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박장대소拍掌大笑

연하 남편과 사는 법

好學 2011. 8. 10. 21:08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연하 남편과 사는 법

 

 

 

김윤덕 기획취재부 차장대우

"'사랑 투정'하는 철부지 연하 남편,
일하랴, 애 키우랴 파김치 된 '섹스리스' 아내…
별거 직전 몰리자 시아버지, 중재 나서다"


 

"뭐어, 별거. 벼얼~거~!" 하고 굉음을 날리실 줄 알았다. "우리 때 여자가 집을 나가 살 수 있는 거는 아들 못 낳아 시집서 소박맞을 때밖에 없었어~" 하고 버럭버럭 으름장 놓으실 줄 알았다.

그런데 시아버님, 입을 꾹 다문 채 앉아 계신다. 방바닥에 검지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가 세모를 그렸다 하다가는, 땅이 꺼져라 '후우~' 하고 한숨을 쉬신다. 은퇴 후 낡은 족보 뒤적이며 몰락한 집안의 옛 영화(榮華)를 추억하는 것으로 소일하는 노인네가 주눅이 든 침묵으로 앉아만 계신다. 퇴근길 호출을 받고 이제 막 무릎을 꿇어앉은 며느리의 심정은, 그래서 폭풍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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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경씨 부부는 중대결단을 내렸었다. 대학강사인 남편은 '질질 끌 것 없이 헤어져!' 선언했지만,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간 두 딸을 위해 '일단 별거'로 물러섰다.

이 부부, 파경에 이른 사연이 별나긴 하다. "이건 사랑이 아냐. 살 냄새가 그립다고. 지붕 아래 나 혼자 사는 양 외롭고 쓸쓸하다고." 이 대사를 읊은 이가 나경씨가 아니라, 그녀의 한 살 아래 남편이다. 일하랴, 애 키우랴,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맞벌이 아내가 잠자리 거부하는 일이 잦아지자 남편이 급기야 입에서 불을 뿜었다. "우리가 부부 맞아? 50대 후반 학과장도 일주일에 세 번은 한다는데, 이제 겨우 30대인 나는 뭐냐고. 나를 남자로 보긴 하는 거야? 내가 당신 조카야?"

벼락같은 거사에 나경씨는 얼떨떨했다. 잠자리 뜸한 것이 저리도 분개할 일인가? 집안일 반만 도와줬어 봐. 내가 왜 파김치 되냐고? 50대 카사노바는 또 뭐야? 일주일에 세 번? 아니지, 이 인간 바람난 거 아냐? 들킬까 봐 엉뚱한 트집 잡는 거 아니냐고….

그러던 어느 토요일, 머리털 쭈뼛 서는 일이 벌어졌다. 잠깐 외출하고 오겠다던 남편이 파마에 염색까지 하고 나타난 것이다. "어때, 이제 좀 섹시해 보여?"



독대가 길어질 조짐이 보이자, 시어머니가 동네 분식집에서 급공수한 '충무김밥'을 보리차와 함께 방 안으로 밀어 넣는다. 마침내 시아버지, 입을 여신다. "힘들제? 일허랴, 아그들 키우랴, 죽을 맛이제?" "……" "내 안데이. 아들눔 하나 있는 거를 시절에 맞게 키웠어야 하는디, 뭔 대(大)학자가 될끼라고 빈둥거림시롱 숟가락 하나 밥상에 올려놓는 꼴을 못봤으이, 이기 다 구식인 내 죄이니라. 다만 니를 부른 것은 갈라설 때 갈라서더라도 그 사유가 뭔지 내 귀로 들어보자는 기다."

세월 가면 남자 몸에 여자 호르몬 흐른다더니, 한국 보수의 종결자 시아버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리 된 마당에 '성격 차이'라고 둘러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나경씨, 조목조목 정황을 설명하였던 것이다. "…하여 저는 방학이 무섭습니다. 강의 없으니 집에서 저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방학이 무섭습니다, 아버님."

 



시아버지의 '반격'이 시작된 건 충무김밥이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기 다가?" "……" "그기 너그들 갈라놓은 치명적 사안이가?" 할 말 잃어 허둥대는 며느리를 시아버지 몰아치신다. "나가 구식인지 몰라도, 그 정도 사유로 갈라선다카믄 무덤 속 조상님들 벌떡벌떡 일어나신데이. 나이 에린 눔이랑 백년가약 맺을 적엔 그 정도 각오는 했어야제. 인삼 홍삼 수시로 댈여 먹었어야제. 그래도 우리 절개 있는 아들눔이 술집마담헌티 안 가고 조강지처 치마폭에 엥기겠다는데 동네 자랑헐 일 아이가." "그게 아니고요…" "안데이, 사랑은 땡크처럼 밀고 들어오는 하룻밤 잠자리가 아이고, 뭐시냐, 다정한 말 한마디, 지친 아내를 위해 기꺼이 앞치마를 두르는 거, 깜짝 이벤트라는 말 하고자픈 거 아이가?" "……" "허나 내 칠십평생 살아보이 이벤트고 저벤트고 서로의 속마음 알아주는거이 최고더라. 내 맘 비춰 넘의 마음, 넘의 마음 비춰 내 맘이라 안카드나. 낼모레 마흔인 눔이 허구한날 에리광하는 이유, 니 참말 모르겠나?" "……". "박봉에 설움 짤짤한 시간강사니라. 앞날이 아득허고 멀다 아이가. 잘나가는 니가 보듬어줘야제 우얄끼고."



시아버지의 반(半)협박성 중재에 '일단 동거'로 후퇴한 두 사람. 나경씨는 연하 남편에 대한 호칭부터 '야!'에서 '자기야~'로 바꿨다. 걸어갈 때 팔짱 끼고 버스에서 손도 잡아준다. 잠자리 배열도 바꿨다. 매트리스 깔고 바닥에 자던 남편을 침대로 올리고, 두 딸들은 중고 이층침대 사서 저희들 방으로 몰아냈다. 단, 잠자리는 일주일에 맥시멈 2회다. 신혼처럼 들뜬 남편은 강의 없는 날이면 육아와 가사에 올인한다. '재회' 첫날밤, 남편은 대뜸 허벅지부터 보여줬다. "이거 보여? 털을 하도 뽑아 멍들었잖아."

우여곡절 끝에 파경을 면한 나경씨, '결혼이 무엇이더냐' 묻는 노처녀 후배들을 만나면 설파한다. "'다리가 썩어 죽어가면서도 손가락으론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봉우리를 가리키는 것이 남자'라는 말 믿었다간 큰코다치지. 연하 남편과 결혼할 땐 말(馬)처럼 건강한 체력을 갖춰놓아야지. 안 그럼 뼈도 못 추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