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박장대소拍掌大笑

한여름밤, '그대'에게 쓰는 연애편지

好學 2011. 8. 13. 09:42

한여름밤, '그대'에게 쓰는 연애편지

 

 

 

모기사냥에 아이교육까지 아내는 '수퍼우먼'이었다
그런 그녀가 폐렴으로 앓아누웠다
자판기에서 커피 뽑듯 살림은 쉬운 줄 알았는데
아내의 빈 자리는왜 이렇게 큰지…

#1

'왜앵~' 모기 한 마리가 날아오릅니다. 날개 겨우 두 장뿐이면서 온갖 오도방정을 떠는 이 곤충의 침입이 감지되면, 지축을 흔들던 그대의 코골이가 뚝, 하고 멈춥니다. 그리고 일어납니다. 무림(武林)의 고수(高手)처럼 그대, 분연히 일어납니다. 긴긴 여름날, 파김치되어 맞이한 꿀잠을 깨운 데 대한 응징입니다.

서슬 퍼런 기세에 놀란 해충이 천장에 붙어 옴짝달싹 않습니다. 파리채로 잡아도 될 것을, 견문발검(見蚊拔劍), 모기를 보고 칼을 뽑으랴라는 표정으로 손바닥 꼿꼿이 펼쳐 모은 채 모기를 향해 전진합니다. 팟! 적중률 99.9%. 한밤 소동에 안방으로 건너온 아들이 입을 헤벌립니다. "쩐다!"

"얘야, 모기를 잡을 땐 반 박자 빠르게 손을 움직여야 한단다. 하나·둘·셋에 잡는 게 아니라 하나·둘에 내려치는 거지. 적이 도망갈 틈을 주어선 안 돼." 때로 영악한 모기가 보란 듯 곡예하며 약을 올리면 그대의 눈에 살기가 돕니다. 몇 방 물린다고 해서 위태해지는 목숨도 아니건만, 끝장을 보겠다는 듯 이를 앙다뭅니다. 마침내 장롱문에 앙버티고 있는 적군을 발견합니다. 파밧! 손바닥에 흥건한 피를 사내들에게 보여주며 그대,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2

그대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습니다. 오직 궁상과 억척만 있을 뿐입니다. 연애시절, 한 줄에 1000원짜리 김밥을 사면서 주인에게 참기름을 한 번 더 발라달라고 으름장 놓을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이것 팔아 몇 푼 남겠느냐"는 주인장과 옥신각신할 땐 등에 식은땀이 다 흐르더군요. 자장면에 사리 주는 중국집 보셨습니까? 저는 봤습니다.

자장면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그대는 아직 많이 남은 양념이 아까운지 잠깐 고민을 하더니 주인 아저씨를 부릅니다. "사리 하나 추가요!" 언젠가 주말 오후에 아이와 영화 보러 나간 그대가 아직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저에게 다급히 전화를 했습니다. 영화표를 집에 두고 안 가져갔답니다. "그럼 그냥 돌아와" 했다가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영화티켓을 폰카로 찍어서 전송해 봐. 아님 티켓 들고 뛰어오든가." 축구하다가 발목을 다쳐 깁스 한 아들 녀석을 그대는 3주일 동안 등에 업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학원은 물론, 담임도 말리는 소풍까지 기어이 따라가고야 말더군요. "못 타도 개근상"이 신조인 그대는 나폴레옹도 혀를 내두르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3

그런 그대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 콧물 한 방울만 나와도 약국으로 돌진하는 나와 달리, 그대는 어지간한 감기는 미련 떨며 깔아뭉개는 괴력(怪力)의 소유자입니다. 앓아누운 그대가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더니 밤새 오한에 시달리다가 새벽녘에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급성폐렴이랍니다.

신경성 위염도 있다고 합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보호자는 뭐 하셨습니까?"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남편 봉급만 바라보다간 여름내 수박 한 통 맘 편히 못 사먹겠다던 그대가 동네 제과점에서 나흘간 알바하고 온 다음 날 일입니다. 밤새 앓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가 당장 피곤하여 귀를 막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대에게 홍삼물 한 봉지 건네본 적이 없는 남편입니다. 홍삼 같은 거 안 먹어도 그대는 평생 아프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대가 집을 비운 며칠 동안 나는 깨달았습니다. 살림이란, 자판기처럼 버튼만 누르면 뚝딱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콩나물처럼 저절로 자라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가계(家計)를 낭비 없이 운영하는 일이 M&A만큼 어렵다는 것을.

#4

병상의 그대는 수퍼우먼도, 여장부도 아닙니다. 그저 불사조(不死鳥)이고 싶은 한 여인일 뿐입니다. 퇴원하던 날, 그대는 몸무게가 2㎏이나 빠졌다며 엉덩이를 흔듭니다. 나는 기쁘지 않았습니다. 드럼통일지언정 밥 잘 먹고 재잘재잘 수다 떠는 그대가 훨씬 예쁘니까요.

'애앵~' 오늘 밤에도 모기 한 마리가 침투합니다. 그대가 일어나려고 몸을 뒤척입니다. "그냥 자. 내가 잡을게." 파리채를 세 번이나 헛스윙한 끝에 모기 한 마리를 가까스로 운명시킵니다. 그대가 퍽 아쉬워합니다. "손바닥으로 내리쳐야 통쾌한데. 스트레스 확 풀리는데." 내가 울적하게 말합니다.

"퇴근길에 모기향 사 올게." "비싸잖아. 몸에도 안 좋고." 그 궁상에 부아가 치밉니다. "이번 여름엔 모기가 떼로 몰려온다잖아. 구제역으로 죽은 가축 대신 사람들 물러 온다잖아. 그거 밤새 손으로 잡고 있을 거야?" 풀죽은 그대, 곰곰 생각하다 다시 잔소리합니다. "아무거나 사지 말고 성분표시 꼭 확인하고 사와. 가격도 비교해 보고. 알았지?"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