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書槪論/[구약성서개론] 개관

[스크랩] 요나서 – 개론

好學 2011. 12. 14. 20:50

요나서 – 개론

 

 

▣ 불순종하는 종 - 요나

 

요나가 역사에 나타나는 실재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열왕기하 14장 25절에서 증명된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여로보암 2세가 왕국을 확장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예언을 본다. 이 멧세지는 물론 그를 인기있는 설교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나를 불러 앗수르제국의 수도인 니느웨성에 가서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셨을 때 이 선지자는 반항하였다.
역사는 앗수르인들이 잔인하며 원수들을 산 채로 묻어버리거나, 산채로 가죽을 벗기거나, 또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 날카로운 장대로 꽂아 두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냉혹한 사람들이라고 말해 준다. “니느웨가 망하게 되었다면 망하라지! 원수가 멸망에서 구원을 받는 것을 보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나님께 불순종하겠다“라고 요나는 쟁론하였다. 네 장으로 된 이 책에서 요나는 자기의 경험과 배운 교훈을 추적해 가고 있다.

 

1. 사임-하나님의 인내하심에 관한 교훈(1장)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그가 “여호와의 앞에서 도망하였다“는 뜻은 선지자의 직임을 사임했다는 뜻이다. 요나는 그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도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시 139:7- 이하) 자기의 소명에 사임을 하고 설교하기를 중단할 수는 있었다. 그는 타락한 선지자가 되었다!

타락의 요인-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그릇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그 일이 어렵고 위험하다고 생각하였다(4:1-2). 그는 또한 전도에 대하여 그릇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데 따라서 “전도를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가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 좋은 간증 아니면 좋지 못한 간증을 남기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기도에 대해서도 나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문제에 봉착하여 기도하였으나(2:1- 이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하나님의 뜻을 행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았다. 그는 또한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그릇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 싶어했다!

타락의 과정-이 과정은 하향적이었다. 그는 욥바로 내려갔으며, 배에서도 아래로 내려갔고, 바다 아래로 내려갔으며, 큰 물고기 속으로 내려갔다. 불순종은 언제나 아래로 내려가도록 이끌어 간다. 그러나 타락하는 신자에게 있어서조차 일들이 가끔 “잘되는 것“같이 보인다는 점에 유의하자. 이 점은 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 배삯을 지불할 돈이 있었던 데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마음이 평화로웠으며 폭풍 중에서도 잠을 잘 수가 있었다!

타락의 결과-참으로 비극적인 결과였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잃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천둥과 번개로 말씀하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영적인 힘을 잃고 배의 선창에서 잠이 들었다. 그는 기도할 힘을 잃었으며 기도하려는 욕망조차 잃었다. 이방인들은 기도하고 있었으나, 요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간증을 잃었으며 유익을 위한 영향력을 잃었다. 왜냐하면 그 폭풍이 일어난 원인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의 생명을 거의 잃을 뻔하였다! 신자가 타락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러나, 주님은 그에 대해 인내하고 참으셨다."

 
2. 회개-하나님의 자비에 관한 교훈(2장)

요나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 아래에서 징계를 받고 있었다. 요나는 자기를 바다로 던진 것은 항해자들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있었다(2:3).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시련과 고난이 닥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시 119:67). 히브리서 12장 5-11절에서 알려주는 바 하나님의 징계의 뜻은 우리가 죄를 깨닫고 고백하는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잃었으며(2:4/시 51:11) 마귀의 거짓말을 믿었음을 시인하였다(2:8). 그는 죄에 대한 진정한 슬픔을 보여 주었다(2:9).
이제 요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으며 구안 시대의 유대인들이 교육을 받은 대로 성전을 향하였다(2:4/대하 6:36-39). 이 구절은 요한일서 1장 9절의 내용과 같다. 하나님은 그를 정결케 하셨으며 그에게 또다른 기회를 주셨다. 히브리서 12장 5-11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징계에 반응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 우리는 요나가 3일 동안 행했던 것처럼 이 징계를 경멸하고, 고백하기를 거절할 수도 있다. 우리는 힘을 잃고 항복할 수도 있다. 아니면, 하나님의 징계를 견디며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는 그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일들을 성취해 가실 것을 믿을수도 있다. 하나님의 손에 대항한다는 것은 문제를 자초하는 것이다. 요나는 순복하였고 기도하였으며 신뢰하였고, 하나님은 용서하셨다.


