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신학자들] 생애

루터신학

好學 2011. 12. 11. 17:23

루터신학


루터신학의 배경

1483년 11월 10일 저녁 늦게 루터 가에 첫아들이 태어났다. 다음날 아침 이 아이는 세례를 받았고, 세례 받는 날이 어느 성인의 날인가를 따져 그 성인의 이름을 붙여주는 오랜 전통에 따라 이 아이는 프랑스의 성인 뚜르의 성 마르틴(St. Martin of Tours)의 이름을 따 마르틴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학교 성적이 대체로 무난했던 그는 1501년 4월 어푸르트 대학교에 진학한다. 중세시대에는 자질이 뛰어난 학생들이 보통 세 가지 진로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는데, 석사학위를 마친 후 신학, 의학, 법학 중 하나를 공부하는 것최고 학부겄로 진학하는 것이었다. 마르틴은 1505년에 석사학위를 받은 후, 아버지의 압력과 더불어 법학 연구를 시작했다.

이렇게 진행되던 마르틴의 생애에 갑자기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1505년 6월 30일경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슈토터하임이라는 촌에 다다를 무렵 그는 사나운 폭우를 만나게 되고 여기서 엄청난 공포에 휩싸인 그는 이렇게 외쳤다. 겁성 안네여, 나를 도우소서! 내가 수도사가 되겠나이다.겂

이 후 마르틴은 1505년 7월 17일 어푸르트의 7대 수도원중 하나이며 규율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어거스틴 교단의 수도원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마르틴의 기나긴 신학 여정이 시작된다. 수도원에 들어간 지 2년만인 1507년 사제로 임명받았고, 1509년에는 신학자로서 기본 자격을 획득했다. 1512년 10월 18일에는 마침내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때 그는 비텐베르그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이에 비텐베르그 대학의 설립자이자 작센의 선제후였던 프리드리히와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훗날 이 인연은 마르틴의 종교 개혁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비텐베르그에 온 후 그는 시편 강의(1513-1515)에 이어 로마서 강의(1515-1516), 갈라디아서 강의(1516-1517), 히브리서 강의(1517-1518) 등을 했다. 이렇게 성경 본문에 대한 강의를 해 나가던 루터는 세상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인식이 새로이 변화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신학은 이렇게 성경 본문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가운데 형성되어 갔다.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는 중세 말기의 교회가 가르치던 교리와 관습을 점점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다. 동시에 그는 어거스틴의 작품들, 특히 그 중에서도 펠라기우스를 논박하는 글들을 숙독했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향후 유럽사와 기독 교회사에 대전환을 가져오게 한 개혁 신학을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다.

마르틴이 일으킨 첫 번째 소동은 1517년 면죄부에 대한 논란으로 일어났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당시 가장 능력 있는 면죄부 판매인이었던 요한 터첼이 뛰어난 상술을 발휘하여 기독교를 상품화하고 다니자, 이에 루터는 비텐베르그 성의 교회 정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내걸었고(사실 이 사건을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대학의 중앙 게시판에 대학에서 내걸 수 있는 합법적 공고를 내다 붙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마르틴은 이러한 일련의 비판화 과정 속에서 마침내 1519년 라이프니찌히에서 요한 에크와 벌인 공개토론에서 교황의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기게 된 것이었다.

1520년 루터는 그의 명성을 대종교개혁자로 확립시켜 준 주요 저서 세 권을 발표했다. 영리했던 루터는 자신의 사상을 더 많은 대중에게 전파할 생각으로 이들 저서를 독일어로 집필했다. 당시 라틴어가 유럽의 교회 지도자들의 전유물이었던 것과는 대조로 독일어는 평민들의 언어였다. 것독일 귀족에게 고함겄에서 루터는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열정적으로 주장했다. 16세기초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은 신약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었다. 그의 간결하면서도 기지에 찬 독일어 솜씨는 밀도 높은 신학 사상을 가지고 대중의 호소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했다. 것교회의 바벨론 감금겄에서는 힘있는 어조로 복음이 제도적 교회의 틀에 얽매여 있음을 밝혔다. 그는 중세교회가 복잡한 사제제도와 성찬예식이란 틀 속에 복음을 가두고 있다고 공박하였다. 교회가 복음을 다스리는 주인 행세를 하고 복음이 교회를 수종 드는 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점은 것그리스도인의 자유겄글에서 더 깊이 다루어지는데 거기서 루터는 신자의 자유와 의무를 동시에 강조했다.

