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 개론 2
▣ 교회들에게 보내는 그리스도의 멧세지 - 요한계시록 3장
1. 사데 교회-죽어가는 교회(3:1-6)
사데라는 이름은 “도피한 자들“이란 뜻이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의 더러가 로마의 타락을 피하였던 때인 종교개혁 시대(1500-1700주후)의 교회를 묘사한다. 이 교회는 행위는 가지고 있으나 생명은 그리 대단치 않았으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였다! 이것은 거대한 교단적인 프로그램과 세계적인 지도자들, 그리고 눈길을 끄는 건물을 가진 “죽은 개신교주의“를 참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명성뿐이고 실제가 없는 교회이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경고하신다.
-깨어있으라, 경계하라.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네가 받고 들은 말씀을 생각하라.
-그것을 굳게 잡고 내가 올 때 준비가 되어 있도록 하라!
마틴 루터와 다른 개혁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되돌려 놓았으나, 현대 개신교는 말씀에서 떠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기조차 하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충실한) 결실을 맺은“ 개혁자들의 행위를 찾지 못하셨다. 이는 옳은 말이다! 루터는 사람들을 로마로부터 데리고 나왔으나 이들을 충분히 멀리 데리고 가지는 못하였다. 그는 여전히 정교의 연합, 촛대, 법의 등을 그대로 붙들고 있었다. 그의 행위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다.
5절은 사람들을 괴롭혀 왔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불충성한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생명책“은 출생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를 대적한 자들은 그들의 이름이 그 책에서 지워졌고, 참된 신자들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13:8/21:27).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다(20:15). 물론 사람이 교회 명부에는 이름이 올라 있으나 구원은 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적용해도 된다.
“책들이 펼쳐질“ 때(20:12)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오늘날의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질 수 있으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죽은 정통이상으로 더 악화될 수는 없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참 생명을 지니고 있지 못한가!"
2. 빌라델비아 교회-섬기는 교회(3:7-13)
이 이름은 “형제애“란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곧장 서로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교회는 과거 250년 간의 선교하는 교회를 나타내고 있다. 드물게 있던 선교 모험을 제외한다면 중세기의 교회들은 복음을 퍼뜨리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들은 종교전쟁을 하며 통치자들과 정치 유희를 하는 데에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이 시대의 교회들이 필연적으로 크거나 강하지는 못하지만(9절) 이들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그의 열쇠로 열어 놓으신 봉사의 문을 지나가는 믿음과 사랑을 지닌 교회들이다. “다윗의 열쇠“란 다윗의 아들로서의 주님의 권위를 가리킨다. 이사야 22장 22절에 보면 열쇠는 권위를 상징한다. 세상 도처에서 문들을 닫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아직 문이 열려 있는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문을 여시거나 닫을 때는 아무도 이를 방해할 수가 없다!
이 교회는 거짓 교회(사단의 회), 곧 거짓말 하는 자들로부터 반대를 받고 있다. 이 거짓 형제들은 교회임을 주장하나 하나님의 백성의 사역을 반대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들로 무릎을 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거짓 교회는 인기와 영향력과 돈을 가지고 있으나 이 세대의 어느 날 세상에 진리를 전하는 하나님의 소수의 성도들 앞에 절을 해야만 한다.
10절은 교회가 환란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들 중의 하나이다. 오늘날 참된 신자들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일원이며 이 땅에 임할 무서운 7년 심판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살전 5:8-9 참조).
요한계시록의 요약도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계시록 3장 이후부터 22장 13절까지에는 교회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기 때문이다! 2-3장은 교회 시대를 개괄하며, 4장은 환란기로 인도한다. 만일 우리가 휴거하기 전에 임박한 환란을 기다려야만 했었다면 22장 20절의 기도는 기도드리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3. 라오디게아 교회-변절하는 교회(3:14-22)
이 이름은 “사람들의 법“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속한 영적인 지도자들을 더이상 따르지 않는 민주적인 교회를 암시한다. 이 교회가 진리를 외면한 개신교이다. 교회는 미지근하다. 이는 뜨거운 것과 찬 것을 섞었을 때 일어나는 상태로서, 진리에 오류를 섞어 약화된 진리를 지니고 있는 혼합된 교회이다.
이 교회는 부요하다고는 하나 실상은 가난하고 불쌍하며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교회이기에 참으로 비극이다! 오늘날 명성과 부와 정치적 권력을 쥐고 있는 신앙을 버린 세상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는 동안은 영적으로 가난할 뿐이다!
라오디게아 시는 양모와 부와 의술로 알려졌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18절에서 이러한 표상을 사용하셨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의복과 영적인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의 참된 부요함을 그들에게 주고자 하셨다. 그들의 가치관, 의복, 그들의 환상이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사랑으로 그들을 징계하셨을 것이다.
