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칼 바르트 [Barth, Karl] - 3 칼 바르트의 생애와 신학

好學 2012. 3. 18. 21:09

    칼 바르트 [Barth, Karl] - 3 칼 바르트의 생애와 신학 

 

 

 

제2의 형태는 성경으로서,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특권적 증거이다. 끝으로 교회의 복음 선포가 세 번째 형태이다. 후에 말한 두 가지 형태는 도구적 의미로만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기 위하여 사용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정적으로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동적, 사건적 성격을 가진다. 말씀의 사건은 자신의 존재를 행동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하나님 자신이다. 성경은 하나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 말씀이 된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것으로 하여금 그 분의 말씀이 되도록 하시는 경우에, 그 분이 그것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이다(교의학 I-1, 109)."

 

바르트의 성경관은 많은 논란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자유주의자들은 바르트가 성경을 거의 전통적인 축자 영감 교리에서 가르치는, 특별한 위치에까지 격상시킴으로써, 그것을 역사 비평적 탐구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고 비난했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바르트가 성경을 비명제적 계시의 사건보다 낮은 위치에 두었고, 성경의 무오성을 노골적으로 부정했다고 맹렬히 공격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의 신학을 신현대주의라고 부를 정도였다.

바르트는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구분하면서, "성경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어쨋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인간의 말과 사상들을 통하여 그리고 인간들의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반복하고 재현하려는 인간들의 시도이다(교의학 I-1, 113)"라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특권적 증거인 성경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지위, 즉 성경의 신적 영감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 판단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하였다.

 

성경의 영감은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분명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고 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우리 믿음의 기저에는 성경이 있으며, 또 그것은 우리 신앙의 본질이요 생명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의 객관성을 더 잘 보장해 주는 것은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리, 즉 그 밖에는 다른 어떠한 것도 존재치 아니하며, 인간의 주관성이라는 힘 앞에서도 의심할 수 없는 능력임을, 또 우리가 그것을 바로 그러한 것으로 알고 인정치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성경의 영감을 교회와 그 성도들의 삶 속에 끊임없이 내려지는 하나님의 결정으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게 된다(교의학 I-2, 534-35)."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나 내적, 외적 증거에 기초한 학문적 결론에 의존하지 않는다. 바르트에게 성경은 인간의 결정이나 주도권과는 별도로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기적을 창출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에 대하여 교회는 순종과 순복의 태도를 지녀야 하는데 "그것은 교회의 발생에 대한,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과 기초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진정한 역사적인 기록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성경은 항상 교회에서 독특한 그리고 나름대로 유일한 권위를 가진다(교의학 I-2, 540)." 바르트는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예속시키지만 모든 인간의 권위 위에 두었다. [교회 교의학] 전반에 걸쳐서 그는 성경이 축자적으로 영감되었으며 그 가르침이 무오한 것처럼 취급했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교의학이 성경적이냐는 것이다.

 

만약 성경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분명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우리는 기필코 그것 때문에 교회가 혼란스럽게 된다고, 다시 말해서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 바빠진 나머지 교회의 선포라는 문제의 본질에 의해 제기된 학문적 과제를 제대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교의학 I-1, 287)."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삼위일체적인 신학 바르트의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모든 교리의 시작과 중심 그리고 결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곧 그의 생애와 죽음, 부활, 높이심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영원한 연합이다. 그리스도 중심적 구조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제공하며 그의 신학을 하나의 체계로 만들어 주고 있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하고 독특한 자기 계시, 즉 인격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계시는 이 하나님의 자기 해석이다. 우리가 만일 그의 계시에 대하여 다룬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다루는 것이지... 그와 다른 어떤 실재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교의학 I-1, 311)."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이 말하는 그 분이라면 그는 어떤 면에서 하나님 자신과 동일한 분이어야지 단순히 하나님을 대표하거나 그의 대리자일 수만은 없다. 계시 사건의 실제성 안에, 그리고 그 이면에 그것의 가능성 즉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바르트는 삼위일체의 교리가 "스스로를 계시하는 하나님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독교적 답변이라고 이해했다.  그는"따라서, 계시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의한다면, 계시하는 하나님과 계시의 사건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그것의 효력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며, 매끄러운 연합 가운데 계신 그 동일한 하나님이다(교의학 I-1, 309)"라고 주장했다. 슐라이엘마허와는 반대로 그는 삼위일체 교리를 그의 신학의 출발점에 두었다. "삼위일체 교리는 여타의 모든 신론들과 계시의 개념들과 비교해 볼 때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신론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구별케 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이미 계시의 기독교적 개념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구별케 한다(교의학 I-1, 301)." 그러므로 계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독특하고 탁월한 자기 계시로서, 하나님과 동일하시고 그러므로 진정 인간이며 동시에 진정 신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는 인격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육체 안에서도 능동적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인격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진정한 인간 존재와 활동의 주체이시다(교의학 I-2, 151)."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두 번째 '존재 양태'의 성육신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한다. 그는 '위격'(person)이라는 말보다 '양태'(mode)라는 말을 더 좋아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와는 다른 인격이시라면 그 분은 성부의 자기 계시일 수가 없다. 바르트의 견해에 따르면,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절대적인 연합을 이루고 계시는 신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그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교회의 삶 내에서의 성령의 임재를 위해서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르트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다"라고 했을 때 그는 삼위일체라는 상황 내에서 이 말이 이해되기를 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두 번째 존재 양태요, 성부 자신의 인격이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나신 것이다.

 

자유로이 사랑하시는 분으로서 하나님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자유로이 사랑하시는 분으로 정의하고 신적 탁월성을 두 가지 범주, 즉 신적 사랑이라는 탁월성과 신적 자유라는 탁월성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구분은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이라는 전통적 이중성을 대신한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유가 동등하게 강조되어야 하며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자신과 인간들 사이에 교제가 있도록 그가 자유로이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자 하시며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삼고자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은혜롭게 죄악된 인류와 같이 되신 것(identification), 곧 하나님의 아들이 먼 나라로 찾아오신 길에서 드러난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탁월성들은 은혜와 거룩, 자비와 의, 인내와 지혜이다. 바르트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를 강조했다.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진정이지만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대한 사랑과 이 세상과의 교제를 갖기 전에, 그리고 그것과는 별도로, 그 자신 안에서, 즉 그의 삼위일체적 삶 안에서, 완전한 사랑과 교제를 가지고 계신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할 때만 (헤겔의) 범신론을 피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진정 은혜로운 것이 될 것이라고 바르트는 주장했다.

하나님이 만약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이 세상이 필요했다면, 그의 사랑은 순수한 은혜의 사랑이 아니었을 것이며 이 세상은 하나님이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그의 신성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바르트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초월성을 주장했고 하나님의 자유라는 입장에서 그것을 생각했다. "하나님의 고상함, 주권적 위엄, 거룩함, 영광, 심지어 초월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은 살아계시고 사랑하시는 이 신적 인격의 자기 결정과 자유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교의학 II-1, 302). 사실 하나님이 하나님인 것은 그 분이 이 세상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최고의 것 그리고 철저히 독립해 있는 모든 것과 대비된다. 그것들이 전혀 존재치 않았거나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지라도 그 분은 작아진다거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교의학 II-1, 311)." 하나님의 자유의 탁월성은 조화와 편재, 불변과 전능, 영원과 영광 등인데, 바르트는 그 모든 것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