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書槪論/[신약성경개론] 개관

[스크랩] 요한 계시록 개론 5 [終]

好學 2012. 2. 5. 06:55

 

요한 계시록 개론 5

 

음녀와 그 딸들() - 요한계시록 18

 

 

여기서 우리는 상업적인 바벨론을 보는데, 그것은 말세의 세계적인 거대한 체제를 대표한다. 물론, 종교적인 바벨론(배교하는 교회는 로마에 본부를 두고 있다)은 로마 제국이 수십 세기 전에 그러했듯이 나라들의 경제 분야에서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종교적인 체제가 붕괴하면, 비록 삼 년 반은 더 다스릴 수 있다고는 해도 이 일은 짐승의 전 제국에 대한 종국의 시작이 될 것이다. 1717절을 읽고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는 것을 인식할 때 위로가 된다 ! 본 장에서 네 가지 다른 음성에 유의하자.

 

1. 심판의 음성(18:1-3)

 

이 천사는 바벨론의 멸망을 고하는데, 이 사건은 앞서도 고한 바 있다(14:8/16:19).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를 반복하는 것은 두 장에 걸쳐 나오는 바, 종교적이며 상업적인 바벨론에 대한 이중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이는 6절의 언급이 바벨론이 지은 죄에 대하여 두 배로 받는다는 뜻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큰 성“(10), 곧 세계 경제 체제의 본부는 마침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다! 이 곳은 귀신의 거주지가 되었고(2:22 , 교회는 성령의 거하시는 곳) 더러운 영의 피난처가 되었다(16:13-14 참조).

사단은 흔히 새로 표상된다(13:4/13:19/13:31-32). 3절은 음녀가 각국에 영향력을 미쳐 마치 사람들이 술로 취한 것같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그녀는 그들을 부유하게 했고, 그들에게는 그 부가 생활의 전부였다."

 

2. 분리의 음성(18:4-8)

 

하나님의 백성들 중 더러가 이 성에 거하는데 하나님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그들을 나오라고 하신다. , 그 성은 멸망받을 것이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과, 그 성은 사단적이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거기서 나오라는 말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부르시는 초청이었다. 그것은 구원이 세상으로부터 주께로 분리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고후 6:14-).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 속하거나 세상에 거하지 않는다. 세상은 자기를 영화롭게 하나(7),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 한다. 세상은 죄의 향락을 위하여 살지만 그리스도인은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기쁨을 위하여 산다.7절에 나오는 바벨론의 교만을 보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8절은 그녀가 하루 동안에 기쁨을 애통으로, 부요함을 흉년으로 바꿀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는 한 가지 교훈을 본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라“(딤전 5:22)."

 

3. 애곡의 음성(18:9-19)

 

우리는 바벨론의 멸망을 탄식하는 두 무리를 본다. 땅의 왕들(9-10)과 땅의 상고들(11-19)이다. 이들은 참되신 하나님을 거절하고서 특히 우상과 돈을 쫓아다님으로써 바벨론과 함께 음행하였다“. 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은 이제 종국에 와 있다 ! “화 있도다 화 있도다는 말이 10, 16, 19절에 반복되는 것에 유의하자 ! 바벨론은 하루 동안에(8), 일시에(10, 19) 심판을 받는다.

 

상고들과 왕들은 왜 애통하는가? 그들의 상품이 이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 12-13절은 상인 체제의 막대한 부를 가리키는데, 여기에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도 포함된다. 마지막 날에는 노예들이 증가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사단이 언제나 인간의 영혼과 몸을 종으로 삼고자 했기 때문이다.

부자는 더욱 치부하게 될 것이요, 가난된 자는 더욱 가난하게 될 것이다. 사치품과 필수품 모두가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실 때 멸망받을 것이다. 해운업도 멸망받을 것이며 해운산업도 망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날 자신들을 돌보고 보호하며 만족시키기 위해 경제 제도를 의지하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그들을 쇠하게 할 것이다."

