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資本主義

好學 2011. 8. 10. 20:51

 

資本主義 [자본주의]

 

 

최근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면서 자본주의는 냉혈의 하이에나와 같은 모습으로 대중에게 비치고 있다.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자본주의 1.0) 시기에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으로 절제와 공동체성을 강조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기독교적 가치가 자본주의의 안정적인 성장을 이끌 것이며, 인간의 욕망이 적절한 선에서 통제돼 서로의 부(富)를 증대시킬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금융자본과 주주자본의 발달, 산업자본의 공고화가 진행되면서 처음에 부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쉽게 가족과 가문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지가 결정됐다. 더 이상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를 축적하기 어렵다는 인식, 부모의 자산과 주변 전문가 네트워크가 돈을 벌 수 있는 결정 요인이라는 인식이 재빨리 확산됐다. 고전자본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을 유발시킨 후 케인스가 내세운 수정자본주의(자본주의 2.0)로 진화했다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정부 개입을 거부하고 시장지상주의를 주창한 자유시장자본주의(신자유주의·자본주의 3.0)에 주도권을 넘겨줬다.

자본주의 3.0은 능력주의와 성과주의라는 생산적인 조직 운영 원리를 만들어냈지만 과도한 탐욕으로 인해 '행복하지 못한 직장생활'과 '불안한 노후'를 대다수 가정의 고민거리로 안겨주고 말았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무능력했다. 역대 대통령들과 국회의원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다양한 공약을 내놓고 경기부양책을 사용했으나 단기 처방에 급급한 나머지 자본주의의 새로운 가치와 자정능력을 지닌 생태계를 만들지 못했다. 모든 계층이 자본을 만들어 낼 기회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지만 중산층 이하 가정들은 주요 정보로부터 소외됐다.

근로자 90% 이상이 종사하는 중소기업은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하도급 관계를 청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제품과 서비스의 제값을 받지 못한 채 대기업 눈치만 살피고 있다. 예전에는 교육을 통해 신분 상승과 정보의 접근이 용이해졌지만, 교육 역시 문제풀이 중심의 공학(工學)으로 바뀌면서 교육 전문가를 얼마나 고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자녀의 명문대 진학이 영향을 받게 됐다.

극한경쟁의 자본주의 3.0을 대체하는 '따뜻한 자본주의'(자본주의 4.0)를 실현하려면 '존경받는 자본가와 전문가 집단'을 발굴하고, 이들을 육성하기 위해 교육 시스템과 시장지원체계를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존경이란 자본 축적의 목적이 자신의 가족이나 가문으로 제한된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한 환원과 나눔을 의미한다. 빌 게이츠가 게이츠 재단을 통해 미국 교육을 개혁하기 위해 30조 원 이상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존경의 크기가 커질수록, 존경의 대상이 많아질수록, 특정 가문과 조직에 고여 있던 자본과 재능, 그리고 네트워크가 위에서 아래로, 중앙에서 지역으로, 큰 조직에서 작은 조직으로 순환돼 자본주의 생태계는 조금씩 질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자본주의 4.0은 자본주의에도 '존경'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억제하기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좀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성취와 나눔으로 교육의 목표를 바꾸고 사회 풍토를 조성한다면 반드시 자본주의 4.0은 실현될 것이다.

 

 

 

무상급식, 대학 반값 등록금 등 포퓰리즘성 복지 담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상복지 주장의 이론적 근거인 복지보편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는 복지가 과연 효과를 극대화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또 무상복지 담론은 복지 재원 조달에 있어 수익자 부담보다는 일반 조세에 의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킨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복지 담론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간단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는 지금의 혼란이 세계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라는 도전에 직면한 한국자본주의가 새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경제평론가 칼레츠키(Kaletsky)는 저서 '자본주의 4.0'에서 서구자본주의의 진화 과정을 네 단계로 설명하면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4.0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자본주의 역시 네 단계의 진화 과정을 밟아왔다.

한국자본주의 1.0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했으나 이를 구현하지는 못했다.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을 목표로 했던 한국자본주의 2.0은 강한 정부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정치 민주화로 시작된 한국자본주의 3.0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반을 닦는 계기가 됐으며 IT 강국은 물론 G20 의장국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고 지금은 한국자본주의 4.0의 새 틀을 짜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서구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한국자본주의 역시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전환기의 징후가 있었다.

1960년을 전후하여 1.0에서 2.0으로 갈 때에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선거 구호에서 보듯이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분출됐다.

1980년대 후반에 2.0에서 3.0으로 바뀔 때에는 민주화 시위와 노사 분규의 시련을 겪었고, 3.0에서 4.0으로 변환되는 오늘날에는 복지포퓰리즘 경쟁과 대기업 비판 등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자본주의 4.0의 핵심은 보수적 가치관인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원리'에 진보 성향의 '사회적 연대의식'을 접목시키는 것이다.

자본주의 2.0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강조됐지만 자본주의 4.0에서는 기업의 역할이 부각되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한국자본주의 4.0의 실천전략은 '지속 가능 경제' '지속 가능 경영' '지속 가능 복지'의 동시 추진이다. '지속 가능 경제'의 요체는 수출과 내수의 균형 유지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건설경기의 연착륙 유도와 서비스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급선무다. 환율정책 역시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지속 가능 경영'의 핵심은 기업과 사회 간 상생(相生)체제의 구축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의 투명성 제고, 이사회의 감시기능 강화, 의사 소통구조의 개선과 자유경쟁적 경영권 승계 과정의 정착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속 가능 복지'를 위해서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더불어 일자리 복지의 기반을 다지는 전달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한국자본주의 4.0에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화와 타협, '사랑 나눔'의 사회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최근의 복지 담론이 소모적 정쟁(政爭)을 넘어 한국자본주의의 새 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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