이 후 그는 잘 알려진 바와같이 교황에게 파문을 당하는 등 수많은 위협 속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프리드리히 선제후의 도움으로 이와 같은 어려움을 그는 신앙을 성숙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은둔 생활을 통하여 성경을 다시 한 번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독일어로 번역해내었으며, 깊은 사색을 통하여 자신이 펼쳤던 여러 사상의 심층적인 의미들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고 자신의 동기가 얼마나 순수했던가를 시험해 볼 수 있었다.


루터의 신학 사상

모든 사실로 미루어 보아 청년 루터는 자신이 죄인임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젊은 날 그를 사로잡았던 한 가지 의문은 겁어떻게 하면 내가 은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겂라는 것이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어떻게 죄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죄를 인식하면 할수록 이러한 의문은 루터를 우울하게 할뿐이었다.

루터가 풀지 못하고 골머리를 앓던 이 난제의 중심에는 것하나님의 의겄라는 개념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나님을 의로우신 분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루터가 신학 훈련을 받은 학파는 소위 유명론이라는 사상의 분파였는데(요즈음에는 것근대적 사유방식겄이라고 더 많이 알려져있다) 이 학파에 속한 사람들로는 14세기 영국의 유명한 저술가 옥캄의 윌리엄과 15세기 독일 출신의 저술가 가브리엘 비엘 등을 들 수 있다.

루터가 신학 연구 초창기에 것하나님의 의겄를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가브리엘 비엘의 사상을 간략히 기술해 보자. 비엘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과 어떤 계약, 즉 언약을 맺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그 계약이 정한대로(하나님을 사랑한다든지 죄 짓는 것을 그만둔다든지) 행하면 하나님은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 사람을 의롭다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공정성은 매우 주도면밀해서 심판의 기준은 항상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지 그렇게 한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니다. 그러므로 언약이 규정하는 기본 조건을 만족시키면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막론하고 그는 의롭다 함을 받게 되어 있었다. 즉 하나님은 칭의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에 따른 보상을 해주시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면 그의 신분에 관계없이 처벌하신다는 뜻에서 공의로운 분이시다.

여기서 루터는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즉 당신이 죄인이라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죄에 깊이 빠져 버린 나머지 도대체 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루터는 죄의 뿌리가 너무 깊은 나머지 죄가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쥐어흔들고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돌아설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 같다. 이러한 고민 속에 있는 루터에게는 비엘이 내세우고 있던 칭의나 것하나님의 의겄 사상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서 인간의 죄를 심각하게 파악하지 못한 견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만약 하나님이 그와 같은 의의 표준으로 죄인들을 벌하신다면 복음이라는 것도 루터와 같은 죄인들에게는 조금의 위안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루터는 구원을 얻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알고 있던 것들을 혼신을 다하여 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은 구원받을 가망성이 없다는 사실을 더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착실한 수도사로서 수도원의 계율을 철저히 지켰다. 그래서 수도원 훈련 을 통해 천국에 갈 수도사가 있다면 바로 내가 그런 수도사라고 자처했었다. 수도원에 함께 있던 다른 모든 동료들도 그 사실만은 인정해 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내 양심은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고 항상 의심이 일어날 뿐이었다. 그 때마다 내 양심의 소리는 겁네가 옳게 한 일이 무엇이냐? 너의 통회하는 마음은 아직 충분치 않아. 너는 고백한다 하면서도 그걸 빼먹었잖아.겂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연약한 채로 남아 있는, 곤경에 빠진 양심을 인간의 전통으로 치유하려 하면 할수록 나의 양심은 날이 갈수록 더 불안해지고, 연약해져서 곤경의 늪으로 빠져 들어갈 뿐이었다.

루터에게는 구원의 조건을 만족시킨다는 것이 한마디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1513-1514년 동안 그의 관심은 온통 성경의 한 구절에 쏠려 있었다. 겁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겂(롬 1:17)가 그것이다. 루터는 것하나님의 의겄가 나타난 것이 어째서 복음, 곧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하나님이 그가 아는 바대로 의로운 분이시라면 루터와 같은 죄인들을 여지없이 벌하실 텐데 무슨 기쁜 소식이란 말인가? 이렇듯 부정적인 사실이 뭐가 대단해서 바울은 그다지도 흥분했을까? 아니면 루터가 바울을 완전히 오해했던 것일까?

그러다가 얼마 후, 1515년경의 일로서 정확한 날자는 알 수 없지만 루터는 돌파구를 발견해 내었다. 다행히도 당시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루터 자신의 기록이 남아있다.