 

4. 즐거움의 음성(18:20-24)

 

땅의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과 동일한 관점을 갖지 않는다. 사단이 하늘에서 쫓겨날 때 하늘은 기뻐하나 땅은 통곡한다(12:10-12). 이제 바벨론이 멸망받자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통곡하는 점에 주목하라.

하늘이 즐거워하는 참된 이유는 순교자들의 피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신원되었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체제는 사단적이며, 처음부터(4)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다. 요한계시록 69-11절에 나오는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은 대주재여...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라고 물었다. 이제 그들의 기도가 응답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피를 신원하셨다(12:19 참조).

 

맷돌을 내던진다는 것은 짐승의 제국 위에 하나님의 심판이 갑작스럽게 임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어떤 학자들은 이 맷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며, 다니엘 234-35, 44-45절에 묘사된 부숴뜨리는 돌로 본다. 세상이 그리스도 없이도 일이 아름답게 잘 진행되어 간다고 생각할 때 그가 돌아오셔서 그들의 체제를 부수고 그들의 업적을 넘어뜨리실 것이다.

본 장에서 결코 다시란 말이 반복되는 것에 주목하고 예레미야 259-11절을 읽어보자. 하나님께서 결코 다시라고 말씀하실 때는 사람이 이를 어떻게도 변경시킬 수 없다(51장 참조).

 

다음으로 우리는 짐승의 제국이 경제적, 종교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본다. 남은 일이란 그리스도께서 짐승의 군대를 멸망시키는 것뿐인데, 19장에서 우리는 이를 보게 된다."

 

 

큰 두 잔치 - 요한계시록 19

 

 

이 귀절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나라의 군대를 멸망시키실 때 나타날 하나님의 진노의 절정을 설명한다.

 

1. 하늘의 기쁨의 찬양(19:1-10)

 

하늘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다시 오실 것을 예상하므로 네 번에 걸친 할렐루야 합창을 한다. 할렐루야라는 말은(헬라어로는 알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며, 친숙한 구약 용어이다. 하늘은 왜 기뻐하는가?

 

죄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1-4)-18장에서 땅의 상고들과 임금들은 바벨론의 멸망을 탄식하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하늘이 즐거워하고 있다. 바벨론은 모든 종교적인 사기와 혼란의 근원이었으며 하나님의 성도들을 무수히 죽였는데, 이제 바벨론은 멸망받았다. 사실상 바벨론의 몰락이 하늘에서 세 번의 할렐루야를 부르게 한다 !

 

하나님께서 지배하시기 때문이다(5-6)-하늘의 모든 음성들이 그가 하나님이신 것과 보좌에 계신 것 때문에 연합하여 찬양하는 것 같다. “전능한이란 모든 것에 능하신이란 뜻이다. 헨델이 그의 웅장한 할렐루야 합창에서 주제로 삼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좌에 계심을 인하여 찬양을 드리는 것이 참으로 마땅하다 !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기 때문이다(7-10)-“이르렀다는 단어는 채워졌다고 번역될 수도 있다. 신부는 이제 아내(7)가 되며 혼인 잔치가 베풀어지게 된다. 이것이 왕이나 주인의 혼인 잔치가 아니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강조하고자 하시는 한 칭호는 어린 양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교회에 대한 그의 사랑과, 교회를 값주고 산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는 이 잔치를 위하여 자신을 예비했어야한다. 모든 흠과 티가 없어졌던 때는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을 동안이었다(5:25-27). 신부는 선한 행위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늘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하늘나라에 가면 신자들이 섬김에 있어서 충성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판단을 받을 것이다.8절은 아내가 성도의 의(), 성도의 의로운 행위를 옷입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충성에 따라서 상을 주실 것이며, 우리가 받는 상급이 그대로 혼인 예복을 꾸밀 것이다. 레만 스트라우스(Lehman Strauss)박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신부가 어린 양과의 혼인 기약이 차면 우리들 각자가 손수 만든 혼인 예복을 입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얼마나 숙연한 생각인가 !

