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歷史,宗敎,哲學/(종교)韓國 의 宗敎들

反宗敎的 비방 넘치는 世界

好學 2011. 8. 24. 22:30

反宗敎的 비방 넘치는 世界

 

 

 

인류를 迷信에서 해방한다며 18세기에 발흥한 反종교주의, 모택동·김일성이 그 化身
인간 계몽한다는 오만 벗어나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로 21세기 역사 이끌어가야

지난 7월 노르웨이 테러 사건이 터졌을 때, 반(反)기독교적이거나 반(反)이슬람적인 공격적 언사들이 인터넷에 범람했다. '21세기 광기의 십자군전쟁'이란 언론의 표제도 신중하지 못했다. '십자군전쟁'이라는 정당화는 대량학살을 자행한 현행범의 주장일 뿐인데, 그것을 그대로 받아서 확대 재생산한 것은 교활한 테러범의 전술에 말려든 것이었다. 2001년 9·11테러 사건을 세계의 권위지들이 '21세기 광기의 지하드'라고 보도하지 않았던 까닭을 반추해봐야 한다. 종교의 상업화 못지않게 경계해야 할 것이 반(反)종교의 상업화다.

최근 종교 관련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우리 사회의 종교에 대한 편견과 비방이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는 종교계가 자초한 측면도 적지 않다. 종교를 일개 정권이나 정파에 종속시키는 일부 종교인들의 탈선, 이웃 종교들 간의 세속적 마찰, 종교계 인사들이 관련된 분규와 비리의 소식들에 중생(衆生)은 절망한다. 그러나 종교에 대한 선의의 비판과 반(反)종교주의적 비방은 분별해서 보아야 한다.

역사가 진보함에 따라 종교는 쇠퇴할 것이라는 확신에 근거한 반종교주의의 역사는 길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은 반종교주의를 전 세계로 확산시킨 주요한 계기였다. 프랑스의 반종교주의자들은 종교가 공화국의 단결을 저해한다고 믿었다. 소르본대학 옆에 있는 팡테옹이 가톨릭 성당에서 공화국 영웅들의 묘소로 바뀐 이유 중 하나다.

1905년 정교분리법은 정치와 종교의 경계선을 명확히 했던 절묘한 타협점이었다.

1917년은 반종교주의의 새로운 비등점이었다.

2월 혁명정부를 10월 정변으로 뒤집었던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러시아정교의 성당들을 폐쇄하고, 무신론 강습소를 만들었다. 저항하는 사제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유폐당했다.

볼셰비키의 집권과정에서 약 1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표방했던 반종교주의였다.

20세기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휩쓸었던 것은 단순한 반식민주의가 아니다. 반종교주의가 진보를 표방하는 반식민주의와 결합하면서 극렬한 폭력노선으로 치달았다.

동아시아에서는 모택동, 크메르루주, 김일성 등이 반종교주의의 화신(化身)이었다.

 

1950년 세계가 6·25전쟁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동안 모택동은 "라마불교의 미몽(迷夢)에서 티베트 민중을 해방한다"는 구실로 군대를 파병했다. 수천만명을 희생시킨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호도하고자 했던 모택동은 '문화혁명'이라는 집단광기를 선동하여 모든 종교, 특히 유사종교로서의 유교까지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반종교주의의 정신적 세례를 받았던 크메르루주는 불교를 박멸하고자 했고, 김일성은 청년 시절 신학생이었던 스탈린이 그랬던 것처럼 종교적 의식과 교리(敎理)를 악용하여 자기 자신을 신격화(神格化)했다.

지금도 세계 70억 인구 중에는 종교적 미신으로부터 인류를 해방하는 것이 진보의 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세계사의 진보가 종교의 쇠퇴를 가져올 것이라는 반종교주의자들의 믿음은 그 전제부터 빗나가고 있다.

1991년 소련의 소멸 이후 러시아정교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면서 러시아가 표방하는 유라시아주의의 정신적 기반이 되고 있다. 유럽에서 주일예배 참석자 숫자는 현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원래의 발원지였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기독교는 재발견되고 있다.

2002년 터키에서 이슬람의 간섭을 배제하는 정치적 근대화에 앞장섰던 케말주의자들이 패배하고 친(親)이슬람 정당이 집권한 것은 또 하나의 역사적 분수령이었다. 종교적 영향력과 경제발전은 반비례한다고 보는 근대화론자들의 명제는 친이슬람 정당이 이끄는 터키의 경제성장에 의해 부정됐다. 최근 이집트와 리비아의 민주화 또한 종교적 영향력의 확대와 맞물려 있다. 서양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증대되고, 일당독재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종교인구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18세기에 발흥하여,

19세기에 체계화됐으며,

20세기에 지구의 절반 이상을 뒤덮었던 반종교주의는

21세기의 역사가 진보하는 방향에 서 있지 않다.

종교를 아편(阿片)이라고 멸시했던 19세기 마르크스의 생각에 매몰되거나 종교를 전근대적인 것으로 보았던 20세기 근대화론자들의 사고 틀에 머물면, 역사의 흐름을 잘못 읽게 된다.

신(神)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21세기 인류는 종교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있다. 찰나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영겁의 무한성을 생각하는 인간 내면의 종교성을 편견이라 규정하고 계몽하겠다고 나서는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반(反)종교주의적 편협함이 아니라 종교에 대한 이해를 더 깊고 넓게 갖고, 종교를 통해 더 궁극적인 관심을 키워가는 청년들이 미래의 한국과 세계를 선도(善導)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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