20절은 자주 복음에의 초청에 사용된다. 이러한 적용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석은 그리스도께서 변절한 교회 문 밖에서 계신다는 것이다! 이 교회는 부와 권력은 있으나 그리스도는 없다! 주님은 어떤 사람이 주님을 초청만 한다면 그 사람의 생활에 기꺼이 들어가려고 하신다.
교회가 대단히 미지근하고 교만하여져 그리스도께서 떠나 밖에 서 계셔야한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이들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냉담한 자들이다! 이 변절한 교회들은 그들의 교단 지도자들을 높이며 경건치 못한 세상을 높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를 높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님은 그들의 계획과 프로그램을 떠나 계시며 또한 그들의 마음에서도 떠나 계신다.
물론 이와 같은 모든 교회들이 요한의 시대에도 존재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모두 존재한다. 이러한 일곱 교회 전체는 요한의 시대로부터 세상 끝까지의 교회들의 역사를 나타낸다. 이와 같이 그것들 모두는 오늘날 존재하는 교회들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처음 사랑을 버렸고(에베소) 마침내는 그리스도를 향해 미지근한 교회로 끝마치는(라오디게아) 그런 분주한 교회를 갖는다. 거짓 교훈들은 미미하게 시작되나 장성한 후에는 교회에 전체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각 교회에는 참신자들(이기는 자들)의 그루터기가 남아 있어서 그가 돌아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께 충성스럽게 책임을 질 수 있다.
성경 학자들은 본 장에 나오는 이기는 자들에게 주는 약속들을 구약사에서 찾아볼 수 있음을 지적했다. 에덴의 생명나무(2:7), 사람이 동산에서 쫓겨나 죽게 된 것(2:11) 광야를 방황할 때의 만나(2:17), 이스라엘의 왕국 시대(2:26-27), 제사장 직분(3:5), 성전(3:12),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보좌(3:21) 등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한데 모으셔서 오늘날 그의백성에게 적용하시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살펴보자. 그리스도는 일곱 번이나 교회들에게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하신다. 교회가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기를 멈추면 사람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며 진리로부터 돌아서기 시작한다.
우리가 비록 생명을 값으로 지불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믿음을 부인해서는 안된다(2:23). 주의 말씀을 지켜야 하며(3:8/3:10) 주의 이름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서는 교회에 생명이나 소망이 없다."
▣ 하늘나라를 들여다 봄 - 요한계시록 4장
본 장에 나오는 핵심 단어는 “보좌“에서 12회 사용되며, 이 책 전체에서는 37회 사용된다. 요한계시록은 우주를 다스리는 것이 인간들의 보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임을 분명히 밝힌다(시 103:19 참조).
1. 보좌로부터의 소환장(4:1)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휴거에 관한 생생한 모습을 본다. 요한계시록 1장 19절이 이 책에 대한 신적으로 주어진 요약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보려고 한다. 4장 1절로부터는 계속 예언이 나온다. 요한이 이 시점에서 “들리움받는“ 것은 교회가 환란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또다른 증거이다. 이제 이 경험이 어떻게 휴거를 나타내는지 살펴보자.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자녀를 영접하도록 열려 있다.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 있다(살전 4:16/고전 15:52).
-그것은 갑작스러운 사건이다.
-그것은 2-3장에서 요약하고 있는 “교회 시대“가 끝날 때 생긴다.
-그것은 요한에게 하늘의 보좌가 있는 곳을 소개한다.
-그것은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요한계시록에 여러 가지 다른 문들이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봉사의 문(3:8), 그리스도께 대항하여 닫혀진 문(3:20),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문(4:1), 하늘나라로부터 나오는 문(19:11) 등이다."
2. 보좌의 영광(4:2-3)
보좌에 앉으신 이는 분명 성부 하나님이신 듯하다. 왜냐하면 성령은 보좌 앞에 있는 등불로 표현되며(4:5) 성자는 5장 6절에서 보좌로 나오기 때문이다. 요한은 성부의 영광을 상징하는 데에 진귀한 보석들을 사용한다. 벽옥은 투명한 돌로서 하나님의 순전하심을, 홍보석은 붉은 것으로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칠녹보석은 초록색으로서 은혜 및 자비와 관련된 색이다.
이 보석들은 모두 대제사장의 아름다운 흉패에 있는 것들이다(출 28:17-21). 보좌 주위에는 녹보석 같은 무지개가 있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멸망하지 않을 것을 인류와 자연계에 언약하셨을 때인 창세기 9장 11-17절로 우리를 데려간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언약에 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무서운 심판이 인류 위에 내려지는 그 진노 중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비를 보이신다(합 3:2 참조).