물론 신부와 신랑은 혼인 잔치에 초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늘 나라에서 존귀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대받는 자들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는 아니면서도 그 영광에 참여할 구약 성도들이다."

 

2. 하늘에서 온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들(19:11-16)

 

41절에서 하늘이 열린 것은 교회를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지만, 여기서 하늘이 열린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들로 개선의 출정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재판받을 때에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천군을 보내어 자기를 구원하실 수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영광된 군대들, 곧 구약 성도들, 교회, 그리고 천사들과 더불어 말타고 나아가신다(25:31/살전 3:13). 61절에서는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흰 말을 탔었지만 여기서는 충신과 진실이라하는 자가 심판과 전쟁을 위하여 말을 타고 나아가신다.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는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는 이제 더이상 겸손한 나귀를 타지 않으시고 사나운 흰 군마를 타고 계신다. 그의 눈은 예루살렘을 보셨을 때와 같은 눈물에 젖어 있지도 않으며 모욕적인 가시 면류관을 쓰고 계시지도 않는다. 그의 원수들에게 옷을 벗기우는 대신 피에 젖은 옷을 입고 계시는데, 이는 심판과 승리를 의미한다. 땅에 계실 때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버렸지만 이제 하늘의 군대들이 정복하는 그를 따르고 있다.

그의 입은 은혜의 말씀을 하지 않고(4:22) 도리어 승리와 공의의 말씀을 하신다(11:4 참조). 그는 철장으로 다스리러 오신다(2). 그는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아마겟돈전쟁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기 위해 오신다. 그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다!

 

세상의 군대들이 짐승과 그의 군대들을 대항하기 위하여 팔레스틴에 모이게 되는 것을 명심하라. 그러나, 이들은 하늘에서 인자의 징조를 볼 것이며 그리스도를 대적하려고 모두들 연합할 것이다. 다시 요한계시록 1612-16절과 1414-20절을 읽어 보라."

 

 

3. 땅에 임할 심판을 고함(19:17-21)

 

본 장에서는 두 잔치를 본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9)와 하나님의 큰잔치, 곧 아마겟돈이다. 첫 잔치는 축복과 기쁨의 시간이나 둘째 것은 심판과 슬픔의 시간이다. 모든 인류사는 아마겟돈을 향하여 급히 이동해 가고 있다.

 

천사는 땅의 군대들이 전쟁에서 패할 것이라고 고한다. 사실상, 전쟁은 길지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원수를 즉각적으로 쳐부술 것이기 때문이다(살후 1). 이 부분에서 고기“(육신)란 말이 반복되어 나오는데, 그것은 사람이 고기(육신)일 따름이며 하나님께 대항하여 싸울 수가 없다는 뜻이라는 데에 주목하자.

육신이란 아담의 타락 이래로 문제의 근원이 되어 왔다. 육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육신을 정죄하셨으며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 육신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싸운다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 “왕들과 장군들과 장사들이라 해도 만왕의 왕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대항하기 위해 모여질 군대는 어떤 자들인가? 이들은 유럽 연맹의 열 왕국과 동방의 왕들과 애굽과 러시아의 군대들이다. 이들은 팔레스틴에 있는 에스드렐론(Esdraelon)평지에 모이는데, 나폴레옹이 이 곳을 세계 최고의 천연적 전쟁터라고 한 지역이다. “아마겟돈이란 말은 므깃도의 산이란 뜻이다. 지도에서 이 곳을 찾아 보라.

그리스도는 말씀,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원수들을 멸하신다(4:12). 사람들은 그의 말씀에 복종치 않았고 복음을 영접하지도 않았다. 이제 그들은 그와 동일한 말씀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한다. 짐승을 따르는 사람들은 표를 받은 사람들이며, 몸에 짐승의 표가 있는 것은 분명히 심판을 받는다는 인이 된다. 그리스도는 짐승의 군대를 멸하실 뿐만 아니라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사로잡아 산 채로 지옥에 던지신다. 그는 또한 사단을 취하여 무저갱에 던지신다(20:1-3).

