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조직신학組織神學]

목회자(牧師)의 姿格

好學 2011. 9. 26. 20:15

목회자(목사)의 자격


현재 어떤 곳에서는 여자 목사이면서도 목회도 잘하고 남자 못지 않게 훌륭하게 일하는 여성들이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형편없는 여자목사들을 본다. 필자가 여자 목사를 지지한다고 해서 목사의 자질이 없는 아무 여자나 합당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목사는 목사다워야 한다. 목사란 사회 지도자가 아니라 영적 지도자가 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필자가 삼각산 근처에서 기도원을 할 때 여자 목사들을 많이 상대해 보았다. 그런 목회자들 중 어떤 여자 목사들은 집사만도 못한 자들이 종종 있었다. 한 여자 목사는 자기의 목양지도 없고, 또한 목회할 능력도 없으므로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데 자기가 목사의 실력이 없고 합당하지 못하면 겸손하게 평신 자의 입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목사라는 간판을 가졌다고 봉사할 줄도 모르고 자격도 없으면서 목사 대접이나 받으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문제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런 자는 차라리 평신 자로 있는 것만 못하다. 평신 자로 있으면 교인들과 협력하여 교회 부흥을 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 그러나 목사라는 간판 때문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기독교내에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 있다.
첫째, 목사는 목사로서의 기본 기준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 기준이 없는 사람은 목사 안수를 해서 안 된다. 남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자가 어떻게 남을 가르치는 자로 일 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런 자를 안수했는지 알 수 없으나 합당하지 못한 자면 신학교를 나왔어도 목사 안수를 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는 목사의 기준이 있다. 그러므로 그런 기준을 지켜야 한다. 여자냐 남자냐 구별할 것이 아니라 누가 영적 지도자로서 합당하냐 하는 기준을 검토해 보고 목사로서의 자질이 합당치 못하면 그런 사람은 제재해야 한다. 그러면 이제 성경에 있는 목사의 자질을 검토해 보겠다.

2. 목사로서의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

⑴ 목사는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딤전 4:13)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면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 3:2)
첫째로 목회자는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 가르칠 수 없다면 목사가 되지 말라! 목사는 양무리를 맡아 먹이는 자이다. 그런데 목자가 양을 먹일 때 풀 없는 곳으로 인도하면 안 된다. 좋은 풀이 많이 있는 곳에서 배가 부르도록 해야 한다. 짐승이 배가 고프면 이곳 저곳 헤매게 된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주님의 양들도 좋은 꼴인 말씀을 잘 먹어야 하는데 목사가 말씀을 잘 먹이지 못하면 교인들이 배가 고프니 이곳 저곳으로 방황하다가 이리떼에게 잡혀 먹히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이단에 빠지게 되므로 목사는 "가르치기를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 땅에 오셨을 때 가는 곳마다 가르치는 일을 하셨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새"(마 21:23)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막 1:21-22)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 가르치심에 사람들이 놀랐다. 잘 가르치셨다는 말이다. 서기관과 같이 가르치지 말고 권세 있는 자와 같이 가르쳐야 한다. 또 다음에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니 "많은 사람들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했다.(막 6:2)
예수님이 무엇을 중심으로 가르치셨는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의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눅 4:15)
예수님은 성경을 읽으시고 성경을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성경을 잘 가르쳐야 한다. 어떤 목사들은 성경의 본문만 읽어 놓고 본문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만담이나 잡담만 하다가 끝나고 어떤 목회자는 세상 돌아가는 정세와 뉴스를 하다가 끝이는데 이것은 참으로 잘못하는 것이다. 뉴스는 기자가 해야 되고, 세상 정세는 정치인이 해야지 목사는 그런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목사는 성경을 읽고 성경에 어려운 뜻을 잘 풀어 성도들을 먹이는 자이다.
예수님은 성경을 읽으시고 뜻을 풀어 주셨다. "이 성경이 너희에게 응하였느니라" 또한 어떤 목회자들은 성경만 가르치면 합당한 것인 줄 알고 성경을 열심히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필자도 성경을 가르치면 되는 줄 알고 15년 동안 가르쳐 왔는데 복음을 깨닫고 보니 성경을 가르치기는 했으나 엉뚱하게 복음은 가르치지 않고 율법만 가르쳤다. 현재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계시록, 계시록 하면서 종말에 관한 것은 열심히 가르친다고 하나 복음 없이 율법만 가르치는 자가 많다.
예수님은 복음을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눅 20:1) 복음 없이 성경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 "성경이 복음이지 무슨 복음이 따로 있느냐"고 할지 모르나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는 종종 종말 복음이니, 계시록 복음이니, 심판의 복음이니 하는
말을 하면서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을 보았다. 성경에 종말 복음이나 심판의 복음이나 계시록 복음은 없다. 이런 사람들은 복음이 무엇임을 알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안에 있는 평안이다. 복음이란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런 은혜에 대하여 성경은 "영원한 복음이라"고 했다. 창세로부터 종말까지 하나 밖에 없는 "영원한 복음"은 시대마다 다르게 배워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창 3:15절에 아담에게 전한 복음, 곧 여인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시다.
목사는 이 예수를 잘 가르쳐야 한다. 율법과 복음은 다르므로 구분해서 가르치도록 하라! 복음이란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오직 예수! 예수 외에는 어떤 것도 구원에 포함되지 않으며 구원이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 것을 말한다. 바로 예수님은 이런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오셨으며 "복음을 전하실새 사람들이 놀랐다"고 말씀하였다.

