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음 (빌 2:5)
이 시간에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제목입니다. 말씀 드리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다 들으시고 답을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것입니다. 용광로보다 더 뜨거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답이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정답이죠? 세상에 그 어떤 것이 있을지라도 우리 하나님 마음처럼 넓고 크고 아름답고 뜨겁고 위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천국에 갔더니 들어가 보아라 해서 들어가 보았더니 어마어마하게 큰 심장이 있는데 그 심장 여기저기가 크게 뻥뻥 뚫려 있고 그렇게 갈래갈래 찢어져 있을 수가 없더랍니다. 그 심장이 누구의 심장이었겠습니까?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심장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본문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만 가지고 산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마음만 가진다면 어떻게 반목과 질시가 있을 수 있고, 이 마음을 가지면 어떻게 불충성과 악함이 있고, 이 마음만 가지면 어떻게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송 받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무엇이 문제 될 것이 있겠습니까? 오늘 임직 받으시는 분들이나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 예수님의 마음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 될까요?
저는 몇 년 전에 치유상담을 전공하신 분의 강의를 들어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 분은 마음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머리를 가리키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뇌를 치료하면 마음도 치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는 있으나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뇌가 건강해도 마음이 잘못될 수 있습니다. 혹은 뇌는 건강해도 신체의 다른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여러 가지 심리적인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뇌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봐도 뇌를 치료하여 훌륭한 사람 되라는 구절은 없습니다. 뇌를 치료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갖는다면 교회는 필요 없고 병원만 세우면 될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요?
1.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갈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방법은 성령 충만 받는 거예요.
길지는 않지만 목회일생 속에서 문제 가진 교인들을 보면서 때로는 맘 상할 때도 있었지만 돌이켜 볼 때 그 영혼이 은혜 받지 못해서 그랬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이 더 마음이 더 아플 때가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구원조차 받지 못하고 거듭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이 되거나 하기 전에 먼저 은혜부터 받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려면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고전11:1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했습니다. 벧전2:21에는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합니다.
야곱이가 양치면서 우물가에 나무들을 알록달록하게 벗겨놓고 그것을 보고 알록달록한 새끼를 배도록 한 것처럼 우리들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혹시 사람을 보더라도 좋은 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나는 누구를 존경하고 본받는다 해서 잘한다 했더니 보니까 좋은 점은 놔두고 나쁜 점만 본받더라고요.
또 어느 사람은 어떤 모임이 갖다 오더니 행동이 거칠어집니다. 회의를 하면서 소리도 지르고, 왜 그런지 살펴보니 거기서 나쁜 점을 배워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가지마!”, 그랬습니다. 모임들이 많지만 비방을 일삼고 파워게임만 하려는 그런 곳은 피해야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야지 누구를 본받는 것입니까?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기껏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이 시는 충신 정몽주의 어머니가 이성계 부자의 더러운 권력다툼에 끼지 말라는 애끓는 마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사랑하는 우리를 향해 시를 읊으신다면 무엇이라 하실까요? 우리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나는 예수의 심장을 가졌다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예수 잘 믿고 성령 충만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고 충성하고 섬기고 겸손하고 또 겸손하면서 자기 직분에 충성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 칭송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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