계시록 10장 1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 머리 위에 두르신 무지개를 보는데 그것은 은혜와 자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이 그리스도를 통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무지개와 노아 시대의 무지개 사이에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즉, 노아는 하늘에 있는 활 모양의 무지개를 보았을 뿐이지만 요한은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원형의 완전한 무지개를 보았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우리가 보는 바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때 전체의 원형(原形)을 보게 될 것이다."
3. 보좌 주위에 있는 장로들(4:4)
이 장로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천사로 볼 수가 없다.
우리는 보좌에 앉은 천사들을 본 일이 없다.
면류관을 쓴 천사들을 본 일이 없다.
7장 11절에서 장로들은 천사들과 구별된다.
5장 8-10절에서 장로들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데, 천사들이 노래를 부른다는 기록은 아무데에도 없다.
그들의 노래에서 그들은 구속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이 말은 천사들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6장 12절에서 천사들은 말하고 한편 장로들은 노래한다.
천사들은 결코 계수되지 않는다(히 12:22).
“장로“라는 명칭은 성숙을 뜻하나, 천사들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이다.
구약의 성전에는 제사장들의 24반차가 있었다(대상 24:3-5/눅 1:5-9). 이 24장로들은 휴거되어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고 있는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다니엘이 왕좌가 “높이는“ 것을 보았을 때(단 7:9) 그것들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채워진 보좌들을 보는데 그것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본향으로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와 함께 누리는 왕들이요 제사장들이다(1:6)."
4. 보좌로부터의 심판(4:5)
이것은 은혜의 보좌가 아니라 심판의 보좌이다. 천둥과 번개는 폭풍우가 오고 있다는 경고들이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 천둥을 치셨으며(출 19:16)하나님은 그의 법을 어긴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천둥을 치실 것이다(시 29편/ 시 77:18 참조).
하나님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애굽을 경고하셨고(출 9:23-28), 그리고 또한 이 사악한 세상도 경고하실 것이다. 그의 보좌는 심판을 위하여 예비되었다(시 9:7)!
5. 보좌 앞에 있는 것들(4:5-11)
등불-이 등불들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들이며(1:4), 불로 소멸하는 성령을 나타낸다(사 4:4). 그리스도는 성령의 충만하심을 입고 계신데, 이는 일곱이 완전을 나타내는 수이기 때문이다(3:1). 은혜 시대에는 성령이 평화의 비둘기로 묘사되지만(요 1:23-34) 교회가 들림받은 이후에 성령은 불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유리 바다-우리는 여기서 구약 성전과 비슷한 하늘의 성전을 본다(11:19/히 9:23). 일곱 등불은 일곱개로 된 촛대와 상응하며, 유리 바다는 물두멍과 상응하고, 보좌는 하나님께서 영광 가운데서 통치하셨던 곳인 법궤와 상응한다. 요한계시록 6장 9-11절은 하늘에 희생제사를 드리는 제단이 있음을, 8장 3-5절은 향단이 있음을 시사한다.
24장로들은 성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상응되며, 생물들은 휘장에 수놓아진 천사들과 상응한다. 성전의 물두멍(또는 “바다“)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7장 23-27절을 참조하라. 하늘의 바다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며, 불은 그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에 대한 그의 심판을 나타낸다.
생물들-넷은 땅의 수이며,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피조 세계와 맺으신 언약을 보게 된다. 창세기 9장 8-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과 새와 가축과 짐승과 언약하셨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피조물 각각이 생물의 얼굴에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피조 세계를 다스릴 권세를 주셨으나 죄로 말미암아이 권세를 잃었다(창 1:28-31/시 8:1-).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왕국이 건설될 때 그 권세를 다시 얻게 될 것이다(사 11:6-8/사 65:25 참조).
네 생물(피조 세계를 상징함)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는 것은 그가 피조 세계를 통제하고 계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며, 또한 그가 피조물을 한 날에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하시겠다는 그의 약속을 지키실 것을 가르치고 있다(롬 8:19-24).
