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고충
왼손에 방사선 많이 쬐어 손등 까칠한 신경외과의
발에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장기이식수술 전문의
환자 치료하는 의사들도 직업병 앓아… 목디스크·어깻죽지 통증은 대부분 의사들이 겪어
외과의사들은 '칼잡이'라는 화려한 명성과 달리 의외로 '주부습진'을 가진 이가 많다. 온종일 수술 장갑을 끼는 게 일상이다 보니, 손의 피부가 압박을 받고 공기 전달이 안 되어 쉽게 물러 터진다. 손도 자주 씻어야 하니 피부 보호 역할을 하는 피지가 남아나질 않는다. '엄마 손'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나 걸레질을 자주 하는 주부에게 습진이 잘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다. 특히 손에 땀이 많은 외과의사에게는 아주 고질병이다. 손이 거북이 등처럼 짝짝 갈라져 있다.
장기이식을 전문으로 하는 외과 교수 중에는 발에 정체성 피부염을 앓는 환자도 있다. 수술 시간이 10시간 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렇게 매일 오래 수술하며 서 있다 보니 발의 혈액이 위로 못 올라가고 정체된다. 발이 붓고 혈액 순환이 안 되어 피부 궤양까지 온 것이다. 외과 의사의 직업병치고는 아주 극단적인 케이스이다. 궤양 치료 연고를 항상 발에 바르는 그는 구두를 벗고 앉는 식당을 질색하며 싫어한다. 약 냄새가 식사 자리에 퍼지기 때문이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산부인과 의사는 여러 번 외래를 찾은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진료 부위를 들여다보고는 그때야 누군지 생각이 나서 "아하,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한다. 환자의 질병에 집중한 탓이다. 치과의사들은 누군가의 눈에 먼지 같은 게 들어가서 눈꺼풀을 위아래로 크게 벌려 봐야 할 때도 "아~ 해 보세요"라고 말하게 된다니, 그것도 직업병일 게다.
요실금 수술을 잘하기로 유명한 남자 비뇨기과 교수는 나이 지긋한 여교수는 물론 선배 교수 부인들의 요실금 수술을 도맡아 했다. 그러다 부부 동반 교수 송년 모임에 가면 참석한 여성의 대다수가 자신의 환자라는 생각이 들어 묘한 기분이란다. 명의(名醫)의 '직업세(稅)'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각종 피부 질환이나 미용 시술을 죄다 레이저로 하다 보니 피부과 의사들에게는 신종 직업병이 생기고 있다. 살과 털을 레이저로 태울 때 나오는 미세 가스 때문에 만성 기침이 생기고, 보안경 사이로 번쩍하고 들어오는 레이저 섬광 탓에 시력 저하를 호소하기도 한다. 의사 직업병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평소에 상대를 다소 분석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런 우스개 이야기도 나온다. 정신과 병원에 근무하던 사람이 직장을 그만뒀는데, 그 이유가 출근시간이 늦으면 반(反) 사회적 성격이어서 그렇다고 하고, 일찍 출근하면 불안증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고, 정시에 출근하면 강박증이 있다고 하니 도저히 못 다니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 그럴 리야 없겠지만, 어찌 됐든 관찰과 분석은 정신과 의사의 일상이다.
목 디스크와 어깻죽지 만성 통증은 대다수 의사들의 직업병이다. 매일 입 안을 이리저리 비춰보는 치과 의사나, 배 안 곳곳을 쳐다봐야 하는 외과 의사, 여러 각도에서 뼈 나사를 박거나 망치질을 해야 하는 정형외과 의사, 내시경의 방향을 계속 돌려가며 병소를 찾아내야 하는 내과 의사 등 목 디스크는 고개를 돌려 뭔가를 계속 들춰봐야 하는 직업의 숙명이다.
오랜 직업 생활에 따른 특유의 질병이 어디 의사들만의 것이겠는가. 누구나 신체의 특정 부위만을 계속 쓰거나 특정한 생활을 오래 하면 몸에 흔적이 박히기 마련이다. U.S 오픈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박세리의 하얀 맨발, 발레리나 강수진의 굳은살 박인 관절과 휘어진 발가락에서 그들의 지난했던 삶의 역정을 느낄 수 있듯이 '직업병'은 자신의 일에 매진한 결과다. 산업장 재해가 아니라면, 각자의 직업에 종사한 훈장이다. 사회 곳곳에 그런 '생활의 달인병(病)'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더 탄탄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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