 

구약 선지자들은 이 큰 전쟁에 대하여 할 말이 많다(63/ 14/ 2-3장 참조)."

 

 

흰 보좌 심판 - 요한계시록 20

 

 

본 장은 천년장으로서(이 곳에 6회 언급됨) 천년 왕국의 교리를 다룬다. 밀레니움(millenium)이란 라틴어로 천년이란 뜻이다. 진지한 성경 학자들 중에도 문자적인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있을 것에 대해서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구약의 왕국 예언을 영해하는 것을 더 좋아하여 이 예언들을 오늘날 교회에 적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문자적인 지상 천년 왕국이 존재할 것을 믿는다.

 

구약의 약속들이 이스라엘에 성취된다(1:30-33).

그리스도의 영광의 공적 표명이 땅의 나라들에 주어진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할 것이라는 약속을 성취하는 것이다.

로마서 819-22절에 나오는 약속대로 자연의 완전한 구속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 하에서 사람에게 최후의 한 시련이 주어진다.

 

1. 천년 왕국 이전(20:1-5)

 

이제 아마겟돈 전쟁은 끝났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지옥으로 던져졌고, 그리스도는 이제 옛 뱀인 사단을 잡아 무저갱에 던지신다. 사단의 추종자들 중에는 이미 쇠사슬에 묶인 자들도 있으나(벧후 2:4/1:6), 이제 옛 뱀은 데려감을 당할 것이다. 짐승은 무저갱에서 나와(17:8) 지옥으로 던져졌다. 그러나, 사단의 최후 심판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단이 던져진 후에는 환란당한 성도들이 부활할 것인데, 이들은 그리스도를 충성되이 섬기는 데에 자신의 생명을 바친 자들이다. 다니엘서 121-3절을 보면 구약 성도들 역시 이 지점에서 일으켜지게 되는 것 같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곧 교회의 일원이 아닌 그들은 휴거할 때에 성도들과 더불어 반드시 일으킴받는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는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 죽은 자의 영역에 남아 있는 사람도 하나도 없다. 모두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려고 일으킴받게 된다. 이것이 첫째 부활로 여겨진다. 이 일은 교회의 휴거로부터(살전 4:13 이하) 요한계시록 204절에 주어진 성도들의 부활에 이르도록 전개된다. 첫째 부활에서 다시 살아난 자는 모두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둘째 죽음, 곧 지옥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구약 성도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으나, 신약에서 가르치고 있는 죽은 자 가운데서의 완전한 부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9:9-10 , 여기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은 문자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완전한 부활을 뜻한다). 성경에는 일반 부활과 같은 것은 없다. 구원받은 자는 모두 부활에서 일으킴받으며(시간은 다르지만), 잃어버린 자는 둘째 부활 시에 일으킴받는다. 첫째와 둘째 부활 사이에는 일천 년의 기간이 흐른다.

보좌들이 예비되어 정결케 된 이스라엘 국가, 교회 그리고 환란기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한다. 마태복음 2531-46절은 이방인들이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심판받게 될 것을 명백히 밝힌다. 믿는 이방인들()은 믿는 유대인들(“내 형제들“)을 사랑하고 도와 줌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입증할 것이며, 왕국의 기쁨에 참여할 것이다."

 

2. 천년 왕국 기간(20:6)

 

천년 왕국은 지상에 임한 하늘의 신적 통치일 것이다. 그리스도는 불의나 죄를 허락지 않을 철장으로 다스리실 것이다. 예루살렘은 왕국의 중심이 될 것이며(2:1-4)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할 것이다(19:28). 이스라엘은 의로운 왕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자기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며, 땅에는 사람과 동물들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11:7-9/54:13-14).