이 네 생물은 이사야 6장에 나오는 천사와 에스겔 1장과 10장에 나오는 피조물들의 결합이다. 이 생물들에는 이름이 없다. 에스겔의 환상에서는 각 생물이 네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요한계시록 4장 7절에 나오는 넷에 상응한다. 보좌 앞에 있는 이런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를 돌린다. 시편 148편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죄악된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하기를 거절한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이 찬양에 장로들이 함께 하여 그 보좌 앞에 자기의 면류관을 던진다. 이 면류관들은 땅에 있을 동안에 봉사한 것을 인하여 받은 상급을 상징한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모든 찬송이 오로지 하나님께만 속한다는 것을 생생한 방법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11절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몇 개의 송영들 중 첫번째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하늘의 존재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요한 계시록 5장 9-10절에서 생물과 장로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속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함께 한다. 왜냐하면 피조물이라도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속받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6-19절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그 죄로 인해 공평히 형벌하실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하늘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무대가 이제 마련된다. 교회는 하늘로 취한 바되었고 주님은 보좌에 계신다. 하늘의 모든 것이 주님을 찬양하며 그의 진노를 쏟으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하나님의 명칭이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4:8)인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역사는 이 명칭이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사용하였던 공식칭호였음을 말해 준다. 그 황제는 요한을 밧모섬에 보냈던 박해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존귀를 취하려 할지 모르지만, 크거나 작거나 간에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의 주이심을 인정할 날이 올 것이다!"
▣ 일곱인으로 봉한 책 - 요한계시록 5장
1. 인봉한 책(5:1-5)
“책“이라는 말은 물론 두루마리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제본한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두루마리는 강가에서 자라난 갈대로 만들어졌으며 값이 비쌌다. 이 두루마리는 창조에 대한 그리스도의 권리 증서이다. 로마인은 언제나 일곱 인으로 봉했다. 이 두루마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으심의 공로로 인해 창조를 주장할 권리를 허락받는 유언장 또는 유서이다(9절).
유언장은 상속자에 의해서만 개봉될 수 있는데 그리스도는 “만물의 후사“이시다(히 1:2). 어떤 연구자들은 6-9장에 나오는 심판이 이 두루마리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두루마리 양면에 씌어졌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더이상 첨부되거나 변경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죄악된 세상의 운명은 정해졌다.
이 장면의 배경은 땅을 소유하는 유대인의 제도에 근거하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가난하여 자기의 땅이나 자신을 팔게 되면 친척에 의해 구속을 받을 수가 있다. 룻의 이야기는 이 법에 근거하고 있다(렘 32:6-15/레 25:23-25 참조). 이 구속자는 그 사람의 친척으로서 그의 재산을 구입하여 그 친척을 해방시키기를 원해야 하며 또한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모든 피조물은 죄와 사단과 죽음의 속박 아래 있어 왔으나 이제 우리의 친족 구속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피조물을 자유롭게 해방하시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만이 구속하실 수가 있다고 분명히 밝히신다. 영광 중에 있는 어떤 성도나 땅의 어떤 사람이나, 또는 죽음의 세상에 있는 어떤 영혼도 이 책을 취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럴 만한 자격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도할 때 성인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가르쳐 준다. 우리에게는 의지할 높아지신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왜 성인들을 의존해야 하겠는가 ! 요한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울었다.
그는 피조물인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다.
그는 4장 1절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원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약속들이 이 두루마리가 펼쳐지기까지는 결코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요한은 로마서 8장 23절에 나오는 “탄식“에 동참하고 있었다. 천사가 그리스도를 가리킴으로써 그의 눈물을 마르게 했다. “사자“라는 이름이 우리를 창세기 49장 8-10절로 데리고 가며, 그것이 다윗의 계보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을 나타낸다. “다윗의 뿌리“라는 말은 주님의 신성을 말하며, 다윗으로 말미암아 나신 자임을 뜻한다(사 11:1/사 11:10). 그리스도는 우세하셨기 때문에 이 책을 펼 자격이 있으시다. 우세하다는 말은 이기는 것(2:7/2:11/2:17/2:26 , 등), 정복(6:2) 또는 승리하는 것(15:2)을 뜻한다. 어린 양이 승리하셨다!"
2. 죽임당한 어린 양(5:6-10)
요한은 사자를 찾고 있었는데 어린 양을 보았다! 사자와 양이라는 두 이름에서 우리는 구약 예언의 이중적인 강조점을 본다. 사자로서 그리스도는 정복하고 다스리시며, 어린 양으로서 그는 세상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신다. 우리는 고난과 영광을(눅 24:26/벧전 1:11), 그리고 면류관과 십자가를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리스도가 요한계시록에서 29회나 어린 양으로 불리우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사실상 성경 전체는 “어린 양“이라는 주제로 추적, 요약될 수 있었다. 창세기 22장 7절에서 이삭은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물었고, 세례(침례)요한은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고 응답하였다. 이제 요한은 “어린 양이 합당하시도다!“고 쓰고 있다(출 12장/ 사 53장 참조).
“죽임을 당한“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희생제물이 되기 위하여 목이 잘린“이란 뜻이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희생제물로 바쳐졌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가 피조계의 상속자가 되시며 이 책을 취하여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책을 취하실 때 장로들(영화롭게 된 교회)은 주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멸망할 피조계를 구속하기 위한 그의 죽으심을 찬미한다. 하늘은 십자가에 대하여 노래한다! 향을 담은 대접은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를 모형으로 보여 준다(시 141:2/눅 1:10). 이 말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에 있는 성도들을 통하여 기도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기도, 곧,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는 것을 기억하신다는 상징적인 교훈이다.