밤낮으로 이 문제를 놓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마침내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힘입어 그 말씀의 문맥을 주목해 보게 되었다. 즉 것그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기록된 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겄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거기서 나는, 하나님의 의란 의인의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의인은 하나님의 선물,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뜻을 다시 정리해 보면,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이데 이는 수동적인 의로서 자비의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것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살 것이다.겄하고 쓰여 있다. 나는 여기서 완전히 다시 태어남을 느꼈으며 이미 열린 문들을 통하여 낙원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루터는 것하나님의 의겄란 하나님께 속한 어떤 속성으로서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즉 루터에게 있어서의 것하나님의 의겄란 하나님이 의롭게 하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한 예를 든다면 루터의 새로운 접근법을 더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이 감옥에 갇혔을 때 마침 엄청난 금액의 벌과금을 지불하면 석방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자. 그 약속은 확실한 것이어서 조건만 충족시켜주면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이러한 경우 펠라기우스나 가브리엘 비엘은 일종의 전제를 놓고 생각한다. 루터도 처음에는 이 전제를 받아들였는데, 그 전제란 당신이 그 벌과금을 갚을 만한 돈을 어딘가에 쌓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벌과금을 낼 능력이 있는 당신은 자유가 그 무엇보다 소중했기 때문에 주어진 흥정에 응하여 그 벌과금을 지불하게 된다. 이야기가 이렇게 되면 필요한 만큼의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당신에게는 아무런 심각한 문제가 없다. 그러나 루터는 어거스틴의 견해를 따른다. 죄인인 인간은 그 조건을 만족시킬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다. 위에서 든 예를 다시 보자. 루터는 (어거스틴과 마찬가지로) 그만큼의 돈이 없는 당신에게 그러한 석방의 약속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어거스틴이나 루터가 볼 때 복음이 기쁜 소식인 까닭은 그 자유를 얻는 데 필요한 돈을 거저 받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 조건은 이미 다른 사람에 의하여 충족되었다. 당신이 갖고 있지 못했던 그것을 당신 아닌 제3자가, 기대할 수도 없고 받을 자격도 없는 당신에게 베풀어 준 것이다. 여기서 루터는 비로소 바울이 왜 그렇게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롬 1:17)을 놓고 흥분했는지 그 까닭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것이신칭의겄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의 교리는 하나님이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믿음 자체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선행으로서가 아니라,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의로 의롭게 되었으므로 선행을 할 수 있다고 루터는 강조한다. 다시 말해 선행은 하나님이 이미 주신 이에 대한 반응이라고 해야 옳지, 우리가 선을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의를 허락하시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의로운 삶은 칭의의 결과이지 조건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루터의 신학 사상의 재조명

이제 여기에서는 기독교 사상에 남긴 루터의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공헌이라 할 수 있는 그의 것십자가의 신학겄을 살펴봄으로써, 신앙과 이성과의 관계를 조명해 보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고통에 대한 통찰력을 구해 보고자 한다.

루터는 십자가를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보았다. 우리의 눈에도 선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영상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형성시켜 주는 시련의 도가니인 것이다. 루터는 십자가의 중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겁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겂 겁십자가는 모든 것을 시험하는 시금석이다.겂 루터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님을 찾는 것영광의 신학자겄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그 십자가를 통해 계시되셨다고 인식하는 것십자가의 신학자겄를 구분하는 유명한 구분 논리를 전개했다. 그의 95개조 명제가운데 다음 글들은 이러한 루터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命題 19 : 하나님의 불가시적 본질을 그분의 업적을 통해서 인지하고 이해하는 자를 정당한 신학자로 볼 수 없다. 이것은 로마서 1장 22절에서 사도께서 어리석다고 부르는 그러한 것신학자들겄에게서 분명해진다. 하나님의 불가시적 존재는 그의 능력, 신성, 지혜, 의, 선, 기타 이와 비슷한 것들이다. 모든 이러한 것들의 인식은 현명하고 값어치 있게 하지 못한다.

(루터는 여기서 하나님 인식으로서의 신학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신학자들, 즉, 하나님을 인식하려고 시도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모든 기독교인은 그에게 있어서 것신학자겄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이다.)

