난 것이 사실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독교인 18% 외 나머지는 반기독교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식당에서 기독교인이 운영하는 업소로 드러난다면 일단 손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간단히 살펴보면 타종교인 40%는 무조건 경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나머지 불신자들은 대부분 민족주의 성향으로 기독교를 경계하는 입장입니다.

 

그럼 답이 어느 정도 나온 것입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18%만 보고 장사를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기독교 성구인 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것을 보세요.

이런 비슷한 종교적 성구가 들어간 곳들이 일차적으로 경계와 타켓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성구는 선교와 복음전파에 사실상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방인들에게 종교적으로 골수 기독교라는 것을 알리는 결과만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집하면서 계속 하셔도 됩니다.

단 어떤 식당들보다 최선을 다하고 양심을 걸고 품질로 승부를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사실 자신은 알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은 일단 종교적인 색깔을 조금은 드러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시민들은 그 정성을 알게 될 것으로 분명히 확신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성도가 운영하는 업소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감동은 두배가 되겠죠.

 

제가 우연히 듣는 말로는 불쟈들은 절대로 기독교 업소를 기피한다고 들었습니다.

즉 종교적으로 이미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문제는 기독교인들보다 통계상 한국에는 불쟈들이 더 많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현재 무교인들도 대부분 불신자들과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문조사 결과 기독교인 숫자에 해당하는 정도만 기독교에 호감을 가진다고 나왔습니다.

그 나머지는 대부분 반기독교 성향이라는 것이 사실이겠죠.

 

이것은 10년 동안 이어진 종교갈등을 이용하려는 자들로 말미암아 형성된 것입니다.

그들은 사이비, 이단, 타종교, 일부 정치세력들까지 포함된 포괄적 세력들입니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교회 십자가만 보면 불쾌하다는 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심상치 않다는 것입니다.

 

공공포털 야후에서 십자가 혐오시설로 토론까지 되었습니다.

또한 정치적 데모에서 기독교 용어인 할렐루야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나올 정도입니다.

 

성도님 최선을 다해서 일하세요. 다만 기독교라는 것을 당장 드러낼 필요가 없습니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알려진다면 그것이 더 좋은 효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연예인들이 노골적으로 당한 자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심지어 기독교 연예인이 이런 전략에 자살한 자들도 있었고,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탸불로, 최진실, 한예슬, 정선희 등등 거의 타찐요의 타켓이 된 자들입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아셔야 합니다. 이런 현상은 일반 사회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뱀처럼 지혜가 필요합니다.

핍박을 받아도 좋다는 무대포 정신보다 좀 더 지혜롭게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교분리 정신을 가지고 식당을 운영하더라도 절대로 종교색깔을 드러내지 마세요.

매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지혜로운 운영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단언 합니다.

지금과 같이 반기독교 성향이 있는 상황에서 기독 색깔을 드러내면 10% 손해를 봅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기독교인들은 항상 지혜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고 해도 참 마음과 신앙으로 극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전파에 큰 영향이 아닌 식당의 성구간판 가지고 손해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교분리로 종교와 무관하게 운영하면서 모든 손님들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런 선한 결과는 언젠가 주인의 종교까지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개업 예배를 하면은 목사님들이 성구액자를 가지고 걸어놓기를 종종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라고 봅니다.

아주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목사님은 식당 매상에 영향을 올려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누가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비판의 대상이 되냐면 바로 목사님들입니다.

저도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성도들의 매상을 걱정해서 글을 올립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간사합니다. 안티들은 드러내놓고 불만을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위에서 들었습니다. 소근소근하는 비난은 여기도 걔독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현실을 먼저 인정하고 대처하는 것은 결코 악한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식당이나 업소들의 성구들은 복음전파에 큰 영향이 없는 문구입니다.

 

왜냐하면 사업번창 문구를 보면 대부분 잘되라는 것이나 혹은 그런 기복적인 내용입니다.

성도들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런 성구들로 축복이 쏟아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기독교 안티운동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제 주변에서 기독교라면 이를 가는 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속된 말로 폭풍과 쏘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좋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복음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언젠가 그들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다만 그때까지 성도들이 인내로 묵묵히 참고 지혜롭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럼 불신자들은 언젠가 그래도 교회 다니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말을 할 것입니다.

 

번창하라는 구약성경의 성구들을 걸어 놓은 기독교 문화! 지금은 조금 자제해야 합니다.

성경은 냉정하게 햇볕을 모든 자들에게 골고루 비춘다고 말합니다.

 

성구 때문에 부자가 되고 잘 된다는 막연한 부적과 같은 사상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평소 삶 속에서 진실하고 검소하며 정직하게 살면은 빛이 드러날 것입니다.

 

반 기독교 수치를 말한다면 삼대종교 중에서 최악입니다. 건국이래 역사상 최악입니다.

심지어 한국의 언론과 방송과 포털들까지 가세한 위험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심각한 수준인 것을 밝히겠습니다.

청소년들 약 70%가까이 반기독교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언젠가 한국 뿐 아니라 북한 그리고 아시아를 영적으로 회복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영적폭풍을 지혜롭게 건너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