6장 9-11절과 8장 1-6절에서 하나님은 믿음으로 인하여 박해와 시련을 당한 자기 백성의 기도에 어느 날 응답하실 것에 대해 살펴보자. 기나긴 세월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것과 세상의 잘못을 곧게 하실 것에 대해 기도해 오고 있었다. 하나님은 어느 날 이 기도들에 응답하실 것이다.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는 그들이 고대하는 바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어느 날 문자 그대로 지상에서 왕노릇하실 것에 대해 말하는 또하나의 증거이다(10:4)."
3. 큰 음성으로 외치는 무리들(5:11-14)
장로들은 노래부르나 천사들은 “큰 음성으로 말한다.“ 천사들이 노래한다는 성경의 증거는 한 군데도 없다. 욥기 38장 7절은 창조시에 “하나님의 아들들(천사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고 언급한다. 누가복음 2장 13-14절에 나오는 “크리스마스의 천사들“은 노래함으로써가 아니라 “말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하늘에 있는 허다한 천사들은 어린 양이 이 책을 취할 때 큰 소리로 찬양하는데에 그들의 음성을 합했으나 노래하지는 않았다. 노래는 구원의 기쁨을 맛본 하나님의 성도들이 차지할 특권이다. 성도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천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그러나, 천사들은 구원받을 수 없으며 성도들과 더불어 어린양을 찬양하는 노래도 부를 수 없다! 천사들의 수에 대해서는 다니엘 7장 10절을 참조하라.
그리스도만이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다음의 송영을 그리스도의 지상생활과 대조해 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지상에서의 그리스도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이로다“ (요19:7) “그는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그는 사단의 능력으로 일한다“ (고후 8;9) “그는 능력을 지니시기에 합당하도다!“
“우리를 위하여 그가 가난하게 되셨다“(고후 8:9) “그는 부유하시기에 합당하도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고전 1:18) “그는 지혜를 지니시기에 합당하도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시므로 십자가에 못박히셨도다“(고후 13:4) “그는 강함을 소유하시기에 합당하도다!“
“너희가 나를 무시하도다“(요 8:49) “그는 높임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치아니한다“ (요 8:50) “그는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는 축복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저주를 받으셨다“(갈 3:13)천사들이 찬미의 말을 마치자 모든 피조물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에 합세한다.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께서 최종적으로 원수를 이기시고 그의 왕국을 설립하실 때 임하게 될 구속을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고 있다고 암시한다(13절/ 빌 2:10-11/골 1:20 비교). 모든 피조물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찬양한다(요 5:23 참조).
많은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은 아버지를 모욕하는 것이다 ! 하늘에서는 모든 천사와 모든 휴거된 성도가 성부와 성자를 높이며 찬양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인봉한 책을 떼실 작정이시며 세상에 심판이 임할 것이다. 환란의 이중 목적을 명심하자. 곧, 그들의 죄로 인해 열방을 벌하시는 것과, 이스라엘을 깨끗케 하시어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임하실 때 믿는 남은 자들로 그를 영접하도록 예비케 하시는 것이다(계 19:11).
이 땅의 거민들은 하늘에서 벌어지는 이 영광스러운 장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범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데로 나아간다. 이 때 어린 양은 책을 펴기 시작하실 것이며 심판이 임할 것이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지금 당신이 구원받게 된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일 것이다 !"
▣ 인봉한 책을 펴다 - 요한계시록 6장
우리는 이제 다니엘의 70이레(단 9:27), 곧 7년환란기의 전반부에 들어서고 있다. 어린 양이 인봉한 책을 취하셨으며(피조물에 대한 그의 권리증서) 인을 떼시고 불경건한 세상에 전쟁을 선포하시려는 순간이다. 하늘에 있는 인(印)들을 하나씩 뗄 때마다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이 인들을 마태복음 24장에 나와 있는 마지막 때에 관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바와 비교하는 것을 잊지 말라.