⑵ 보혜사 성령도 오시면 예수를 가르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은 성도들을 가르치는 최고의 스승이었다. 오순절 후 제자들은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말씀을 증거 하였으므로 듣는 자들이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십자가의 도를 통해 믿고 복음 안에서 즐거워하게 되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성령은 거짓이 없이 복음을 전하려는 자들에게 복음을 깨닫도록 가르쳐 주시니 목사는 가르침을 받은 데로 복음을 가르치고 또한 복음 안에 거하라 했으니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⑶ 제자들도 복음을 가르침

≪베드로의 가르침≫
베드로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고 열심히 전하자 반대하는 무리들이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했으나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고 하였다.(행 4:20) 그렇게 해서 계속 전하는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으나 하나님께서 옥문을 열어 주셨고 다시 베드로는 새벽에 성전에 가서 가르치셨다.

≪바울의 가르침≫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5)
바울은 안디옥에서 복음을 일년 동안 가르쳤으며 그 때야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복음을 잘 가르치니 복음을 깨닫고 성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목사들은 복음을 잘 가르쳐야 한다. 가르칠 수 없는 자를 목사로 세우는 것은 불법이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년 육개월을 지내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행 18:9)
"이 성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많으니 가르치라"했는데 바울은 말씀대로 순종하여 일년 반을 가르쳤다. 하나님이 명령하는데 누가 침묵할 수 있는가? 여자나 남자나 상관없이 하나님의 명령이면 가르쳐야 한다. 바울은 끊임없이 어디서나 가르쳤다.

3.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0)
바울은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쳤다. "예수에 관한 것" 이 말은 중요한 말이다. 목회자들이 종종 쓸데없는 만담이나 원맨쇼로 시간을 채워버릴 때가 있다.
우리는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곧 복음을 바로 가르쳐야 된다는 말이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 20:20)
사도 바울은 어디 가든지 예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고백하기를 "십자가 외에는 전하지 않겠노라" 그는 유익한 것은 거리낌없이 모두 가르쳤다고 했는데, 현재의 강단은 유익하지 못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가르치고 있는가! 부흥 강사들 중 더러는 예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돈 잘 내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래서 돈이 많이 나오면 "성공했다"하고 돈이 적게 나오면 "실패했다"고 한다. 부흥회는 예수 없는 자에게 예수를 영접하도록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르쳐야 한다.

≪아볼로의 가르침≫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행 18:24)
아볼로는 성경에 능한 자이다. 그런데 그가 가르친 것은 "주의 도"요,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가르쳤다"고 했다. 초대 교회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와 그의 복음이었다. 지각이 있는 자들이라면 한 번 생각해 보라! 초대 교회 사역 자들이 현재의 사역 자들 같이 했겠는가? 그들은 오직 예수, 그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자세히 전할까?
하는 것이 그들의 전부였다.

