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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好學 2011. 7. 23. 22:31

[ESSAY]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정호승 시인

길가에 낙엽은 또 떨어진다
인생의 가을이 되면 누구나 퇴비가 되라고,
인간으로서의 역한 냄새를
스스로 향기롭게 만들어보라고
낙엽은또 떨어진다
낙엽이 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길을 걷는다. 문득 선암사 해우소에서 썩어가는 낙엽들이 생각난다. 도시의 길 위로 떨어진 낙엽들은 쓰레기자루에 담겨 변두리 매립지나 화훼단지로 실려 가지만, 선암사 경내에 떨어진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인분과 뒤섞여 자신을 썩힌다. 더러운 인간의 배설물에 자신을 던져 역겨운 인간의 냄새를 없애고 그것을 퇴비로 변화시킨다.

언젠가 만나 뵌 선암사 전각(田覺) 스님은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해우소에 냄새가 안 난다"고 했다. 낙엽이 인분과 뒤섞여 발효돼 변소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를 없앤다는 것이다. 또 "지금은 멧돼지 출몰이 잦아서 농사를 안 짓지만, 예전에 농사를 지을 때는 해우소에 쌓인 분뇨를 채소밭에 뿌리는 거름으로 썼다"고 했다.

낙엽인들 인분 속에 썩어가면서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내가 만일 그런 낙엽이라면 그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걸음을 멈추고 새삼 낙엽을 바라본다. 사람들의 발에 마냥 짓밟히는 낙엽은 한낱 나뭇잎의 주검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똥오줌조차 향기롭게 하고 거름으로 만들어 새 생명을 키우는 소중한 존재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선암사 해우소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로 이름나 있는 것은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목조 건축물로서의 훌륭한 외양 때문일 것이다. 처음 선암사 해우소를 찾았을 때 나는 그곳이 해우소인 줄 알지 못했다. 출입구 맞배지붕의 곡선미가 매우 고즈넉해 '뒷간' (실은 시옷이 '간'자의 기역 앞에 붙은 고어체로 표기돼 있다)이라고 쓴 나무 표지판을 보고서도 스님들이 공부하시는 선방인 줄 알았다. '이곳이 정말 해우소 맞나' 하고 조심조심 돌계단 아래로 내려서서 '대변소'라고 쓴 현판을 보고서야 그곳이 뒷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냄새는 나지 않았다. 역겨운 암모니아 냄새 대신 바람과 햇볕 냄새가 은은히 났다. 바닥도 시멘트 바닥이 아니라 마룻바닥이었다. 왼쪽에 '남' , 오른쪽에 '여'라고 쓴 글씨만 없었다면 어릴 때 살던 기와집 대청마루인 줄 착각할 정도로 그곳은 밝고 환했다.

만일 그런 해우소에 재래식 측간 냄새가 난다면 그게 어디 해우소이겠는가 . 해우소가 해우소다우려면 외양의 아름다움보다는 무엇보다 인분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낙엽의 희생이 필요하다. 만일 해우소에 낙엽이 쌓여 썩지 않는다면 해우소는 해우소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낙엽이 인분과 한데 썩어 발효과정을 거침으로써 해우소는 비로소 해우소로서의 존재성을 지니게 된다.

그동안 선암사 해우소를 몇 차례 찾은 적은 있지만 지난 여름날 찾았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입구에서 보면 단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아래층에서 보면 2층 누각처럼 보이는 선암사 해우소는 마침 해체 보수공사 중이었다. 그래서 출입이 금지된 위층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뜻밖에 해우소 밑바닥으로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대소변이 떨어져 쌓이는 곳으로 처음엔 어두컴컴했으나 곧 실내가 훤하게 눈에 들어왔다. 바닥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낙엽과 함께 켜켜이 인분이 쌓여 있던 곳이라는 것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측면 입구에 있는 두 개의 문을 통해 맑은 바람과 햇살이 솔솔 들어왔다. 일반인에겐 해우소 바닥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기회가 주어질 수 없으므로 보수공사 중인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내밀한 부분을 나 혼자 몰래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 황홀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렇게 매혹당한 심정으로 그 안에 서 있다가 그만 가슴이 뭉클해졌다. 해우소 위층을 받치고 있는 시커먼 바위와 구부정한 나무기둥들의 숭고한 자태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내 몸체만 한 바위 몇 개가 웅크린 채 놓여 있었고, 그 바위 위에 나무기둥이 몇 개 서 있었는데, 그 기둥들이 위층의 모든 무게를 받치고 있었다.

그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온갖 똥오줌을 뒤집어쓰면서 그들이 견뎌낸 인내의 힘은 바로 희생과 사랑이 아니었을까. 낙엽이 없으면 해우소가 존재하지 못하듯 그 바위와 기둥이 없으면 해우소 또한 존재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길가에 낙엽은 또 떨어진다. 인생의 가을이 되면 누구나 퇴비가 되라고, 인간으로서의 역한 냄새를 스스로 향기롭게 만들어보라고 낙엽은 또 떨어진다. 낙엽이 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나뭇가지에 영원히 매달려 있고 싶어도 때가 되면 낙엽이 되어 그만 땅에 떨어진다. 아무리 영원히 썩지 않기를 원해도 그만 누구나 썩고 만다. 다만 그 썩음이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이느냐 하는 것만 다를 뿐이다.

이제 선암사 해우소 보수 공사는 끝났을 것이다. 다시 사람들이 대소변을 보기 시작하고 해우소 아래층 바닥에 인간의 배설물들이 켜켜이 쌓여갈 것이다. 올가을 선암사 낙엽들은 또다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해우소에 던져 스스로 서서히 썩어갈 것이다. 낙엽의 이 숭엄한 모성 앞에 나는 숙연해진다. 내 인생의 가을에 나는 해우소 바닥에 나를 던지는 낙엽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오직 부끄러울 뿐이다.