각 사람은 최적한 직업을 얻게 될 것이며, 완전한 능률과 기쁨이 나타날 것이다. 물론 땅에 거하는 인간들, 곧 교회와 무관하게 영화롭게 된 부활한 성도들이 있을 것이므로, 자녀들은 죄악된 본성 가운데 태어날 것이다. 천년이 끝나는 때에 외적으로 그리스도께 순종은 하나 충심으로 그에게 결코 순복치 않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천년 왕국의 주된 목적 중의 하나는 완전한 환경 가운데의 완전한 통치에서라도 인류는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 왜냐하면 천년기의 마지막에서 사단이 그리스도를 대항할 큰 군대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어떤 것으로도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성도들은 왕과 제사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할 것이며, 천년왕국 동안에 여러 가지 능력으로 주님을 섬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왕국 시대 동안에 우리가 맡게 될 영화로운 책임의 한도를 결정지을 것이다.

 

3. 천년 왕국 이후(20:7-15)

 

최후의 전쟁(7-10)-사단은 천년이 차면 풀려나게 되며 그리스도와 싸우기 위해 큰 군대를 모은다. 이것은 완전한 법의 통치도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입증한다. 이들은 오히려 사단을 따르려 할 것이다. 이것이 곡과 마곡의 전쟁이 아닌 것은, 그 전쟁이 환란의 전반부 마지막에 일어나며, 짐승이 러시아와 애굽을 모두 패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는 러시아(곡과 마곡)가 주도적인 세력이 될 것이며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이제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군대들은 천년왕국의 예루살렘을 공격할 것이며,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이들을 소멸할 것이다. 사단은 사로잡혀 영원히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사로잡힌 후에 천년간 지옥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 ! 지옥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거기는 영원한 고통의 장소다.

 

최후의 심판(11-15절 이하)-요한은 심판의 보좌를 본다. 이것은 큰 보좌이다. 왜냐하면 역사상의 모든 죄인들이 이 보좌 앞에 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흰색인 까닭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거룩함을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실 것이다. 땅과 하늘이 피하여 간 데가 없자, 죄인들은 숨을 곳이 없어진다 !

 

보좌에 앉으신 재판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5:22). 오늘날은 그가 세상의 구세주이시지만 그 때 그는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실 것이다. 부활은 있다. 죽음이 잃어버린 죄인들의 몸을 내어주고 음부(13절에서와 같은 지옥이 아님)는 영혼을 내어준다. 잃어버린 죄인들의 몸과 영혼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연합하는 짧은 순간은 이 죄인들이 지옥에 던져지기 전에 알게 될 유일한 구제의 순간이다. 모든 잃어버린 죄인들이 거기 있을 것이다.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도, 피할 곳은 없다(9:27).

 

이 최후의 심판에 관여되는 책들은 어떤 것인가? 물론 요한복음 1248절에 의하면 성경책이 거기 있을 것이다. 오늘날 죄인들이 듣고 거절한 그 말씀이 마지막 날에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성도들의 이름이 녹명된 생명책이 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이 생명책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는 지옥으로 던져질 것이다(15).

또한 사람들이 행한 행위들을 적은 책이 있다. 하나님은 실로 의로운 재판장이시다. 그는 각 사람의 일생의 행위에 대한 기록을 보관하고 계신다. 물론 진리를 알고 고의적으로 진리에 불순종한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욱 맹렬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늘에서 상을 받는 정도가 각기 다르듯이 지옥에서도 그 형벌을 받는 정도가 각기 다르다(11:10-24). “선한행실이 사람을 구원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이며 지옥의 공정한 형벌을 받게 하실 것이다.

 

죄인에게는 자기의 경우를 논쟁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책들이 펼쳐지고 사실들이 드러나면, 그는 그리스도 앞에 말없이 서 있을 것이다(3:19). 하나님은 선과 악을 저울질하지는 않을 것이며, 모든 잃어버린 죄인들에게 유죄를 선언하실 것이다. 이런 모든 자들이 둘째 부활에 참여하면 둘째 죽음 곧 영원한 지옥을 맞이해야 한다.