1. 첫째 인-적그리스도가 일어나 권력을 잡는다(6:1-2)
첫번째 네 인들을 떼자 보좌 앞에 있는 네 생물 중의 하나가(4:6-11) 말탄 자와 말을 “오라“고 부른다. 처음 말은 흰색이고 그 말을 탄 자는 활과 면류관을 가졌다. 이 말을 요한계시록 19장 11절에 나오는 말과 혼동하지 말라. 그곳에서는 분명하게 그리스도께서 말을 타고 정복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한 자는 적그리스도이며 거짓 그리스도로서 이 땅을 정복하는 자이다. 그가 화살이 아닌 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평화롭게 열방을 정복할 것을 시사한다. 교회가 휴거된 후에 적그리스도가 승리 가운데 행진할 수 있도록 길이 열릴 것이다(살후 2장). 일시적으로 거짓된 평화가 있을 것이지만 그가 유럽을 연합시키고 유대인과 조약을 맺게 할 것이다(살전 5:2-3). 이 일은 마태복음 24장 5절과 평행을 이루며 요한복음 5장 43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언을 성취한다."
2. 둘째 인-전쟁(6:3-4)
세계적인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할 때 무서운 전쟁은 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24장 6-7절과 평행을 이룬다. 붉은 색은 공포나 죽음과 관련된 색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전쟁하는 붉은 말(6:3-4), 붉은 용(12:3), 붉은 빛 짐승(17:3)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에게 이 땅의 평화를 빼앗아갈 권위를 주시는 것에 유의하자.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화살이 없는 활을 큰 검으로 바꿔 주신다. 그리고, 사람들은 서로 죽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국제 간의 협상이나 토론이라는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을명백하게 말해 준다."
3. 세째 인-기근(6:5-6)
기근과 전쟁은 함께 다니기 마련이다(마 24:7 참조). 검은 색은 기근을 생각하게 한다(렘 14:1-2/애 5:10 참조). 말탄 자(여전히 적그리스도임)가 저울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식량 소비를 통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밀 한 되는 1리터가 약간 더 되며, 한 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임금에 해당한다. 달리 말하자면, 식량이 너무도 귀하여 곡식 1리터를 구하려면 남자가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부자를 위하여는 감람유나 포도주가 부족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자. 우리는 여기서 부자는 더 부요하게 되고 사치를 즐기지만 가난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하여져서 연명하기조차도 어렵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에게 생활 필수품만은 주겠다는 모든 인위적 계획이 실패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곡식과 감람유와 포도주가 이스라엘의 주 생산품이라는 점에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호 2:8).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했으므로 그 자원을 보호하고자 원했을 것이다.
4. 네째 인-사망(6:7-8)
“청황“이란 색은 문둥병의 병색(病色)을 나타낸다(레 13:49). 사망이 이 말을 탔고 “음부“(지옥이 아님)도 그와 함께 타고 있다. 사망은 시체를 요구하고 음부는 영혼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땅의 인구 사분의 일을 죽일 권세를 그들에게 주신다 !
네 가지 방법이 사용되는데, 검(폭력과 전쟁)과 흉년(기근)과, 사망 또는 흑사병(전쟁과 기근에 동반하는 질병)과 짐승들(자연은 문명이 타락할 때 이 권한을 인계받는다)이다. 이와 평행을 이루는 귀절인 에스겔 14장 21절을 읽어보라. 들짐승들조차 굶주려 사람들을 해칠 것이다 ! 교회가 하늘로 데려감을 당한 후에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세상이 맞이할 심판이란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 !(마 24:7)"
5. 다섯째 인-순교자들(6:9-11)
구약의 제사장은 놋제단 아래 희생제물의 피를 부었다(레 4:7). 피는 생명(또는 영혼, 레 17:11)을 말하는 것이므로 하늘의 제단 아래는 순교자들의 영혼이 있다. 이들은 휴거 이후에 구원받은 사람들이며, 그들의 생명으로써 증거를 나타낸 사람들이다. 그들을 죽인 자들은 그 당시까지도 여전히 지상에 생존해 있었고 아직 심판을 받지 않고 있었다.이 순교한 성도들은 신원해 줄 것을 기도한다(시 74:9-19/시 79:5/ 시 94:3-4 참조). 이 세대에 사는 성도들은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그리스도와 바울과 스데반이 그렇게했던 바이다(눅 23:34/행 7:60/딤후 4:16).
그러나, 지금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기도, 곧 구원해 줄 것과 신원해 줄 것을 바라는 기도에 응답하실 때인, 심판이 때일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기도할 때 세상을 심판하시는 중에 계시며,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 24장 9절과 평행을 이룬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러나, 먼저 그들의 형제들이 좀더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12장 11절, 14장 13절, 그리고 20장 4-5절에서 죽임당한 다른 성도들을 본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 중에는 그 때까지도 땅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두 증인 모세와 엘리야도 있을 것이다(11:1-7). 요한계시록 20장 4절은 이 환란의 순교자들이 천년왕국 동안에 부활하여 왕노릇할 것임을 시사한다.