≪디모데의 가르침≫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전 4:17)
디모데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그는 사도 바울이 전하던 대로 전했다. 디모데는 고린도교회에 가서 바울이 각처에서 가르친 내용을 가르쳤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여기에서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자기에게 들은 것을 그대로 가르치라고 했다. 듣고 그대로 가르치면, 그것을 들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 복음이란 이 쪽 사람이 말하는 것 틀리고 저 쪽 사람이 말하는 것이 틀리는 것이 아니다. 특별하게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 복음은 순수하고 똑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역 자들은 초대 교회에서 전하던 순수한 복음으로 돌아가 복음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4. 가르치는 목적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 1:28)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는 목적은 예수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목사들은 반듯이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한다. 가르칠 수도 없으면서 목사 되는 것은 불법이요, 자기와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또한 가르칠 수도 없는 자가 목사 되는 것은 성도의 물건을 도적질하는 자이며, 이기적인 자요, 게으른 자요, 명예를 좋아하는 자요, 하나님의 시간을 도적질하는 자이다. 가르칠 수 없는 자라면 섬기는 자가 되고 봉사하는 자가 되라! 가르칠 수 없으면서 목사가 되는 것은 거짓말쟁이요, 자기를 속이는 회칠한 무덤이다.
또한 잘못 가르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 줄 아는가? 잘 가르쳤으면 이단에 빠지지 않을 자들이 잘못 가르친 결과 교회를 떠나 이단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이단으로 떠나가는 것은 별로 관심이 없고 부흥회를 해서 돈이나 많이 챙기면 되고 또한 명예를 위해 부흥 강사 되기를 심히 원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자들을 책망하고 있다.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니라"(딛 1:11.12)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 이런 자들은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친다고 했다. 위의 말을 공동 번역에는 알기 쉽게 번역해 놓았다. "그들은 더러운 이익을 얻기 위해서 가르쳐서는 안될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가르쳐서는 안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다.
필자가 전에 기도원을 경영한 때가 있었다. 그 때 많은 부흥 강사를 초청해서 세우기도 하고 또는 부흥 강사들에게 장소를 빌려준 적이 있다. 그 때 부흥 강사들 중 대다수가 간증이나 하고 돈을 뜯어내는 것을 보고 그런 강사를 다시는 세우지 않았는데 심지어 어떤 강사는 축복기도 해준다면서 성도가 가지고 온 돈을 차비만 남겨놓고 전부 바치라는 것이었다.
부흥 강사가 성경은 가르치지 않고 모든 시간, 간증이나 하고 돈이나 뜯어내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성경에서도 말씀한 대로 자기 이익을 위하여 마땅히 가르칠 복음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강사들은 억지로 작정 헌금을 시키고, 작정한 자들이 돌아가 돈을 내려고 할 때, 가정 불화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공동 번역에 기록된 것같이 가정들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성경은 "거짓말장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했다. 필자는 이런 자들을 거짓말장이라 하는 것보다 강도라 부르고 싶다.
그런데 교단이나 목회자들이 이런 부흥 강사를 향하여 목사가 될 수 없으니 잠잠 하라 지적하는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여자가 목사 되는 것은 적극 반대한다. 우리는 여자가 목사 되는 것이 합당하지 못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잘못된 것을 가르치는 부정한 목사들을 추방하고 교회에서 잠잠 하라 해야 한다.
목사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 음란을 좋아하는 자를 제명시켜야 한다. 교단이 간음을 좋아하는 목회자들은 왜 그대로 두는가? 잠잠하도록 제거시키라!
목사는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목사는 근신, 곧 부지런해야 한다.
목사는 술을 즐기지 말아야 한다.
목사는 구타를 좋아하면 안 된다.
목사는 다투기를 잘하면 안 된다.
목사는 돈을 사랑하면 안 된다.
목사는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이 단정하고 복종하도록 잘 지도해야 한다.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교회를 다스릴 수 있는가? 목사는 신앙 연조가 얼마 못되거나 너무 빨리되는 것도 합당하지 못하다.
위의 내용들은 디모데전서 3장에서 목사가 갖추어야 할 자격을 논한 말씀이다. 목사는 양무리를 부득이하므로 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해야 한다.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해도 안되고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
목사의 자격 중에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목사들이 장사하러 돌아다니고, 복음을 전해야 할 돈을 축척해서 부동산이나 많이 사두려는 사람은 합당하지 못하다. 기도원을 빙자하여 부동산을 늘리는 자들은 회개해야 한다.
목사는 영적 지도자이면서 사회적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면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요즈음 신학교의 난립으로 인해 신학도 제대로 하지 않고 안수받는 자들이 있다. 이런 것은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모두 회개해야 할 문제이다.
심지어 어떤 신학교에서는 일년도 안돼 신학생을 졸업시키는 일이 있는가 하면 그런 자를 바로 목사 안수까지 주는 일도 있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신학교도 없이 안수 주는 무리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신학교나 이런 무리가 있는 한 기독교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녀 성차별은 하지 않아도 신학교만은 바르게 되야 하며, 목회를 하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성경만은 제대로 배워서 복음만은 바르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이단이 많고 잘못된 교회가 많은 것은 잘못된 신학교들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른 목회자들이 배출되기 위하여는 신학교들이 올바로 세워져야 한다. 바르게 복음을 가르치기 위하여는 바르게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여자가 되든지 남자가 되든지 그것은 상관없으나 복음을 바로 가르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며, 복음이 합당치 못한 자를 목사로 세워서는 안 된다.
앞으로 한국 교회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곳이 되기 위하여 신학교가 바로 되어야 하며 성경을 바르게 배운 자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이 나라는 주님의 사명을 맡은 자로 합당한 일을 하게 되고 그에 대한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학장  신학박사 김수영 목사 칼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