 

사단과 죄는 심판을 받았고 인간의 반역은 제지되었다. 이제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칠 수 있으시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영원한 복이다 !"

 

 

우리의 영원한 본향 - 요한계시록 21-22

 

 

본 두 장의 주제는 215절에 진술된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본 장에 나오는 상세한 사항들을 많이 다루는 것이 흥미도 있고 유익도 되겠지만 우리는 스스로 주된 교훈들을 다루는데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새것들을 주목하자.

 

1. 새 하늘과 새 땅(21:1-2)

 

헬라어로 새로운이란 말은 특성이 새롭다는 뜻이다. 이 말은 죄악되고 파괴적인 모든 것이 제거됨으로써 옛 하늘과 옛 땅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롭게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베드로후서 37-10절을 살펴보면 불의 심판이 옛창조에 이런 갱신을 가져온다고 되어 있다.

없어졌다는 말은 파괴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구절이며, 그것은 요한이 섬에 유배되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의 삼분의 이가 물이다. 그러므로 새 창조에서는 땅에 물을 공급함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할 것이다. 2절은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겠다."

 

2. 새 하나님의 백성(21:3-8)

 

우리가 영원한 상태로 들어갈 때 거기에는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이다 ! 하나님은 영광스럽고 친밀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인격적으로 지내실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눈물도, 죽음도, 슬픔도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죄를 통하여 세상에 들어왔지만(3) 이제 그 저주는 제거되었다(22:3).

하나님께서 이루었도다하신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도다하신 말씀과 평행을 이룬다. 창조를 시작하셨던 그 동일하신 주님이 또한 창조를 완성하실 것이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이시다(헬라어 알파벳 첫자와 마지막 자).

그러나, 8절은 이 새 창조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들이 있을 것임을 엄숙히 선언한다. 이들은 두려워하는 자들 또는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못한 겁장이들,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자들, “군중과 함께 다니다죄를 행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목록의 처음에 겁장이를 두신 것에 유의하자 ! 사람이 그리스도를 지지하는 데 두려워하면 그 결과로 범하게 되는 어떤 종류의 죄에 대해서도 책임을져야 한다."

 

3. 새 예루살렘(21:9-27)

 

2절은 이 하늘의 성이 천년 왕국 동안에 땅 위에 떠다니다가 새 창조가 시작되면 내려올 것이라고 제시한다. 이 성은 하나님의 백성과 동일시되며, 또한 신부로 보이게 된다. 당신은 17장에 나오는 바벨론 체제가 음녀로 묘사된 한 성이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결국 성이란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다. 창세기 417절에서 반역한 가인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떠나 한 성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믿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다“(11:10). 이것이 그 성이다.

그 성이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신약의 하나님 백성 곧 이스라엘과 교회를 연합시키는 것에 유의하자. 왜냐하면 이스라엘 지파들이 문들에 이름이 새겨 있고 열 두 사도의 이름이 기초석에 새겨 있기 때문이다. 사도들에 대해서는 에베소서 220절과 마태복음 1928절을 참조하라.

 

성의 규모와 그에 대한 묘사는 우리의 상상을 어리둥절케 한다. “네모가 반듯하다는 말은 사면이 같다는 뜻이며, 아마도 성이 완전한 입방체,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지성소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이것이 피라밋같이 사각뿔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지 성은 사방 2,400km로 측량되며 미국의 삼분의 이에 해당한다 ! 보석의 아름다운 색들은(18-20) 베드로전서 410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각양(각색의) 은혜를 암시한다. 이 보석들의 색에 대해서는 사전으로 조사해 보라.