6. 여섯째 인-세상의 혼돈(6:12-17)
이 귀절은 누가복음 21장 25-26절과 평행하다(욜 2:30-31/욜 3:15/사 34:2-4/사 13:9-10 참조). 계시록에는 세 지진이 지적되어 있다(6:12/ 11:13/16:18-19). 문자 그대로의 지진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이 지진들과 더불어 이 땅과 하늘에 소동들이 생겨서 크건 작건 간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귀절들이 원폭전의 결과, 곧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큰 땅이 옮기워지고, 사람들은 땅의 굴을 찾아 핵 방사선을 피할 것을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으나,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로부터, 그리고 그의 진노로부터 피하여 숨는 것이지 사람이 만든 장치로부터 피하여 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5절은 환란의 전반 삼년반 동안의 생활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생생한 묘사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왕국들이 다시 회복될 것이다. 오늘날은 민족주의나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나 이것은 변할 것이다(16:12-14).
적그리스도는 그를 따르는 하찮은 많은 왕들을 거느린 “유럽 연맹국“(The U-nited States of Europe), 곧 회생한 로마 제국을 통치할 것이다(17:12-14). 환란 날의 또다른 특징은 군주주의이다. “장군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는 로마의 칭호로서(사단 사령관)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부활한 로마 제국에 줄곧 따라다니게 될 칭호이다. 노예들(종들)도 있을 것이다. 18장 13절을 보면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 바벨론의 상품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큰 부와 큰 빈곤이 있을 것이며 열방의 경제를 파산시킬 부의 재분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섯째 인의 심판은, 마치 열방의 경제적 정치적 제도들을 뒤흔들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에서 문자적인 물리적 파괴를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일들은 적그리스도가 그의 통치를 확장하는 데 용이하게 할 것이다.
땅에 거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심판을 내리고 계시다는 것을 알 것이지만 그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을 것이다 ! 그들은 반석이신 그분안에 피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바위틈에 숨으려 할 것이다. 환란의 처음 삼년 반은 후 삼년 반을 위한 준비 과정이며, 후반기는 하나님의 진노의 기간으로 알려져 있다(11:18/12:12/14:10/18:3 참조).
그런데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는 휴거가 있는 것은(여섯째와 일곱째 나팔사이에도 있다(10:1-11:13). 환란기 중에 구원받게 될 두 부류의 구속받은 큰 무리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 연구에서 이 부류를 검토할 것이다.
요약컨대, 적그리스도는 평화로운 정복자로서 그의 역할을 시작할 것이나, 열방을 통제하기 위하여 전쟁과 경제적인 통제로 호소할 자라는 것을 주목하자. 세상은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였으므로 적그리스도의 거짓 평화를 받아 들일 것이다."
▣ 구원받은 두 무리 - 요한계시록 7장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을 떼는 것 사이에 하나의 휴지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멧세지를 땅 끝까지 전할 십 사만 사천의 유대인 선교사들을 인치시는 잠시동안은 심판을 멈추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오고 있음에 대하여 살펴보았다(6:15-17). 따라서 하나님은 폭풍우를 가라 앉히시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똑같이 하나님의 자비를 뻗치신다. 우리는 여기서 두 그룹의 구속받은 백성을 본다.
1. 인맞은 유대인들(7:1-8)
하늘의 바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며, 여기서 심판은 특별히 땅과 바다와 초목에 임하는 심판이다.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네 천사들은 처음의 네 나팔을 부는 천사들이다. 왜냐하면 심판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8:6-12 참조). 동쪽으로부터 온 천사는 하나님의 인을 붙들고 있다. 인은 소유와 보호를 뜻한다(9:4).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쳐진다(엡 1:13-14). 성령의 인침은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 즉시로 일어난다. 또한 이 인침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생명과 유업을 확신케 한다. 인치는 천사는 바람의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종이 아무리 불순종했다 해도 상관치 않고 그가 구원받을 때까지 그들의 심판을 보류할 것을 명령한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에스겔 9장에서 찾아보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주께서 택하신 자들을 모으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던 것을 기억하자(마 24:31). 바람의 천사들과 더불어 우리는 또한 불의 천사(14:18)와 물의 천사(16:5)를 본다. 이 천사들은 자연의 활동에 자주 관여되고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자들이다.
이 인맞은 종들은 모두 유대인으로, 이스라엘 열 두 지파들로부터 각각 일만 이천씩이다. 어떤 악의가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십 사만 사천은 교회(새 이스라엘)를 상징한다고 가르쳤는데, 이는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역사의 이 시점에서 교회는 더이상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지상에 생존해 있는 참유대인으로서 십 사만 사천을 가르치고 있는 본 장을 여호와의 증인은 오용했다. 그들은 아마도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인도될 것인데, 이 두 증인은 환란의 처음 삼년 반 동안에 말씀을 전파할 사람들이다(11:1-12 참조). 이들은 복음을 온 족속에게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하신 보호받은 선교사들, 곧 144,000명의 “사도 바울들“일 것이다 !
