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카운터 모뉴먼트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해병대전쟁기념조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태평양의 이오지마(硫黃島)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국 군인들이 섬 꼭대기에 있는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재현한 조각이다. 이 조각은 사진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그 사진은 성조기를 꽂는 실제의 역사적인 첫 순간이 아니라 더 큰 성조기로 바꾸는 두 번째 장면을 마침 그곳에 도착한 사진기자가 찍은 것이었다. 주요 신문에 이 사진이 보도되면서 두 번째 성조기를 꽂은 군인들이 더 유명해졌고 미국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졌다. 조각가 팰릭스 웰든은 1954년 이 장면을 대형조각으로 제작하였다. 전쟁의 승리와 영웅을 기념하는 이 전형적인 모뉴먼트는 이후 미국 군인과 애국심의 아이콘이 되었다.
- ▲ 반파시즘기념비. 왼쪽은 1990년, 오른쪽은 1992년 사진이다.
1980년대부터는 영원한 가치를 강조하는 모뉴먼트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위 '카운터 모뉴먼트'로 알려진 이들 기념물은 일시적이며,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유의 모뉴먼트였다. 독일의 조각가 요헨 게르츠와 에스터 게르츠가 하브루크 시내에 세운 '반(反)파시즘 기념비'(1986년)도 처음에는 약 12m 높이의 알루미늄 기둥이었다. 이 조각은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당한 유태인을 기념하기 위한 것인데, 기둥 표면에 이름이나 의견을 쓰라는 안내문이 7개 국어로 적혀 있고 철필이 달려 있었다. 납으로 처리된 표면에 글이 채워지면 이 기념비는 조금씩 땅 아래로 내려가서 다른 사람들이 또 그 윗부분에 글을 쓸 수 있게 고안되어 있었다. 약 7만여명의 서명이 담긴 이 기념비가 완전히 땅 아래로 내려간 것은 7년 후인 1993년이었다. 물론 모든 시민이 이 기념비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글이나 낙서가 지저분했고, 네오 나치들이 스와스티커 문양을 그려놓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념비는 그동안 나치의 행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던 독일인들을 공개적인 토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작가들은 기념비를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의에 대응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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