 

이 성에는 몇 가지 빠진 것들이 있다. 성전, 자연의 빛, 그리고 밤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인격적으로 거하시기 때문에 성전은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의 영광은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을 대신한다. 성경에서 밤은 죽음, , 슬픔을 상징한다. 따라서 성에서 죽음과 죄와 슬픔이 영원히 사라졌다면 밤은 있을 수없다.

성문들은 도무지 닫지 않을 것이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이 새롭게 하신 우주의 어느 곳에서도 그 성에 들어갈 수가 있다. 땅에는 만국이 있을 것이다(24/ 22:2 참조). 만국의 모든 영광은 본래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그에게로 돌려질 것이다."

 

4. 새 낙원(22:1-5)

 

이러한 새 창조에서 하나님은 본래 처음 창조의 비극들을 모두 반전시키신다. 옛 하늘과 땅은 혼돈에 처해 있었으나(1:2), 이제 완전함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에게 있다. 에덴은 땅의 강이 있었는데(2:10-14) 여기는 놀라운 하늘의 강이 있다. 에덴에 있는 생명나무는 사람이 죄를 범한 후에 파수꾼이 세워졌으나(3:24), 하늘의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용할 수가 있다.

창세기 314-17절에 보면 저주가 끼어 들었는데, 이제는 더이상 저주가 없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의 낙원을 떠나야 했고 매일의 양식을 위하여 수고해야만 했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들은 완전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얼굴을 대한다. 처음 남자와 여자가 범죄하여 종이 되자 그들은 에덴에서의 그들의 왕관을 잃었다. 그러나 5절은 이 왕권을 다시 얻을 것임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할 것이다 !

 

현재의 피조계는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죄의 속박아래 신음하며 통곡하고 있다(8:18-23). 그러나 어느 한 날, 하나님은 새 창조로 인도하실 것이며 우리는 영원토록 완전한 자유와 생명의 충만함을 누릴 것이다!

 

5. 마지막 멧세지(22:6-21)

 

이 책의 마지막에서 그리스도는 내가 속히 오리라 !“고 세 번이나 말씀하신다(7, 12, 20), “속히라는 단어는 요한의 시대에 오신다는 뜻이 아니다. 이 단어는 신속히를 나타내며,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지체하는 일이 없을 것임을 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를 알지 못하므로 예비하고 있는 것이 마땅하다.

 

다니엘 124절에서 선지자는 이 책을 인봉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요한은 때가 가까우니라는 이유로 책을 인봉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다니엘의 말은 여러 해 동안 성취되지 않을 것이었으나, 요한의 예언은 곧 이루어질 것이었다.

11절은 죄인들이 변화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라는 논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17절에 나오는 초청은 하나의 조롱이 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11절은 계속되는 죄가 사람의 성품을 규정하고 그의 운명을 결정짓게 한다는 경고이다. 다니엘 1210절은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사람의 참된 성품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얻는 또하나의 교훈은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해 나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억지로 악하게 하거나 의롭게 하지는 않으신다(22:15/ 21:8).

 

이 책의 마지막 구절들은 간구와 기도와 약속이다. 7절과 12절에서 주님은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말씀하셨고, 17절에서는 성령과 신부가 주 예수님께 말씀하시기를 오라하신다.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보내는 또하나의 초청이 있다. “와서 생명수를 마시라는 것이다. 성경의 마지막 기도는 요한의 말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성령의 기도이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이것은 우리의 매일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18-19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난하는 데에 대한 경고가 있다. 사단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첨부하거나 말씀에서 무엇을 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재난을 자초하는 것이다(4:2/30:5-6 참조). 물론 요한의 시대에는 책들이 필사되었는데 필사자들은 이 자료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이론과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에 첨부하거나 그들의 신학 구조에 맞지 않는 것은 빼버리기도 한다.

 

이리하여 성경의 마지막 책, 마지막 일들에 대한 책이 끝난다. 이 연구를 끝마침에 있어서 성령의 기도를 반복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출처 : The King dom
글쓴이 : KINGDO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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