이렇게 되면 마태복음 24장 14절의 그리스도의 예언이 성취될 것이며, 그 결과 수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받게 될 것이다(7:9-). 바울이 그의 사역 기간 동안에 얻은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하면 십 사만 사천의 그런 선교사들이 과연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
단 지파가 명단에서 빠지고 그 대신 므낫세 지파가 그 자리에 든 것에 흔히들 주목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단은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이끌어갔다(삿 18:30/왕상 12:28-30).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들의 이름을 지우겠다고 약속하셨다(신 29:18-21).
적그리스도는 단 지파로부터 나올 수도 있다(렘 8:16)."
2. 구원받은 이방인들(7:9-17)
유대인들은 계수되었으나 이 무리들은 셀 수가 없다. 이 이방인들은 십 사만 사천 인이 수고한 결실이며 하늘 아래 있는 온갖 족속으로부터 난 자들이다. 이들은 교회의 일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좌 앞에 있는 그들을 보지만 장로들처럼 보좌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14절은 이들이 큰 환란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 요한은 여기서 이들이 하늘 보좌 앞에 서서 하나님과 어린 양을 찬양하는 것을 본다. 그들이 든 “종려가지“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축복을 즐거워했던 구약의 장막절을 암시한다(레 23:40-43). 이 절기에 이들은 흰 옷을 입는데, 이것은 어린 양으로 말미암은 그들의 의로움을 가리킨다.
14절은 이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것을 명백히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느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15-17절은 이 이방인들이 땅에서 참아야 했던 시련들을 암시한다. 이들은 먹을 양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굶주리고 목말라했다. 이들에게는 낮의 뜨거운 열기를 피할 어떠한 곳도 없었다. 눈물과 시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이방인들은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나오는 “양“에 속하는 것 같다. 그들은 환란의 때에 유대인들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었던 이방인들이다.
이 신자들은 짐승의 표 받기를 거절했을 것이며(13:16-18), 따라서 사거나 팔 수가 없었을 것이다. 미움과 핍박을 받은 유대인들과 친교를 맺은 것이 통치자들의 진노를 일으켰을 것이므로, 이들은 음식의 배급(13:17), 물이 피로 바뀜(16:4), 그리고 열(16:8-9) 등과 같은 환란의 무서운 심판을 참아야 했을 것은 물론이다.십 사만 사천 인이 환란을 통과하는 한편, 큰 무리의 이방인이 환란의 때에 자기의 생명을 바칠 것임에 주목하자. 6장 9-11절에 나오는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이러한 이방인 신자들을 상주실 것이며 그들의 고난을 보시고 그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14-17장의 약속들이 하늘나라가 아니라 천년왕국에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은 이 환란의 순교자들에 대한 특별한 부활을 가리키며 왕국 시대 동안에 살아서 왕노릇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14-17절을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의 성도들로 이루어진 축복받은 국가에 적용해야할 적절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볼 때 이 모든 고난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요약하면, 우리는 이스라엘이 불신앙 가운데 그들의 땅으로 돌아와서 성전 예배를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한다. 적그리스도는 유럽 연맹국을 다스리고 있고, 세상에는 전쟁과 기근과 혼돈이 있다. 두 증인(모세와 엘리야)이 이스라엘에서 전파하고 있고 하나님은 이 민족 중의 남은 자들, 곧 이방인들 중에서 그의 증인이 될 십 사만 사천의 유대인들을 인치셨다.
물론, 이들이 사역에는 박해가 따를 것이며 이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옥에 갇히게 될 것이다(마 25:36). 그러나, 이방인 회심자들은 그들을 지원할 것이며, 그들의 공개적 증거로 인하여 이방인 중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목숨을 내놓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14절은 은혜 시대 동안에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은 교회가 이동된 후에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들은 진리는 믿지 않으려 했지만 거짓말을 믿으려 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이해했으나 그것을 고의적으로 거절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교회가 사라진 후에도 복음을 믿을 큰 무리의 이방인들이 있을 것이며, 이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자기의 생명을 내놓을 것이다. 우리는 환란 기간 동안에도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더욱 현명하다!
우리는 본 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제1그룹(7:1-8) 제2그룹(7:9-17)
유대인들 이방인들
계수됨-십사만사천명 아무도 셀수 없을 만큼 큰 무리
인맞고 보호맞음 인맞지 못함-많이 죽을 것임
땅에서 증거하는 일을 보임 하늘에서 예배하는 것을 보임
하나님의 특별한 선교사들 그들의 증거를 완수한 사람들
왕국으로 들어감 이스라엘과 함께 왕국에 참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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