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만화.그림.

[72] 세잔과 졸라

好學 2012. 3. 19. 20:24

[72] 세잔과 졸라

 

 

다른 분야의 예술인들이 절친한 친구가 되어 서로의 작품에 영향을 주고 성장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50년대 이후 작곡가 케이지, 화가 라우센버그, 그리고 무용가 커닝햄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현대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는 작곡가 쇼팽과 친해 그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들라크루아는 쇼팽이 얼마나 매력적인 천재인지에 대해 일기에 적었고, 천재는 특출한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1897년 작 생트 빅투아르 산.

반대로 절친했던 친구가 오히려 큰 상처를 준 경우는 화가 폴 세잔과 작가 에밀 졸라의 관계였다. 세잔과 졸라는 어렸을 때부터 단짝 친구였다. 남부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에서 자라난 이들 중 파리로 먼저 떠난 사람은 졸라였고 곧 파리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미술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당시 혹평에 시달리던 마네의 그림을 비호하는 글을 썼고 마네는 이에 대한 답으로 졸라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졸라는 세잔에게 편지를 써서 파리에 오라고 권유했다. 세잔은 파리로 진출했으나 그의 그림은 주목받지 못하고 무명화가로 남아 있었다.

1886년 졸라는 '작품'이라는 소설을 썼다. '작품'의 줄거리는 랑티에라는 화가가 완벽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그리고 또 그리다 결국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는 이야기였다. 세잔과 졸라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에게 '작품'은 세잔을 모델로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크게 상처를 입은 세잔은 고향으로 내려왔고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그 고장의 유명한 산인 생트 빅투아르를 그렸다.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관찰하면서도 그 밑의 구조를 화면에 공존시키려 끊임없이 고치고 다시 그린 세잔의 완성 작품들은 자연의 근원적인 질서가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된 것이었다. 세잔 자신은 끝까지 자신을 실패한 화가로 생각했지만 그의 마지막 20년의 작품들은 그 후 인상주의에서 입체주의로 발전하는 현대미술의 금자탑을 이루었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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