命題 20 :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보여질 수 있고, 세상에로 향해진 것이 고난과 십자가에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자가 정당한 신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로 향해진 것,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보여질 수 있는 것은 불가시적인 것에 대립되어 있는데, 이는 그분의 인간성, 약함, 어리석음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업적을 근거로 얻은 하나님 인식을 남용하는 거기서 하나님은 다시금 그의 고난으로부터 인식되고자 하시기 때문이며, 따라서 불가시적인 것의 지혜를 가시적인 것의 지혜를 통하여 배제하길 원하시며 그리하여 그의 업적들로부터 계시되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이 그를 고난 속에 은폐되어 있는 분으로 경외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고전 1:21)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그를 그의 십자가의 비하와 수치 가운데서 인식하지 않는다면, 영광과 위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만족하거나 유익하지 못하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안에 참된 신학과 하나님 인식이 있다.

이처럼 십자가의 신학은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의 불가시적 존재를 추론하기 위해 가시적인 하나님의 업적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것하나님의 존재로부터 보여질 수 있고 또 이 세계에로 향해진 것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가시적인 존재는 것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겄를 말한다. 그것은 영광의 신학자의 추론하여 올라가는 인식이 말하는 하나님의 것불가시적 존재겄와 대립되어 있고 그것과 모순된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한 분만이 것진정한 신학이며 인간의 하나님 인식겄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업적을 통하여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 보여질 수 있고 직접적으로 인식되며, 또한 하나님 인식도 현실적이며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만약 우리가 거기서 하나님의 손을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로서의 하나님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 인간이 되시고, 이 인간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에 의하여 볼 수 있게끔 될 때만 인식될 수 있다. 실로 여기서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구원론적인 의도에서 성육신을 철저화한 것이다.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살게되는 바 그의 인간성과 육신의 통치를 통해 불행스럽고 거만한 신들로부터 참된 인간, 즉 비참과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을 그가 만들어 내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자기의 형상을 닮도록 만드시고 또한 우리를 십자가에 다신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위로 올라갔기 때문에 그는 우리들이 우리자신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처럼 되고자 아래로 내려 오셨다. 이것이 성육신의 의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다스리는 믿음의 왕국인데 이 왕국은 우리가 그릇되이 추구하는 신성을 무로 만들어 버리고, 또한 인간성과 우리가 내어버린 경멸받은 육신의 약함을 다시금 회복시켜준다.

루터는 이러한 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숨은 계시 사상을 전개하는데, 이는 상당히 난해한 개념이지만, 일단 그 의미를 파악하면 그리스도인의 실존과 경험의 여러 가지 양상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사상이다. 루터가 주장한 것숨은 계시겄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금요일의 절망스럽고도 무기력해 보이기만 하던 장면을 생각해 보자.

그 십자가 주위에 모였던 군중들은 무엇인가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그 상황에 개입하여 그를 구하시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긴긴 하루가 다 저물도록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겁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겂라고 외쳤던 예수의 부르짖음은 비록 일시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예수 자신도 그 순간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음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많은 사람들은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극적으로 개입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가는 예수를 구원해 주시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예수는 고통을 받다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활동하심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경험에만 의지하여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던 사람들은 곧 명백한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러나 부활은 그러한 판단을 뒤엎는다. 하나님은 갈보리에 함께 계셨고, 역사 하셨으며 인류의 구원을 성취하셨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세상이 인정하게 하셨던 것이다. 인간의 경험으로 해석할 때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은 것 같았지만,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숨은 임재가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경험은 성금요일의 경험과 흡사하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와 함께 계시지도 않는 것 같고, 우리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시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이 성금요일을 부활 신앙으로 보는 것같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현재의 경험 속에서도 같은 해석을 내릴 수 있다. 루터에의하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그 때에 하나님은 사실 숨은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자가는 우리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판단하려는 교만함을 깨뜨려 버린다. 갈보리에 함께 계셨고 그 곳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만나고 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하여 겸손은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과거로부터 미래를 바라보는 史實的인 시간이해 대신, 미래로부터 과거를 바라보는 종말론적 시간이해를 취해본다면 루터의 숨은 계시 사상은 조금 더 쉽게 이해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은 죄와 죽음에 대한 처절한 고민과 치열한 자기 부정의 과정이 수반되어지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루터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참 고 문 헌

종교 개혁사, 유스토 L. 곤잘레스 著, 서영일 譯, 은성출판사

종교 개혁 사상 입문, A.E. 맥그래스 著, 박종숙 譯, 성광출판사

A Cloud Of Witnesses - Ten Great Christian Thinkers, Alister McGrath (IVP 역간)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J. 몰트만 著, 김균진 譯, 한국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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