3. 부흥-하나님의 능력의 교훈(3장)

이 장에서의 핵심 단어는 “큰“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기 위하여 큰 성에 왔다. 니느웨성과 그 주변에는 거의 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큰 성벽과 망루들이 있는 이 성은 흥왕하는 앗수르의 중심지였다. 니느웨는 죄악된 도시였으며(나 3장 참조) 적들에게는 동정심이 없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백성들이었다. “폭력“이 그들의 으뜸가는 죄였다(3:8). 하나님은 요나를 불러 이 이방 민족에게 말씀을 전하게 함으로써. 이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용서를 받게 하는 큰 사명을 맡기셨다. 참으로 놀라운 멧세지였다! 요나가 이 멧세지를 전하기 위해서는 그의 죄악된 선입관을 극복해야만 했다.
그 후에 하나님은 그 성에 큰 변화를 이룩하셨다. 왕으로부터 가장 낮은 시민에 이르기까지 두려움과 회개를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두 가지 일이 이 일에 공헌하였다. 요나의 멧세지와 요나가 큰 물고기에게서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인데, 이 소식은 물론 이 성에 전해졌을 것이다. 니느웨를 통과하는 데 3일이 걸렸으나, 요나가 사역한 첫날에 부흥이 임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었으며“(3:5) 통회하는 행위를 통하여 그들의 믿음을 입증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셨다! 의심할 나위없이 이것은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부흥 운동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파하려는 연약한 인간을 사용하셔서 주님이 일하실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2장 38-41절에 나오는 중요한 요점에 대해 설명하심에 있어, 니느웨를 예로 들으셨다. 예수님은 3년 간 그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셨으며 기적들로 자신의 멧세지를 보강하셨다. 그러나 이들은 회개하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니느웨 사람들은 한 설교자에게서 하나의 설교를 들었다. 이 설교는 진노를 강조하였고 사랑을 강조하지는 못하였음에도 그들은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다! 유대인들은 3년 동안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들었으며 하나님의 용서의 멧세지를 들었다. 그래도 이들은 회개하기를 거절하였으므로 그들이 큰 정죄를 받게 될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4. 반역-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교훈(4장)

만일 당신이 이 사건을 기록하였다면 마지막 장에는 조심스럽게 백성들을 가르치며 영적인 결정을 하도록 돕는 요나의 모습을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기록하지 않으셨다. 즐거워하는 설교자를 만나기는커녕 우리는 그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하나님께 화를 내는 반역적인 설교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처럼 행동하는 어른을 보며 불신자같이 행하는 신자를 본다! 요나는 성 밖에 앉아서 자신을 달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을 원하고 있었다. 여기에 놀라운 일이 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설교를 통해서 부흥을 보내신 일이다!

 

이 책의 핵심적인 교훈은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다. 요나는 자신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였으며, 그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가 죽은 식물에 대해서도 유감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는 니느웨성의 군중들을 위하여 마음으로 느끼는 사랑이나 동정을 가지지 않았다. 여호와를 사랑하면서도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본 장에서 요나는 예수 그리스도와는 얼마나 다른가. 왜냐하면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의 성읍을 보시고 우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1장에서 바람과 파도를 조절하실 수 있으셨고, 2장에서는 고기를, 4장에서는 조롱박, 벌레, 바람을 조절하셨다. 그러나 요나가 항복을 하지 않고서는 이 선지자를 조정하실 수는 없으셨다. 자연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은 인간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리고 가장 순종해야 할 이유를 가진 피조물은 인간이다. 요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하여 죄를 고백하고 그의 사역을 계속한 것 같다. 하나님은 150년 동안 그 성을 아껴 두셨다.
물론 요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지내심과 부활을 나타내는 모형이다. 그리스도는 그외 인격에서, 그의 완전한 순종에서, 그의 멧세지(심판이 아닌 용서/욘 3:17)에서, 그의 대상에 있어서(일개 성읍이 아닌 온 세상), 그의 희생에 있어서(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심), 받을 만하지 못한 사람들을 사랑하심에 있어서 요나보다 크신 분이시다. 어떤 이들은 요나에게서 유대 민족의 불순종함과, 나라 밖으로 던져져, 바다(이방인들)에 삼키워짐과, 압박이 있었으나 보호를 받고 다시 되돌려져 또 한 번의 기회를 갖게 되는 등의 모습을 본다. “구원이 유대인들에게 속한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스라엘을 떠나서는 성경도 구세주도 가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출처 : The King dom
글쓴이 : 好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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